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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팀의 4번 타자 맞붙다
강호의 선택은 간단했다.
'이번 타석은 홈런으로 간다! 다이노스에서 고의사구를 내지 않는다고 해도 볼넷으로 거를 확률이 높아. 타격 아이템을 사용하면 빠지는 코스의 공도 홈런으로 만들어낼 수 있어. 이번 타석 역시 초구부터 간다.'
강호는 아이템 사용을 결정하고 있었다.
만약 강호 본인이 이번 타석에서 타격에 대한 의지를 내보인다면 다이노스의 배터리는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고의사구 작전으로 나올 것이 뻔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에릭의 초구를 타격할 생각인 것이다.
이미 '홈런'아이템 사용을 결정한 상황.
시야에 표시되는 가상의 스트라이크 존에 크게 벗어나는 공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망설임 없이 배트를 휘두른다.
따악!!
2회에 이어 또 다시 타석을 가득 채우는 강호의 타격음에 자이언츠 원정 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선다.
특히나 잠자리채를 들고 우측 외야에 자리 잡은 관중들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타구에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
"저쪽이야! 잡아야 돼!"
"아니야! 이쪽으로 휘잖아! 오른쪽이라고!"
"야, 이 멍충이들아! 지금 홈런볼은 49호째 공이잖아. 뭐 하러 잡으려는 거야?"
반사적으로 강호의 홈런볼을 잡으려 했던 관중들이 상황을 파악하고는 라인드라이브 성으로 날아오는 홈런볼을 피한다.
피하지 않고 타구를 맞기라도 한다면 큰 부상이 우려될 정도로 강호가 때려낸 타구가 빨랐기 때문이다.
결국 펜스를 넘은 강호의 타구는 관중들이 비어있는 관중석을 강타하고 있었다.
터엉!
마치 관중석을 부숴버릴 듯한 소음과 함께 타구가 떠오르고 뒤늦게 그 모습을 확인한 관중들이 잠자리채를 들고 관중석에서 떨어진 홈런볼을 향해 달려든다.
"비켜! 내가 잡을 거야!"
"49호째 공이라서 안 잡는다며?"
"야, 이 멍충아! 이 공이 백강호 200타점 달성 기록구라고!"
"뭐?! 비켜, 내 거야!"
자이언츠 팬들은 강호의 49호 째 홈런볼이라도 잡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그들의 치열한 움직임은 중계 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포착되고 있었다.
중계석의 조 캐스터는 카메라에 포착되는 관중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잠자리채를 든 관중들이 바빠집니다! 백강호의 이번 타구는 49호째 홈런으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이 홈런으로 자이언츠가 상황을 4대 2로 뒤집습니다! 역전 투런포! 여러분, 지금 보고 계십니까?! 백강호 선수의 200타점이 이 홈런 한 방으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 홈런으로 백강호 선수가 예고했던 이번 경기 3타점이 만들어집니다!"
조 캐스터는 강호의 지금 투런포가 200타점을 달성하는 기록구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201타점이었다.
199타점에 2점을 추가하며 세계 최초로 200타점의 고지에 오른 것이다.
중계 화면에는 중계 팀에서 미리 준비하고 있던 200타점 달성 문구가 화면 전체를 장식하는 모습이다.
TV로 경기를 지켜보는 자이언츠 팬들은 강호가 달성한 대기록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와아! 미쳤네, 미쳤어! 벌써 200타점이야?"
"대박이네. 인터뷰대로 3타점도 벌써 때려냈어! 이제 남은 건 50홈런뿐이네."
"어떻게 남은 기록이 50홈런뿐이야? 최다 2루타 기록도 남았고, 최다 안타 기록도 달성해야지! 아직 서른 경기 넘게 남아 있잖아? 당연히 최다 안타하고 최다 2루타도 달성하겠지! 그것뿐이야? 최다 홈런 기록도 노려봐야지!"
TV로 중계를 지켜보는 자이언츠 홈 팬들은 기록 달성의 당사자인 강호 본인보다도 기뻐하며 흥분하고 있었다.
역대 자이언츠 타자 중에서 데뷔 시즌부터 강호 같은 임팩트를 보인 선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자이언츠 타자뿐만이 아니라 리그 전체를 돌아보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새 강호는 자이언츠 팬들의 자부심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백강호! 백강호! 백강호!"
"50홈런 가자! 오늘 경기도 이기고! 이참에 시리즈 스윕 가자! 다이노스가 별 거가?!"
"그래! 스윕 가자!"
현장의 팬들은 강호의 이름을 연호하며 지금 느끼고 있는 기쁜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팬들의 함성과 호흡, 그들이 뿜어내는 기쁨과 승리에 대한 열망이 베이스를 돌아 홈을 밟고 있는 강호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다.
강호 본인도 지금의 홈런으로 200타점째 기록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는 냉정한 모습을 연기하고 있었지만, 가슴은 뜨겁게 달아오름을 느낀다.
'내가? 200타점을 달성한 거야? 진짜로 내가?'
강호는 지금의 현실을 믿기가 힘들었다.
홈을 밟은 후 자신을 향해 양팔을 펼치며 환호하는 자이언츠 선수단에게 도달할 때까지 지금의 현실이 꿈이 아닐까 의심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눈앞에서 괴성을 내지르는 문표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지금의 상황이 꿈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게 된다.
"우와아아악!! 200타점이야!! 강호 후배! 나한테 그 기운을 나눠달라고! 어서 손뼉을 이리로! 제일 먼저 나하고 하이파이브 해야 돼!"
"문펴, 이 자식! 저리 썩 꺼져! 강호의 200타점 기운은 내가 제일 먼저 받을 거야. 강호야, 이 형이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나랑 하이파이브 먼저 하자."
"좋은 건 주장부터 아닙니까? 저부터예요."
서로 먼저 하이파이브를 하려는 문표와 중석에 이어 보기 드물게도 캡틴 강민수까지 나서서 강호를 환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선수들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200타점을 달성하고 돌아온 강호와 가장 먼저 손뼉을 마주친 사람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타악.
강호는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손 감독과 손뼉을 마주한다.
손 감독의 손바닥과 마주친 손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아프거나 뜨거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손 감독에게서 전달된 열정의 감정이 손끝으로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잘했다, 강호!"
손 감독은 보기 드문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강호의 등을 두드려 온다.
그의 눈빛은 짙은 색 고글에 가려져 있었지만,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고글에 가려진 손 감독의 눈이 호선을 그리며 웃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를 향해 무슨 대답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강호는 무슨 대답을 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 역시 환한 미소로 응답한다.
"네!"
손 감독의 칭찬에 대한 강호의 대답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이었다.
손 감독과 강호, 두 사람은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이미 많은 것을 공유하는 지도자와 선수의 관계로 발전해 있었던 것이다.
손 감독은 강호를 믿고 4번 타자의 중책을 맡겼고, 강호는 그런 손 감독의 믿음대로 최고의 4번 타자로 성장해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신뢰,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마주친 손뼉을 통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각오는 단 한가지였다.
'이번 경기는 반드시 이긴다!'
손 감독과 강호, 두 사람의 각오 속에 경기는 계속 진행된다.
강호의 홈런 이후 5번 타자 황제인이 안타를 때려낸다.
그러나 후속 타자인 채중석이 내야 땅볼을 때려내며, 3회 초 뒤바뀐 흐름은 이어지지 못한다.
이제 상황은 3회 말 다이노스의 공격으로 넘어간다.
"베이스 온 볼."
3회 말 선두 타자에 이어 3번 타자 나성건 마저 출루에 성공하고 있었다.
2회에 삼자범퇴로 이닝을 막아낸 홍성빈 투수가 갑작스럽게 흔들리며 상황은 무사 주자 1, 2루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다음 타자는 다이노스의 4번 타자 테인즈.
다이노스 홈 팬들은 강호로 인해 역전을 허용당한 분위기를 팀의 4번 타자 테인즈가 다시 찾아와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다이노스 홈 팬들의 바람은 현실이 되고 있었다.
따악!
1회에 이어 또 다시 벼락같은 스윙이 호쾌한 타격음을 만들어 낸다.
이번에는 1루수 문표의 키를 한참 넘긴 타구가 파울라인 안쪽을 스치며 우측 펜스를 향해 빠르게 굴러간다.
타구 방향을 확인한 다이노스 베이스 코치들이 주자들에게 주루 시그널을 보낸다.
"달려, 달려! 홈까지 달려!"
베이스 코치들의 시그널을 확인한 2루 주자 김성우가 홈으로 파고든다.
이어서 1루 주자 나성건 역시 3루 베이스를 밟은 후 홈으로 향한다.
1회 말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에도 우익수 박철이 홈을 향해 공을 뿌린다.
파핫!
공이 홈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타자 주자 테인즈가 2루 베이스를 밟은 후 3루를 향해 달려든다.
"세이프!"
그 사이 홈으로 파고 든 1루 주자 나성건이 주심에게 세이프 판정을 받고 있었다.
포수 강민수는 판정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몸을 일으켜 3루수를 향해 공을 던진다.
동시에 타자 주자 테인즈가 3루를 향해 쇄도해 들어간다.
이미 상황은 4대 4 동점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다이노스 홈 팬들의 환호 속에 모두의 시선이 3루심을 향한다.
"세이프!"
3루심의 판정 역시 세이프였다.
이로써 강호의 투런포로 4대 2가 된 양 팀 스코어가 다시 4대 4 동점 상황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무사 상황에서 타자 주자인 테인즈가 3루를 밟은 상황.
다이노스 홈 팬들의 함성 소리는 더욱 커지게 된다.
"역시 테인즈네! 백강호가 별 거가? 다시 역전가자!"
"백강호 2홈런 3타점! 우리 테인즈는 2안타 4타점! 테인즈가 더 영양가 있네! 홈런 치면 뭐해? 타점이 중요한 거지!"
다이노스 홈팬들은 테인즈의 3루타로 만들어진 동점 상황에 기뻐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사이 자이언츠 덕 아웃에서는 빠른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바꿔!"
손 감독의 투수 교체 지시가 나온 것이다.
여민석 투수 코치는 불펜에 인터폰을 건 후 곧장 마운드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불펜 투수들이 몸을 푸는 시간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성빈아. 교체 지시가 나왔어. 최대한 시간을 끌어 봐. 굳이 승부할 필요는 없으니까. 3루 주자 테인즈한테 견제구도 던지고, 볼넷을 줄 각오로 시간을 끌어."
여 코치의 당부에 홍성빈 투수가 다소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후 다이노스의 5번 타자인 방성민이 타석에 서고, 시간을 끌어주길 바랐던 홍성빈 투수가 타자 방성민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쾌거를 선보인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홍성빈의 6구째에 주심이 삼진을 선언한다.
그러나 자이언츠 덕 아웃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 홍성빈은 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는 동안 4실점을 허용하며 책임주자 테인즈를 3루에 남기고 마운드를 내려가야만 했다.
그 후 마운드에는 새로운 투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뀐 투수를 확인한 자이언츠 팬들은 동점을 허용한 상황에서도 응원의 목소리를 잊지 않는다.
"그래! 진즉에 성수제로 갔어야지! 홍성빈이 웬 말이야? 성수제, 파이팅!"
팬들의 응원에 담긴 이름대로 바뀐 투수는 성수제 투수였다.
시즌 후반기 들어 롱릴리프의 역할을 도맡게 된 성수제 투수.
전반기때는 팀의 4선발 자리도 맡았을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마운드에 올라 6번 타자 이종윤을 뜬공으로 잡아내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한다.
하지만 3루 주자 테인즈가 홈으로 파고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테인즈의 득점으로 이제 상황은 5대 4, 다이노스에게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러나 7번 타자 손시형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더 이상의 실점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 후 양 팀의 4회는 별다른 특이점 없이 삼자범퇴로 끝이 난다.
이제 또 하나의 승부처인 5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먼저 공격 기회를 맞이한 것은 원정 팀인 자이언츠.
시종일관 삼진으로 돌아서야 했던 유성철이 모처럼의 기회를 만들어 낸다.
딱.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타자 주자 유성철이 1루에 안착한다.
그 후 2번 타자 박철의 희생 번트로 주자 유성철이 2루로 향한다.
타자인 박철이 아웃되긴 했지만, 1사 2루의 득점권 상황이 만들어지고 3번 타자 전준오가 타석에 설 차례.
그런데 이때 자이언츠의 승부수 하나가 던져진다.
중계석에서는 손 감독의 결정으로 인한 변수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아~~지금 상황에서 대타를 냈어요. 아직 5회 초 상황이거든요. 3번 타자 전준오의 타석에서 스팅을 대타로 냅니다. 지금의 대타 결정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한 번 지켜봐야겠습니다."
"스팅은 위즈와의 경기에서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하기도 했거든요. 오늘 라인업에서는 빠져 있었는데 자이언츠의 손성조 감독은 지금의 상황을 승부처로 본 것 같아요."
조 캐스터와 박 위원의 이어지는 코멘터리 속에 대타 스팅이 타석에 선다.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대타 스팅의 등장에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고, 팬들의 기대 속에 스팅의 타격이 이어진다.
딱!
에릭 투수의 4구째를 노리고 휘둘러진 스팅의 타구가 좌중간을 가로지른다.
"돌아, 돌아!"
3루 베이스 코치는 2루 주자 유성철에게 홈으로 쇄도할 것을 지시하고 있었고, 그 사이 공을 잡은 좌익수 이종윤이 공을 송구하고 있었다.
파핫!
공은 홈을 향하다가 유격수 손시형의 글러브에 가로 막힌다.
타자 주자 스팅이 2루를 향하는 모습을 본 손시형 유격수가 공을 커트해낸 후 2루를 향해 공을 뿌린 것이다.
그 사이 2루 주자 유성철은 홈을 밟고 있었고, 모두의 시선은 2루로 향한다.
"세이프!!"
2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3회 말 테인즈의 역점 득점을 무위로 돌리는 대타 스팅의 적시 2루타가 터져 나온 것이다.
이제 상황은 5대 5 동점 상황.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낸 대타 성공에 자이언츠 팬들이 목소리를 드높인다.
그들은 스팅의 적시타로 인해 만들어진 동점 상황보다 여전히 이어지는 득점권 상황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다음 타자로 타석에 설 타자가 바로 4번 타자인 강호였기 때문이다.
"백강호! 날려라! 50홈런 가자!"
"백강호! 홈런 가자!"
마산구장을 장악한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함성 속에 강호의 발걸음이 또 다시 타석으로 향한다.
그런 강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