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30화 (229/335)

0230 / 0335 ----------------------------------------------

양 팀의 4번 타자 맞붙다

모두의 관심 속에 자이언츠의 첫 타자가 타석에 서고 있었다.

1번 타자는 라인업에 예견된 대로 좌익수 유성철이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타석에 선 유성철의 타격 모습으로 향한다.

그가 평소에 비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관중석의 목소리로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1회에 누구라도 출루하면 백강호한테까지 기회가 연결되는 거잖아."

"그렇지. 한 명만 출루해도 백강호 타석까지 가겠지. 병살타만 안 나오면."

"기대 되네. 너는 다이노스 배터리에서 백강호한테 고의사구를 내줄 것 같아?"

"글쎄. 일요일에 백강호가 인터뷰한 내용도 있는데 자존심 상하게 고의사구를 내주기야 하겠어? 대놓고 고의 사구는 어렵지. 승부를 피할 생각이면 빠지는 공으로 볼넷을 주지 않을까?"

야구장을 찾은 양 팀 팬들의 관심사는 대화내용에 모두 담겨 있었다.

다이노스 덕 아웃에서 강호와의 승부를 피할 것인가, 아니면 정면 승부를 펼칠 것인가.

그것을 일찍 확인하기 위해서는 1회 초, 강호 앞에 이름을 올린 상위 타선 중 한 명이라도 출루를 해야 하는 것이다.

다이노스 배터리와 강호의 승부가 이번 경기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이번 시리즈 내내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는 최고의 화제 거리라는 사실을 또 한 번 확인하게 되는 모습들이었다.

"스트라이크!"

다이노스 선발 투수가 던진 초구에 대한 주심의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많은 이들의 시선 속에 던져진 초구 스트라이크에 다이노스 관중석에서는 환호가, 자이언츠 관중석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이노스 선발 투수인 에릭이 하나의 공을 던졌을 뿐인데도 관중석의 반응이 뜨거운 모습이다.

그만큼이나 이번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의 흥미도가 높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런 점은 TV중계 시청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PD님, 시청률 두 배 넘었습니다. 인터넷 중계 시청률도 120%증가했고요. 동시접속자가 40만 명이 넘는데요?!"

"거봐, 내가 뭐라 그랬어? 내가 후반기 들어가기 전에 회사에 인터넷 중계 서버 확장해야한다는 건의안 낸 거 기억 안나? 지금쯤이면 회사도 아차 싶을 거야. 동시접속자가 폭주하면 서버가 다운될 수도 있거든."

PD의 예상대로 동시접속자가 40만 명을 초과한 중계 서버가 폭주 상태에 있었다.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에서 생중계에 가깝게 진행되는 인터넷 중계 서버가 폭발한 것이었다.

중계는 포털 사이트에서 진행하지만, 방송사의 영상을 생중계로 전송받다보니 방송사의 서버가 터져버리면 포털 사이트의 서버가 아무리 방대하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평균 동시 접속자 수가 10만 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서 40만 명이 넘는 동시 접속자 수를 감당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어?! 뭐야? 렉 먹었네?"

"인터넷이 안 되는 건가? 아닌데, 인터넷은 잘 되는데? 야구 중계만 먹통이네."

"TV로 봐야겠어. 위즈 경기는 중간 중간 채널 돌려서 확인해보고 일단 마산 경기를 보자."

TV와 인터넷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 마산 경기를 모두 지켜보던 야구팬들은 인터넷 중계가 제대로 수신되지 않자 TV채널을 변경한다.

많은 야구팬들은 본인이 응원하는 팀이 아니라 마산 경기를 선택하고 있었다.

본인들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하루 정도 포기하더라도 치열한 신경전이 예상되는 마산 경기가 구미에 더 당기는 이유였다.

그로 인해 자이언츠와 다이노스 간의 마산 경기는 올 시즌 야구 중계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찍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양 팀 선수들로서는 지금의 대결에 정신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볼 투."

초구 스트라이크 이후 에릭의 공 모두가 볼로 선언된다.

에릭의 공은 딱히 벗어난 코스는 아니었지만,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을 판단할 의도인지 볼로 판정받은 두 개의 공 모두가 코스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공이었다.

이제 2볼 1스트라이크 상황.

투수나 타자 모두 결정을 내려야할 카운트가 만들어져 있었다.

팀의 선두 타자로 나선 성철은 자신에게 쏠리는 기묘한 시선들을 느끼는 중이었다.

'어떻게든 출루를 해야 하는 분위기인데? 여기가 마산 구장인지 사직구장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네. 어떻게 된 게 관중석에 자이언츠 팬들이 더 많은 거야?'

성철은 잠시 관중석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생각을 정리한다.

자이언츠 팬들의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는 마산 구장을 점령한 자이언츠 저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단 하나.

팀의 4번 타자인 강호에게 기회가 이어질 수 있도록 자신의 출루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성철 역시 그것에 초점을 맞춘 채 배트를 짧게 쥔다.

성철의 그런 변화는 다이노스의 베테랑 포수 김태건의 시야에 포착된 상황.

'이거 봐라? 배트를 짧게 쥔다고? 컨택 위주로 승부를 보거나 아니면 기습 번트를 댈 수도 있다는 소리겠지. 출루에 초점을 맞추려고.'

김태건 포수는 배트를 짧게 쥔 성철의 의도를 곧장 파악하고 있었다.

자이언츠의 강민수, 베어스의 양희지와 더불어 리그에서 손꼽히는 포수로 이름을 알린 김태건 포수였다.

눈에 뻔히 보이는 성철의 의도를 읽지 못할 리가 없었다.

덕분에 1회 초, 첫 타자부터 불꽃 튀는 승부가 이어진다.

티익, 딱.

"볼 쓰리."

두 번의 타격음에 이은 주심의 볼 선언.

성철은 존 안으로 들어오는 두 개의 공을 커트해낸 후, 6구째 공은 거르고 있었다.

이제 볼 카운트는 풀 카운트 상황.

시작부터 보게 된 흥미로운 대결에 관중석의 목소리가 더욱 달아오른다.

그리고 공은 7구째로 이어진다.

부웅!

낮은 공에 딸려 나오는 성철의 스윙.

풀 카운트 승부에 대처하는 성철의 스윙은 슬라이더를 노린 스윙이었고, 에릭의 선택은 홈플레이트를 찍고 포수의 상체를 때리는 포크볼이었다.

김태건 포수는 바운드가 튄 에릭의 포크볼을 온 몸으로 막아내며 주워든 공으로 성철을 태그 한다.

낫아웃 상황이었지만, 포수 김태건의 빠른 대처로 선두 타자 유성철은 그대로 삼진 처리되고 만다.

"아...!"

성철은 짧은 탄식과 함께 타석에서 물러서고, 그 모습을 지켜 본 자이언츠 팬들 역시 성철과 같은 탄식을 내뱉는다.

"아...삼진이네."

"뭐 저런 원바운드 공에 딸려 나가냐?"

자이언츠 팬들은 아쉬움을 담은 목소리로 토로한다.

그런 자이언츠 팬들과는 대조적으로 다이노스 팬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모습이었다.

다이노스 팬들의 환호는 2번 타자로 오른 박철마저 삼진으로 물러나자 더욱 커지고 있었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3번 타자인 전준오까지 공 2개 만에 범타로 물러나자 다이노스 팬들은 기립박수로서 선발 투수의 1회 호투를 칭찬한다.

"역시 에릭이네! 잘했다! 오늘 퍼펙트로 쓸어버리자!"

"자이언츠가 경기 시작 전부터 그렇게 까불더니 결국 1회 삼자범퇴네. 너희는 안 돼!"

선발 투수 에릭의 호투로 다이노스 팬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자이언츠 팬들은 미처 반박하지 못한 채 2회 초, 강호의 타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런데 그들이 기다리는 2회 초 상황은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1회 말 다이노스의 공격이 길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딱!

"와아아아!"

경쾌한 타격음이 마산구장을 함성으로 가득 채운다.

1사 주자 1루 상황에서 터진 3번 타자 나성건의 안타가 우중간을 향해 뻗어져나간 것이다.

우익수 박철이 타구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 곧장 3루를 향해 공을 던진다.

"세이프!"

주자 김성우가 3루에서 세이프 되고 있었다.

타자 주자인 나성건은 1루에 머물며 1사 주자 1, 3루의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와아아!!"

"나성건 잘했다!"

"테인즈 한 방 날려라!"

다이노스 홈팬들은 다음 타자로 오르는 한 타자의 이름을 크게 외친다.

그는 바로 다이노스의 4번 타자인 에릭 테인즈.

국내 프로야구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타격 능력을 보유한 외국인 타자이자 5년 연속 40홈런의 고지를 밟고 있는 리그 최고의 강타자 중 한명이었다.

테인즈 선수가 이번 경기 전까지 때려낸 홈런의 숫자는 49개, 이제 50홈런에 고작 하나의 홈런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이노스 팬들은 테인즈의 50번째 홈런이 자이언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버리는 선제 쓰리런으로 나와 주기를 기대한다.

"테인즈, 홈런! 테인즈, 홈런!"

"날려라!!"

다이노스 홈 팬들의 환호 속에 타석에 선 테인즈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운드 위의 투수를 응시한다.

그 압도적인 모습에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선 홍성빈이 모자를 벗어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매번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테인즈는 타석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저런 근육으로 내 공을 때리면 웬만한 공은 죄다 홈런이 될 거야. 유인구로 가자!'

선발 투수 홍성빈은 테인즈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기로 한다.

홍성빈 투수는 89년생, 올해로 31살의 중견 투수로 원래는 선발 투수 자원이 아니었다.

올 시즌을 셋업 투수로 시작했던 홍성빈 투수는 전반기 내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롱릴리프 자리로 옮겨졌다가 성수제 투수가 롱릴리프로 내려오자 포지션이 애매해져있던 상태였다.

손 감독은 그런 홍성빈 투수를 임시 선발로 기용함으로서 불안하던 선발 한 자리를 두 명의 투수로 채워 넣게 된다.

손 감독 체제 하의 후반기는 5선발이 아닌, 6선발 체제로 경기가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정상적인 6선발 운용은 아니었지만, 때에 따라 5선발 자원인 홍성빈과 윤명호를 교체기용하며 상대 팀에 맞는 전략적인 선발 투수 기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윤명호 투수는 좌완 오버핸드 투수였고, 홍성빈은 언더핸드와 사이드핸드의 중간 형태 정도의 공을 던지는 우완투수였다.

'초구는 낮은 쪽 싱커로 가자. 스윙을 해주면 땡큐고, 그게 아니면 볼넷을 내줄 각오로 낮은 코스의 공만 던지는 거야.'

성빈은 테인즈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면서 유인구 위주의 승부를 펼칠 생각이었다.

만루를 채울 상황은 아니지만, 상대 타자인 테인즈가 최근 다섯 경기에서 4할 3푼 대의 타격감을 끌어올린 점을 생각해 봤을 때 차라리 만루를 채우고 다음 타자인 방성민과 상대하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테인즈는 땅볼을 쉽게 유도할 수 있는 타자가 아니니까. 차라리 땅볼 타구 비중이 높은 방성민과 상대하는 게 맞아!'

성빈은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테인즈를 상대할 초구를 던진다.

그런데 성빈의 복잡한 구상은 테인즈의 스윙으로 물거품이 되고 있었다.

딱!

또 한 번 경쾌한 타격음이 마산 구장을 함성 소리로 가득 채운다.

스윙을 유도할 것이라 생각했던 성빈의 싱커를 정확히 타격한 테인즈의 타구가 우측 선상을 타고 흐르는 안타로 만들어진 것이다.

테인즈의 타구를 눈으로 쫓던 1루심은 타구가 인필드로 들어왔다고 선언했고, 덕분에 우익수 박철은 이번에도 바쁘게 걸음을 움직여야 했다.

'빨리 잡아야 돼!'

박철은 타구를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1루 주자인 나성건까지 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포구를 서두른다.

이미 몇 차례에 걸쳐 그라운드를 때리고 펜스에 가로막혀 굴러 나오는 공을 슬라이딩으로 잡아낸 것이다.

그리고는 곧장 2루수를 향해 공을 토스한다.

파핫!

우익수 박철에게 공을 넘겨받은 2루수 최훈은 곧바로 홈을 향해 공을 뿌린다.

그와 동시에 어느새 3루를 돌아 홈으로 쇄도해 들어가던 1루 주자 나성건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홈을 스치고 있었다.

나성건에 앞서 홈에 도착해 있던 3루 주자 김성우가 양팔을 크게 벌리며 주심에게 세이프라고 어필하는 모습이다.

그런 김성우 선수의 어필과는 상관없이 주심이 양팔을 크게 벌린다.

"세이프!!"

주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그런 주심의 판정을 확인한 테인즈가 2루 베이스를 밟은 채로 양팔을 들어 올린다.

한국 생활이 6년 차에 접어들며 이제는 한국말이 꽤나 익숙해진 테인즈 역시 강호의 '3타점' 발언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의 절친이라 할 수 있는 김태건 포수가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주자를 일소하는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낸 테인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당당하고, 즐거워 보였다.

"와아아아!"

"그렇지! 저게 바로 4번 타자지! 우리 다이노스 4번 타자!"

"다음번에는 홈런으로 갑시다!!"

다이노스 팬들은 테인즈의 2타점 적시타에 함성으로 응답하며 마산구장의 주인이 자신들임을 알리고 있었다.

덕분에 응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자이언츠 팬들이 잠시 침묵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침묵은 길게 가지 않았다.

테인즈에게 2타점을 허용한 후 대오각성 한 홍성빈 투수가 다음 타자인 방성민과 이종윤을 차례로 범타처리하며 1회를 2실점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이제 이닝은 2회 초 자이언츠 공격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자이언츠 팬들을 뜨겁게 달궈 줄 타자가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백강호! 백강호!"

"날려라, 백강호!"

"홈런 한 방만 가자!!"

자이언츠 팬들은 타석에 들어서는 강호를 향해 있는 힘껏 응원의 목소리를 외치며 강호의 한 방을 기대한다.

팬들도 다이노스 선발 투수인 에릭의 오늘 투구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테인즈의 적시타로 분위기가 조금은 다이노스 쪽으로 넘어가 있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래서인지 강호의 한 방을 더욱 기대하는지도 몰랐다.

주자도 없는 상황이지만, 강호의 한방으로 초반부터 넘어가버린 분위기를 가져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타석에 선 강호는 그런 팬들의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기대 어린 함성들.

그리고 눈빛들.

그런 팬들의 바람을 안은 채 타석에 자리를 잡는다.

'초구부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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