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48화 (24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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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서

시리즈 두 번째 경기를 승리함으로써 자이언츠는 20연승 이후 끊어진 연승 행진을 다시 이어갈 수 있었다.

20연승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지만, 쾌조의 3연승을 이어가며 연승 후 연패의 늪에 빠질까 걱정하던 팬들의 우려를 단박에 떨쳐낼 수 있었다.

그런데 팬들이 팀의 연승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건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강호의 기록 달성에 관한 부분이었다.

"시즌 경기가 서른 경기가 남았는데 벌써 56홈런이라니? 이제 60-60은 따논당상 아니야?"

"윗님, 정확하게는 31경기 남았습니다. 산술적으로는 70-70도 가능해요."

"생각할수록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백강호 선수 홈런 기록이 진짜 70홈런까지 갈까요?"

"시즌 초에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50-50은 커녕 40-40도 부정적으로 봤었잖아요? 그런데 벌써 56홈런이에요. 70홈런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 봅니다!"

"대단하다, 진짜! 정말 한국 야구에서 70홈런을 보는 건가? 이제 백강호 선수 출전하는 경기 쫓아다녀야겠습니다!"

"아마 어려울 거예요. 자이언츠 경기는 시즌 종료까지 인터넷 예매가 다 끝났다고 하던데. 백강호 선수 경기 보려면 현장 예매 하셔야할 겁니다."

"내가 이번에 잠실 경기 현장 예매하러 오후 5시에 갔었는데 전석 매진돼서 경기 못 봤습니다."

"쯧쯧쯧, 저는 오후 3시 30분에 갔는데 겨우 끊었다고요. 그나마 관중석 수가 많은 잠실 경기라서 이 정도지 다른 구장에서 하는 경기면 이보다 빨리 가야 현장 예매가능할 겁니다."

"후덜덜, 저 대전 사는데 현장 예매는 포기해야겠네요. 어쩌죠? 백강호 선수 홈런 치는 거 직관으로 보고 싶어요. 자이언츠 경기 표 삽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야구 섹터를 점령하고 있는 자이언츠 팬들의 물결이 강호에 대한 관심을 말해주고 있었다.

올 시즌 초까지만 해도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지 않았거나, 아니면 다른 팀 경기를 응원하기도 했던 야구팬들이 강호와 자이언츠 경기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팬들은 강호가 경기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했다.

TV중계 카메라를 꿰뚫어 버릴 것 같은 강호의 강렬한 눈빛과 호쾌한 타격을 TV화면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봤으면 하는 바람이 팬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덕분에 야구계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붐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백강호 선수 등번호가 몇 번이지? 인터넷으로 백강호 선수 유니폼 좀 사려고 하는데, 정품 유니폼이 많이 비싸려나?"

"백강호 선수 등번호도 몰라? 100번이잖아! 2군에서 쓰던 등번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그리고 유니폼 가격이 조금 비싸면 어때? 백강호 선수한테 싸인만 받으면 본전 이상은 뽑을 텐데."

"아! 그래야겠어. 유니폼 사서 백강호 선수한테 싸인 받으러 가야겠다! 백강호 선수는 싸인도 잘 해준다며?"

팬들은 앞 다투어 강호의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구입하고 나선다.

강호의 등번호인 100번이 새겨진 자이언츠 유니폼은 출시와 동시에 모두 팔려버리는 기염을 토해내고 있었고, 강호가 사용하는 모든 야구 물품들에 대한 매출이 대폭 증가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강호로 인한 야구 붐은 사회인 야구에 대한 관심도를 더욱 높여 유니폼이나 글러브, 배트, 야구용품 등에 대한 소비 수요가 증대되고, 야구경기장 매표율도 작년과 비교하여 무려 40%이상 올라있는 상태였다.

"요즘 야구가 볼만하다며? 그 누구지, 강백호였던가? 홈런 기록 깬 선수 말이야."

"뭐? 강백호?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지! 백강호라고! 홈런 기록만 깬 게 아니라. 올 시즌 타격 기록은 죄다 깨고 있어. 최다 타점에 최다 득점, 최다 3루타에 최다 홈런까지. 최다 2루타나 최다 도루 기록도 가시권이라고! 타율도 역대 최고 페이스야."

"아...그래? 나는 축구만 봐서 야구 잘 몰라."

"백강호 선수 올 시즌 기록을 축구로 비교하면 매 경기마다 두 골씩 넣고, 어시스트 올리고, 팀 20연승하게 만드는 거라고! 타율 4할 넘는 건 대체 뭐랑 비교해야 되는지 모르겠네."

"그 정도야? 그럼 대박 잘하는 건데?"

"그래. 지금 백강호 선수가 대박 잘하고 있어. 내가 자이언츠 팬도 아닌데 자이언츠 경기마다 쫓아다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강호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그의 위상을 알 수 있었다.

강호의 기록은 이제 자이언츠 내부적인 관심을 넘어 야구계 전체를 뒤흔드는 사회 현상으로까지 만들어져 간다.

백인천 감독 이후에는 불가의 영역이라 불리던 4할 대 타율과 한국 야구사에는 없었던 50홈런-50도루 기록, 그리고 한국 야구의 살아있는 레전드로 남은 이승엽 선수의 2003년도 56홈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홈런 기록까지.

올 시즌 강호가 이어가고 있는 기록들은 야구팬뿐만이 아니라 야구에 관심이 없던 이들마저 야구장을 찾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이런 현상을 일컬어 야구 전문가들은 '백강호 신드롬'이라고까지 말하면서 올 시즌 야구계에 강호가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점을 입 모아 얘기하고 있었다.

강호에 대한 소식을 중점적으로 다룬 야구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이 올라가고, 강호의 소식 전하기를 게을리 하는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이 급감하기도 했다.

그런 점을 의식한 대다수의 야구 프로그램들은 8월 21일 경기가 끝난 후 빠르게 잠실구장의 경기를 전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야구 중계가 끝나면 시작되는 아이 러브 베이스볼, 아나운서 오현주 입니다. 요즘 야구계에 불어온 핫 이슈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지금부터 뜨거운 바람이 불고 있는 현장 속으로 함께 가보시겠습니다."

아나운서의 인사말과 함께 곧 경기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넘겨진다.

국내 최대의 K방송사에서 진행하는 아이 러브 베이스볼에서는 이례적으로 본인들이 직접 중계하지 않은 잠실구장의 경기를 먼저 하이라이트 화면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강호에 대한 야구팬들의 관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의 일부였다.

하이라이트 장면은 몇몇 승부처를 지나 경기의 종지부를 찍은 강호의 타석 장면으로 넘겨진다.

따악!

"아!! 가나요?! 가나요?! 넘어~~갑니다!! 백강호의 타구가 잠실구장의 담장을 완전히 넘겨버립니다! 백강호 56호 홈런! 이 홈런은 2003년 이승엽 선수가 기록했던 56홈런과 타이가 되는 기록입니다! 아~~여러분 지금 보이십니까? 백강호 선수의 홈런볼을 잡은 남성 팬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요! 백강호 선수의 56호 홈런을 축하드립니다."

스튜디오 현장 녹음으로 진행된 캐스터의 박진감 넘치는 중계로 강호의 56호 홈런이 선언된다.

하이라이트 영상에는 강호의 56호 홈런볼을 잡은 40대 남자 팬의 모습을 계속해서 재생시켜 주며 그가 느끼는 기쁨을 안방까지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었다.

강호의 홈런볼을 잡은 남성은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을 껴안은 사람 같은 표정으로 56호 홈런볼을 소중하게 껴안은 채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내지르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기뻐 보여 TV로 그 모습을 보게 된 시청자들 역시 함께 웃음 지을 정도였다.

그 사이 마이크는 다시 스튜디오로 넘어온다.

"오늘 경기에서 양 팀 타선이 침묵한 가운데 백강호 선수의 투런 포가 경기의 점수를 완성하는 결승타로 기록됩니다.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인 박세준 투수가 7이닝을 막아내며 승리투수로 기록되고, 표성태 투수는 홀드를, 마무리인 권대우 투수가 세이브를 챙깁니다."

오현주 아나운서는 화면에 뜨고 있는 양 팀 스코어보드를 확인하며 간략하게 설명을 끝낸 후, 대본에 적혀 있는 내용으로 곧바로 넘어간다.

오 아나운서의 스탠딩 테이블에 놓인 대본에는 온통 강호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는 상태였다.

"오늘 경기에서도 이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네요. 바로 백강호 선수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오늘 투런 홈런으로 백강호 선수의 시즌 홈런 기록이 56개가 되었습니다. 2003년 이승엽 선수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과 타이기록이 달성 됐는데요. 16년 만에 나온 의미 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겠네요. 두 분 위원님들께서도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 같아요."

오 아나운서는 방긋 웃는 얼굴로 두 명의 해설위원들에게 마이크를 자연스럽게 넘긴다.

먼저 마이크를 넘겨받은 사람은 자이언츠 프랜차이즈였던 조성한 위원이었다.

오늘 스튜디오에 자리한 두 명의 해설위원은 모두 강호에게 우호적인 해설을 했던 해설위원들로 선별한 상태였다.

이홍철 위원이나 안지원 위원처럼 강호에게 다소 부정적인 해설을 했었던 위원들은 오늘 방송에서만큼은 배제되어야만 했다.

축제의 장이 될 이번 생중계 방송에서 또 다시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했다가는 방송사 홈페이지가 다운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호의 기록 달성에 대해 이홍철 위원이 부정적인 발언을 했던 지난 번 방송이 끝난 후 방송사 홈페이지의 게시판이 성난 팬들의 성토로 초토화되었던 적도 있었다.

담당 PD는 그런 점을 고려하여 전반기부터 강호에게 우호적인 발언을 했었던 조성한 위원과 송진석 위원을 스튜디오에 세워둔 것이다.

"우선 백강호 선수 본인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백강호 선수, 축하합니다!"

조 위원은 뜬금없이 중계 카메라를 응시하며 강호를 향해 축하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오 아나운서와 곁에 있던 송진석 위원이 웃음 짓고 있었지만, 사실 조 위원의 행동은 대본에 나와 있는 부분이었다.

담당 PD가 지난 번 일을 만회하기 위해 대본에 기입한 내용이었다.

사실 강호를 향한 축하의 메시지는 강호 본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방송을 보고 있는 자이언츠 팬들을 위한 것이었다.

안방에서 TV를 시청하던 팬들은 조 위원의 축하 메시지에 기분 좋게 미소 짓게 된다.

"허허, 저런 말은 백강호 선수한테 직접 전해줘야지. 지금 백강호 선수가 TV볼 정신이 어디 있겠어?"

"그래도 보기 좋네. 자이언츠 출신 해설위원이 방송에서 축하도 해주고, 얼마나 좋아? 보는 내가 다 기분이 좋아지네."

방송을 지켜보는 팬들은 조 위원의 축하메시지에 지난 번 일은 잊고, 지금의 방송 내용에 집중하게 된다.

이제 곧 강호를 향한 칭찬과 찬사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 멘트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활짝 연다.

이미 강호의 일은 모든 자이언츠 팬들에게는 자신의 일처럼 중요한 일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팬들의 관심 속에 TV속 조성한 위원의 코멘터리가 시작된다.

"올 시즌 백강호 선수가 만들어나가는 기록들이 참 많은데요. 오늘은 한 가지 기록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씀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바로 홈런 기록인데요. 오늘 백강호 선수가 때려낸 투런포가 56호 홈런입니다. 이 홈런으로 홈런 2위인 테인즈 선수와 4개 차이로 벌어지게 되었는데요. 슬슬 백강호 선수의 홈런도 독주체제가 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 시점까지 백강호 선수가 8개의 타격 전 분야에 대해서 1위를 달리고 있거든요. 만약 타격에 대한 다른 지표들이 더 있었다면 그것도 백강호 선수가 1위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그만큼 올 시즌 백강호 선수의 타격은 비교불가한 점이 있어요."

조 위원은 가벼운 분위기로 강호의 홈런 기록에 대한 코멘터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친정팀 소속 선수가 신기록을 달성해 나간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서인지 스튜디오에 위치하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조 위원의 코멘터리가 이어진다.

"자, 우리가 이쯤에서 한 가지 살펴봐야 할 기록이 바로 타율인데요. 메이저리그에서도 60홈런은 있었고, 4할 타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4할 타율에 60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물론 4할 타율에 50홈런도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기록 영역을 조금 더 확대해 보면, 4할 타율에 60홈런-60도루, 200타점. 역대 어느 선수가 이런 기록을 남겼겠습니까? 세계 야구사를 모두 털어 봐도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 야구계에서 이런 기록이 정식 기록으로 쓰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지금 백강호 선수의 페이스만 본다면 60홈런은 이번 달 내로 충분히 달성 가능해 보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기록을 백강호 선수의 이름으로 남기게 되는 겁니다!"

조 위원은 강호가 만들어가는 기록들이 한국을 넘어 세계 최초의 기록이고, 또한 메이저리그 레전드들의 기록과 비교해 봐도 전혀 뒤질 것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메이저리그 야구와 비교한다면 수준 차이가 심하다고 평가받는 국내 프로야구였다.

때문에 강호의 기록에 대해 평가 절하하는 미국 야구팬들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이언츠 팬이 아닌 일부 팬들은 강호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올 시즌을 보냈다면 4할 타율은 물론이고, 홈런 기록도 절반 이하로 감소했을 거라는 전망을 내보이기도 했다.

조 위원은 그런 관점을 불식시키기 위해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이건 대본에 없는 제 주관적인 생각인데요. 저는 백강호 선수가 올 시즌에 70홈런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백강호 선수를 주전 라인업에서 제외하지 않고, 지금처럼 꾸준하게 선발 출장시킨다면 70-70도 불가능은 아닙니다. 저는 자이언츠 구단에서 백강호 선수에 대한 욕심을 조금만 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올 시즌이 지나면 다시 달성하기 힘든 기록일 수도 있거든요."

조 위원은 자이언츠 구단에서 정규 시즌이 종료될 때까지 강호의 선발 자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포스트 시즌 일정을 예상한 일각에서는 강호에 대한 체력 안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조 위원의 생각은 그들과 달랐다.

자이언츠가 1위나 2위로 정규 시즌을 마무리 하게 되면 3, 4, 5위 팀 일정이 진행되는 동안 강호와 자이언츠 선수들에게 충분한 휴식이 주어진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런 조 위원의 주장은 대다수 자이언츠 팬들의 생각과도 같았다.

"이제 자이언츠는 113경기 째를 끝냈습니다. 정규 시즌 종료까지는 31경기가 남아있는 거죠. 남은 31경기 동안 백강호 선수가 주변의 기대와 바람을 부담감으로 받아들이지만 않는다면, 올 시즌 백강호 선수가 더 많은 일을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베어스와 1위 경쟁에 돌입한 자이언츠는 이런 백강호 선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좋을 겁니다."

조 위원의 말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강호의 기록 달성으로 시작된 조 위원의 말은 자이언츠가 1위 경쟁 체제로 돌입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런 조 위원의 지적대로 어느새 자이언츠는 1위 팀 베어스와의 격차를 세고 있었고, 자이언츠 팬들 역시 오래된 염원 하나를 가슴속에 품게 된다.

정규 시즌 우승.

팬들은 그동안 자이언츠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정규 시즌 우승이라는 단어를 서서히 가슴속에 새겨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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