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23화 (222/335)

0223 / 0335 ----------------------------------------------

고비의 문턱에서

풀리지 않는 공격의 실마리로 인해 자이언츠 덕 아웃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1회 말 무사 만루의 상황을 무실점으로 놓쳐버린 후 총 3번의 만루 기회가 찾아왔지만,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여전히 0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덕 아웃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3번째 만루 찬스가 찾아왔을 때 김민철 수석이 손 감독에게 이렇게 제안했었다.

“감독님, 강호를 대타로 내시죠. 경기는 이겨야하지 않겠습니까?”

김 수석은 ‘강호를 대타로 내자’라는 말을 여태껏 참고 있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 감독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안한다.

5회 말 상황에서 나온 또 한 번의 만루 찬스까지 날려버린다면 오늘 경기의 흐름을 위즈에게 완전히 내어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김민철 수석이 염두하고 있는 것은 야구계의 속설 중에 하나였다.

‘한 경기에서 3번의 만루 찬스를 무득점으로 날려버리면 경기를 이기기가 어려워져. 이번 만루 찬스도 날려먹게 되면 분위기가 위즈에게 완전히 넘어가게 될 거야.’

김 수석은 만루 기회 3번을 날려먹으면 경기에서 진다는 속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평소 속설에 대해 무관심했던 김 수석이었지만, 오늘 경기만큼은 속설대로 경기가 풀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만루 찬스에서는 팀의 필승 카드라 할 수 있는 ‘백강호 대타’ 카드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강호 같은 타자를 대타로 세울 수 있는 상황이라니. 이게 얼마나 막강한 대타 카드야? 강호라는 카드를 들고서도 선수 개인의 휴식을 챙겨준다는 명분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팀의 입장으로서는 좋은 결정이 아닌 거야. 사치에 가까운 거라고!’

김 수석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는 지금이라도 강호를 대타로 내세우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선수교체의 결정권한을 가진 손 감독의 생각은 달라보였다.

“강호를 대타로 내면 이 경기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라도 있나?”

손 감독은 묻고 있었다.

강호를 대타로 내면 오늘 경기를 승리할 수 있겠냐고, 그럴 확신이 있느냐고.

김 수석은 순간 ‘네’라고 대답할 뻔한 것을 겨우 참아내고는 잠시 침묵한다.

손 감독의 태도에서 무언가 더 할 말이 남았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김 수석의 예상대로 손 감독의 말이 이어진다.

“선수 하나가 빠진 이유로 팀이 패배한다면 그걸 제대로 된 팀이라고 말할 수 있겠나? 강호가 아무리 대단한 타자라고 해도 녀석이 빠진 걸로 팀이 져버린다면 우리 자이언츠는 제대로 된 팀이라고 할 수 없는 거야.”

손 감독의 말에 김 수석은 결국 한 발짝 물러나게 된다.

지금 손 감독이 하고 있는 말은 2군 시절부터 손 감독이 말해왔던 지론 중에 하나였고, 그의 말대로 선수 하나에게만 의존하는 모습도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일단은 지켜보도록 하자. 아직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빼앗긴 것은 아니잖아. 만루 상황도 만들어졌고.’

김 수석은 그런 식으로 지금의 상황을 합리화하며 손 감독과의 의견충돌을 피하는 모습이다.

팀이 16연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달성하고 있는 가운데 감독과 수석 코치의 의견대립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라도 포착된다면 그것만큼 난감한 장면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김 수석이 더 이상의 제안 없이 물러난 것을 확인한 손 감독은 팔짱 낀 모습 그대로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늘의 경기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게야. 강호를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한 채로 경기를 승리한다면 그것 자체만으로 큰 의미가 있어. 강호에게 휴식을 줄 수 있는 명분이 되기도 하고, 자이언츠의 타선이 완성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강호 없이 일군 승리는 팀의 세대교체가 완전히 끝났다는 의미와 다를 게 없어. 강호는 그만큼이나 상징적인 선수로 성장했으니까.’

손 감독의 생각은 그러했다.

강호가 라인업에서 빠진 상태로 얻는 승리는 단순히 한 가지 이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의 경기에서 패한다고 하더라도 팀이 얻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여론이라는 것은 결국 대중이 만드는 것이고, 최근의 여론은 강호의 타석수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어. 대중들에게 확실한 결과로 보여줄 수 있게 되는 거야. 아직 자이언츠가 강호라는 타자 없이 제 모습을 찾지 못한다는 결과를 보여주게 되는 거지. 오늘의 경기를 패한다면 대중들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줄 수가 있어. 타석수 관리는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는 사실 말이야.’

손 감독의 생각으로는 오늘의 경기를 패배로 내주어도 그런 이점이 생긴다고 여겨졌다.

팀의 4번 타자인 강호에 대한 혹사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경기로 기록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팀은 1패를 얻게 되겠지만, 강호를 후반기에 출장시킬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되는 셈이지. 하지만.’

강호를 중심으로 놓고 생각을 이어나가던 손 감독은 5회 말 2사 만루의 기회가 또 다시 무득점으로 무산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옅은 미소를 짓게 된다.

4번 타자인 강호를 중심으로 한 팀 밸런스를 고민 중인 손 감독이지만, 가장 중요한 점을 잊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경기를 일부러 패할 수는 없는 일이지. 강호 없이 승리해도, 혹은 패하더라도 팀이 얻는 것은 있어. 하지만 그 이상을 얻어내야 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야. 경기도 이기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 중 가장 많은 것을 얻어내는 경기로 만들어야겠지.’

손 감독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근처에 있던 정호종 타격코치에게 손짓한다.

정 코치는 손 감독의 부름에 ‘네’하고 답하며 손 감독의 곁으로 다가섰고, 두 사람은 한동안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강호의 대타 출장에 대한 의견을 조율한다.

그리고 경기는 계속되어 드디어 승부처라 할 수 있는 7회 말로 이어지고 있었다.

따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타자 주자인 황인태가 1루 베이스를 돌아 2루 베이스를 밟는다.

7회 말 선두 타자로 나선 인태의 2루타에 자이언츠 홈 팬들이 열광하기 시작한다.

“그래! 7회에는 점수 좀 내라!”

“이번에 말아 먹으면 아작 내버릴 테니까 점수 내라!!”

“백강호 대타로 내라!”

자이언츠 홈 팬들은 각자의 생각으로 응원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 중 일부 팬들은 강호를 대타로 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손 감독은 그런 팬들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고, 8번 타자 황인태에 이어 9번 타자 오진택으로 이어지는 선발 타순을 고수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변수가 발생한다.

위즈의 투수 코치가 주심에게서 공 하나를 받아들고 마운드로 향한 것이다.

6회까지 127개의 공을 던지며 무실점으로 경기를 막아냈던 위즈의 선발 투수 헤인즈에 대한 교체를 예견하는 장면이었다.

그 모습을 중계 카메라를 통해 확인한 중계석에서 지금의 변수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지금은 적절한 투수 교체로 보입니다. 헤인즈 투수의 투구 수가 130개를 넘었거든요. 다소 구위가 떨어진 시점에서 헤인즈 투수로 끌고 가는 것보다는 조일근 투수로 교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헤인즈 투수가 좌완투수이다 보니 우투수인 조일근 선수로 변화를 꽤하거나 아니면 언더핸드인 김기령 투수를 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판단일 겁니다.”

중계석의 안경훈 해설 위원은 지금의 상황을 그렇게 정리하고 있었다.

시즌 최약체로 평가받는 위즈의 불펜 투수들이었지만, 선발 투수인 헤인즈가 좌완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적절한 교체가 이루어진다면 지금의 위기 상황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었다.

그런 안 위원의 해설대로 위즈는 우완 조일근 투수를 필승 카드로 꺼내들었고, 그 직후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한다.

“아, 지금은 자이언츠에서 대타를 내네요. 자이언츠가 위즈의 투수 교체와 동시에 대타 카드를 꺼내 듭니다.”

배성한 캐스터가 자이언츠의 대타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7회에 맞이한 무사 2루의 득점권 상황에서 손 감독이 드디어 대타를 낸 것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단 한 명의 대타도 내지 않았던 손 감독이었기에 지금의 대타 카드는 의미하는 바가 커보였다.

그런데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홈 팬들의 입장에서는 손 감독의 대타 결정이 불만족스럽게 느껴진다.

“왜 최훈이야? 백강호를 내라고!”

“4할 치는 백강호 두고, 왜 2할 8푼 치는 최훈을 대타로 내냐고? 오늘 경기 내줄 거야?!”

“백강호 써라! 부상도 아니라며?! 백강호 선수 얼굴 좀 보자!”

자이언츠 홈 팬들은 기대하던 강호의 모습이 아닌 2루수 최훈의 대타 카드에 실망하는 모습이었다.

팬들의 생각에는 오늘처럼 터지지 않는 경기에서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로 강호를 배제하고는 그 어떤 선수의 이름도 떠오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석에 서는 최훈을 향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까지 한다.

“훈아! 땅볼 치면 알아서 해라!”

“볼넷으로라도 나가라고! 어설프게 때렸다가 기회 날려먹으면 알아서 해!”

팬들은 팀의 첫 대타 카드로 타석에 선 최훈에게 큰 기대를 하지는 않고 있었다.

답답한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대하던 대타 카드가 아니어서인지 일부 홈 팬들은 타석에 선 최훈을 향해 야유를 쏟아내기도 했다.

그들이 쏟아내는 야유는 최훈을 향한다기보다는 강호를 대타로 내지 않는 손 감독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바뀐 투수인 조일근과 대타로 나선 최훈의 승부가 시작된다.

“볼.”

주심의 초구 판정은 볼이었다.

조일근 투수의 몸이 아직 덜 풀린 것인지 스트라이크를 잡으려던 초구가 존 위쪽으로 떠올라 버린 것이다.

타석에 선 최훈은 그런 조일근의 초구에 고개를 끄덕이며 타석에서 반 발짝 물러선다.

최훈은 문득 대타로 나서기 전, 정호종 타격 코치가 자신에게 했었던 주문을 떠올려 본다.

‘훈아, 바뀐 투수가 제구력이 좋은 편은 아니니까 공을 좀 많이 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 알겠지? 무리하게 타격하지 말고, 비슷하게 오는 공만 커트하면 돼.’

정 코치는 바뀐 투수인 조일근의 공을 많이 봐줄 것을 최훈에게 요구했었다.

돌려 말하고 있었지만, 정 코치의 말을 요약해 보면 상황은 간단했다.

‘볼넷으로라도 일단 출루를 하라는 뜻이겠지.’

최훈은 정 코치의 주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87년생, 올해로 33살의 중견 선수가 된 최훈은 타격 코치가 돌려 말한다고 해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 때는 팀의 내야 핵심 선수로서 촉망받던 최훈은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야구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일근의 2구에 이어 3구째 몸 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를 피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턱.

공이 엉덩이에 맞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최훈이 미간을 좁히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1루를 향해 출루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다른 부위라면 피했을 테지만, 엉덩이 쪽으로 날아오는 슬라이더를 그냥 맞기로 선택한 최훈의 결정은 결국 팀에게 무사 1, 2루 상황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자이언츠 덕 아웃은 잠시 분주해진다.

“감독님, 다시 대타를 낼까요?”

김 수석은 6회 때부터 준비시켜 두었던 강호를 염두 해두며 손 감독에게 묻는다.

무사 1, 2루 상황에서 강호가 정타를 때려내면 더할 나위가 없었고, 설령 고의사구로 걸어 나간다 하더라도 무사 만루의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라서 팀에게 더 좋은 기회가 만들어질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손 감독의 생각은 김 수석과는 달랐다.

“지금은 지켜보세.”

손 감독의 대답으로 다음 타석은 대타 없이 1번 타자인 유성철에게로 넘어간다.

성철은 덕 아웃의 주문대로 풀 카운트로 이어지는 끈질긴 승부를 벌여나간다.

그런데 7구째 공을 커트하기 위해 배트를 내려다가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아웃!”

성철이 때려낸 타구가 2루수 앞 땅볼이 되면서 1루 주자 최훈이 2루에서 아웃되고 만 것이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공은 곧장 1루수 유민성에게로 향한다.

“아웃!”

1루심마저 아웃을 선언하자 무사 1, 2루의 기회를 맞아 환호하던 자이언츠 홈 팬들의 환호가 싸늘하게 식어버린다.

“아....!”

팬들의 환호는 탄식으로 바뀌고, 이대로 7회 말의 기회마저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 같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손 감독마저도 강호를 대타로 내야할까 고민 할 정도로 사직구장의 분위기가 좋지 못했다.

그러나 손 감독은 5회 말 상황에서 자신이 내린 결정을 고수하기로 한다.

‘아직 아니야. 지금 강호를 대타로 내봐야 고의사구로 걸러질 뿐이니까. 2사 3루 상황이 2사 1, 3루로 바뀐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어.’

손 감독은 그렇게 판단을 내린 후 대타 없이 다음 타석을 지켜보기로 한다.

자이언츠 홈 팬들의 탄식과 손 감독의 갈등 속에 타석에 선 타자는 오늘 경기의 2번 타자인 문표였다.

문표는 평소의 장난기 넘치는 태도를 버리고, 진지한 모습으로 타석에 서고 있었다.

문표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좋은 타격을 보인다는 점을 알고 있는 자이언츠 홈 팬들은 잠시 탄식과 불평, 불만을 멈추고 지금의 대결에 주목하게 된다.

만약 지금 문표의 타석마저 아웃으로 끝나버린다면 홈 팬들의 침묵은 곧 원망의 목소리로 바뀔 것은 불 보듯 뻔해 보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경직된 분위기로 조일근 투수의 초구가 뿌려진다.

“볼.”

문표를 향한 조일근 투수의 초구는 볼이 되고 있었다.

다소 몸 쪽으로 파고든 조일근 투수의 초구에 문표가 몸에 맞았다는 점을 어필하며 1루로 나가려고 했지만, 주심이 그것을 막아선다.

그런 주심을 향해 문표가 복부 쪽의 유니폼을 손에 쥐며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맞았습니다! 유니폼에 스쳤다고요!”

“안 맞았어. 내가 봤어.”

주심은 한사코 몸에 맞았다는 문표의 말을 그렇게 딱 잘라내 버린다.

문표는 한 번 더 어필해보지만, 주심의 판정은 번복되지 않는다.

결국 타석으로 되돌아온 문표는 고개를 내저으며 조일근 투수와의 대결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티익.

2구째는 파울이 되고, 문표는 다음 공인 3구와 4구째를 걸러낸다.

이제 상황은 3볼 1스트라이크 상황.

문표는 어쩌면 볼넷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배트를 짧게 잡고 번트를 댈 것이라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조일근 투수의 미간이 좁혀 진다.

그리고 이어진 5구 째 승부.

따악.

번트에서 강공으로 전환한 문표의 타구가 빠르게 뻗어져 나간다.

1루수를 스쳐 지나간 타구는 페어 존의 곁을 지난다.

문표가 때려낸 총알 같은 타구를 끝까지 지켜보던 1루심은 문표의 타구에 대한 판정을 이렇게 선언하고 있었다.

“파울.”

양팔을 펼치는 1루심의 파울 선언에 1루를 향해 걸음을 떼던 문표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을 뱉어낸다.

“오늘 더럽게 안 풀리네.”

문표는 그렇게 읊조리며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다.

이제 상황은 3볼 2스트라이크의 풀카운트 상황.

앞전 상황에서 페이크 번트 앤 슬래쉬를 택했던 문표는 이번에는 정상적인 타격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확인한 조일근 투수의 6구째가 뿌려진다.

타격 타이밍을 재고 있던 문표는 6구째 공에 딸려나가던 배트를 급히 멈춰 세운다.

터엉.

문표가 배트를 멈춰 세운 후, 조일근 투수의 공이 포수의 미트를 때린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주심의 입을 향해 모아졌다.

“볼넷.”

주심의 판정은 볼넷이었다.

위즈의 포수인 안진형이 문표의 배트가 스윙이라고 어필해 봤지만, 1루심과 주심 모두 문표의 배트가 돌지 않았다고 판정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 자이언츠 팬들의 기대감이 다시 차오른다.

위즈 팀이 조일근 투수를 마운드에서 내리고 언더핸드 투수인 김기령을 마운드에 올리자 자이언츠 역시 대타를 낼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제 백강호 좀 내라! 이거 승부처 맞잖아!”

“백강호 대타 내라!”

팬들은 강호의 이름을 목 놓아 외치며 손 감독의 결정을 촉구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팬들의 기대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손 감독이 대타를 내긴 했지만, 팬들이 원하는 강호가 아니라 오늘 라인업에서 강호와 마찬가지로 빠져 있던 우익수 박철 카드를 대타로 내세운 것이다.

올 시즌 언더핸드 투수에게 강한 면모를 보인 박철을 대타 카드로 내세운 손성조 감독.

그런 손 감독의 결정은 묘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터억.

또 다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몸에 맞는 공이 나오고 있었다.

조일근에 이어 바뀐 투수인 김기령의 2구 체인지업이 대타로 나선 박철의 허벅지를 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상황은 2사 만루 상황.

허무하게 끝날 것이라 여긴 7회 말 공격 찬스가 만루 상황에서 팀의 4번 타자에게로 넘겨지게 된다.

자이언츠 홈 팬들의 반응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우와아아! 이제 백강호 좀 냅시다!!”

“백강호 내라고! 17연승 해야지! 아끼다가 망한다! 한 타석만 올리고 다시 빼면 되잖아!”

“백강호! 백강호! 백강호!!”

홈팬들은 이번 타석에서 강호를 대타로 낼 것을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3만 명에 가까운 홈팬들의 함성에 그라운드에 선 선수들의 귀가 울릴 지경이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자이언츠 덕 아웃에까지 전달되고 있었고, 손 감독은 드디어 결정을 내린다.

대타를 지시하는 손 감독의 입 꼬리가 호선을 그리는 모습은 현장을 찾은 팬들로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손 감독은 지금의 순간을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여기며 이렇게 지시를 내린다.

“강호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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