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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의 문턱에서
8월 11일 일요일, 아침이 밝아 있었다.
사직에서 벌어지는 6연전의 마지막 경기가 남아있는 하루였다.
8월 6일 베어스 전을 시작으로 위즈 팀과의 이어진 두 경기마저 승리로 일궈낸 자이언츠 선수단.
특히나 5연승을 이어나가고 있던 시즌 1위 팀, 베어스에게 스윕 승을 따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자이언츠를 일컬어 하위권 경쟁 팀이라 부르는 이들은 드물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자이언츠를 시샘하는 기존 경쟁자 팀의 일부 팬들만이 자이언츠를 여전히 하위권이라 주장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 어떤 전문가들도 자이언츠를 하위권 팀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었다.
"올 시즌에 베어스를 스윕한 팀은 자이언츠가 유일하지 않나? 게다가 상대 전적도 8승 2패잖아? 이 정도면 자이언츠가 후반기 실세 아닌가?"
"실세지, 실세! 올 시즌 최다 연승 팀이 바로 자이언츠잖아. 이제 1위도 머지않았어."
"윗분, 설레발인 것 같으면서도 기분은 좋네요. 자이언츠가 언제부터 1위 경쟁 팀으로 분류되고 있는 거죠? 요즘 자이언츠 경기 보면 질 것 같은 기분이 안 듭니다."
"안지니까 그렇지. 16연승 중인데 진 적이 어딨어? 후반기 경기 15경기를 전승하고 있는데 질 것 같은 기분 드는 게 이상한 거 아냐?"
자이언츠 팬들은 시즌 1위 팀인 베어스마저 스윕한 자이언츠 기세를 칭찬하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 경기도 이겨서 17연승 갑시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주네요. 다음 주 시리즈가 다이노스 전인데 비라도 왔으면 좋겠습니다. 역대 최다 연승 기록을 앞두고 하필이면 상대할 팀이 다이노스라니. 오늘부터 기우제 들어갑니다. 다이노스 경기 우천 취소되게요."
"나도 기우제 들어가야 되겠다. 다음 주에 비 안 내리면 연승 기록도 마산에서 끝나겠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다 같이 그냥 기우제나 지냅시다."
팬들의 우려는 오늘 경기에서 패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다음 주 화요일부터 시작될 다이노스와의 시리즈 5차전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3승 9패.
올 시즌 자이언츠가 다이노스를 상대로 거두고 있는 성적표였다.
다이노스가 창단한 이례로 단 한 번도 시즌 맞대결에서 우위를 점한 적이 없었던 자이언츠는 올해 역시 공룡에게 약한 거인의 모습을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네 번의 시리즈 맞대결 중 한 번은 스윕 패를 당했고, 나머지 시리즈는 모두 루징 시리즈를 기록한 상황.
올 시즌 들어 자이언츠가 다이노스에게 위닝 시리즈를 따온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이다.
팀이 역대 급 연승 기록을 이어나가는 와중에도 다이노스에게만은 약한 시즌 전적을 거론하며 팬들은 두 팀 간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내리고 있었다.
"내가 동네 창피해서 마산을 못 간다니까. 아니 다이노스한테 이렇게 못 이길 거면 2012년에 그런 말을 꺼내지를 말던가? 왜 구단 사장이라는 사람이 쓸데없는 소리를 해가지고, 팬들이 그 창피함을 감소해야 되는 거야?"
"제가 뉴비라 잘 몰라서 그러는데 2012년에 구단 사장이 무슨 말을 했는데요?"
"2012년 4월 도곡동 KBO에서 열린 다이노스 창단과 1군 진입에 대해 '구단수를 늘리려면 연구를 많이 해야 하는데 너무 급하게 진행시켜 놀랐다. 아홉 번째 구단 창단도 이사회에서 졸속 처리했다'며 다이노스의 1군 합류로 '리그 전체의 경기력이 질적 하락할 것이 우려 된다'라고 당시 자이언츠의 구단 사장인 장○○ 사장이 다이노스의 창단에 대해 결사반대의 의지를 밝혔다라고 하네요."
"이거 유명한 이야깁니다. 일명 장 사장의 저주라고, 메이저리그 밤비노의 저주처럼 오래 가지만 않았으면 하네요."
팬들은 오늘 경기에서 승리하더라도 다이노스와의 시리즈에서 연승의 흐름이 끊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우려라기보다는 결론에 가까웠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완벽한 투타 밸런스를 보이는 올 시즌 자이언츠도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다이노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연승 기록이 끝날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런 우려는 단지 팬들만의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생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오늘까지라도 이깁시다. 어차피 다음 주 되면 연승 기록도 사라질 텐데 오늘 경기라도 이겨서 최다 연승에 1이라도 더해봅시다."
강호는 자신의 곁에서 응원인지 저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말을 뱉어내고 있는 문표에게 시선을 돌린다.
문표가 평소에 비해 일찍 경기장에 출근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저런 말을 뱉어내는 모습을 보니 차라리 지각한 것만 못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문표를 향해 타박의 말을 꺼내려는데 그런 강호를 대신해서 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었다.
"문펴! 재수 없는 소리 할 거면 그냥 집에 가서 쉬어~ 네, 빈자리는 내가 대신 채울 테니까. 너 오늘 조퇴한다고 내가 감독님한테 말씀 드릴까?"
문표를 향해 말을 건네 오는 사람은 팀의 최고참 야수이자, 1루수 겸 지명타자인 채중석 선수였다.
근처에 있는 선수들이 그런 중석의 말에 동감하는 모습이다.
"그래, 문표. 기운 빠지는 소리할 거면 저 구석에 가서 해. 아니면 아예 상동으로 가버리던지."
선수들을 대표해서 캡틴 강민수가 문표를 구박하고 나선다.
문표의 말이 반쯤은 농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이언츠의 현실을 반영한 풍자 섞인 문표의 농담이 팀 캡틴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불편하게 들렸던 것이다.
캡틴의 정색에 문표가 한걸음 물러서며 너스레를 떤다.
"그냥 힘내자고 해본 말입니다."
변명의 말을 꺼내는 문표에게 이번에는 다시 중석이 되물어 온다.
"그걸 지금 힘내자고 하는 말이야? 잘 봐, 응원은 이렇게 하는 거야. 힘내라, 힘내라! 자이언츠 힘내라!"
"아, 중석 선배 저리 좀 떨어지세요. 동네 창피하게 언제 적 응원을 하고 있는 거야? 중석 선배 시대에는 그런 응원가가 먹혔습니까?"
"문표, 너 이 자식. 너랑 나랑 나이 차이가 몇 살이나 난다고 그래?"
"3살이면 많이 나는 거죠, 뭐."
또 다시 투닥거리기 시작한 문표와 중석, 두 사람을 바라보던 강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시선을 돌린다.
그런 강호의 어깨에 캡틴 강민수가 손을 얹으며 당부의 말을 전해온다.
"강호 너는 저 사람들 닮으면 안 돼. 그럼 우리 팀 망해."
"네, 새겨듣겠습니다."
"그래, 그래. 중석 선배랑 문표가 더위를 먹어서 맛이 가더라도 강호 너 하나만 괜찮으면 우리 팀은 잘 굴러갈 거야. 오늘도 날이 더우니까 야외 훈련은 자제하고, 실내에서만 훈련하도록 하자. 감독님 전달 사항이야."
강호는 손 감독의 지시 사항을 대신 전하는 캡틴 강민수의 말에 '네'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계절이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각 팀마다 선수들의 체력 관리에 초점을 맞추며 훈련일정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그렇지 않은 팀들도 있었지만, 올 시즌 자이언츠는 실내 훈련장에 에어컨 시설을 확충하여 여름 기간 동안은 실내 훈련을 유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훈련할 때 에어컨 너무 세게 틀지 않는게 좋아. 경기할 때 적응하기 힘드니까."
캡틴 강민수는 강호의 컨디션 관리가 걱정인 것인지 이런저런 당부를 전하며 본인의 개인 훈련을 위해 걸음을 옮긴다.
민수의 걱정이 단지 그만의 것은 아니어서 경기 전 훈련 때는 야외 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칫 선수들이 냉방병이나 실내외의 기온 차이로 감기에 걸리는 것을 우려하는 조치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모든 선수들에 대한 조처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팀에서 더욱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선수가 바로 캡틴 강민수와 팀의 4번 타자인 강호였다.
민수는 팀의 주전 포수이자 주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선수단의 사기 차원에서 관리가 필요했고, 강호는 주시하는 눈이 하도 많다보니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관리의 필요성이 충분했다.
여전히 강호의 시즌 4할 타율 달성에 우려를 표하는 시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에 대해 구단이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었지만, 구단의 대처에도 의심을 거두지 않은 일부 팬들도 있었다.
'어떤 일이든지 100%는 힘든 거니까.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런 우려가 사라질 수는 없을 거야.'
팬들의 우려에 대한 강호의 생각이었다.
강호의 입장으로서는 올 시즌이 4할 타율뿐 아니라 다른 기록 달성도 걸려있는 시즌이기 때문에 오직 타율 기록만을 위해 출장을 쉬고 싶지는 않았다.
데뷔 시즌을 기록 달성을 위해 타석 관리를 했다는 오명을 듣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결국 결과로 보여주는 것만이 정답이겠지. 팬들의 우려도 시즌이 끝난 후에는 이어지지 않을 테니까.'
강호는 자신에 대한 우려에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개인 훈련에 박차를 가한다.
최근 들어 강호가 집중하고 있는 개인 훈련은 선구안 훈련이었다.
다른 스탯들은 포인트를 모아 90대로 올려두었지만, 시즌 동안 가장 집중했던 개인 훈련 중에 하나인 선구안만은 80대에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훈련을 통해서 수치를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 당장 경기 때마다 적용되고 있는 기간제 아이템 효과도 있었기 때문에 선구안 수치에 포인트를 투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만큼 다음 프리마켓 방문 때까지 선구안 훈련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때 때마침 선구안 훈련을 도와줄 누군가가 말을 붙여온다.
"선배님, 제가 좀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기성태 코치님하고 PCC그래프 좀 측정하느라 늦었습니다."
강호를 향해 인사와 사과를 동시에 건네 오는 선수는 팀의 마무리 투수로 자리 잡은 권대우 투수였다.
대우는 강호의 룸메이트이자 전반기 동안 선구안 훈련을 도왔던 파트너이기도 했다.
강호는 선구안 훈련에 뒤늦게 합류한 대우의 말을 듣고는 되묻는다.
"투수 조 PCC그래프도 측정을 했다보네? 너만 받은 건 아니지?"
"네, 어떻게 아셨어요? 사준식 선배나 성수제 선배도 같이 받았습니다. 눈치를 보니까 다른 불펜 투수들도 다 받는 것 같더라고요."
대우의 대답으로 강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PCC그래프를 측정하는 간격이 좁아졌어. 여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선수들의 체력 관리에 들어갔다는 의미겠지.'
강호는 대우가 건넨 말에서 그런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이미 야수 조는 PCC그래프 측정을 끝낸 상태였기 때문에 강호의 생각은 확신에 가까웠다.
"선배님, 시작하시죠."
대우는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실내 훈련장의 마운드에 오른다.
그런 대우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에 공을 쥐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완 언더 핸드 투수인 그가 왼손에 공을 쥔 이유는 강호의 선구안 훈련을 돕기 위함과 스스로의 오른 팔을 보호하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강호는 그런 대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연다.
"안 돼. 이제 대우 너하고 선구안 훈련을 할 수는 없어."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요 며칠 동안 제가 훈련을 돕지 않아서 그러세요? 그건 불펜 코치님이 저하고 따로 훈련 일정을 잡아놓으셔서 어쩔 수 없었다고요. 며칠 전에 이미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강호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항변하는 대우의 모습에 피식 웃음 지으며 대답의 말을 꺼낸다.
전반기 동안은 대우와 종종 선구안 훈련을 하고는 했지만, 대우가 팀의 마무리를 맡게 된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대우 너는 이제 팀의 마무리 투수인데 내 훈련 전담 투수로 서는 게 말이 돼? 이제 선구안 훈련은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 테니까 너는 불펜 코치님하고 개인 훈련에 집중하도록 해."
"왜 이러십니까? 어차피 저는 왼손으로 투구하면서 몸의 밸런스를 맞추는 타입이라고요. 선배님한테 연습구 몇 개 던진다고 지치지는 않습니다. 제 시즌 성적이 증명해주지 않습니까?"
대우는 선구안 훈련에서 자신을 배제시키려는 강호의 말에 나름 서운했던 것인지 본인의 시즌 성적을 들먹이며 그렇게 항변하고 있었다.
그런 대우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강호가 말을 잇는다.
"너 없이도 내 선구안이 문제없다는 건 내 시즌 성적이 증명해주고 있어. 그러니까 내 훈련 도와줄 시간에 1분이라도 더 쉬도록 해. 쉴 생각이 없으면 조 코치님하고 개인 훈련을 하던가. 대체 어느 팀 마무리 투수가 경기 전에 타자 배팅을 도와주겠어? 네가 마무리 자리에서 내려오면 같이 훈련해도 되겠지만, 그 전에는 절대 안 돼."
강호는 본인의 시즌 성적을 들먹이는 대우에게 반박하며 시즌 4할이라는 본인의 성적을 밝힌다.
그러면서 대우가 후반기부터 맡게 된 마무리 투수 자리에 조금 더 집중하기를 당부하고 있었다.
대우는 그런 강호의 말에도 여전히 미련이 남은 것인지 확인삼아 묻는다.
"그럼 다른 투수하고 선구안 훈련을 하신다는 겁니까?"
"아니, 이제 그러지는 않을 거야. 다른 투수들도 체력 관리를 해야 하잖아? 야수 조 선수들한테 부탁하거나 아니면 선수 출신 컨디셔닝 코치님들한테 부탁해야지."
강호가 다른 투수에게는 부탁하지 않을 거라는 말에 대우는 조금은 안심한 표정으로 '알겠습니다'라고 대꾸하며 실내 훈련장에서 물러난다.
그 후 강호는 대우에게 말했던 것처럼 선수 출신 컨디셔닝 코치와 선구안 훈련을 시작하는 모습이었고, 다른 선수들 역시 각자의 방식대로 체력을 유지하는 선에서의 개인 훈련에 돌입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8월 둘째 주 사직에서 열리는 홈 6연전의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