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28화 (22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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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츠의 천적

화요일 아침이 밝아 있었다.

원정 장소가 마산이다 보니 오늘 자이언츠 선수단의 일정은 오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간혹 마산 원정 때도 원정 숙소를 꾸리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이번 시리즈는 선수들의 컨디션과 사기를 고려하여, 사직에서의 출퇴근 일정으로 잡힌다.

지정만 사장 이하 프런트가 선수들의 경기력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선택한 방편이었다.

장소는 마산으로 향하기 전의 원정 버스로 이동한다.

"아함~ 오랜만에 늦게 출근하니까 무지하게 편하네~ 매일 이렇게 오후 출근하면 안 되나?"

문표는 버스에 오르는 와중에 기지개를 켜며 말하고 있었다.

사직구장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원정 버스에 오르며 꺼낸 문표의 말에 앞쪽 자리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콧방귀를 뀌는 모습이다.

그는 문표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지명타자 채중석이었다.

"늦게 출근하는 게 편하면 아예 쉬지 그래? 문표 네 자리는 내가 대신 책임질 테니까."

출근부터 공격해 들어오는 중석의 말에 문표는 피식 웃음지어 보인다.

중석의 의도는 문표의 멘탈을 흔들어 보려는 공격 의사였지만, 문표는 다른 의도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이제는 인정하시는 모양입니다. 1루수 겸 지명타자 자리가 이 최문표의 자리라는 걸요. "

"뭐?!"

"너무 그렇게 초조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컨디션 안 좋을 때 간~~혹! 한 번씩 넘겨드릴 테니까 팬들한테 중석 선배의 이름이 완전히 잊혀 지지는 않을 겁니다."

문표의 대꾸에 중석은 또 다시 자신이 한 방 먹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고리눈을 뜨고 있었다.

문표가 대꾸한 말보다 더욱 강한 공격을 퍼붓고 싶었지만, 문표보다 임기응변 능력이 다소 부족한 중석이어서 적당한 말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런 중석을 대신해서 다른 누군가가 문표를 향해 반박의 말을 더한다.

"문표 선배, 좀 비켜주십시오. 입구를 막고 계시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문표 선배 자리도 확실한 게 아니잖아요. 위즈 전에서 4볼넷 2득점 아닙니까? 얼핏 들어보니 감독님께서 문표 선배 자리를 뺀다는 말이 있던데요."

문표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강호였다.

강호는 문표의 곁을 지나며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진담 같은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강호의 표정이 워낙 진지했던 까닭으로 문표가 '뭐?! 진짜야?'하고 놀랄 정도였다.

그런 문표의 물음에 강호는 여전히 포커페이스로 이렇게 대꾸한다.

"조크입니다. 우리 자리로 가실까요?"

"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감독님이 나 같은 3할 타자를 그렇게 쉽게 뺄 리가 없지. 3할 타자가 조금 부진하다고 라인업에서 빼버리면 강호 후배처럼 4할 쳐야 한다는 얘기잖아? 내가 자이언츠에서 4할 칠 실력이면 그냥 메이저리그 가련다."

문표는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말로 대꾸하며 강호와 함께 자신들의 지정석으로 이동한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서 멀어진 중석은 뒤늦게 문표에게 반박할 말이 생각난 것인지 '아! 맞다! 문표 너 이 자식 내가 할 말이 있어'라고 소리쳤지만, 문표는 이미 자신의 자리에 착석한 후였다.

중석은 문표의 자리로 가서 따질까도 생각해봤지만, 스스로가 생각해낸 내용이 조금은 빈약하게 느껴져 그냥 자리에 앉는다.

그런 중석의 시야에 박스를 가득 안은 채로 원정 버스로 다가오는 구단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뭡니까? 먹는 거예요?"

중석은 잠시 버스에서 내려 구단 직원들이 버스의 화물칸에 싣고 있는 박스에 대한 궁금증을 나타낸다.

중석으로서는 별 기대하지 않고 건넨 말이었는데 구단 직원들의 대답은 중석의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하는 내용이었다.

"네, 먹을 것도 있고요. 마실 것도 있고, 이것저것 많이 실을 겁니다. 아무래도 선수들 경기 시간이 저녁 시간인데 경기를 하느라 체력 소모가 심하지 않습니까? 견과류나 열량 높은 간식거리를 실을 겁니다."

구단 직원들은 선수들이 경기 중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요기 거리를 싣고 있다고 대답한다.

야구 경기 시간이 저녁 시간이라 선수들은 끼니를 거르고 경기를 치르게 된다.

그래서인지 유독 경기 중계 화면에는 덕 아웃에 앉아 땅콩이나 아몬드, 말린 과일 등을 씹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이 포착되곤 했다.

일부 구단들은 선수들이 경기 중에 견과류를 먹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간식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올 시즌 자이언츠는 선수들의 자율에 맡기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리즈부터는 선수 본인의 자율을 넘어 구단에서 전폭적인 식량 지원에 나선 것이다.

간식거리를 사랑하는 중석으로서는 희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쩌네! 얼른 실어요! 얼른! 뭐가 제일 비싼 겁니까? 싣기 전에 나한테 먼저 귀띔이라도 해주고 실으세요."

중석은 그렇게 말하며 구단 직원들을 도와 버스 화물칸에 박스들을 실어 나른다.

뒤늦게 출근한 후배 선수들이 중석을 도와 박스에 든 물건이 뭔지도 모르고 실어 나르는 사이, 자리에 앉은 문표와 강호 두 사람.

그 중 문표가 강호를 향해 기묘한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어떻게 한 거야?"

"뭘요?"

"내 SNS말이야. 저번 주까지만 해도 SNS 팔로워가 600명밖에 안됐는데 지금은 몇 명인 줄 알아?"

"제가 어떻게 압니까?"

"놀라지마. 78K야. 78,000명으로 늘어났다고! 일요일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78K나 된단 말이야. 내가 팔로워 늘리려고 별 짓을 다한 게 600명이야. 그런데 강호 후배가 일요일에 말 한 마디 한 것 때문에 팔로워가 100배 넘게 늘었다고. 이게 말이 돼?"

"팔로워 늘면 좋은 거 아닙니까?"

"당연히 좋은 건 맞지! 그런데 어떻게 한 거냐고? 일요일에 강호 후배가 팬들한테 한 마디 한 것 덕분에 이렇게 늘어난 게 정말인 거야? 강호 후배가 뒤에서 수작을 부린 게 아니고?"

문표는 마치 취조하는 것처럼 강호를 향해 질문 세례를 퍼붓는다.

SNS를 하지 않은 강호로서는 본인도 알 수 없는 내용이었기에 답변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대충 대답한다.

"네, 제가 뒤에서 사람 좀 풀어서 문표 선배 SNS에 팔로잉하라고 했습니다. 덕분에 생 돈 5백 정도 깨졌네요. 저한테 고마운지 아십시오."

"뭐?! 진짜야?"

강호는 너무 쉽게 낚여버리는 문표를 보고 헛웃음을 짓게 된다.

그래서 더 이상의 대꾸를 멈추고 입을 굳게 다문다.

문표가 오해를 하든 말든 알아서 생각하게 놔두고 부지런히 박스를 나르고 있던 중석과 후배 선수들을 돕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버린다.

그런 강호의 뒤로 문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잇! 뻥이잖아! 강호 후배, 사실대로 얘기해 달라고. 무슨 짓을 한 거야? 내 팔로워 어떻게 늘렸어? 나 몰래 내 SNS에다 내 누드 사진이라도 올린 거야?"

"그렇게 했으면 팔로워가 떨어졌겠죠."

문표는 여전히 궁금해 했고, 강호는 여전히 정확한 답이 없다.

덕분에 중석을 도와 박스를 나르면서도 두 사람의 밀당은 한동안 계속 되었다.

그런 선수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근처에 주차되어 있는 또 다른 원정 버스에서는 김민철 수석이 박스를 나르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 지으며 고개를 돌린다.

그런 김 수석의 곁에는 손성조 감독이 앉아 있었고, 손 감독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차창 밖의 선수들과는 사뭇 달랐다.

차창 밖의 선수들이 쾌활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면, 손 감독 주변에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을 감지한 김 수석이 묻게 된다.

"부담되지 않으십니까?"

김 수석은 손 감독의 지금 기분을 우회적으로 묻고 있었다.

손 감독의 표정에서 부담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조금은 돌려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김 수석이 묻고 있는 부담이란 팀이 이어나가고 있는 연승에 대한 것이었다.

질문을 들은 손 감독은 잠시의 침묵 끝에 이렇게 대답한다.

"시즌 시리즈 중에 하나일 뿐이야. 부담될 게 어디 있나?"

손 감독은 그렇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있었다.

그러나 김 수석은 손 감독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질문을 수정한다.

"라인업 구상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오늘 경기에서도 스팅을 4번에 두실 겁니까?"

"그건 한 번으로 족해. 명분은 충분히 쌓았으니까. 남은 경기 동안 4번 자리는 강호의 몫이 될 게야."

"그럼 스팅은 5번으로 내리시는 거고요?"

김 수석의 이어지는 물음에 손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다.

스팅의 4번 카드는 단 한 번의 실험으로도 족하다는 것이 손 감독의 생각인 것이다.

"한 번의 실험으로 충분해. 스팅은 다른 타순보다는 5번 자리에서 정확도가 올라가니까 스팅을 5번으로 두고, 제인이를 3번으로 올릴 생각이야. 6번 타순에는 민수나 중석이, 상훈이 같은 녀석들이 있으니까 굳이 제인이를 6번까지 내릴 필요는 없겠지."

손 감독의 대답에서 그가 이번 시리즈의 라인업 구상은 모두 끝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김 수석이었다.

그런데 김 수석이 원하는 대답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결국 우회적으로 질문하는 것을 멈추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져본다.

"다이노스 전에서 연승이 이어질 수 있을까요? 저희 팀의 다이노스 통산 전적이 수치스러울 정도로 열세이지 않습니까? 이번 마산 원정에서 연승 기록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김 수석은 결국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의 질문에 손 감독은 피식 웃음 지으며 이렇게 대꾸한다.

"야구 판에서 영원한 천적 관계는 없는 거야. 질 때가 있으면 반드시 이길 때도 있지 않겠나? 이번 시리즈는 그런 걸 증명하는 경기가 될 게야."

드디어 김 수석이 원하는 방향으로 손 감독의 대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손 감독의 말은 이어진다.

"잘 알아두도록 하게. 우리 팀이 종전까지 기록하고 있던 다이노스 전의 열세는 내가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까지의 기록일 뿐이야. 나는 전임자들과는 다르고, 지금은 우리 팀의 주전 선수들 대부분이 바뀐 상태야. 자네는 이런 상황에서도 다이노스 전의 약세가 이어질 거라 보나?"

손 감독은 미소 띤 얼굴로 김 수석에게 되묻고 있었다.

그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하고 있었다.

다이노스 전의 열세는 자신이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의 기록일 뿐이라고.

그리고 세대교체를 끝낸 팀은 이전의 자이언츠와는 완전히 다른 팀이라고.

김 수석 역시 손 감독의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가 던진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대신 속으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의 실체에 대해 되뇌어 본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해도 통산 전적이 바뀌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분명 우리 팀의 전력이 예전과는 다르게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심리적인 열세는 별 수 없는 겁니다. 어쩌면 다이노스와의 시리즈 첫 경기부터 연승 기록이 깨질 지도 모릅니다.'

김 수석은 손 감독에게 답하지 못한 말을 홀로 떠올려 보며 이번 시리즈의 향방을 점쳐본다.

그런 김 수석을 바라보는 손 감독의 눈빛에는 오히려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불안할 수도 있을 게야. 한 번 천적 관계가 형성돼 버리면 그것을 깨부수기가 무척이나 힘든 것이니까. 전력이 달라졌다고 해도 심리적인 위축은 피하기 힘들어.'

손 감독은 김 수석의 불안을 이해하고 있었다.

손 감독 본인도 지난주까지는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위즈와의 일요일 경기를 끝낸 후, 강호가 인터뷰에서 밝힌 소신을 통해 그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됨을 느꼈다.

손 감독은 그 때 강호가 내보인 열망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이길 겁니다. 다이노스와의 천적 관계는 올 시즌에 청산했으면 합니다. 제가 타석에 섰을 때 고의사구로 내보내지만 않는다면, 다이노스와의 이번 시리즈에서는 경기마다 3타점 이상을 뽑아내겠습니다.'

강호는 인터뷰를 통해 그렇게 선포했었다.

이길 거라고. 팀의 4번 타자로서 경기마다 3타점 이상을 뽑아낼 것이라고.

더불어서 자신을 상대하는 다이노스에게 고의사구를 내지 말 것을 경고하기까지 했다.

평소 강호의 태도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꺼낸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한 열의가 담긴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강한 열망이 되어 다가오는지도 몰랐다.

'김 수석, 자네나 내가 해야 할 말을 강호가 대신해 주었어. 승리 선언을 해야 하는 것은 선수의 몫이 아니라 원래 우리들의 몫인 거야. 정확히는 감독인 내 역할이겠지.'

손 감독은 본인의 생각으로 눈빛이 복잡해진 김 수석에게 속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히며 고개를 돌린다.

그런 손 감독의 시선에는 차창 밖에서 부지런히 박스를 나르고 있는 강호의 모습이 들어오고 있었다.

'선수가 그런 열망을 내보였는데 우리 지도자들이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는가? 이번 시리즈는 위닝 시리즈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완벽한 승리로 이끌어낼 생각이야. 그게 강호 녀석에게 내가 대답해주고 싶은 말이니까.'

손 감독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차창 밖 강호의 모습을 눈 안에 담는다.

강호를 보고 있노라면 모든 불안과 불신이 씻겨 내리는 것을 느낀다.

그런 손 감독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확신으로 차올라 있었다.

'이번 시리즈 모두 우리가 이긴다! 내가 감독으로 있는 한 그 어떤 팀과의 천적 관계도 용납하지 않겠어. 강호가 대중들을 향해 선언한 것을 결과로 지켜주는 것이 우리 지도자들의 역할이니까. 나는 감독으로서 강호의 약속을 결과로 보여줄 생각이네. 그러니 이번 시리즈에서 우리의 연승이 깨어지는 일은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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