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37화 (23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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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마산구장을 향한 시선은 여전히 뜨거웠다.

여전히 진행 중인 자이언츠의 구단 최다 연승 기록이 걸려 있는 경기이기도 했고, 강호와 테인즈의 홈런왕 경쟁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자이언츠가 18연승을 이어나가면서 2위 팀 다이노스와의 격차가 고작 1경기 차로 줄어들어 있었다.

오늘 경기마저 자이언츠가 승리하게 된다면 다이노스와의 승패 마진이 0이 되는 가운데 승률에서 앞선 자이언츠가 2위로 올라서게 된다.

양 팀 팬들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자이언츠 파이팅! 오늘도 박살내자!!"

"자이언츠 이겨라!! 제발 오늘경기는 꼭 이기자!"

아직 경기 시작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음에도 마산구장을 점령하기 시작한 자이언츠 팬들의 함성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강호는 원정 관중석을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다이노스 응원석까지 들어차고 있는 관중석을 향해 시선을 돌려 본다.

그러자 강호의 시선을 느낀 자이언츠 팬들이 함성 소리로 응답하는 모습이다.

특히나 어제 자정 무렵, 사직구장 주차장에서 강호와 함께 교감의 시간을 가졌었던 팬들의 목소리는 더욱 뜨거웠다.

"백강호 파이팅! 오늘도 홈런 한 방 부탁해요!"

"끼야아악! 강호 오빠 여기도 봐주세요! 여기요!"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뜨거운 응원과 마주하게 된 강호는 웃음 띤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인다.

강호의 응답에 팬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무렵, 질투의 감정을 담은 목소리가 강호의 귓가에 들려온다.

"쳇, 쳇쳇쳇!! 팬들 사랑을 독차지해서 좋겠어. 야구 판에는 반독점 규정 같은 거 없나? 한 선수가 팬들 응원 독차지 못하게 규정 같은 걸로 만들어야 돼! 그리고 나 같은 비인기 선수들도 팬클럽 만들어줘서 선수 사기도 높여줄 필요도 있고. 칫!"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입술이 삐죽 튀어 나온 문표가 그라운드를 걷어차며 투덜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강호는 그런 문표를 향해 되묻는다.

"지금 본인 입으로 비인기 선수라는 사실을 인정한 겁니까?"

"뭐?! 아니 내 말 뜻은 그게 아니고... 쳇. 그래, 나 비인기 선수다! 그러니까 염장 그만 지르고 훈련이나 하자고. 나도 오늘은 중심 타선에 서야 하잖아? 감독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지."

문표는 그렇게 말하며 강호의 팔을 잡아끈다.

강호는 그런 문표의 행동에도 아랑곳없이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문표의 말대로 오늘 라인업에서 강호의 앞선 타순인 3번 자리에는 문표가 1루수로서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어제 경기에서는 9번 자리에 이름을 올렸던 문표지만, 오늘은 중견수 전준오와 타순을 맞바꾼 것이다.

손 감독이 이번 다이노스와의 시리즈 경기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오랜 고심 끝에 변경된 라인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가 시작된 후 중계석의 조 캐스터가 변경된 자이언츠의 라인업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1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부터 시작됩니다. 자이언츠 타순입니다. 1번 타자 좌익수 유성철, 2번 우익수 박철, 3번 1루수 최문표, 4번 타자 유격수 백강호, 5번 지명타자 황제인, 6번 3루수 오진택, 7번에 캡틴 강민수, 8번 2루수 황인태, 9번 중견수 전준오 순입니다. 오늘 역시 자이언츠 라인업에서 특이점이 보이네요."

자이언츠의 타순을 모두 읽은 조 캐스터가 박 위원에게 바통을 넘긴다.

그러자 박재헌 위원은 자이언츠 라인업에서 주목할 만한 점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네, 황제인 선수가 복귀하면서 다소 자리가 흔들리던 오진택 3루수가 타순에 등록됐어요. 황제인 선수는 지명타자로 이름을 올렸고요. 최근 경기에서 황제인 선수의 타격감이 올라왔다고 판단하는 것 같아요. 장타력을 갖춘 스팅과 채중석 타자를 대타로 기용할 거라는 손 감독의 의중으로 보입니다. 어제 경기에서도 3번 타순에 스팅을 대타로 넣으면서 활발하게 공격의 활로를 뚫어냈거든요? 스팅이나 채중석 같은 타자를 대타로 기용할 수 있다는 점은 자이언츠만이 가진 장점으로 보이네요."

박 위원은 황제인을 지명타자로 돌림으로써 자이언츠 중심 타선의 응집력이 더욱 높아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선다.

그러면서 중심타선에 둬도 무방한 스팅과 채중석, 김상훈 등 장타력을 보유한 선수들을 대타로 넣을 수 있는 자이언츠만의 장점을 덧붙여서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 코멘터리는 항상 그랬듯이 강호에 대한 내용을 덧붙인다.

"어제 경기에서 다이노스가 백강호 선수에게 두 번의 고의사구 작전을 냈거든요. 다섯 번의 타석 중에 고의사구 2번, 홈런 3개였어요. 고의사구를 주지 않은 타석은 백강호 선수가 전부 다 홈런을 때려냈거든요. 오늘 경기에서도 백강호 선수에 대한 견제가 있을 거로 보입니다. 백강호 선수 입장에서는 한창 타격감이 끌어 오른 상태에서 허무한 고의사구로 타격감이 다소 가라앉을 우려가 있어요. 백강호 선수는 그런 점을 계산하고 타석에 서야할 겁니다."

박 위원은 오늘 경기에서도 강호를 향한 다이노스 배터리의 견제가 있을 거라 말하고 있었다.

어제 경기에서 3개의 홈런을 때려낸 강호에게 고의사구나 볼넷 등의 무시 작전이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그런 점에 대해서 대부분의 야구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었고, 당사자인 강호 역시 그 점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단지 마음의 준비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에 돌입한다.

-아이템 타격왕의 본능(일회용) 사용

한 경기에 한해 컨택 능력이 +3이 됩니다.

타석에 서기 앞서 강호는 그동안 잘 사용하지 않았던 일회용 아이템 하나를 사용하고 있었다.

타격왕의 본능이라는 아이템은 그동안 업적 달성을 통해 수십 개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자주 사용한 적이 없어서 여전히 수십 개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일회용 아이템이었다.

한 경기에 한해서 컨택 스탯을 3올려주는 효과가 있었다.

강호가 이 아이템을 오늘 경기에서 사용한 이유가 있었다.

'어제 그런 타격감을 보여줬으니까 오늘 경기부터는 노골적으로 견제가 들어올 거야. 고의사구가 아니더라도 배트로 컨택할 수 없는 코스로 공이 들어오겠지. 그런 견제에 마음이 흔들려 버리면 기껏 끌어올린 타격감을 잃어버리게 돼. 그러니까 타격왕의 본능으로 그 점을 상쇄해 버리는 거야!'

강호는 이미 상대 배터리의 견제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기껏 끌어올린 타격감을 잃게 될 우려에 대해서도 생각해둔 상태였다.

오늘 경기에 앞서 그 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 해답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타격왕의 본능'이었다.

타격 메커니즘은 심적인 변화에 영향을 받을 확률이 높았다.

한창 끌어올린 타격감에 미묘한 심리 변화가 영향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의 멘탈을 보호할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상대 배터리가 고의사구나 노골적인 볼넷 작전으로 나왔을 때, 강호는 단 하나의 생각으로 심리적인 방어막을 가동시키려는 생각이었다.

'나한테는 아이템이 있으니까. 고의사구만 아니라면 어떤 코스의 공도 정타로 때려낼 수 있어. 그러니까 흔들리지 말자.'

그런 생각으로 경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아이템을 사용한 것이다.

컨택 +3이라는 효과가 타격 결과에 크게 작용되지 않을 수 있어도 심리적인 위안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강호는 그것을 확인해보기 위해 상태창을 열어본다.

백강호(24)

포지션:SS

컨  택:109.9[max](+10)

파  워:100(+7)

선구안:91.8(+7)

주  력:104.1(+7)

수  비:99.4(+7)

송  구:97(+7)

멘  탈:99.9(+7)

오랜만에 확인하는 스탯들을 읽어 내려간다.

아직 '칠 때 친다'스킬이 적용되지 않고 있음에도 최대치에 근접하거나 그것을 초월해 버린 스탯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정도 스탯이라면 크게 빠지는 코스의 공도 충분히 정타로 때려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난다.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경기에서의 좋은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단순히 일회용 아이템 하나를 사용한 것으로 다이노스의 견제에 대한 심리적 방어막을 펼치는 셈이 된다.

그런 강호의 자신감은 곧 있을 타석 상황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볼 넷. 베이스 온 볼."

팀의 선두 타자로 나선 유성철이 볼넷을 얻어 1루로 걸음을 옮긴다.

오늘 다이노스의 선발 투수인 노게이라 투수가 초반부터 제구력 난조를 보이며,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당연히 자이언츠 덕 아웃에서는 그에 맞는 타격 작전들이 실행되고 있었고, 4번 타자인 강호가 타석에 섰을 때는 이미 루상에 두 명의 주자들이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1회 초 1아웃에 주자 1, 3루 상황.

타석에는 강호가 들어서고, 마산 구장의 3분의 2를 채운 자이언츠 팬들의 함성 소리가 터져 나온다.

"백강호 홈런!"

"넘겨라! 백강호, 날려버려!!"

팬들은 강호를 향해 '홈런'이라는 단어를 목 놓아 외친다.

강호 역시 팬들의 바람에 부응하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다이노스 배터리가 고의사구 작전으로 나올 우려가 있었다.

약간의 불안감을 안은 채 타석에 선 강호, 그런 강호의 시야에 가상 스트라이크 존에 표시되 있는 초구 코스가 확인되고 있었다.

강호는 본인도 모르게 웃음 지으며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두른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마산구장의 담장을 향하고, 곧 자이언츠 팬들의 함성 소리가 마산구장을 점령한다.

그렇게 오늘의 경기도 강호의 홈런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한편, 시간과 장소가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시간은 자이언츠와 다이노스 간의 5차전 두 번째 경기가 열린 후, 이틀이 지난 16일 아침.

장소는 강호의 모교인 경남중으로 옮겨진다.

"어?! 태호 아냐? 태호 이제 학교 나오는 거야?"

학교의 교문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던 학생들은 오랜만에 보게 된 태호의 모습에 반색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태호를 향해 다가서며 '태호야~'라고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었다.

평소 반 친구들과 야구부 선수들에게도 거리를 두는 태호.

자신을 향해 먼저 다가서는 반 친구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무시할까?'

태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반 친구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최근 몇 주간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할머니의 간호를 위해 학교를 결석했던 태호였다.

이제는 할머니가 많이 호전되신 까닭으로 학교에 등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나온 학교라서 친구들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는데, 평소 친하지도 않았던 같은 반 녀석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먼저 경계심부터 생겨나고 있었다.

그 때 태호의 뇌리에 누군가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이 떠오른다.

'너처럼 폐쇄적인 녀석은 프로 팀에 가서도 환영받지 못해. 프로 야구 선수도 결국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 대표적으로 자이언츠의 강민수 선수처럼 살가운 성격들이 환영을 받는 거야.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선수들과 잘 지내지 못하면 프로 생활이 힘들어지는 거라고. 알겠어? 그러니까 이 형한테 한 번 웃어봐.'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강수였다.

그는 자신과 15살 가량 나이 차이가 있는 태호에게 형이라 부르도록 주문했던 기억이 태호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때의 태호는 강수에게 이렇게 대꾸했었다.

'아저씨가 왜 제 형이에요? 아저씨는 그냥 아저씨지. 그리고 걱정 마세요. 제 성격이 어른이 될 때까지 이 모양이겠어요? 프로 선수가 될 때쯤에는 저도 바뀌어 있겠죠.'

태호는 특유의 시크한 표정으로 강수를 향해 그렇게 대답했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태호는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이 조금은 태도를 바꿔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 사이 곁으로 다가온 반 친구들이 살갑게 말을 붙여 온다.

"태호야! 너 전에 백강호 선수 우리 학교 왔을 때 싸인볼 같은 거 받지 않았어? 야구부한테는 싸인볼이랑 글러브 같은 것도 줬다면서?"

"완전 부럽다! 며칠 전에 백강호 선수 50-50도 달성했잖아!"

태호는 친구들이 자신에게 다가온 이유를 곧바로 알게 되었다.

평소 말도 잘 붙여오지 않던 반 친구들이 자신에게 먼저 다가온 이유는 바로 백강호 선수 때문이었다.

백강호 선수와 자신과의 연결 고리를 알고 있는 반 친구들이 최근 부산시 최고의 핫이슈인 백강호 선수에 대해 물어오고 있는 것이다.

태호는 원래 친구들과 살갑게 말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우러러보는 친구들의 눈빛에서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단지 백강호 선수와 한 번 본 사이에 불과했지만, 그런 사실을 밝히고 싶지는 않았다.

"뭐, 싸인볼을 받기는 했지. 글러브도 백강호 선수 싸인 된 걸로 받았고. 내가 야구부에서 쓰는 글러브가 바로 그거야. 백강호 선수 싸인 글러브."

"뭐?! 완전 쩐다! 그거 돈 받고 팔아도 수십만 원 이상 받는 거 아냐? 나중에 나 한 번만 보여줘.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게!"

"나도, 나도!"

태호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반 친구들을 곁에 단 채로 교문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는 보게 되었다.

반 친구들이 왜 이렇게 자신에게 달라붙는지, 그 이유에 대해 말이다.

[(경)경남중 출신 자이언츠 백강호 선수, 세계 최초 50-50. 200타점 달성!(축)]

교문에 떡하니 걸려 있는 커다란 현수막을 보고서 걸음을 멈추는 태호.

현수막에는 심지어 강호의 50홈런 당시의 타격 모습 사진이 담겨 있을 정도로 대형 현수막이었다.

그동안 모교 출신의 학생 중, 서울대학교 같은 일류 대학교에 합격한 선배들의 이름이 차례로 걸리는 것은 보았어도 운동선수의 이름이, 그것도 이렇게 큰 현수막으로 내걸린 모습은 처음 보는 태호로서는 조금은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야구를 시작한 이례로 현직 야구 선수가 이토록 크게 대우받는 모습을 처음 본 태호였다.

그런데 그 기분이 나쁘지 않다.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왠지 가슴이 거세게 뛰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서 태호는 단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나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학교 교문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통해 태호는 그동안은 없었던 감정 하나를 가슴속 깊이 품게 된다.

태호가 품기 시작한 감정은 바로 희망이었다.

그동안 태호에게 있어서 야구라는 것은 힘겨운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또는 잊어버리기 위해 잠시 집중했었던 도피 수단에 불과했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그런 관점에 변화가 생긴다.

태호는 태어나 처음으로 꿈이라는 것을 가지기 시작한다.

2019년 8월 16일 아침, 할머니의 입원으로 오랜만에 학교에 등교하던 태호에게 그동안과는 전혀 다른 인생이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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