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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팀의 4번 타자 맞붙다
타석에 들어선 강호는 상대 투수의 눈을 응시하며 배트를 힘껏 쥔다.
강호의 눈빛은 잘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로웠기 때문에 그 눈동자를 마주해야 하는 에릭 투수로서는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강호가 별 볼일 없는 신인 타자였다면 신인의 객기 따위로 여겼겠지만, 강호는 자이언츠의 4번 타자이자 리그 최고의 기록들을 갱신하고 있는 전무후무한 기록파괴자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에릭 투수가 리그에서 많은 업적과 기록을 쌓은 투수라고 하지만, 올 시즌 강호의 기록 앞에서는 초라함마저 느낀다.
'초구를 어떻게 가야할까? 지금이 전반기라면 초구는 유인구로 가는 게 맞아. 백강호의 전반기 초구 스윙 비율은 무조건이라고 할 정도로 비율이 높았으니까. 그런데 후반기 들어서 백강호가 초구를 타격하는 비율이 눈에 띠게 줄어들었어. 그러니까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넣어도 스윙하지 않을 확률이 존재해.'
에릭 투수는 강호를 상대할 초구를 선택함에 있어서 무척이나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던질지, 볼을 던질지를 놓고 수십 번의 결정과 번복의 과정이 일어난다.
강호의 후반기 리포팅 자료를 떠올려 본다면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던져도 될 것 같았지만, 지금 타석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강호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초구를 존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이성은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져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베테랑 투수로서의 본능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 초구는 태건의 싸인대로 가자.'
결국 에릭 투수는 포수의 싸인을 100% 따르기로 결정을 내린다.
1회 말 테인즈의 적시타로 어차피 지금은 팀이 2대 0으로 앞선 상황이었다.
강호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다고 해도 1점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운다.
그런 에릭의 시야에 김태건 포수의 초구 싸인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에릭 투수는 태건의 싸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포수 미트를 향해 공을 뿌린다.
그리고 곧장 후회하게 된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이 에릭 투수의 가슴을 비수처럼 찔러온다.
초구는 에릭 투수가 좀처럼 던지지 않는 슬로우 커브였는데 코스가 몸 쪽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고 들어가는 스트라이크 성 공이었다.
강호는 순간 오픈 스탠스로 자세를 바꾸며 그 공을 정확하게 타격해낸 것이다.
마운드에서 지켜 본 강호의 타구 각도를 판단한 에릭은 한숨을 내쉬며 마운드에 주저앉는다.
흘낏 강호의 타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가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다.
강호가 때린 타구는 여전히 마산구장의 외야를 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외 홈런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비거리 측정이 불가능한 장외 홈런에 중계석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넘어갑니다! 백강호가 초구부터 넘깁니다! 이 홈런으로 양 팀 점수 차는 1점차로 좁혀집니다. 그리고 이 홈런은 백강호 선수의 시즌 48호 홈런으로 기록 됩니다! 이제 백강호 선수의 시즌 200타점까지는 단 1점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조 캐스터는 지금의 장외 홈런이 단지 한 점을 따라붙는 홈런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시즌 48호 홈런.
이 솔로포로 테인즈와 경쟁 중인 홈런왕 경쟁에 한 발짝 더 다가선 셈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시즌 200타점에 1점만을 남겨 둔 199타점째 타점 기록인 것이다.
조 캐스터는 강호가 홈을 밟는 타이밍에 맞춰 그 점에 대해 더욱 열을 올린다.
"이것으로 백강호 선수의 시즌 199타점 째가 만들어 집니다! 믿어지십니까? 통산 타점이 아니라 시즌 타점이 199타점이에요! 과연 오늘 경기에서 백강호의 200타점 기록이 달성될 것인지를 눈여겨봐야겠습니다!"
조 캐스터의 상황 설명 후 곁에 앉은 박재헌 위원이 코멘터리를 더한다.
"정말 대단합니다. 백강호 선수가 기록 중인 최다 타점 기록은 세계 최고 기록이거든요. 이미 메이저리그 기록인 핵 윌슨의 191타점을 뛰어 넘은지 오래입니다. 200타점이라는 기록이 언젠가는 깨지지 않을까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으셨을 텐데 바로 백강호 선수가 이번 시리즈에서 깰 것으로 보이네요. 백강호 선수가 일요일에 했었던 인터뷰 내용대로라면 오늘 경기에서 3타점을 뽑아낼 수도 있는 거니까요. 오늘 200타점 기록이 깨어질 수도 있어요."
박 위원은 웃음기 띤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그는 강호의 200타점 기록 달성이 오늘 경기에서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또한 박 위원의 예측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지금 홈런이 48호 째거든요. 제가 감히 예측해 본다면 이번 다이노스 시리즈 경기에서 백강호 선수의 50-50달성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경기에서 백강호 선수가 때린 타구가 펜스를 직격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조금 전에 나온 장외 홈런을 보니까 타격감이 더욱 올라온 것 같아요. 이번 시리즈에서는 세계 기록인 200타점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기록인 50-50도 달성가능해 보여요. 최초의 40-40은 다이노스의 테인즈 선수가 가지고 있거든요."
"박 위원님 말씀대로라면 테인즈 선수가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그 기록을 넘어설 거란 말씀이십니까?"
"예측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시리즈 경기에서 테인즈 선수와 백강호 선수, 두 선수 중 누가 먼저 50홈런을 때려내느냐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로 보입니다."
박 위원과 조 캐스터의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계 카메라는 외야를 향해 카메라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 카메라에는 잠자리채나 글러브를 든 채로 외야를 가득 채운 자이언츠 팬들의 모습이 포착되고 있었다.
조 캐스터는 그런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아~~지금 잠자리채가 보이네요? 예전 이승엽 선수가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울 때 잠자리채를 든 팬들이 많이 보였거든요? 2019년 시즌에도 그 모습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백강호 선수의 50-50기록 때문일 겁니다. 백강호 선수, 벌써 71개의 도루를 달성하고 있거든요. 홈런 기록만 두 개를 더 채우면 50-50달성이 되니까 50번째 홈런이 50-50달성 기록구가 되는 거예요. 국내 최초 기록인 만큼 백강호 선수의 50번째 홈런을 잡으려는 팬들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백강호 선수의 50-50달성 기록구를 손에 넣는 행운아가 탄생할 수 있을지, 그 부분 역시 관전 포인트네요!"
박 위원과 조 캐스터,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강호는 홈을 밟은 후 이미 자이언츠 덕 아웃에 도착해 있었다.
그런 강호의 귓가에는 마산구장을 장악한 자이언츠 팬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백강호! 백강호!"
"백강호! 잘 했다! 역시 백강호네!"
강호의 이름을 외치는 자이언츠 팬들의 목소리.
그들의 함성 속에 강호는 자신을 향해 내밀어오는 선수들의 손바닥과 자신의 손바닥을 마주한다.
그러기 전, 덕 아웃으로 돌아온 강호에게 손 감독은 표정 없는 얼굴로 '잘 했다'라는 짧은 말로 칭찬해 주었다.
딱히 하이파이브를 나누거나 시선을 교환한 것은 아니었지만, 손 감독의 짧은 칭찬에 강호는 기분이 좋아진다.
손 감독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무한한 신뢰의 감정과 뿌듯한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 우리 강호 후배! 역시 해결사야, 해결사!"
"잘 했어, 강호! 2회부터 곧장 반격해야지!"
"테인즈가 뭐 별 거야? 우리 팀에는 백강호가 있어!"
강호는 선배 선수들과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자신의 벤치로 돌아와 앉는다.
그런 강호에게 누군가가 냉장고에 들어 있던 음료수를 건넨다.
강호는 음료수를 든 손길을 쫓아 당사자의 얼굴을 확인한다.
"잘 했다, 강호야. 오늘 경기에서는 진짜 3타점 할 수 있겠는데?"
기분 좋은 얼굴로 말을 건네 오는 이는 팀의 캡틴인 강민수 포수였다.
강호는 민수가 건넨 음료수를 받으며 마주 웃어 보인다.
"카메라에 대고 한 약속인데, 지켜야죠."
"그래, 강호 네 덕분에 18연승 한 번 가보자. 우리 선배들도 힘낼 테니까!"
민수는 몇 차례나 강호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기분 좋게 물러난다.
그 후 민수는 몇몇 선수들을 불러 모아 타격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다이노스 선발인 에릭의 투구 성향을 분석하며 오늘 경기에 대한 열정을 내보인다.
그런 캡틴의 열망이 영향을 끼친 것인지 5번 타자로 나선 황제인 선수가 내야 안타를 치고 1루로 출루한 후 6번 타자 채중석이 볼넷으로 출루에 성공한다.
이제 무사 1, 2루 상황.
선수들과 의견 교환을 끝낸 캡틴 강민수가 득점권 찬스에서 타석에 선다.
딱!
에릭의 5구를 공략한 강민수의 타구가 유격수의 키를 넘는다.
비록 좌익수 정면의 단타이기는 했지만, 2루 주자인 황제인의 센스 넘치는 주루 플레이로 1득점이 추가되고 있었다.
"와아아!!"
"그래! 이제 역전가자!"
자이언츠 팬들의 환호 속에 1루에 선 캡틴 강민수가 활짝 웃어 보인다.
강민수의 타점 이후에 8번 타자인 최훈이 병살타를 때리고, 9번 타자 문표가 외야 플라이를 때리면서 2회 초의 공격은 끝이 나지만, 강호의 솔로포와 캡틴 강민수의 1타점 적시타로 2대 2 동점 상황이 만들어져 있었다.
다이노스에게 넘어갔던 분위기를 다시 자이언츠 쪽으로 끌고오는데 성공한 것이다.
다이노스 타자들도 그 점을 느끼고는 절치부심의 각오로 타석에 섰지만, 오히려 2회 말 다이노스 공격은 삼자범퇴로 끝이 나고 만다.
포수 자리에 앉은 강민수 포수가 투지를 불태우는 다이노스 타선의 심리를 읽어 그에 맞는 공략을 한 것이다.
덕분에 오늘 선발 투수인 홍성빈은 1회와는 다르게 깔끔한 2회 이닝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상황은 오늘 경기의 승부처 중 하나인 3회 초로 넘어간다.
3회 선두 타자로 나선 유성철이 6구째 승부 끝에 범타로 물러났지만, 2번 타자인 박철이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으로 걸어 나가며 1사 1루의 상황이 만들어진다.
발빠른 주자 박철이 1루를 밟은 가운데 타석에 선 3번 타자 전준오.
덕 아웃에서 나온 페이크 번트 앤 슬래쉬 싸인에 따라 타격에 들어간다.
딱.
약간은 먹힌 듯한 타격음을 확인한 주자 박철이 전속력으로 2루를 향해 달린다.
의도와는 다르게 전준오의 타구가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구는 전진 수비를 하고 있던 3루수 방성민의 글러브에 빨려 들게 된다.
공을 잡은 방성민 3루수는 병살타를 노리고 2루를 향해 공을 뿌린다.
"세이프!"
2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다행히도 3루수 방성민의 포구가 늦어 2루로 향하던 박철은 세이프 처리 된 것이다.
그러나 타자 주자인 전준오가 아웃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아웃!"
2루수 박진우가 던진 공이 1루수 테인즈의 글러브에 들어온 순간, 1루심은 아웃 콜을 내린다.
타자 주자인 전준오는 나름 판단을 내린 것인지 덕 아웃을 향해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고, 그의 요청은 받아들여져 비디오 판독에 들어간다.
그 후 판독실에 들어간 주심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판독결과를 알린다.
"아웃."
주심의 판정 역시 아웃이었다.
판정번복 없이 이제 2사 2루의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타석으로 걸음을 옮기는 타자를 확인한 양 팀 덕 아웃과 팬들은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는 타자는 자이언츠의 4번 타자인 강호.
득점권 상황은 맞았지만, 다이노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고의사구도 가능한 순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양 팀 팬들은 묘한 시선으로 다이노스의 선택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백강호 선수니까 거르겠지?"
"뭘 걸러? 승부하겠지! 일요일 인터뷰에서 우리 백 선수가 그렇게까지 얘기했는데 거르면 그게 프로야?"
"프로니까 걸러야지.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거 아니겠어? 백강호 선수만 거르면 아웃카운트 쉽게 잡을 수 있는데 네가 다이노스 감독이면 굳이 백강호 선수하고 승부 보겠어? 나 같으면 거른다."
"내가 다이노스 감독이면 자존심이 상해서 안 걸러! 승부 봐야지! 그래야 우리 백강호 선수가 200타점을 채우지."
팬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타석에 선 강호가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기간제 아이템 효과로 상대 투수가 던질 코스를 예측할 수 있는 강호는 이어질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템 사용을 묻는 시스템의 메시지에 곧바로 결정을 내린다.
-득점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