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47화 (24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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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구장에 도전하다

대승을 만들어내고 숙소로 돌아온 자이언츠 선수단.

시간은 이미 자정을 지나고 있었지만, 선수들은 쉽사리 잠이 들지 못한다.

많은 선수들이 한 선수의 방으로 몰려든 채 대승을 이끌어낸 감격과 함께 또 하나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있었다.

장소는 강호의 방으로 정해진 숙소 방으로 이동한다.

"이거 완전 괴물이라니까! 이러다가 진짜 내일 경기에 56홈런 때리는 거 아냐? 나도 내일 경기는 벤치에 앉아있을 게 아니라 잠자리채 들고 외야 관중석에서 나가봐야겠어. 혹시 알아? 내가 강호 홈런 기록구라도 잡을 수 있을지?"

누군가의 유쾌한 농담에 선수들이 웃음 짓는다.

강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농담을 뱉어낸 사람은 팀의 지명타자이자 최고참 중 한 명인 채중석 선수였다.

중석은 최근 팀의 대타 카드로 활용되고 있는 까닭에 벤치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

그냥 벤치에서 기다릴 바에 외야에서 잠자리채라도 들고 있겠다는 중석의 농담에 여러 선수들이 웃음 짓고 있는 가운데 특히 문표가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푸핫!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제발 저를 위해서라도 한 번만 그래주세요."

"뭐?! 문펴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하기 싫어졌어. 내일은 선발 라인업에 올라갈 수도 있으니까 그냥 기다려 볼란다."

"쳇. 재밌는 구경할 수 있었는데. 아깝네요. 그러지 말고 한 번 시도해 보시라니까요. 잠자리채는 제가 사드릴게요."

"됐어, 인마. 너나 하세요."

중석과 문표가 장난스레 말싸움을 주고받는 사이에도 강호를 향한 관심은 계속 된다.

"선배님, 이거 보십시오! 기사가 또 올라왔는데요? 오늘만 해도 선배님 이름으로 된 기사가 다섯 개 째입니다. 댓글도 어마어마하게 올라오네요."

룸메이트인 대우는 자신의 태블릿 PC를 들이밀며 강호를 향해 말을 붙여온다.

그런데 그런 대우의 태블릿을 받아 든 것은 강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강호의 리버스 사이클링히트를 축하하기 위해 잠시 간식거리를 들고 숙소 방에 들렸던 캡틴 강민수, 그의 손길이 대우의 태블릿을 받아 든다.

"어디 보자. '백강호, 역사를 써나가다.' 이건 오썬 스포츠 허일수 기자 거네? 이 기자 강호한테 긍정적인 기사 쓰는 그 기자 아니야?"

캡틴의 물음에 강호가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연다.

그러나 이미 그 전에 강호를 대신해서 대답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오늘 경기에서 4회에 대타로 출장했던 내야수 오진만이었다.

한 때 2군에서 강호의 포지션 경쟁자이기도 했던 진만은 어느새 강호의 열렬한 추종자로 변모해 있었다.

"맞습니다! 손 감독님 2군 감독이실 때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했고요. 구단 사장하고 인터뷰 기사 실었던 그 기자입니다!"

진만의 대답에 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를 찬찬히 읽어본다.

메이저리거들의 데이터를 인용한 자료와 강호의 기록을 직접 비교한 전문적인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기사의 내용이 전문적이기는 했지만,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어렵지 않게 풀어낸 인상적인 기사였다.

기사를 모두 읽은 민수는 댓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가 칭찬을 넘어 찬양처럼 보이는 댓글들에 헛웃음을 짓게 된다.

"허허, 안 좋은 댓글이 하나도 안 보이네. 어떻게 된 게 강호 네 기사에는 악플 같은 게 없는 거야?"

민수가 강호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그렇게 물어본다.

강호는 캡틴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입을 열려다가 이번에도 다른 누군가의 참견으로 입을 다물게 된다.

"며칠 전까지는 악플이 종종 있기도 했는데, 악플 단 네티즌들한테 융단 폭격이 가해지더라고요. 너무 심한 악플러는 신상이 털리기도 하던데요? 요즘 자이언츠 기사에 강호 선배 악플 달았다가는 뼈도 못 추립니다. 그래서 악플이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악플 하나 달면 욕이 수백 개가 달리고, 신상까지 털리는데 무서워서 악플 달겠습니까?"

민수의 말에 대꾸하고 있는 사람은 강호의 룸메이트인 대우였다.

대우는 운동선수치고는 드물게 얼리 어답터였는데 평소 강호의 일에 관심이 많아 태블릿이나 스마트 폰 등으로 강호의 기사를 검색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강호의 기사에 대한 반응이나 댓글 현황 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캡틴 강민수는 자신의 의문을 풀기 위해 그런 대우와 대화를 시작한다.

'이거야 원.'

캡틴의 질문에 답하려던 강호는 입맛을 다셔야 했다.

그 후로도 강호에 대한 관심은 계속 되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강호가 입을 떼려고 하면 이상하게도 대답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덕분에 강호는 자신의 기록 달성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멀뚱히 앉아 있어야만 했다.

정점을 찍은 것은 백업 내야수인 오진택이 방문하면서였다.

"다들 여기 계셨습니까? 구단에서 강호 기록 달성 기념으로 야식을 보냈답니다! 어이, 막내들 뭐하나? 야식 가지러 가자!"

"넵, 선배님."

"우리도 놀면 뭐해? 다 같이 내려가자고."

오진택의 제안에 선배 선수들까지 모두 몸을 일으킨다.

최고참 선수인 채중석과 캡틴 강민수까지 몸을 일으키자 그 아래 후배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당연히 강호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자 이 자리에서 최고 선배인 중석이 강호의 어깨를 두드린다.

"어허이, 오늘 경기 주인공이 심부름에 따라와서야 되겠나? 앉아 있어. 선배들이 가지고 올 테니까."

"네? 아닙니다. 저도 가야죠."

"아냐아냐, 강호는 앉아 있어. 어이, 문펴. 뭐하나? 앞장서지 않고?"

중석은 굳이 가겠다는 강호를 완력으로 자리에 앉히며 문표를 끌고 방을 벗어난다.

그런 중석을 따라 캡틴 강민수 이하 선수들이 밖으로 나선다.

얼떨결에 자신의 숙소 방에 홀로 남게 된 강호.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들어 혼잣말로 푸념을 하게 된다.

"기록은 내가 냈는데 기분은 왜 남들이 내는 거야?"

강호가 푸념하는 동안 선수들은 로비에 도착해 있는 야식을 부지런히 옮긴다.

구단에서 보낸 야식을 양손에 든 선수들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캡틴 강민수였다.

"감독실하고, 코치님들한테도 가져다 드리고, 인원이 많으니까 강호 방에서는 안 되겠는데? 중석 선배 방이 좀 넓지 않습니까? 거기서 같이 먹으면 어떨까요?"

"뭐 흘리지만 말고 먹으면 괜찮아."

"그럼 중석 선배 방으로 이동합시다~"

"넵!"

그렇게 해서 민수의 주도 하에 야식을 손에 든 선수들이 채중석의 방으로 이동한다.

즐거운 기분으로 야식 만찬을 즐기던 선수들.

그들은 문득 무언가 중요한 것 하나를 잊고 있다는 사실에 사로잡힌다.

"강호는 어디 간 거야? 파티에 주인공이 빠지면 쓰나? 누가 가서 강호 좀 데려와!"

"아! 그러고 보니까 중석 선배님이 강호 선배를 방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습니까?"

"뭐?! 내가 언제.....아, 내가 그랬구나!"

중석과 대우의 대화에 순간 족발과 치킨, 피자를 뜯고 있던 선수들이 일제히 행동을 멈춘다.

그들 역시도 야식에 집중하느라 가장 중요한 사람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는 강호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

심지어 외국인 선수인 스팅까지 와있는 상황. 정작 중요한 주인공이 빠져 있는 기막힌 상황에 문표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하여튼 이 사람들 안 되겠다니까? 내가 당장 가서 강호 데려올 테니까 다들 야식에 손대지 말고 기다려요."

문표는 그렇게 당부하며 강호의 방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문표가 강호의 방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강호는 잠이 들어 있는 상태였다.

다른 선수들이 돌아오지 않자 먼저 잠자리에 든 강호.

문표는 그런 강호의 몸을 흔들어 깨운다.

"강호 후배, 일어나서 야식 먹으러 가자. 구단에서 야식을 보냈다잖아!"

"아아...저는 어차피 튀긴 음식 안 먹습니다. 저는 잘 테니까 먼저들 드십시오."

"그런 게 어딨어? 다들 안 먹고 강호 후배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어서 가자."

문표가 잠자리에 든 강호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강호를 찾으러 또 다른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강호를 홀로 남겨두는 만행을 저지른 중석과 캡틴 강민수, 그리고 오진택이었다.

"강호~~야식 먹으러 가자. 구단에서 네 기록 달성 축하한다고 보낸 야식인데, 주인공이 빠지면 어떡해?"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까...우왁!"

강호는 대답을 하다말고 자신의 몸을 들어 올리는 손길에 말을 멈추고 만다.

순간적으로 시선을 주고받던 중석과 민수, 진택과 문표가 강호의 몸을 들어 올린 것이다.

"자, 야식 먹으로 갑시다~~"

"제 발로 갈 테니까 이것 좀 놓으세요!"

"강호 후배는 가만히 있어. 야식도 우리가 떠먹여 줄 테니까. 강호는 우리 팀 히어로 아냐? 쉴 때는 편하게 있어~"

강호는 선배들을 만류하기 위해 꿈틀대 보았지만, 중석과 민수의 주도로 강호의 의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그렇게 강호는 선배들의 손에 들린 채로 중석의 방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결국 중석의 방에 이동한 채 야식 파티에 동참하게 된 강호.

처음 1군 무대에 합류했을 때는 철저히 아웃사이더였던 입장에서 어느새 팀의 주축 선수를 넘어 중심 선수로서 자리 잡아 있었다.

올 시즌 세대교체로 인해 2군 선수들의 합류가 많았던 까닭에 자칫 잘못하면 선수단의 분위기가 최악으로 향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역대 급 실력을 겸비한 강호가 2군 선수들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해 주면서 2군 출신 선수들이 빠르게 1군 선수단에 녹아들 수 있게 되었다.

강호 본인이 의도한 일은 분명 아니지만, 묵묵히 기록들을 갱신해나가는 강호를 보면서 선수들은 암암리에 형성되었던 파벌 문화를 버리고 강호를 중심으로 뭉치게 된 것이다.

다른 선수들은 그런 분위기를 모르고 있어도 캡틴 강민수 만큼은 달라진 선수단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강호 녀석 덕분에 조금은 동떨어져 있던 2군 출신 선수들과 고참 선수들이 융화되고 있어. 강호 본인은 그냥 야구에만 집중한 거겠지만, 오히려 강호의 그런 모습 덕분에 선배 선수들이 강호를 높이 사는 거겠지.'

민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강호를 바라본다.

원래는 캡틴인 자신이 수행해야 했던 역할을 강호가 대신 수행해주며 선수단 분위기가 더는 나아질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상태가 되고 있었다.

본인은 손 사레를 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선수단의 화합을 이끌어낸 건 다름 아닌 강호였고 그것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난다.

'어쩌면 올 시즌에는.'

캡틴 강민수는 남은 시즌을 예측하며 더욱 진한 미소를 그려 보인다.

85년생, 올해로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만 활약했었던 민수.

그의 가슴 속에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대업이 한 단어로 자리 잡게 된다.

'우승, 어쩌면 올해에 구단 창단 최초로 정규 시즌 우승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캡틴 강민수는 우승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있었다.

강호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한 자이언츠 선수단은 여태껏 그 어떤 선배들도 이루지 못했던 대업을 달성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겨난다.

그리고 그런 민수의 기대는 다음 날 경기를 통해 조금씩 현실화되어가고 있었다.

따악!

강렬한 타격음에 민수를 포함한 선수들과 잠실구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시선이 외야를 향해 옮겨진다.

그리고 그런 시선은 곧 엄청난 함성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우와아아아!!"

"넘어갔어!"

캡틴 강민수와 선수들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환호성을 내지른다.

17대 3으로 승리한 어제의 경기와는 다르게 득점 없이 시종일관 답답하게만 흘러가던 경기가 단 하나의 홈런으로 흐름이 완전히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타석에 선 타자는 다름 아닌 강호였고, 그의 투런 홈런 한 방이 오늘 경기의 결과를 자이언츠 쪽으로 끌고 온다.

2대 0.

긴장감 넘치는 투수전으로 이어지던 이날의 경기는 강호의 홈런 한 방이 결승타가 되어 자이언츠의 승리로 끝맺음 난다.

전문가들과 대다수의 야구팬들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강호의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은 7이라는 숫자로 늘어나게 되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잠실구장을 함성으로 뒤흔들고 있었다.

"어?!! 뭐야?! 내가 잡았어! 내가 잡았다고! 백강호 홈런볼을 내가 잡았다고!!"

잠실구장을 점령한 팬들의 환호 속에 누군가의 절규가 들려온다.

잠자리채로 뒤덮여 버린 잠실구장의 외야에서 선수용 글러브를 끼고 있던 누군가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쁜 표정으로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관중은 자신의 글러브에 고이 들어와 있는 기록구를 양손으로 힘껏 끌어안은 채 기쁨의 괴성을 내지른다.

혹여나 누가 가져갈까, 혹시나 품에서 빠져버릴까 마치 병아리를 부화시키기 위해 달걀을 품었던 에디슨의 어린 시절처럼 남자는 강호의 56호 홈런구를 고이 감싼 채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백강호의 56호 홈런볼을 내가 잡았어!!"

남자는 귀를 따갑게 만드는 함성 속에서도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고, 그 모습은 현장 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TV전파를 타게 된다.

강호의 56호 홈런.

은퇴 후 살아있는 전설로 남은 이승엽 선수의 2003년 시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록이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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