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36화 (23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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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시간과 장소는 다이노스와의 시리즈 5차전 첫경기가 끝난 후의 원정 버스 안으로 이동한다.

선수단을 태운 원정 버스는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산이라는 곳이 자이언츠의 연고지인 부산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원정 숙소를 잡은 채로 경기를 치룰 때도 있었고, 지금처럼 부산에서 출퇴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경우에는 선수단의 의견을 철저히 반영해서 조금이라도 선수들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출퇴근을 선택한 것이다.

덕분에 원정 숙소를 잡고 시리즈를 진행할 때는 소모하지 않아도 되는 출 퇴근 시간이 발생하게 되었지만, 구단은 선수들의 출근 시간을 평소보다 늦추는 것으로 선수 각자가 컨디션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원정 버스가 목적지인 사직동을 향해 부지런히 달린다.

마산 야구장에서 사직동까지 이동 시간이 1시간을 조금 넘기는 까닭에 그 시간동안 선수들이 잠을 자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선수들은 오늘 승리로 인한 여운과 감동을 서로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모든 선수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일부 선수들은 18연승에 대한 감동과 여운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선수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선수가 문표였다.

"강호 후배, 오늘 50홈런 칠 때 사용한 배트 나한테 팔아. 내가 30만원에 살게. 내가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 배트로 기운 좀 받으려고 그래. 절대 옥션에 내놓거나 팔지는 않을게."

문표는 곁에 앉은 강호를 붙들고 늘어져 50홈런을 때린 야구 배트를 자신에게 팔아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그런 문표의 애원에 답하는 사람은 당사자인 강호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해 뒤쪽자리까지 찾아온 중석이었다.

"강호, 문펴 놈 말 믿지 마. 이 자식은 30만원에 사서 3백만 원에 팔아먹을 놈이야. 그리고 50홈런 기념 배트인데 30만원이 뭐야? 강호 동생, 차라리 나한테 팔아. 내가 100만원에 사줄 테니까."

"아이~ 지금 뭐하는 겁니까? 제가 다 구슬려 놨더니 왜 갑자기 배팅을 하십니까? 강호 후배 배트는 제가 살 거라고요! 강호 후배, 나한테 100만원에 팔아! 중석 선배 말 듣지 말고."

"그럼 나는 120에 산다."

"저리 좀 가십시오! 여기 삶은 계란 드릴 테니까 자리 가셔서 까 드세요."

"너나 까 잡숴라. 내가 먹을 거에 환장하는 사람인 줄 알아?"

어느새 투닥거리기 시작한 두 선배를 바라보며 강호는 결국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린다.

자신에게 배트를 팔아 달라는 문표의 말이 농담인 줄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에 동요하지는 않는 강호였다.

그리고 설령 문표가 배트 값으로 더한 돈을 내놓는다고 해도 팔 생각은 없었다.

이미 배트를 선물할 사람을 정해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호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들어 배트를 주고자 하는 사람이 보낸 카톡 메시지를 확인해 본다.

형: 강호야, 기록달성 한 거 축하한다! 오늘은 형이 사직구장까지 데리러 나갈게.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형이었다.

그리고 강호가 50홈런을 친 배트를 주고자하는 사람 역시 형이었다.

올 시즌 의미를 가진 기록구나 기념 배트는 모두 형에게 맡기고 있는 강호였다.

형인 강수는 동생이 준 야구공과 배트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자신의 방에 보관해 나가고 있었다.

본인은 시공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집과 방에 대한 인테리어에 관심이 없어 휑하니 비어 있던 강수의 방은 조금씩 강호의 기록구들로 채워져 나가는 중이었다.

이번 50홈런 배트 역시 형의 방에 보관될 것이다.

마치 트로피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자 뿌듯한 감정이 가슴을 채운다.

이제는 1군 생존 경쟁을 넘어 한국 야구사의 기록을 다시 쓰고 있는 자신의 활약이 꿈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벅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좋은 기운들이 정규 시즌이 끝나고, 가을 야구 기간에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자신만의 여운을 갈무리한 강호.

그런 강호의 귓가에 어느새 사이좋은 모습으로 삶은 달걀을 함께 까먹고 있는 두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짭,짭, 쩝. 문펴야. 소금 없냐? 삶은 달걀에는 소금이 있어야지."

"아, 거 그냥 좀 드십시오. 여기가 분식집입니까?"

"문펴, 너는 가만 보면 삶은 달걀에 대한 애정이 없어. 누가 삶은 달걀을 그냥 먹어? 뭐라도 찍어 먹어야지."

투정을 부리면서도 문표가 건넨 삶은 달걀을 맛있게 먹고 있는 중석이었다.

문표는 그런 중석에게 '그럼, 선배가 소금 가지고 다니면 되겠네요'라고 제안하며 또 다시 투닥거리는 모습이다.

문표와 중석, 그리고 선수단을 태운 원정 버스는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빠르게 사직구장으로 이동한다.

끼이익.

어느새 사직 구장의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 원정 버스.

평소 같았으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원정 버스에서 내렸을 문표가 창밖의 광경을 보고는 주춤거리는 모습이다.

원정 버스의 차창은 두꺼운 강화 유리로 제작되었음에도 차창 밖에서 내지르는 팬들의 비명 소리가 고스란히 들릴 정도였다.

"꺄아악! 백강호 선수! 손 한 번 흔들어 주세요!"

"백강호 선수! 오늘 마산 경기도 직관하고, 백강호 선수 얼굴 보려고 원정 버스 쫓아온 거라고요! 싸인 좀 부탁합니다. 셀카도 한 장만요!"

"백강호 선수! 기록 달성 축하해요! 근처에서 술 한 잔 합시다!"

"이 사람이 제 정신이야? 우리 백강호 선수는 시즌 중에 술 안 마시는 거 몰라?! 당신, 다이노스 팬 아냐?"

"백강호 선수! 버스에서 내려 보세요! 내가 해줄 말이 있어요! 그리고 싸인 한 장만요!"

"강호 형, 날 가져요!"

원정 버스 밖에는 많은 인파들이 몰려들어 단 한 선수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구단에서 급하게 불러들인 경호원들이 버스 입구 주변을 막아서고 있었지만, 그들의 숫자는 고작 열 명 남짓. 반면에 버스 주변으로 몰려든 팬들의 숫자는 수백 명이었다.

시간이 자정이 되어가는 데도 강호를 직접 보려는 팬들의 열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이잉. 치익.

버스 안의 선수들은 버스의 출입문이 열렸음에도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팬들의 모습에 쉽사리 버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버스 안 선수들의 시선이 강호에게로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강호는 그런 선수들의 시선을 온 몸으로 받으며 급히 변명의 말을 꺼낸다.

"제가 부른 거 아닙니다."

강호의 변명은 사실을 담고 있었다.

강호의 팬을 자처하는 저들을 누가 부른 것은 아니었다.

강호를 보기 위해 마산 경기가 끝난 직후, 곧바로 원정 버스를 앞질러 사직구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팬들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모든 팬들은 자이언츠 로고가 찍힌 저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문표는 그런 팬들의 모습과 강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강호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그래. 강호 후배, 네가 부른 게 아니겠지. 강호 후배 50홈런이 팬들을 불러 모은 거야. 이거 뭐 피리 부는 사나이도 아니고. 강호 후배가 버스에서 먼저 내려야겠는데?"

문표는 강호에게 푸념하며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고 있었다.

즉흥적으로 내놓은 해결책이긴 하지만, 그 생각이 좋아보였는지 캡틴 강민수가 동조하고 나선다.

"문표 생각이 옳아. 대다수 팬들이 강호 너를 보러 온 거니까 강호가 먼저 내려서 싸인도 해주고 셀카도 찍어주고 하는 게 좋겠지. 나머지 선수들은 강호 뒤에 내려서 혹시라도 강호를 잡아당기거나 공격하는 팬들이 있으면 보호해주는 게 좋겠어."

캡틴 강민수는 강호를 앞장세우면서도 혹시 열성팬들 중에 강호를 공격하는 이들이 있을까 후배 선수들에게 강호의 경호를 맡기는 모습이었다.

그 중에는 문표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무슨 경호원이야? 저 사람들 중에 내 얼굴 보러 온 팬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

"퍽이나 그렇겠다. 잔말 말고 강호 뒤에 바짝 붙어서 내려."

문표는 괜한 말로 캡틴 강민수의 꾸지람을 들으며 강호의 뒤편에 선다.

그 후 각자의 짐을 챙긴 선수들이 강호를 시작으로 버스에서 하차를 시작한다.

활짝 열린 버스 문을 통해 강호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팬들이 일제히 함성을 토해낸다.

"꺄아아악! 강호 오빠!!"

"완전 잘생겼어! 어떡해?! 키 엄청 커! 강호 오빠 싸인 좀요!"

"강호 형!! 저도 싸인요!"

강호의 얼굴을 확인한 팬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지르자 자정 무렵의 사직동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사직구장 근처에 자리 잡은 상가나 주택가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 정도였고, 그 중에서는 주차장 부근에서 강호를 기다리고 있던 강수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강수는 지금의 비명과 함성 소리가 설마 동생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는 보게 되었다.

자신의 동생인 강호가 수많은 인파들에 둘러싸인 채 싸인을 해주거나 악수를 나누고, 함께 셀카를 찍으면서 팬들과 교감하는 모습을.

'백강호'라는 이름을 외치며 환호하는 팬들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니 괜스레 마음 가득 뿌듯한 감정이 차오르고 있었다.

주변을 지나는 시민들이 '어?! 백강호 선수래! 우리도 가보자!' 라고 반응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수는 그런 시민들에게 '백강호가 제 동생입니다'라 말하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아내며 기분 좋게 웃음 짓는다.

이제 동생은 자이언츠의 주전 선수를 넘어 부산시의 슈퍼스타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항상 동생을 응원하는 형의 입장에서는 가슴 벅찰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다.

'강호야, 고맙다.'

강수는 먼발치에 서서 동생에게 지금은 전할 수 없는 감정을 홀로 되뇐다.

팬들과 교감하는 강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거의 고생과 시련들이 모두 보상받는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한 때는 후회하기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해야만 했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닫게 된다.

강수는 잠시 그렇게 멈춰 선 채 동생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잠시 후, 팬들과의 자리를 끝낸 강호가 자신의 짐을 들고 걸음을 옮겼을 때 강수 역시 동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아차 하는 마음을 먹게 된다.

'이런! 차라리 차를 놓고 올 걸 그랬나? 이렇게 지켜보는 팬들의 시선에 많은데 강호를 화물차에 태웠다가 좋지 못한 이야기가 도는 건 아닐까?'

강수는 갑작스런 걱정에 걸음을 멈추게 된다.

자신이 타고 온 차량은 평소 작업 현장에 타고 가는 낡은 화물 트럭이었다.

이전에는 원정 경기를 끝내고 돌아오는 동생을 그 트럭에 태우고 집으로 가곤 했지만, 지금은 보는 눈이 많았다.

구단의 슈퍼스타가 된 동생이 화물 트럭을 타고 집으로 귀가하는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창피할 것 같았다.

강수 본인은 괜찮았지만, 동생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남루한 모습의 형이 마중을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든다.

그래서인지 멈췄던 발걸음을 되돌리려는 강수.

그런데 이미 동생인 강호가 형의 모습을 확인해버린 후였다.

"형!"

말없이 돌아서려 했던 강수는 자신을 부르는 동생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동생의 목소리에는 창피한 감정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가운 감정, 그것이 동생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유일한 감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몸을 돌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동생을 향해 한 발짝 내딛는다.

"강호야! 고생 많았다. 오늘 50홈런 때린 거, 형이 현장에서 다 봤어! 잘 했다!"

강수는 그렇게 동생을 칭찬하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그런데 강호가 그런 강수를 향해 안겨들고 있었다.

강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키가 큰 강호인 까닭에 형에게 안긴 모양새가 조금 어색해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형제의 모습을 바라보는 팬들과 시민들은 두 사람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짠한 감정과 함께 묘한 여운을 느끼게 된다.

동생을 기다리는 남루한 강수의 모습, 그런 형에게 안겨드는 강호.

TV나 경기장에서 보았던 강호의 투지 넘치는 모습 이면에는 이렇게도 인간적인 모습이 감춰져 있었다는 사실을 팬들은 이제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강호가 형의 낡은 트럭에 올라탄 채 집으로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그런 감정은 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백강호 선수 연봉이 아직 최저 연봉인 건가? 조금 전에 그 사람이 친형인 것 같은데..."

"나도 들었어. 백강호 선수가 형이라고 부르는 거. 전에 백강호 선수 다큐멘터리 보니까 어렸을 때 집안 형편이 엄청 안 좋았다고 하더니 아직까지 그런 모양이네..."

"구단에서는 뭐 하고 있는 거야? 세계 최초로 50-50을 찍은 선수한테 진짜로 최저 연봉만 줄 생각인 거야? 이게 말이나 돼?"

"말이 안 되지! 그 정도면 구단이 아니라 양아치지! 만약에 우리 백강호 선수가 지금이 FA시즌이면 몸값이 못해도 연 30억은 족히 넘을 거야!"

"너무하네, 너무해!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항의를 좀 해야겠어! 백강호 선수 연봉 좀 올려달라고!"

"그나저나 대단하기도 하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런 기록 내는 거 보면."

"그러니까 대 선수지! 괜히 메이저리그에서 탐을 내겠어? 저 정도 클래스의 선수는 어떤 여건에서도 빛나는 거라고!"

강호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싸인까지 받은 팬들은 새롭게 알게 된 강호의 이면을 발견하고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은 강호의 인생 역정과 함께 지나치게 낮아 보이는 강호의 연봉에 대해 토로하며 각자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 일로 야구 선수 백강호가 아닌 인간 백강호에 대한 이야기들이 팬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 강호를 더욱 호감 형 선수로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또한 일부 팬들은 늦은 시간임에도 자이언츠 홈페이지에 접속해 지나치게 낮은 강호의 연봉에 대해 성토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바람은 시간이 지나 강호의 활약상이 계속됨에 따라 더욱 심화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시간은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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