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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츠의 천적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삼호로 63길.
이곳은 마산야구장이 자리 잡은 곳의 주소지이다.
마산구장은 1982년 건립되면서 원래 2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런데 위닝 트랙과 내, 외야 파울 존, 펜스 개보수 공사 등을 거치면서 지금은 1만 1천 명을 수용할 정도로 관중석이 줄어든 상태였다.
2012년 공사를 통해 1만 6천 석으로 줄어든 관중석은 2013년 공사를 통해 14,164석, 다시 2014년 공사로 13,700석, 그리고 2015년 공사로 인해 11,000석으로 애초 2만 석에 비해 절반가량으로 관중석이 줄어버린 것이다.
보통의 구단들은 관중석을 줄이는 공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마산 구장은 경우가 좀 달랐다.
2만 석이나 되는 관중석을 다 채울 자신이 없기도 했고, 구장이 오래 되어 개보수가 시급하기도 했다.
연고 구단인 다이노스가 매년마다 상위권 경쟁을 벌이고 있음에도 1만 1천 석의 관중석이 가득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이언츠에 있었다.
다이노스가 창단되기 이전에 경남권의 거의 모든 야구팬들은 부산 연고 구단인 자이언츠를 응원해 왔다.
원년 구단인 자이언츠는 경남 권 모든 야구팬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경남 권 연고 구단인 다이노스가 호 성적을 내고 있음에도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팬심을 가져 오기는 힘든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창원시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지역 연고 구단인 다이노스를 응원하기 보다는 여전히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팬들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직 역사가 길지 않은 다이노스로서는 가장 아쉬운 부분 중에 하나였다.
투타 밸런스가 좋아 팀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음에도 팬들이 구장을 찾지 않는 것이 다이노스의 몇 개 되지 않는 흠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팀이 시즌 내내 2위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도 만석이 차지 않았던 마산 야구장이 만원 관중으로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이다.
1만 명이 넘는 관중들이 내는 시끌벅적한 소음들이 마산야구장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나 야구장 처음 와 봐. 5년 동안 야구 보면서 야구장 오는 건 처음이네."
"나도 그래. 야구장 오래됐다고 해서 마산구장 안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네. 개보수 공사에 돈 많이 들였다고 하더니 진짜 그런가 보네."
많은 다이노스 팬들 중 일부 팬들은 오늘 직관이 처음인 팬들이 많았다.
항상 TV 중계로만 경기를 보다가 이번 시리즈만큼은 직접 관람으로 경기를 보려는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런 다이노스 팬들이 직관을 마음먹게 한 장본인이 경기 전 훈련을 위해 그라운드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어! 저기! 저 선수가 백강호인가 보네!"
"어디? 와아~ 덩치가 장난 아니네? 테인즈보다도 더 커 보이는데?"
"키는 테인즈보다 백강호가 4센치 정도 더 크다고 하더라. 지금 보니까 근육도 장난 없네. 인터뷰만 봤을 때는 허세부리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그럴 만도 하네."
다이노스 팬들은 상대 팀의 4번 타자인 강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이 오늘 경기를 직접 관람한 이유는 다이노스의 경기를 보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강호의 경기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생각이 커서였다.
일요일에 있었던 위즈 팀과의 경기 후 강호가 했었던 인터뷰 발언을 통해 처음에는 상당한 반발심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분노와 분개, 언짢은 감정들이 '백강호'라는 선수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에 반박하는 자이언츠 팬들의 열정과 수고를 보고 있노라면 '백강호'라는 타자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생겨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프로 스포츠라는 것이 지역 연고 팀을 응원하는 것이 보통의 상식이지만, 가끔 그 상식을 깨는 선수들이 나타나고는 한다.
지역 연고 팀을 응원할 때는 다이노스와 자이언츠로 팀을 나뉘어서 응원하게 되더라도 큰 테두리에서 보자면 모두가 야구를 사랑하는 야구팬들인 것이다.
다이노스 팬들은 응원하는 팀을 떠나 백강호라는 선수에 대한 호감이 생겨나고 있었다.
"생긴 건 날카롭게 생겼는데, 평판은 장난 아니게 좋더만. 팬들하고 셀카 찍은 사진도 많이 있고, 싸인도 잘 해주는 것 같던데?"
"TV에서 볼 때 투수 노려보는 시선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직접 보니까 그렇게까지 불손한 눈빛은 아니네. 생긴 것도 준수하고, 성실한 것 같기도 하고."
"당연히 성실하겠지. 성실하지도 않은데 4할 타율에 40-40이 가능하겠어? 시즌 중에는 술 한 방울도 입에 안 댄다고 하잖아. 이번에 최문표 SNS에 인증샷 남긴 것 보니까 회식 자리에서 사이다도 안마시더라. 회식 중에 고기랑 물만 먹던데?"
"뭐?! 회식 자리에서 고기랑 물만 먹는다고? 술 안 마시는 건 운동선수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콜라나 사이다도 없이 고기를 먹어? 그럼 무슨 맛으로 회식을 한다는 거야?"
"이 사람아, 그렇게까지 몸 관리를 해주니까 저런 성적이 나오는 거지. 괜히 4할 타자겠어?"
강호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인 다이노스 팬들은 강호에 대한 품평을 하기에 바빴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여론이 있기도 했지만, 강호의 뛰어난 하드웨어와 성실하게 훈련에 임하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비난이나 비판을 자제하게 된다.
응원하는 팀을 떠나 백강호라는 선수에 대한 호감이 빠르게 형성되어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것이었다.
"이러다 다이노스가 지는 건 아니겠지?"
"무슨 소리야? 자이언츠가 백강호 하나로 바뀔 팀이었으면 지금 3위가 아니라 1위를 하고 있어야지. 백강호 전반기 성적은 지금보다 더 좋았었다고."
"그래. 백강호가 대단한 선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봐야 자이언츠 소속 선수 아냐? 자이언츠는 우리 다이노스 밥이고. 이번 시리즈도 결국 우리가 이기게 되어 있어! 이때까지 순리가 그래왔잖아?"
처음에 강호의 모습을 보고 웅성거리던 다이노스 팬들은 이제 다른 주제로 대화가 넘어가 있었다.
강호의 뛰어난 하드웨어나 역대 급 기록들은 인정하지만, 자이언츠라는 팀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런 다이노스 팬들의 여론은 빠르게 자이언츠 팬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매진된 1만 1천표의 표 중, 과반수이상을 원정팀 팬들인 자이언츠 팬들이 구매했던 까닭이었다.
자이언츠 팬들은 원정 팀 응원석을 넘어 마산 구장 전체를 자이언츠 유니폼으로 수놓고 있는 모습이었다.
"조금 전에 저 아저씨가 한 말 들었어? 자이언츠가 다이노스 밥이라는데?"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 뭐. 여태까지 상대 전적에서 앞선 적도 없잖아."
"그건 옛날 자이언츠지! 한동현 감독에서 손성조 감독으로 바뀌면서 세대교체도 끝났잖아! 지금 자이언츠를 옛날 자이언츠랑 비교하면 안 되지."
"비교하면 안 될 건 또 뭐야? 그만큼 다이노스 전에서 막장이었잖아. 오늘 경기도 모르지. 첫 경기부터 대패할 지도 몰라."
"재수 없는 소리 좀 작작해라. 너 때문이라도 오늘 경기는 꼭 이겼으면 좋겠네. 백강호 선수 파이팅!!"
자이언츠 팬들은 기세에서 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응원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자 다이노스 팬들 역시 응원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모습이었다.
아직 경기가 시작되지 않은 가운데 양 팀 팬들의 응원 열기와 신경전이 과열 양상을 보인다.
그라운드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 역시 그런 팬들의 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관중석 분위기가 좀 험악한 것 같은데? 오늘 경기에서 지기라도 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야."
눈치 빠른 문표가 관중석의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강호에게 말을 건네 온다.
그 목소리에 강호가 관중석을 스윽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자이언츠 팬들이 많지 않습니까? 저희가 다이노스하고의 전적이 안 좋다보니까 팬들도 승패에 민감할 수밖에 없죠."
"프로 세계에서 승패는 병가지상사지. 17연승한 것도 대단한 건데. 어떻게 매번 이기나? 한 번 이기면 한 번 지는 게 야구 아냐?"
문표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공을 강호에게로 던진다.
그런데 송구 훈련을 위해 강호에게 던진 문표의 공이 상당히 빗나가 버린다.
강호를 향해 던져야 하는 공이 2루수인 황인태에게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하마터면 자신의 공에 인태가 다칠 뻔한 모습에 문표가 '윽! 쏘리!' 라고 사과의 말을 전한다.
그런 문표에게 강호가 핀잔의 말을 더하고 있었다.
"그렇게 허술한 생각을 하시니까 실수가 나오는 겁니다. 이길 각오로 경기를 준비하셔야죠."
강호는 피식 웃으며 인태에게 공을 돌려받으려 글러브를 내미는 모습니다.
그런 강호의 모습을 중계 카메라가 쫓기 시작한다.
일요일 경기 후 인터뷰에서 강호가 했던 발언도 있었고, 이번 시리즈에서 매 경기마다 3타점을 때려내겠다는 강호의 말이 있어서인지 아직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강호의 훈련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 중계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야야, 저기 백강호 선수 웃는 모습 줌인해서 땡겨 봐! 나중에 방송 시작하면 내보내게."
"넵!"
"아까 백강호 선수 타격 훈련하는 건 편집해뒀어?"
"네, 그것도 다 해놨습니다."
"그래. 오늘 경기는 백강호 선수를 자주 비추는 게 포인트라고. 오늘 경기 시청률은 평소보다 훨씬 더 나올 거야. 그러니까 중계 카메라도 백강호 선수 잘 쫓아가도록 하고, 덕 아웃 영상 잡을 때도 백강호 선수 주변으로 잡도록 해. 알겠지?"
"알겠습니다."
중계 현장을 책임지는 PD의 지시에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되었을 때 PD의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청률 그래프를 본 누군가가 PD를 향해 이렇게 소리친다.
"PD님! 오늘 시청률은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나오는데요?"
"그렇지! 내가 뭐라 그랬어? 아마 다른 팀 팬들도 이 경기를 보는 사람이 많을 거야. 백강호 선수 발언 때문에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현장 PD는 자신의 예측이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에 쾌재를 부르며 더욱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를 따라서 중계 인원들 역시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장소는 중계석으로 이동한다.
"안녕하십니까? 마산에서 열리는 다이노스와 자이언츠, 자이언츠와 다이노스 간의 시리즈 5차전 중계를 맡은 캐스터 조호준입니다. 오늘 해설에는 박재헌 위원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캐스터의 힘찬 목소리로 경기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1회 초는 원정 팀인 자이언츠의 공격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캐스터는 곧장 자이언츠 타순을 읽어 내리기 시작한다.
"오늘 경기 자이언츠의 라인업입니다. 1번 타자 좌익수 유성철, 2번 우익수 박철, 3번 중견수 전준오, 4번 타자 유격수 백강호, 5번 3루수 황제인, 6번 지명타자 채중석, 7번은 캡틴 강민수, 8번에 2루수 최훈, 9번 최문표의 순입니다. 오늘 자이언츠의 타순에는 여러 가지 특이점이 눈에 띠는데요. 오늘 자이언츠의 라인업,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대본에 적혀 있는 오프닝 멘트대로 마이크를 넘긴 조 캐스터의 물음에 박 위원 역시 준비한 말로 대답을 시작한다.
박재헌 위원은 데뷔 시즌 30-30기록을 달성한 역대 급 선수 출신 해설 위원으로 강호에게 우호적인 해설을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가 입을 연다.
"저번 경기에서 4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던 스팅이 라인업에서 제외됐어요. 4번 자리에는 휴식 차원에서 하루 빠져있던 백강호 선수가 다시 이름을 올렸고요. 2번 타순에 배치되어 있던 1루수 최문표 선수를 9번 타순에 배치시키는 선택을 했습니다. 기존 8번 타자였던 2루수 황인태를 빼고, 최훈을 넣는 기용도 있고요. 몇 자리를 제외하고는 큰 변화가 없는 타순인데요. 그 몇 자리의 변화가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박 위원은 그렇게 서두를 뗀 후 자이언츠 라인업에서 주목해야할 점을 지적하고 나선다.
"우선 4번 타자 자리에 백강호 선수가 의미하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백강호 선수 올 시즌 4할 2푼 5리의 타율에 OPS가 1.518이나 됩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던 홈런 기록도 벌써 47개에요. 홈런 1위인 테인즈 선수와 2개 차이밖에 나질 않아요. 이쯤 되면 백강호 선수의 올 시즌 50-50달성은 당연한 것으로 보이고요. 4할 타율 역시 큰 이변만 없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해 보입니다."
박 위원은 라인업에 대한 특이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늘 하던 대로 강호에 대한 신뢰를 표현한다.
그의 설명에 TV중계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는 자이언츠 팬들이 흐뭇한 미소를 그리게 된다.
그 사이 박 위원의 설명은 이어진다.
"그 다음으로 주목해야할 부분은 기존 2번 타자였던 최문표 선수가 9번으로 내려가고, 그 자리를 우익수인 박철 선수가 대신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박철 선수는 시즌 타율이 3할 대가 넘는 좋은 타격을 가지고 있어서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데 최문표 선수도 마찬가지거든요. 시즌 타율이 3할 1푼 1리, 최근 다섯 경기 성적도 나쁘지 않아요. 그런 최문표 선수를 9번 타순에 배치한 것은 아마도 제 3의 테이블세터 역할을 부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9번 타순을 하위타선으로 본 것이 아니라 9번, 1번, 2번, 3번으로 이어지는 상위타선으로 구분하는 거죠. 최문표 선수는 발도 빠른 선수거든요. 막강한 타선을 보유한 팀만이 가능한 타순 배치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 위원은 오늘 자이언츠 타순에 대해 그런 식으로 설명을 마친다.
그러면서 오늘 경기 라인업을 위해 손성조 감독이 꽤나 많은 고민을 한 것 같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었다.
약간은 변칙성 라인업이긴 하지만, 1번에서 9번까지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라인업이라는 의견이었다.
그런 박 위원의 코멘터리 속에 자이언츠의 1번 타자가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