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51화 (25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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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하나를 넘다

    6회 초, 무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선 강호.

    아이템 사용 여부를 묻는 메시지를 바라보며 강호는 진하게 미소 짓는다.

    '어차피 지금 홈런을 때려내지 못하면 내일 이어질 기록도 없어!'

    그런 생각으로 바뀐 투수를 응시한다.

    마운드 위의 투수는 우규명에서 불펜 투수인 이준영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선발 투수인 우규명은 5이닝동안 1실점만으로 막아내며 호투했지만, 볼넷을 5개나 내주면서 투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말았다.

    그 5개의 볼넷 중 강호에게 내준 고의사구가 2개라는 점에서 우규명 투수도 억울한 부분은 있었다.

    '1회 연속 볼넷하고, 백강호에게 내준 고의사구만 아니었다면 투구 수가 이렇게까지 말리지는 않았을 텐데...'

    불펜 투수인 이준영에게 마운드를 물려주고 내려온 우규명의 생각이었다.

    그는 다소 아쉬운 표정으로 이준영 투수와 강호의 승부를 관전한다.

    그리고 이내 우규명의 아쉬움은 사라지게 된다.

    이준영의 초구에 대응하는 강호의 테이크 백 동작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뿌드득.

    테이크 백 동작에 들어간 강호의 상체 근육이 불거져 나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소리겠지만, 강호 본인은 느낄 수 있었다.

    발끝부터 시작되어 장단지, 허벅지, 대둔근, 슬와근, 복사근, 복근, 대흉근, 삼각근, 삼두근, 이두근, 그리고 팔뚝을 구성하는 모든 근육들까지.

    가장 완벽한 스윙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전신의 근육들이 최고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미 백스윙 동작에서 모든 근육들을 각성해버린 강호의 모습에 공을 던졌던 이준영 투수가 마른 침을 삼킨다.

    꼴깍.

    이준영 투수의 표정이 급변했다.

    강호가 휘두른 배트 궤적이 자신이 던진 슬라이더 코스와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다른 타자도 아니고, 강호가 저렇게 자신만만한 스윙을 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남달랐다.

    "이런...!"

    이준영 투수는 자신의 초구가 강호에게 공략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입을 크게 벌린다.

    그 후 강호의 배트가 이준영 투수의 공을 강타한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마운드에 선 이준영의 고개가 바닥으로 떨궈진다.

    반면 초구를 강타한 강호는 서서히 1루를 향해 걸음을 떼는 모습이다.

    초구를 타격한 순간, 손끝에서 느껴진 감각을 통해 이번 타구가 담장을 넘길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강호였다.

    너무나도 가벼웠다.

    패스트볼에 비해 느린 슬라이더라고 해도 시속 130km가 넘는 구속이었는데 그 구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타격할 때의 느낌이 가벼웠다.

    이런 감각으로 공을 때렸을 때는 타구가 반드시 담장을 넘었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1루 베이스를 향해 달려 나간다.

    한편, 벼락같이 나온 강호의 타격에 중계석은 잠시 혼란에 빠져 있었다.

    "백강호 초구 컨택! 타구가 외야로 뻗습니다! 계속 뻗습니다. 자, 어디까지, 담장을 넘느냐? 잡히느냐? 좌익수 이현종이 펜스까지 달립니다. 아...! 지금은 넘어갔나요? 타구가 중계 카메라에 사라졌는데요? 트윈스 외야수들이 외야 쪽을 보는 것을 봐서는 넘어간 것 같기도 하고요."

    한명진 캐스터가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타구를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뜬다.

    중계 화면에 아직 홈런 기록이 표시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시야에서 놓친 홈런을 찾아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때 곁에 앉은 박재헌 위원이 한 캐스터를 돕는다.

    "지금은 2루심이 홈런 콜 싸인을 하고 있죠? 3루심은 타구를 놓친 상황에서 2루심이 홈런 선언을 했거든요? 타구가 장외로 넘어간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박 위원은 중계석에서 일어나 2루심의 홈런 콜을 직접 확인하며 강호의 타구가 장외홈런이 된 것은 아닌가하는 추측을 해 보인다.

    그가 추측성 발언을 하는 것은 더욱 거세지는 빗줄기로 인해 타구의 종착지점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 위원의 발언에 현장의 중계 PD는 뒤늦게 강호의 57호 홈런을 화면에 표기한다.

    그 사이 강호는 1루를 돌아 2루 베이스를 향하고 있었고, 한 캐스터는 확신이 들지 않는 목소리로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지금은 리플레이 영상으로 확인해야할 것 같습니다만, 백강호 선수의 57호 홈런이 선언됐습니다! 아! 지금 리플레이 영상이 나오네요. 함께 확인해보시죠. 타구가 빠르게 빗속으로 사라졌거든요? 지금은 보이죠? 아..! 장외로 넘어갔네요! 장외 홈런! 백강호 선수의 57호 홈런은 장외홈런으로 기록됩니다. 백강호 선수가 자신의 시즌 57호 홈런을 비오는 잠실구장에서 장외홈런으로 기록합니다!"

    한 캐스터는 리플레이 영상을 확인한 후에야 강호의 57호 홈런을 선언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57호 홈런.

    그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남달랐기 때문에 조금 전의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빠르게 수습하고, 강호의 홈런에 대한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있었다.

    "자이언츠 팬 여러분! 그리고 경기를 보고 계시는 모든 시청자 여러분! 지금 보이십니까? 백강호 선수의 57호 홈런이 이 거친 빗줄기를 완전히 뚫어버렸습니다! 장외 홈런! 이로써

    백강호 선수가 대한민국 야구 역사 하나를 새롭게 갈아치웁니다! 2003년 이후 16년 만에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 바로 이 선수를 통해서 달성됩니다! 백강호! 올 시즌이 데뷔 시즌인 이 선수가 한국 야구사를 또 다시 새롭게 씁니다!"

    한 캐스터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선언하는 동안 강호는 어느새 홈을 밟고 있었다.

    그로써 완성되었다.

    강호로 인한 새로운 홈런 신기록이 오늘 경기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자이언츠 팬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것 마냥 기뻐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우와아! 봤어? 장외로 넘어가 버렸어! 장외 홈런이야!"

    "이야~~지금 홈런은 못해도 대치동까지는 날아갔겠네! 주우러 가려고 해도 못가겠다!"

    "왜 못가?! 나는 지금 당장 나갈 거야!"

    일부 팬들은 강호의 홈런 기록구를 줍기 위해 경기장 밖으로 뛰쳐나가는 모습이다.

    그들의 숫자가 수백 명이 넘을 정도로 뜨거운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계 카메라는 그런 팬들의 열광적인 모습과 환호를 고스란히 TV에 담고 있었고, 또 다른 카메라는 자이언츠 덕 아웃으로 걸음을 옮기는 강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강호 후배! 내가 딱 알아봤어! 타석에 들어갈 때부터 홈런 칠 것 같더라!"

    "닥쳐 문펴! 내가 먼저 그렇게 말했잖아?! 강호 동생, 이리 와서 나하고 하이파이브 해야지?!"

    "나한테도 57홈런의 기운을 나눠줘!"

    "선배님, 저도요!"

    동료 선수들은 덕 아웃으로 들어서는 강호에게 각종 찬사를 내뱉으며 57호 홈런을 기리는 모습이다.

    그들 모두는 알고 있었다.

    57호 홈런이라는 기록이 한국 야구사에서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를 말이다.

    자신의 팀에서, 그것도 선수단에서 평판이 가장 좋은 강호에게 나온 그 기록을 사심 없이 기뻐할 수 있었다.

    "이야! 백강호! 너 혼자 다 해먹어라!"

    일부 선배들의 장난어린 타박의 목소리도 들려왔지만, 그건 질타보다 축복에 가까웠다.

    자이언츠의 모든 팬들과 선수들은 강호의 홈런 기록 하나로 화합되어간다.

    그리고 그것은 손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잘했다, 강호!"

    손 감독은 선수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강호에게 직접 다가가 칭찬의 말과 함께 오른 손을 내민다.

    강호는 손 감독이 내민 주먹을 잠시 내려다보고는 자신의 오른손을 동그랗게 쥐어 손 감독의 손과 맞부딪힌다.

    투욱.

    손 감독과 강호, 두 사람의 마주침은 덕 아웃을 주시하고 있던 중계 카메라를 통해 생생하게 안방으로 전달된다.

    그 모습이 뭉클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해서 자이언츠 팬들은 괜스레 눈가가 촉촉해짐을 느낀다.

    "아...갑자기 안구에 습기가 차네. 휴지가 어디 갔지?"

    "어머, 여보 울어?"

    "울기는 누가 울어? 하품해서 그래."

    TV로 경기를 지켜보는 자이언츠 팬들은 왠지 모를 뭉클함에 눈가를 적시는 눈물을 닦아내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런 팬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사직동 집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강호의 친형인 강수였다.

    "진짜 해냈구나."

    강수는 지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경기가 5회가되기 전까지는 제발 우천 노게임이 선언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경기를 지켜봤었다.

    강호가 이번 경기에서 느낄 부담감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그리고 저 비좁은 타석 위에서 얼마나 외롭게 느껴졌을까...'

    강수는 경기가 진행됨에 따라 동생이 느꼈을 고독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자신을 지켜보는 엄청난 시선 속에서 오직 홈런을 때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사로 잡혔을 동생, 강호.

    강수는 타석에 선 동생의 모습이 고독하게만 느껴진다는 착각에 사로 잡혔다.

    '강호야, 부담가지지 마라! 너는 충분히 잘 해냈으니까, 여기까지도 충분해! 더는 보여줄 필요가 없어. 그러니까 당당하게 강호, 네 야구를 하면 되는 거야!'

    강수는 가슴을 무겁게 잠식해오는 억눌린 감정을 이겨내며 동생을 응원하고 있었다.

    차라리 오늘 경기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마저 느낀다.

    그런데 6회 초, 무사 상황에서 터져 나온 강호의 타구가 굵어지는 빗줄기를 뚫어내고 잠실구장의 담장을 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장하다! 강호 네가 해낸 거야!"

    강수는 TV중계 화면에 표시되고 있는 '백강호 한국 최초 57호 홈런 달성!'이라는 문구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동생이 경기가 종료된 후 보게 될 하나의 문자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카톡 메시지를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던 강수.

    그는 결국 짧은 메시지 하나만을 전송하고 있었다.

    강수: 고생 많았다.

    강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많은 미사여구보다는 그동안 동생이 겪었을 노고와 수고를 떠올리며 작성한 다섯 글자의 말.

    동생인 강호라면 그 짧은 말 속에 내재된 많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강호의 홈런이 있은 후 경기는 빠르게 흘러가고 6회 말이 되었을 때 주심은 양팔을 들어올리며 경기 중단을 알린다.

    TV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수는 곧 주심의 강우 콜드 승 선언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강호의 홈런으로 자이언츠가 2대 1로 앞선 상황.

    이닝은 6회 말까지 진행되었으니 여기에서 경기가 중단된다면 자이언츠의 우천 콜드 승으로 결과가 정해지는 것이다.

    -아, 여기서 우천 콜드 승 선언이 나옵니다. 나강남 주심이 더 이상 경기를 진행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이언츠의 승리로 경기가 종료될 것 같습니다.

    TV속에서 흘러나온 한명진 캐스터의 말을 통해 경기가 예상대로 콜드 승으로 종료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강수는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며 주먹을 불끈 쥔다.

    "됐어!"

    강수는 환호하고 있었다.

    6회 말 콜드 승으로 경기가 종료됨으로 인해 강호가 6회 초에 때려낸 홈런은 정식 기록으로 인정된다.

    또한 강호의 연속 경기 홈런 기록도 여덟 경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오늘의 경기가 끝이 나자 TV화면 속 빗방울이 강호의 기록 달성을 축하해주는 축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 경기를 통해 자이언츠는 17일부터 이어지던 연승 기록을 4연승까지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선수의 홈런 기록이 57개까지 늘어났다는 겁니다. 지금 화면을 통해 보고 계시는 백강호 선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TV화면 속 캐스터의 말과 함께 카메라는 강호의 모습만을 쫓기에 여념이 없다.

    강호는 활짝 웃는 얼굴로 자신이 달성한 믿지 못할 기록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강수는 동생이 언제 저렇게 커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 중계는 종료되었고, 강수는 강호의 경기를 보기 위해 잠시 미뤄두었던 일을 마무리하려 걸음을 옮긴다.

    강수가 이동한 곳은 강호가 없을 때마다 서재처럼 사용하곤 하는 주방의 식탁.

    식탁 위에는 조금은 낡아 보이는 한영사전과 영어 교본, 쓰다만 편지지와 볼펜 등이 놓여 있었다.

    편지지에는 강수의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진주야, 언제고 네가 답장을 해줄 거라 믿는다. 우리 삼남매가 다시 보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 그렇지? 네가 내 편지를 그냥 버리지 않는다면 곧 웃으면서 추억을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여기 편지에 호주 달러로 600달러를 동봉해서 보낸다. 이 돈으로 네가 한국에 돌아왔으면 한다.

    짧은 편지 내용이었다.

    아직 적지 못한 말들을 더하기 위해 강수는 한동안 식탁 의자에 앉아 막내 동생을 위한 글들을 채워나간다.

    ============================ 작품 후기 ============================

    컨디션이 많이 떨어져서 마늘주사로 불리는 수액을 맞고 왔습니다.

    처음 맞아봤는데 효과가 좋네요.

    HP바닥났는데 힐링포션 먹은 느낌입니다.

    당분간 약빨 버프받고 글에 전념하겠습니다.

    걱정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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