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40화 (239/335)

0240 / 0335 ----------------------------------------------

약속

치열했던 마산 경기를 뒤로하고, 사직으로 돌아온 자이언츠 선수단.

주말 3연전은 이글스와 예견된 사직에서의 홈 경기였다.

올 시즌에 이글스와의 상대전적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는 자이언츠였던 까닭에 연승 행진이 이어질 것이라는 팬들의 믿음은 확고했다.

그러나 첫 경기부터 그런 믿음이 깨어지고 있었다.

"아아....!"

사직구장을 가득 채운 팬들의 탄식이 오늘의 경기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마산구장에 있었던 다이노스 전에서 맹타를 뿜었던 자이언츠 타선이 침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글스는 맹타를 뿜어내는 강호에게 철저히 무시 작전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이언츠의 중심 타선을 봉쇄하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5회 솔로포를 뽑아내는 강호의 53호 홈런이 오늘 경기에서 자이언츠 팬들의 유일한 위안거리라 할 수 있었다.

따악!

5회 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상대 투수의 초구를 노리고 타격한 벼락같은 강호의 타구는 빠른 속도로 좌측 담장을 향해 뻗어나갔다.

그 타구는 잠자리채를 든 채 벌떼같이 모여든 팬들 사이로 파고들었고, 곧 사직구장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든다.

"내가 잡았어! 내가 잡았다고!!"

"우와아아!!"

강호의 솔로 포 하나가 침묵하고 있던 사직구장을 함성 소리로 일깨우고 있었다.

팬들은 21연승의 대업이 중단될 위기에 놓여 있어도 침울해하지는 않았다.

연승이 언젠가는 깨어질 거라는 예측은 누구나가 하고 있는 것이었고, 이미 자이언츠의 연승 기록이 정식 한국 기록으로 등록된 이후인지라 오늘 경기를 바라보는 자이언츠 팬들은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1대 8.

강호의 솔로포로 겨우 체면치레를 하며 여전히 큰 점수 차로 뒤지고 있었지만, 자이언츠 팬들은 오히려 웃는 얼굴로 선수들을 응원해준다.

20연승과 시즌 2위를 달성한 것에 자이언츠 팬들은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고, 팀의 4번 타자인 강호가 타선이 침묵하는 가운데 자이언츠의 자긍심을 지켜주는 것에 웃음 지을 수 있었다.

53호 홈런.

지금 이 순간 팀의 21연승보다 더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은 조만간 달성 가능해 보이는 강호의 홈런 신기록에 관한 것이었다.

팬들은 강호가 오늘 경기에서 한 번 더 홈런을 때려주기를 한 마음으로 응원했지만, 이후 이글스 배터리는 또 한 번 강호를 고의사구로 거르며 팬들의 바람은 아쉬움으로 끝이 나고 만다.

3대 10.

경기는 결국 7점차 대패로 끝이 났지만, 자이언츠 팬들은 오히려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자이언츠 선수들을 향해 기립박수로 찬사를 보내주고 있었다.

"잘했다!! 한 경기 질 수도 있지~ 2등만 유지하자!"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오늘은 졌어도 내일은 이깁시다! 잘했어요!"

"백강호 선수! 내일도 홈런 갑시다!"

팬들은 팀이 패배했음에도 응원과 격려, 칭찬의 목소리로 박수를 보내준다.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20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한 선수단을 향한 팬들의 응원은 진심을 담고 있었다.

선수단 역시 모자를 벗어 팬들에게 90도 인사함으로써 20연승에서 멈춘 연승 기록을 가슴 속으로 갈무리한다.

손성조 감독 역시 선수들과 나란히 서서 팬들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팬들은 그런 손 감독에게 더욱 큰 찬사를 보내주고 있었다.

"와아아아!!"

"손성조! 손성조!"

손 감독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

자이언츠 팬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올 시즌 팀이 2위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바로 그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손 감독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백강호라는 타자를 눈여겨보고 기회를 부여해 주었고, 그 밖에도 2군에 머물러 있던 유성철과 박철을 팀의 주축 테이블세터로 키우기도 했다.

또한 제대로 된 경쟁자가 없어 정체되어 있던 내야 라인에 강호를 포함하여 2루수 황인태, 1루수 이인호, 최문표, 내야 멀티 플레이어인 임정과 오진만 등을 추가하여 신구 조화를 이루는 세대교체를 단행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항상 자이언츠의 약점으로 거론되는 불펜에 권대우, 성수제, 가진성, 표성태, 사준식, 김영명 등의 젊은 투수들을 등용해 자이언츠 팬들이 불안한 마음 없이 경기 후반부를 관전할 수 있는 기틀을 완성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프런트와 선수단 사이의 조율자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점도 있었다.

프런트와 선수단 사이의 마찰이 종종 표면화되어 좋지 못한 팀 성적으로 연결됐던 시즌이 자주 있었던 자이언츠 구단.

자이언츠 2군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을 감독 자리에 머물고 있던 손 감독은 그런 외부적인 문제들을 막아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행동으로 옮겨왔고, 지정만 사장과 감독 임용 전부터 단판을 지으며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런 부분은 팬들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감독의 업적이 과소평가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1군 감독으로서는 올 시즌이 데뷔 년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2군 시절부터 완성되어 있는 명장의 풍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항상 팀 감독에 대한 아쉬운 감정을 품고 있던 자이언츠 팬들에게는 올 시즌 무엇보다 기쁜 점 중에 하나였다.

충분한 경력과 연륜, 실력을 갖춘 베테랑 감독.

모든 자이언츠 팬들이 염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바로 손성조 감독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내일부터는 이깁시다!"

"다시 달려요!"

팬들은 손 감독에게 찬사를 보내면서도 깨어진 연승 기록이 다시금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손 감독은 그런 팬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어주며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다.

모두가 만족하는 패배.

8월 16일 사직구장에서 이글스에게 허용한 패배는 자이언츠 팬들에게 그렇게 기억되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 경기인 8월 17일 경기에서 전날의 패배를 되갚아주는 12:4 대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호는 17일 경기에서도 투런 포 하나를 추가하며 다섯 경기 연속 홈런 행진을 이어나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1개의 사구와 2개의 고의사구를 기록하며 다섯 번의 타석 기회 중 제대로 된 타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단 두 타석뿐이었다는 점이었다.

5타석 2타수 2볼넷, 1사구, 1홈런, 2타점.

강호는 한정된 기회 속에서도 2타점 2도루를 추가하며 자신이 새롭게 정립하고 있는 기록들을 빠르게 늘려나간다.

17일 경기를 통해 또 하나 추가된 기록에 대해서 중계석의 캐스터는 이렇게 정의를 내렸었다.

"백강호 선수 도루 성공! 이 도루로 백강호 선수는 의미 있는 기록 하나를 추가합니다! 1993년도 전준호 선수가 보유하고 있던 한 시즌 팀 최다 도루 기록을 76개로 갈아치웁니다! 종전 75개의 도루 기록을 오늘 경기에서 타이로 만든 것도 모자라 새로운 기록으로 써나갑니다."

배성한 캐스터의 들뜬 목소리는 강호의 도루 기록이 팀 최다 도루 기록을 갱신한 것이라 알리고 있었다.

그의 말에 곁에 앉은 안경훈 해설 위원이 해설의 말을 더했다.

"대단합니다. 도루 기록만 놓고 본다면 팀의 4번 타자가 아니라 리드오프로 봐야 맞을 거예요. 오늘 경기에서 고의사구로 걸러지는 울분은 도루를 통해서 앙갚음하는 모습입니다. 지금 도루를 통해서 도루 기록이 76호로 늘어난 거죠? 이렇게 되면 80도루까지는 4개가 남은 상황입니다. 80도루까지 달성하면 타이거즈 출신 이정범 선수의 94년도 84개 도루 기록도 가시권에 들어가는 거거든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새로운 기록이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안경훈 위원은 자이언츠에게 남은 경기들을 헤아려보며 강호의 도루 신기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안 위원의 발언에 대한 자이언츠 팬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이날의 경기는 패했지만, 팬들은 자이언츠 기사에 몰려들어 강호에 기록 달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팬들의 댓글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았다.

"허헐, 무슨 4번 타자 도루가 76개나 돼? 이러다 진짜 도루도 신기록 수립하는 거 아냐? 우리 자이언츠에 이런 타자가 나와 주다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

"도루 신기록까지는 8개만 남아 있으니까 충분히 달성 가능해 보입니다. 백강호 선수 경기당 도루 기록이 1경기에 0.7개 정도잖아요? 아직 시즌 경기가 33경기나 남아 있으니까 산술적으로 23개의 도루를 추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론적으로는 99도루까지 가능해요!"

"헐, 99도루! 이왕 할 거면 100도루 채웁시다!"

"여러분, 지금 도루 기록이 문제가 아니에요. 오늘 경기에도 홈런 때리면서 백강호 선수의 홈런 기록이 54까지 올라갔지 않습니까? 이제 한국 최다 홈런 기록까지 2개밖에 남지 않았다고요. 저는 잠자리채 챙겨 들고 이제부터 자이언츠 경기만 쫓아다닐 거예요!"

"올 시즌 백강호 선수의 홈런 기록이 어디까지 갈까? 만약 백강호 선수 홈런 기록 구를 잡을 수만 있다면 대박일 텐데. 최종 홈런 기록 구를 잡는 사람은 아마 로또 당첨금 정도의 대박을 잡는 거라고! 최종 홈런 구는 못해도 몇 억 이상은 받을 수 있을 걸?"

팬들은 54호까지 늘어난 강호의 홈런 기록에 흥분한다.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 팀의 20연승 기록이 깨어졌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 경기를 12대 4 대승으로 가져오기도 했고, 그 승리가 연승의 흐름이 이어질 때처럼 완벽한 투타 밸런스를 보여줬다는 것이 팬들을 안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모든 자이언츠 팬들의 시선은 강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어서 내일이 됐으면 좋겠네요. 저는 매일 자이언츠 경기 보는 낙으로 삽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어서 내일 6시 30분 됐으면 좋겠네."

"노노노, 내일 경기는 오후 6시입니다. 일요일 경기잖아요? 오늘 경기도 6시에 했습니다. 주말에는 30분 일찍 경기한다는 걸 기억하세요~"

팬들은 내일의 경기를 기대하며 밤잠을 설친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팀의 승리보다 강호의 손에서 만들어질 기록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한 마음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어 지면을 적시기 시작한 빗방울에 팬들의 얼굴은 울상이 된다.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은 오후 들어 더욱 거세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오후 6시가 되었을 때는 부산 전역을 완전하게 적시는 소나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사직에서 예정된 이글스와의 시리즈 5차전 마지막 경기는 우천 취소되면서 다음으로 미뤄지게 된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아, 이런! 내일은 월요일이잖아. 야구 쉬는 날. 오늘 경기 우천취소 되고, 내일 경기도 없는 거잖아! 이런 망할! 야구 보고 싶어 미치겠네!"

"나 조금 전부터 손 떨려. 자이언츠 야구 못 봐서 호흡이 힘들어져. 제길, 왜 하필이면 오늘 비가 오냔 말이야!"

"다이노스 전에 지냈던 기우제가 지금 효과를 발휘하네. 천지신명이 원망스럽다! 어제 분위기 봐서는 오늘 경기도 분명 이겼을 텐데. 제발 다음 주에도 좋은 흐름이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다음 주까지 어떻게 기다리냐고? 이틀이나 경기를 못 보다니. 흑흑흑.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이야."

경기가 우천 취소되는 것도 모자라 내일이 야구를 쉬는 월요일이라는 사실에 모든 자이언츠 팬들은 안타까움을 넘어 슬픔에 빠져든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 18일, 일요일은 빠르게 지나고 있었다.

시간과 장소는 자정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강호의 상동 숙소로 넘겨진다.

"후우~"

강호는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며 길게 날숨을 쉬어 본다.

현재 시각은 자정이 되기 전까지 15분을 남겨 둔 밤 11시 45분.

이제 15분만 지나면 또 한 번 프리마켓의 문이 열릴 것이다.

강호는 일곱 번째로 맞이하는 프리마켓 방문을 기다리며, 경건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제 프리마켓을 갈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오늘 방문을 끝낸 후에는 두 번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야.'

강호는 나름의 계산을 통해 이제 총 세 번의 프리마켓 방문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전 방문 때 79일이 남아 있는 것을 이미 확인한 후였다.

7월이 31일 임을 감안하여 그로부터 정확히 31일이 지나있는 것을 계산해 본다면 이제 남은 프리마켓 오픈 일수는 48일이 되는 것이다.

'48일. 그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내가 이런 기록을 내고 있는 와중에도 훈련을 등한시할 수 없는 이유야.'

강호는 15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지난 한 달간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남들에게는 기록 달성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강호는 사실 프리마켓이 끝나기 전까지 0.1이라도 스탯을 더 올려두기 위해 훈련에 매진했었다.

그런 강호의 모습을 보고 문표나 동료 선수들은 '저렇게 훈련 하니까 그런 기록이 나오는 거지. 괜히 4할 타자가 아니라니까.' 라거나 혹은 '쉬엄쉬엄해. 그러다가 쓰러지겠다' 등의 말로 걱정과 당부의 말을 전달했었다.

하지만 그런 동료 선수들의 당부에도 강호는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48일.

하루하루 줄어드는 프리마켓의 오픈일 동안 최대한 스탯을 올려두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야만이 내년 시즌에도 올해에 근접한 기록이라도 낼 수 있는 거지. 내년부터는 프리마켓 시스템의 도움 없이 경기를 치러야 만 해. 당장 4할 대 타율을 포함해서 모든 지표들이 올해보다 훨씬 미치지 못하게 될 거야. 그러니 스탯을 최대한 올려두는 게 답이야!'

그것이 강호를 더욱 치열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내년부터는 아이템의 도움 없이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

더 이상 4할 대 타율은 어려울 것이고, 홈런과 장타율 등의 지표 또한 떨어질 것이 뻔했다.

그래도 최대치에 도달한 컨택 스탯의 효과라면 3할 대의 타율은 충분해 보이지만, 다른 지표는 크게 기대할 수 없었다.

몇 가지 유지될 것이라 예상되는 기록은 도루와 같이 아이템이 없더라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지표들일 것이다.

'오늘 방문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거야. 내가 팀의 4번 타자로 남을 자격이 충분한지. 달라진 스탯으로 증명해 보이겠어!'

강호는 명상을 하듯이 감고 있었던 눈을 부릅뜬다.

15분의 남은 시간이 모두 지나 또 한 번 프리마켓의 문이 활짝 열린 채로 자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던 것이다.

[2019프로야구 프리마켓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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