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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강수 씨
오해로 시작된 형에 대한 고민 속에 강호와 선수단을 태운 새로운 원정 버스는 어느새 인천에 도착해 있었다.
어깨에 백 팩을 걸터 메고 버스에서 내릴 때도, 숙소로 정해진 방으로 이동할 때도, 숙소 방에 짐을 풀어놓을 때도 강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자신의 짐을 모두 풀어놓고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는 강호의 표정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형에게 보내려고 적어놓은 카톡 메시지를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강호: 형, 나는 다 이해해. 형이 누구를 사귄다고 해도 다 이해할 수 있어. 그러니까 누구야? 한국사람 아니지? 내 생각이 맞는 거지?
강호는 메시지를 입력하기는 했어도 미처 전송하지 못한 채 한동안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전송할까 말까를 망설이던 강호.
이내 휴대폰 화면을 닫아버리는 모습이다.
룸메이트인 대우는 그런 강호의 곁에서 강호의 표정 변화를 모두 지켜보고 있는 상태였다.
대우가 말을 걸어온다.
"선배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오늘 표정이 안 좋아보이시는데요. 혹시 와이번스 경기가 걱정이세요? 와이번스 정의준 선수하고 선배님을 비교하는 기사라도 보신 겁니까?"
대우는 강호가 와이번스와의 시리즈 전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그의 물음은 강호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이었지만, 강호에게는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내용이기도 했다.
인천에서 맞붙는 이번 와이번스 전을 앞두고 와이번스의 4번 타자 정의준과 강호를 비교하는 기사가 포털 사이트의 스포츠 란 메인을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형에 대한 고민이 깊은 강호로서는 아직 보지 못한 기사였다.
"무슨 소리야? 정의준 선배하고 비교하는 기사라고? 그런 기사가 떴어?"
"네? 모르셨습니까? 아니요. 안 떴습니다. 제가 헛소리를 했네요."
대우는 강호의 되물음에 자신이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혹시라도 정의준과의 비교 기사를 강호가 확인하고는 마음이 흔들려 경기력에 지장이 있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얼른 들고 있던 태블릿을 감추고 있었다.
그 뻔한 행동에 강호는 이렇게 대꾸한다.
"인터넷을 태블릿으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스마트폰은 나도 가지고 있어."
강호는 그렇게 말한 후 형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내고 있던 휴대폰을 활성화하여 인터넷 창을 연다.
그리고는 대우가 거론한 정의준과의 비교 기사를 곧장 찾아내는 모습이다.
[44홈런 백강호, 42홈런 정의준. 문학에서 맞붙다!]
지나칠 정도로 간단한 타이틀과 함께 기사 내용을 읽어본다.
기사의 주된 내용은 다른 기록은 배제하고, 두 사람의 홈런 페이스를 비교하며 과거 정의준의 기록에 무게감을 두는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강호는 일반적인 평가와는 어긋나 보이는 기사 내용에 고개를 갸웃하며, 기사를 써낸 기자의 이름와 언론사를 확인해 본다.
"이거, 와이데일리 기사잖아? 대우 너는 잘 모르는구나. 와이데일리는 와이번스 구단의 보도 자료를 내는 일종의 자회사야. 그러니까 그 기사는 정식 기사가 아니라 와이번스 구단 쪽에서 내보낸 구단 보도 자료로 봐야해. 자 구단 소속인 정의준 선배에게 유리한 기사를 내는 게 당연한 거지."
기사 내용을 읽어본 후 별 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하는 강호.
그의 말에 대우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와이번스 보도 자료라고요? 그럼 그렇지. 정의준 선수한테 너무 유리한 내용만 적혀있더라니. 그런데 선배님은 와이데일리 기사가 와이번스 자회사인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런 건 알아서 뭐하게? 경기 외적으로 많이 안다고 경기 잘하는 건 아니니까 경기 준비하는데 집중하도록 해."
강호는 대우의 물음에 그렇게 답하며 정의준과의 비교 기사를 닫는다.
그러자 강호가 미처 보내지 못한 카톡 메시지가 휴대폰 화면에 전시되고 있었다.
대우는 카톡 메시지를 잘 보내지 않은 강호가 써놓은 미 발신 메시지에 관심을 보인다.
"선배님, 이건 뭡니까? 선배님 친형한테 보내는 메시지에요?"
대우는 묻고 있기는 했지만, 딱히 관심이 있다거나 많이 궁금한 상태는 아니었다.
메시지 수신자가 여자가 아니라 강호의 친형인 까닭에 형식상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대우의 손이 강호의 오른 쪽 어깨에 닿는 순간, 이변이 발생하고 만다.
대우의 물음에 '별 거 아니야'라고 답하며 작성한 카톡 메시지를 닫으려던 강호는 자신의 어깨를 누르는 대우의 손길에 그만 손가락이 미끄러지고 만다.
매일같이 악력 운동을 하는 강호를 따라서 대우 역시 매일같이 악력 운동을 거르지 않았던 까닭에 대우 본인이 의식하는 것보다 악력이 상당했다.
그런 대우의 손길이 강호의 어깨에 닿자 순간 취소 버튼을 터치하려던 강호의 손가락이 발송 버튼은 터치하고 만 것이다.
"어?!"
강호는 대우로 인한 터치 실수로 작성 대기 중이던 메시지가 발송되어 버리자 당황한 목소리를 낸다.
강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던 대우는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는 강호의 어깨에서 얼른 손을 뗀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다.
형과의 카톡방에는 강호가 작성한 메시지가 발신 상태로 전송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강호: 형, 나는 다 이해해. 형이 누구를 사귄다고 해도 다 이해할 수 있어. 그러니까 누구야? 한국사람 아니지? 내 생각이 맞는 거지?] ①
아직 수신자가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의미인 숫자 1이 전송된 메시지 옆에 떠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호는 순간 당황하여 이마에서 땀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는 자신의 등 뒤에서 역시나 당황한 표정의 대우에게 묻고 있었다.
"카톡 메시지 발송한 거 어떻게 취소해?"
"네? 메시지 취소요?"
"그래, 이 자식아. 너 때문에 발송됐잖아. 이거 어떻게 취소하냐고? 카톡 본사에 전화하면 되는 거야?"
"그게...한 번 보낸 카톡 메시지는 취소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 취소가 안 돼? 그럼 이 메시지를 우리 형이 언젠가는 볼 거라는 얘기잖아?"
"그..렇죠. 대체 무슨 메시진데요? 저한테도 보여 주십시오."
"안 돼! 너는 지금 당장 카톡 본사에 전화해서 메시지 발송 취소하는 거나 물어봐. 지금 당장!"
"아..넵."
대우는 갑자기 무섭게 태도가 변한 강호의 지시에 인터넷으로 카톡 콜센터 전화번호를 찾아보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때 강호가 또 한 번 놀란 목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안 돼!"
"네? 왜 그러십니까?"
"1 이 사라졌어! 카톡 메시지 옆에 1 이 사라졌다고. 그럼 이 메시지를 형이 읽은 거잖아?"
"그렇...겠죠."
강호는 순간, 판단력을 상실하고 휴대폰 전원을 꺼버리는 모습이다.
여전히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이게 다 대우 너 때문이야. 이 자식아. 형이랑 겨우 가까워 졌는데 이런 메시지나 보내버리고."
"아..죄송합니다. 선배님. 그런데 대체 무슨 메시지입니까? 저는 메시지 내용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네가 알 필요 없어."
강호는 여전히 메시지 내용을 궁금해 하는 대우를 향해 그렇게 대꾸하며 숙소 방을 벗어난다.
이날 강호의 휴대폰은 자정이 지날 때까지 계속 꺼져 있었다.
한편, 장소는 부산으로 옮겨진다.
강호에게서 이상한 메시지를 수신하게 된 친 형, 강수.
그는 지금 강호가 보낸 메시지를 해석하기 위해 모든 사고를 총동원하고 있었다.
"내가 누굴 사귀어?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이게 무슨 소리야?"
강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동생의 메시지에 즉시 답장을 보내본다.
강수: 강호야,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누구를 만나다고? 네 생각이 뭐가 맞아? 네 생각이 뭔데.
답장을 보내 봐도 강호에게는 답이 없었다.
강수는 동생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도록 여러 개의 메시지들을 추가로 보낸다.
[강수: 동생아. ]①
[강수: 응답하라.] ①
[강수: 메시지 무슨 뜻이냐고?] ①
[강수: 그러고 보니까 요즘 날씨가 많이 더워서 사람들이 더위 먹고 쓰러지고 그런다는데, 너도 그런 건 아니지?] ①
[강수: 요즘 훈련이 많이 힘들어?] ①
[강수: 형이 보약 한재 지어줄까?] ①
강수는 여전히 대답 없는 동생과의 카톡 방에 연달아 메시지를 보내며 걱정하는 모습이다.
처음에는 날씨가 더워 동생이 헛소리를 하는가 싶다가도 무더운 날씨 속에 야외에서 경기를 펼칠 동생의 모습이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메시지 옆에 1 이라는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걸어본다.
-고객님의 전원이 꺼져있어, 삐 소리 이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삐이~~~~
강호의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는 강수.
잠시 걱정을 해보다가 동생의 직업 특성을 떠올려보고는 이내 걱정을 접는다.
"훈련 들어갔나 보네. 시간이 딱 훈련 시간이니까."
강수는 동생이 경기 전 훈련에 들어간 까닭에 휴대폰을 끈 것으로 보고 걱정을 접는다.
어차피 6시 30분이 되면 TV화면을 통해 동생의 안부를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던 까닭이었다.
동생이 유명 스포츠 선수여서 좋은 점 중에 하나였다.
연락이 닿지 않아도 TV중계 화면을 통해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것, 강수는 오늘 작업을 일찍 끝난 까닭으로 집에 일찍 들어가 동생의 경기를 관전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때 강호에 대한 상념을 깨는 소리가 들려온다.
띵동.
"38번 고객님, 이쪽으로 오세요~"
강수는 자신이 손에 쥔 대기표 번호를 부르는 창구 직원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가 지금 머물고 있는 장소는 작업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우체국이었다.
우체국에 들린 강수의 손에는 꽤나 두툼해 보이는 우편물 하나가 손에 들려 있었다.
강수는 자신을 바라보는 우체국 직원에게 다가가 우편물을 내민다.
"국제 우편이요. 호주에 보낼 겁니다."
"아, 그러십니까? 이쪽으로 주시겠어요?"
강수는 우체국 창구 직원의 안내대로 우체국 저울 위에 우편물을 내려놓는다.
그 후 국제 우편 발송을 위한 비용 지불과 절차를 끝낸 강수는 창구 직원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수고하세요'라고 작별을 고한 후 우체국을 나서는 모습이다.
며칠이 지나 강수가 보낸 우편은 항공편을 통해 호주로 이동하게 된다.
몇 시간이 지나면 수신인에게 도착하게 될 우편 내용물은 다음과 같았다.
강호가 표지 모델로 실린 야구 매거진 몇 부와 강호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해서 만든 책들, 밀봉된 봉투 안에 든 500달러의 호주 달러.
그리고 강수가 직접 쓴 편지가 담겨 있었다.
강수가 요 몇 주 동안 영어를 공부한 이유.
그것은 막내 동생인 진주가 현재 호주에서 지내고 있는 주소를 구글로 검색하고, 또한 우편물 표지에 쓸 주소지 등의 영어 작문을 위한 것이었다.
강호가 보았던 달러는 사실 미국 달러가 아닌 호주 달러.
진주에게 보낼 5장의 호주 달러였던 것이다.
그리고 강수가 쓴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진주야.
큰 오빠다.
네가 SNS나 페이스북을 안 해서 이렇게 옛날 방식으로 소식을 전하게 됐구나.
휴대폰은 가급적이면 한국하고 로밍 되는 걸 썼으면 좋겠다.
네가 호주에서 개통한 휴대폰을 쓰니까 전화할 방법이 마땅치가 않아.
번호는 언제 알려줄 생각이야?
아무튼 잘 지내고 있지?
오빠들은 잘 지내고 있다.
강호는 지금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야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어.^^
강호가 표지에 실린 야구 잡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너는 야구에 관심이 없으니까 이렇게 직접 눈으로 봐야 믿겠지?
진주, 너는 어렸을 때부터 의심이 많았으니까.
사실은 이런 말이나 하려고 편지를 쓴 건 아니야.
나는 네가 외국에서 그만 고생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주었으면 한다.
이제 옛날같이 힘들게만 살지 않아도 돼.
이 오빠가 사직동에 집도 샀고, 강호도 유명한 야구 선수가 되서 CF계약도 하고 그러거든.
오빠들이 진주 너 하나만큼은 충분히 책임질 수 있어.
공부는 한국에서 계속하게 해줄 테니까.
그만 한국으로 돌아와라.
이제 가족사진을 보지 않으면 진주 네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아.
이 오빠는 네 얼굴을 잊어버리는 게 많이 겁이 난다.
한국에는 네 삶이 없다고 호주로 떠나버렸을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붙잡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말은 아니야.
그냥 잠시 돌아와서 강호가 야구하는 것도 함께 구경하고, 밥도 같이 먹었으면 한다.
이제 강호의 데뷔 시즌이 끝나는 것도 3달 밖에 남지 않았어.
강호가 프로에 데뷔하면 네가 경기장에서 꼭 응원해줄 거라 말했던 기억 나?
그 때는 강호도, 너도 어려서 지금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 오빠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네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진주 너에게 편지를 보낼 거다.
진주 네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편지 보내는 걸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네가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우편에 500달러를 동봉해서 보낸다.
진주 네 성격대로라면 이 돈을 받지 않으려고 하겠지만, 돌려주고 싶으면 한국에 직접 와서 돌려줘.
한국에 와서 돌려줄 마음이 없다면, 이 돈으로 끼니 거르지 말고 식사라도 챙겨먹도록 해라.
일주일 후에 다시 편지 보낼게.
진주야,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부디 호주에서도 건강하게 지내라.
2019년 8월 2일 한국에서 큰 오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