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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나가다
인천에서 열린 첫 경기를 마친 자이언츠 선수단은 원정 버스를 타고, 숙소로 정해진 호텔로 이동 중에 있었다.
선수단의 표정은 좋아 보였다.
나름 치열하게 전개되던 경기를 6대 3으로 뒤집으며 시리즈 첫 경기를 승리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이언츠의 연승은 8에서 9로 늘어나 있었다.
"이게 다 이 최문표 님의 공로란 말이야! 내가 거기서 1타점 기습 번트를 대는 바람에 팀이 이긴 거라고."
문표는 원정 버스의 의자에 앉아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는 오늘 경기의 승부처인 7회 초 공격에서 주자 2, 3루에 자신이 때려낸 번트 타점으로 경기의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문표의 말은 맞는 것이었지만, 일부 선수들은 문표가 으스대는 모습을 보기 싫은 모양이었다.
대표로 앞 쪽 자리에 앉아 있던 중석이 다가와 문표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 경기가 이긴 게 왜 문표 네 덕이야? 강호가 동점 상황에서 2타점 3루타를 때렸으니까 이긴 거지. 하여튼 문표 이놈은 지가 뭐 좀 잘했다 싶으면 그냥 넘어가질 않아요."
"중석 선배,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저는 그래도 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점 타점은 때렸다고요. 중석 선배는 오늘 2타석 1삼진 1볼넷 아닙니까? 볼넷으로 출루하고 나서도 대주자로 교체됐잖아요? 중석 선배보다는 제가 훨씬 나은 거죠."
문표는 중석의 타박에 지지 않고, 오늘 중석이 기록한 내용을 들먹이며 반박하고 나선다.
그러자 중석은 고리눈을 뜨고는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다.
"야, 인마. 내가 삼진 당하긴 했어도 상대 투수 공을 열 개나 보고 삼진 먹은 거잖아. 덕분에 성철이나 박철이 어부지리를 얻어서 출루한 거고. 문표 네가 만든 번트 타점도 결국 내가 삼진 먹은 타석에서 출발한 거야. 알고나 까불어."
"아니, 지금 삼진 먹은 걸 자랑하고 계시는 겁니까? 기습 번트로 타점 낸 제 자랑은 듣기 싫으시다 면서 본인 삼진 먹은 걸 자랑하고 그러세요?"
자신의 말을 받아치는 문표의 말에 중석은 결국 뒷목을 잡고 만다.
"아놔, 문표 이놈하고는 입씨름을 안해야 돼! 야구 선수가 야구 실력으로 승부를 봐야지, 꼭 입으로 야구를 한단 말이야."
"입으로도 야구하고, 실력으로도 야구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 제가 1타점을 때렸다는 걸요."
중석은 끝까지 자신의 말에 반박하는 문표에게 '평생 번트나 대라, 이 자식아.' 라고 당부의 말을 전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강호가 문표에게 말을 건넨다.
"그렇게 중석 선배 약 올리시다가 한 대 맞는 거 아닙니까?"
"내가 이 나이에 선배한테 맞을 짬밥은 아니잖아. 그리고 나 중석 선배랑 친해. 강호 후배는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나 말고 걱정할게 따로 있잖아?"
"제가 걱정할게 따로 있다고요?"
"이거 왜 이러시나? 오늘 정의준이 홈런 때렸잖아. 뭐, 승부에 관련 없는 솔로포였지만, 이제 정의준도 홈런 43개나 된다고. 마산에서 테인즈가 홈런 때렸다니까 이제 테인즈가 45개, 강호 후배가 44개, 정의준이 43개, 김재성이 43개지? 완전 초박빙이네!"
문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올 시즌 홈런왕 경쟁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치열한 홈런왕 경쟁을 펼치고 있는 4명의 타자를 거론하며 말을 이어나간다.
"야아~~아직 시즌 경기가 40경기가 넘게 남았는데 40홈런을 넘긴 타자가 4명이나 되고, 올해는 50홈런 페이스인데? 역대 급 홈런 기록이 나올 것 같단 말이야."
문표는 그렇게 말하면서 강호의 옆구리를 툭 하고 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물어온다.
"어때? 올 시즌 타격 8관왕 가능하겠어?"
문표의 물음은 올 시즌 강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질문이었고, 이제 시즌이 후반기에 접어들며 강호도 어느 정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은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문표의 물음에 답하는 말에 거침이 없었다.
"시도는 해봐야죠."
"응? 오~ 역시 강호 후배야! 못 하겠다는 말은 이제 안 하네?"
강호의 긍정적인 대답에 문표는 씨익 하고 웃어 보인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것인지 웃는 낯으로 말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래, 팀의 4번 타자가 그런 포부 정도는 있어야지. 강호 후배, 한 번 열심히 해봐. 나도 옆에서 힘닿는 데까지 도울 테니까."
"선배님이 도와주신다고요? 제 홈런 기록을요? 어떻게 도와주실 겁니까? 기습 번트로 도와주실 생각이시면 저는 괜찮습니다."
문표의 말에 표정 변화 없이 대답하고 있는 강호, 그런데 그의 말은 절반의 농담을 담고 있었다.
문표가 올 시즌 승부처에서 때려낸 기습 번트가 많았고, 또 그 번트들이 팀 분위기를 바꾸는 타점으로 연결된 적도 있었다.
오늘 경기도 그런 경기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 사실을 빗대어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강호였다.
그런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던 중석이 어느새 강호의 말을 듣고는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푸훗! 우리 강호가 입담도 4번 타자 감이네. 문표 네가 무슨 수로 강호 홈런 기록을 도와? 네 자리 보존이나 신경 쓰는 게 맞는 거지. 내가 조만간 문표 네 자리를 차지해버릴 테니까. 아니지. 원래는 그 자리가 내 자리 아냐? 조만간 내 자리를 돌려받아야겠어. 이 번트쟁이야."
"아아~~이 선배 또 이러시네. 1군에 네 자리, 내 자리가 어딨습니까? 타격감 더 좋은 타자가 라인업에 올라가는 거지. 그러지 마시고 여기 삶은 달걀이나 드세요."
"내가 뭐 돼지인 줄 알아? 네가 먹을 거준다고 입 다물고 그럴 것 같아? 그거 근데 맥반석 달걀이야? 이리 줘봐. 맛은 봐줄 테니까."
다시금 투닥 거리기 시작한 두 선배들을 바라보며 강호는 고개를 내젓는다.
그러면서 잊고 있던 형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대우로 인해 발송돼 버린 카톡 메시지가 떠올라 전원을 꺼두었던 휴대폰을 꺼내어 본다.
'생각해보면 형제끼리 이 정도 실수는 별 것도 아니잖아. 그냥 형한테 전화해서 실수로 보냈다고 하자. 내가 오해했다고.'
경기 전까지만 해도 형에게 잘못 발송한 메시지로 인해 마음이 무거웠는데 무더운 날씨에 경기를 치르다보니 그 정도 실수는 형제끼리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꺼져 있는 휴대폰을 켜고, 형과의 카톡 대화방을 열어본다.
우선 형에게서 걸려온 부재 중 전화를 확인한 후, 형이 보낸 카톡 메시지들을 확인하는 강호.
그의 시선에 형이 보낸 메시지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형: 동생아. ]
[형: 응답하라.]
[형: 메시지 무슨 뜻이냐고?]
형이 보내온 답장은 처음에는 강호 본인이 보낸 카톡 메시지에 대한 의문이 담겨 있었다.
그러다가 형의 메시지는 점점 다른 내용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형: 그러고 보니까 요즘 날씨가 많이 더워서 사람들이 더위 먹고 쓰러지고 그런다는데, 너도 그런 건 아니지?]
[형: 요즘 훈련이 많이 힘들어?]
[형: 형이 보약 한재 지어줄까?]
형의 답장은 점점 동생에 대한 걱정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매일같이 올해 최고 온도를 갱신하고 있는 무더운 날씨에 동생이 더위를 먹지 않을까 걱정하는 형의 메시지를 확인하게 된다.
처음에는 형에게 어떻게 변명할까를 걱정하던 강호로서는 자신의 걱정이 괜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메시지들이었다.
'내가 쓸데 없는 걱정을 했구나. 그러고 보면 형이 지금 연애 할 시기는 아니잖아. 내가 부탁한 일도 있고, 여름이 되면서 작업 현장이 더 바빠지기도 했고 말이야.'
강호는 형이 외국인 여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오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설령 형이 외국인과 연애를 하는 중이라고 해도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 쓸데없는 걱정이야. 형이 누구를 만나든, 무슨 선택을 하든. 나는 형을 믿고 응원해주면 되는 거야. 형이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강호는 수상해 보였던 형의 행동에 대한 결론을 그런 식으로 끝맺음 지으며 형에게 짧은 답장을 보낸다.
강호: 아니, 요즘 날씨가 더워서 내가 헛생각을 좀 했나보네. 별 거 아니니까 내 걱정하지 말고. 형도 공사 현장에서 몸조심해. 항상 서두르지 말고, 다치지 말고.
강호는 이미 잠이 들었을 형에게 메시지 하나를 남겨 놓고는 휴대폰을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카시트에 편히 몸을 기댄 채 문표가 그렇게나 권하던 다리 안마기를 작동시키는 모습이다.
그런데 안마기 강도가 최고치로 설정되어 있던 것인지 다리를 감싸고 있던 안마기를 통해 엄청난 압박감과 통증이 전달되고 있었다.
얼른 안마기의 전원 버튼을 끄려했는데 마침 지명타자 채중석이 문표와 논쟁을 벌이면서 안마기의 전원 버튼 위에 앉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두 베테랑 선수들이 논쟁을 벌이는 이유는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소금이요? 제가 무슨 분식점 사장입니까? 왜 저한테서 소금을 찾아요? 그냥 삶은 달걀이나 드세요."
"요즘 삶은 달걀 사면 안에 다 소금 들어 있어. 어서 소금 내놔."
"안 들어있었다니까요. 제가 소금 있었으면 벌써 드렸죠. 거 참 사람 말 되게 안 믿으시네."
"내가 사람 말은 믿는데, 문표 네 말은 안 믿어."
"그럼 제가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응."
문표와 중석은 사소한 문제로 다투고 있는 중이었다.
강호는 그 중 중석에게 손을 뻗어 도움을 요청한다.
"중석 선배님, 안마기 좀 끄게 비켜주십시오. 전원 버튼 깔고 앉으셨어요."
강호의 부탁에 중석이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미안' 이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물러서는 모습이다.
그 후 안마기 전원을 끈 강호와 두 선배들은 숙소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 자신들의 방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 이제 날짜는 8월 3일이 되어 있었다.
와이번스와의 시리즈 4차전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며, 9연승을 달리게 된 자이언츠 선수단.
이제 10연승을 바라는 자이언츠 팬들과 과연 자이언츠의 10연승이 가능할 것인지를 궁금해 하는 다른 팀 팬들과 전문가들의 시선 속에 자이언츠 원정 버스는 문학 구장에 도착해 있었다.
경기 전 훈련에 나선 자이언츠 선수단은 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호와 함게 그라운드 위로 나와 관중석을 쭈욱 훑어보던 문표가 입을 연다.
"오늘도 경기장이 만석이네? 원래 와이번스가 팬덤이 좀 약한 팀 아니었나? 예전 기억으로는 한국시리즈 때도 만석이 안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문표의 물음에 오늘 2루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황인태가 대답하고 나섰다.
인태는 손성조 감독이 1군 사령탑이 되며 함께 1군 엔트리에 포함된 20살의 어린 선수로서 주전 2루수인 최훈이 재활 군에 빠져 있는 동안 팀의 주전 2루수로 발돋움한 상태였다.
최훈이 1군으로 복귀하며 주전 경쟁을 벌이고는 있었지만, 짧은 기회 동안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최훈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제가 들은 건데 오늘 경기 절반은 자이언츠 팬들이랍니다. 저기 외야 쪽이랑 1루 쪽에도 자이언츠 유니폼 입은 팬들 보이시죠? 아마 과반수가 자이언츠 원정 팬들이지 않을까 싶네요."
인태의 말에 문표가 다시 한 번 관중석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과연 인태의 말대로 문학 구장의 관중석은 자이언츠 저지를 입은 팬들이 점령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와이번스 저지를 입은 관중들보다 숫자가 많아 보일 정도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문표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뭐야? 팀이 9연승을 하니까 팬들이 원정지까지 점령해버린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강호 선배 홈런 경쟁도 있으니까 강호 선배 팬들이 많이 찾아온 거겠죠. 저기 젊은 여자 팬들은 죄다 강호 선배 팬들일 걸요?"
"뭐? 젊은 여자들이 전부 강호를 응원한다고? 그건 모르는 소리지. 내 팬도 있을 수 있잖아? 인태 너는 그렇게 단정 짓는 버릇이 있더라."
"제가 그런 버릇이 있는 건 맞지만, 저 여자들 중에 문표 선배님 팬이 없다는 건 장담할 수 있습니다."
어제 중석에 이어 이제는 스무 살 루키인 인태와도 투닥 거리는 문표의 모습에 강호는 고개를 내젓는다.
그리고는 걸음을 옮겨 또 다른 1루수 경쟁자인 김상훈 선수에게 다가간다.
"상훈 선배, 저하고 송구 훈련 하실래요?"
"강호 너는 요즘 문표 선배랑 훈련하잖아?"
"오늘부터 안 하려고요."
"그래? 나야 좋지. 그럼 바로 시작하자."
어느새 의기투합한 상훈과 훈련을 시작하는 강호.
인태와 여자 팬들을 놓고 논쟁을 벌이던 문표는 뒤늦게 그 모습을 확인하고 있었다.
"안 돼! 내 경쟁자들하고 훈련하면 안 된다고, 강호 후배!"
문표의 목소리가 문학 구장의 그라운드를 가로지른다.
이런 사소한 사건 속에 문학에서 열리는 시리즈 4차전,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 경기는 자이언츠의 10연승 달성이 걸려 있는 중요한 경기였고,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들 모두 긴장감을 끌어올린 채 경기에 임하게 된다.
경기 전, 잠시 소란을 피웠던 문표 역시 경기에 들어선 후에는 더 이상 장난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팀의 10연승이 걸려 있는 일전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