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27화 (22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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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언츠의 천적

    치열했던 일요일은 이미 지나가 있었다.

    선수들의 휴식일 차원에서 야구 경기가 잡혀 있지 않은 월요일은 일주일 중에 야구에 대한 관심이 가장 적은 날 중에 하나로 꼽히곤 한다.

    그러나 그런 상식도 오늘만큼은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지금 온라인상에서는 두 팀 간의 대결을 예견하는 내용으로 치열한 설전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설전의 주체는 자이언츠 팬들과 이들의 숙적이라 할 수 있는 다이노스 팬들이었다.

    양 팀 팬들은 하루 전, 강호의 인터뷰 내용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먼저 강호의 발언으로 고무 된 자이언츠 팬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백강호 선수 경기마다 3타점 공략! 우리 자이언츠에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 패기 넘치는 신인이 있었나? 이정도면 역대급 패기 아냐?"

    "패기뿐인가? 실력도 받쳐주니까 저런 말을 해도 되는 거야! 백강호 올 시즌 타율이 4할 2푼 5리라고! 이대로 시즌 종료해도 타율 신기록 달성인데, 갱신 중인 타이틀이 하도 많아서 본인이 라인업에서 빠지지도 않겠다잖아! 최다 득점, 최다 3루타, 최다 타점, 백강호 만세!!"

    "다이노스도 밟고 더 위로 올라가자!"

    "제가 뉴비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 다이노스 전 위닝하면 2위로 올라가는 건가요?"

    "노노노, 위닝하면 승률에 밀려서 2위 못 올라갑니다. 자이언츠가 다이노스 시리즈 5차전 위닝했을 때 NC승률 0.589, 자이언츠 승률 0.583이 됩니다. 다이노스 전까지 스윕해야 2위 올라가요! 다이노스 전 스윕했을 때 자이언츠 승률 0.593, 다이노스 승률 0.579가 됩니다. 그러니까 스윕해라, 자이언츠!!"

    "자이언츠 20연승!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달려요!!"

    "달려! 달려! 마산까지 달려!!"

    자이언츠 팬들은 각자의 주장을 내세우기도 하고, 여러 정보들을 공유하기도 하면서 다이노스와의 이번 시리즈 맞대결을 위닝 이상으로 따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한다면 자이언츠 팬들이 원하는 것은 시리즈 스윕이었다.

    다이노스에게 여태껏 단 한 번도 우세한 시즌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이노스를 상대하는 자이언츠 팬들의 승리 욕구는 지나칠 정도로 강한 상태였다.

    자이언츠 팬들의 댓글에 반박하는 다이노스 팬들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자이언츠 아재들 또 이러시네. 이제 그만 좀 하시죠. 매번 그런 기대하는 게 지겹지도 않나? 이제 좀 받아들이시죠. 자이언츠가 우리 다이노스의 밥이라는 거, 푸핫!"

    "백강호 같은 4할 타자 한 명 있다고 천적 관계가 정리되겠어? 올 시즌도 우리 다이노스가 9승 3패로 압도적이잖아? 그 잘난 4할 타자 가지고 왜 이렇게밖에 못하는 거지?"

    "백강호도 인터뷰에서 그런 말은 하면 안 되지. 저렇게 말했다가 루징 시리즈 먹으면 얼마나 창피할까? 시리즈 경기마다 3타점을 내겠다니? 그럼 우리가 경기 때마다 백강호한테 안타를 세 개씩 얻어맞는다는 소리야? 자이언츠는 그래도 안 돼. 백강호가 3점씩 뽑아줘도 우리 나성건, 테인즈, 방성민. 나테방 트리오가 가만히 있겠어? 선수 당 3점씩 뽑아서 9대 3으로 이기면 되겠네? 올 시즌 상대 전적도 9대 3이잖아. 어머, 이런 기막힌 우연이?"

    다이노스 팬들의 반박이 만만치 않았다.

    자이언츠에게는 한국 야구사 최고의 4번 타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강호가 있었지만, 그래도 다이노스에게만은 여전히 열세를 보이고 있는 자이언츠였다.

    다이노스 팬들은 그런 점과 함께 올 시즌 홈런 타이틀 경쟁을 벌이고 있는 두 선수를 비교하고 나섰다.

    "테인즈 시즌 홈런 49개, 백강호 시즌 홈런 47개. 한 번 덤벼봐라. 자이언츠 아가들아."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는 테인즈와 2위를 달리는 강호의 홈런 기록을 비교하는 다이노스 팬들.

    그들의 조롱에 자이언츠 팬들은 즉각적인 반박에 나선다.

    "백강호 시즌 타율 0.425, 출루율 0.502, 장타율 1.016, OPS 1.518. 최다 득점 신기록 갱신 중, 최다 3루타 신기록 갱신 중, 최다 타점 세계 신기록 갱신 중, 최다 2루타도 신기록 달성 유력! 게다가 포지션이 유격수임. 테인즈 시즌 타율 0.354, 출루율 0.432 , 장타율 0.892, OPS 1.324. 주로 지명타자나 1루수로 출장. 비교가 되나?"

    "그렇지! 시즌 4할 타자랑 시즌 3할 타자를 비교하면 쓰나? 유일무이한 기록이라는데."

    강호의 시즌 기록을 나열하는 자이언츠의 팬들.

    다이노스 팬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타격왕은 백강호가 가지세요. 테인즈는 홈런왕 가지면 되니까. 그리고 테인즈 5년 연속 40홈런 기록 같은 건 왜 빼시나? 6년 만에 250홈런 넘게 때린 타자를 데뷔 시즌 루키랑 비교해서야 쓰겠어요?"

    "맞아 맞아. 백강호 기록이 좋아봤자 한 시즌 기록 아냐? 테인즈는 벌써 6시즌 동안 업적을 쌓은 대 선수인데. 제 아무리 4할을 친다고 해도 신인이랑 비교는 좀 그렇지."

    "그래 자이언츠 놈들아. 까불지 마라! 느그가 프로가?!"

    만만치 않은 다이노스 팬들의 반박에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설전은 과열 양상으로 치닫는다.

    여기에 지정만 사장이 허일수 기자와 진행했던 인터뷰 기사까지 추가되며 양 팀 팬들의 온라인 설전은 활화산처럼 타오르게 된다.

    지 사장의 인터뷰 내용 말미에 담긴 하나의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지정만 사장: 자이언츠는 백강호라는 4번 타자와 권대우라는 마무리투수를 가진 팀입니다. 우리는 올 시즌 가을 야구에만 만족하지 않을 거예요. 정규 시즌 1위와 한국 시리즈 우승 모두가 우리 자이언츠의 손에 들어오게 될 겁니다. 다른 팀에게는 미안하지만 올 시즌 1위는 우리 차지가 될 거예요.

    마지막 발언을 기사에 꼭 실어달라는 지 사장의 부탁대로 허 기자는 기사의 말미를 위와 같은 내용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잠시 소강상태로 보이던 양 팀의 설전은 또 다시 폭발한다.

    "3위 팀이 저런 발언을 하는 건 오버 아냐? 하려면 우리 다이노스 사장이 저런 말을 해야 하는 거지."

    "왜? 3위 팀은 우승 노리면 안 된답니까? 구단 사장이 저 정도 포부는 있어야죠. 지 사장이 말 한 번 잘했네. 이참에 우승가자!"

    이제 팬들은 양 팀 구단에 대한 전 방위적인 내용을 토대로 전문적인 설전에 들어간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항상 끝이 있는 법.

    몇 시간을 넘어 하루 종일 진행 된 온라인상의 토론은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기 시작한다.

    승부에 대해서는 극렬하게 나뉘었던 자이언츠와 다이노스, 양 팀의 팬들은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다.

    "경기 시작되면 알겠지? 누가 더 센지."

    "백강호가 한 수 위인지, 테인즈가 위인지는 붙어보면 알 것 아냐?"

    "이번 시리즈로 승부 봅시다!"

    "아, 시간 너무 안 가네~ 어서 화요일이 왔으면 좋겠다. 이번에 마산 원정 가려고 티켓도 미리 끊어 놨는데."

    "나도 나도! 자이언츠 팬 여러분, 이번 주 화요일에는 우리 모두 자이언츠 유니폼 챙겨들고 마산 야구장 점령하러 갑시다!"

    "이 부산 아재들 보소? 유니폼은 너희만 있어? 우리도 유니폼 챙겨들고 야구장으로 간다!"

    과열되는 양 팀 팬들의 결론은 결국 시리즈 경기에 대한 관심과 매표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매표를 위해 온라인 티켓링크에 들어간 후에야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와아~ 벌서 다 매진이야? 화요일 것만 그런 게 아니라 화, 수, 목요일 경기 전부 다 매진됐네?"

    "별 수 없다. 현장 매표하러 가야지."

    뜨거운 격론을 펼쳤던 양 팀 팬들은 이번 시리즈 경기만큼은 반드시 현장에서 경기를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그리고 그런 팬들의 댓글을 일일이 확인하는 손길이 있었다.

    장소는 자이언츠의 구단 본부로 옮겨진다.

    "이번 시리즈에서 마산 구장의 예약 발권이 종료됐다고 합니다. 현장 발권을 위해서 남겨 둔 표가 조금 있는데 그것도 경기 시작 전에 다 매진될 전망입니다."

    지정만 사장은 팬들의 댓글을 읽느라 부지런히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길을 멈추지 않은 채 곁에 선 허동준 실장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이웃 동네의 매표가 매진 됐다는 소식에 질투를 할 법도 한데 지 사장의 표정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그 동네도 좀 먹고 살아야지. 올 시즌에 매진된 게 이번이 처음 아냐? 어떻게 팀이 매해 상위권 경쟁을 하는데도 매진이 안 되는 거야? 이번에 매진된 것도 우리 구단 팬들이 예약 발권해서잖아?"

    "네, 그렇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1만 1천 석 중에 자이언츠 팬들이 발권한 부분이 과반수이상일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팀의 연승 기록이 이어지다 보니까 부산에서 원정을 가는 팬들이 눈에 띄게 확 늘어났습니다."

    "그래. 다 같이 먹고 살아야지. 결국 우리 팀이 경기를 잘해주니까 우리 구단뿐만 아니라 다른 구단도 덕을 보는 셈이잖아? 다음 번 사장단 모임에서는 내가 큰소리 좀 치더라도 토 다는 사장들이 없겠어. 안 그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허 실장의 대답에 지 사장은 씨익 웃어 보이며 이번 주로 예정된 사장단 모임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동안 팀 성적이 좋지 못했던 까닭으로 사장단 모임에서 다소 말수를 줄여야 했던 지 사장이었다.

    지 사장이 구단 밖에서 누군가에게 밀리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팀 성적이 좋지 않다보니 과감한 발언은 다소 자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팀이 17연승을 달리며 시즌 순위 3위로 도약하면서 2위와의 격차를 가시권까지 줄이게 되자 생각이 달라진다.

    야구 도시 부산이라 불리는 자이언츠 팬들의 발권력은 홈경기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올 시즌 야구계의 지각변동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관중몰이에 대성공한 모습이었다.

    단지 선수단만 잘한 것이라면 어깨에 힘을 줄 이유는 없었지만, 지정만 사장 이하 프런트들이 주말도 반납하고 일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의 자부심은 충분했다.

    "사장단 모임이 금요일 맞지? 이번 주 금요일 오후 2시 예정이었나?"

    지 사장은 이번 주로 예정된 사장단 모임의 일정을 다시 한 번 체크해 본다.

    벌써 그가 스케줄 체크를 위해 물어보는 것이 세 번째이기 때문에 허 실장은 업무 일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다.

    "넵, 중구 을지로 호텔에서 금요일 오후 2시 맞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지 사장은 허 실장에게 세 번째로 확인하는 사장단 모임 일정을 또 다시 확인하며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두들긴다.

    허 실장은 지 사장이 무엇 때문에 저렇게 고민하는지를 짐작해보기 위해 나름의 머리를 굴려본다.

    직접 물어보면 해답을 빨리 찾을 수 있겠지만, 지 사장의 거친 성격상 곱게 알려주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이 양반이 왜 또 이러시는 거야? 혹시 사장단 모임에서 입안할 안건이라도 있으신 건가? 아니야. 그런 게 있었으면 진즉에 난리를 피웠겠지. 기획실 직원들 죄다 야근시키면서 안건 준비하고, 자료 조사하고, 보고서 작성하고,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고. 그렇게 안한 거 보면 다른 게 있다는 소리인데.'

    깊은 고민에 잠긴 지 사장의 곁에서 허 실장 역시 나름의 고민에 빠진다.

    뭔가 감이 잡힐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지 사장의 심경은 잠시 후, 본인이 직접 입을 열고나서야 알게 된다.

    그런데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

    "사장단 모임에 가기 전에 우리가 2위로 올라갔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다이노스 사장한테도 큰 소리를 칠 거 아냐? 안 그래? 이게 순위 한 계단 차이가 묘하게 자존심이 거슬린다고."

    "네?"

    "그렇잖아. 지금 우리가 다이노스한테 두 게임 차로 3위를 하고 있잖아. 이번 시리즈만 스윕하면 우리가 2위로 올라가는 거지. 거기에 팀 연승을 20연승으로 이어갈 수도 있고, 20연승이면 한국 야구사 최고의 기록이기도 하고. 꿩도 먹고 알도 먹고, 20연승도 하고, 2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더불어서 사장단 회의에서 처음으로 다이노스 사장한테 큰 소리도 쳐보고. 어때? 내 계획이."

    "..."

    "왜? 너무 좋은 생각이라서 말문이 막혀? 푸흡.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좋은 생각이야."

    지 사장은 자신의 말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허 실장에게 크게 미소 지어 보이며 말하고 있었다.

    사실 허 실장은 지 사장의 유치한 생각에 어이를 상실한 것이었지만, 속내를 밝히지 않는다.

    대신 속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애야? 나이가 60도 넘은 양반이 사장단 모임에서 큰소리 좀 쳐보려고 그렇게 고심을 했던 거야?'

    허 실장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양 손의 엄지를 척하고 내밀며 '역시 사장님이십니다'라는 말로 찬사를 보낸다.

    그런 허 실장의 반응에 더욱 고무된 지 사장은 손바닥으로 업무용 책상을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좋아! 이번 시리즈도 스윕으로 간다! 지금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프런트에서 어떤 지원을 해줘야지 선수들이 다이노스 전까지 연승을 이어갈지를 구상하란 말이야! 유니폼 세탁이나 양말, 배트, 글러브, 차량, 건강 음료, 선수들 간식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두 챙겨서 선수들은 오직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도록 해! 이번에 홈경기 전석 매진되면서 벌어들인 돈도 있잖아? 돈 아껴서 뭐해? 선수들한테 모두 풀어서 연승 기록을 1승이라도 올릴 수 있도록 일을 하란 말이야!"

    "아, 네! 당장 업무에 돌입하겠습니다."

    "그래! 일 하라고! 올 시즌까지 다이노스한테 시즌 전적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내년까지 천적 관계를 이어갈 수는 없잖아? 이번 시리즈를 스윕으로 따내고, 천적 관계를 청산하자고! 당장 움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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