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10화 (20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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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강수 씨

구단 사장실에서 지 사장의 원정 버스 교체 발언이 있은 후, 시간이 지나 선수들은 어느새 사직구장에 도착해 있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지나 있어서 날짜는 8월 1일에서 2일로 바뀌어 있는 상태였다.

"아이고, 힘들어라. 원정 다니는 것도 사람 할 짓 못 된다니까. 나는 버스 의자가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 허리가 너무 베기는 느낌이라니까."

가장 먼저 버스에서 뛰어내린 문표가 본인의 허리를 두들기며 불평하는 모습이다.

다음 타자로 버스에서 내린 지명타자 채중석이 그런 문표의 말을 듣고 대꾸하고 있었다.

"적성에 안 맞으면 안 되지. 아침에 일어나면 곧장 인천 원정 가야 되는데? 그렇게 안 좋으면 감독님한테 말해서 라인업에서 빼달라고 그래. 아예 2군으로 보내달라고 해도 좋고. 재활 군에서 쉬다 오면 고장 난 네 허리도 괜찮아 질 거야."

"무슨 소립니까, 그게? 제 허리는 고장 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라인업에서 빠지면 제 자리 날름 하시려고요? 중석 선배는 이제 1루 수비도 안 보지 않습니까?"

"요즘 이거저거 가릴 형편이 어딨어? 문표 네 자리가 비면 1루수든 포수든 가리지 않고 볼 거야! 후반기에는 내내 대타로만 타석에 섰더니 좀이 쑤시네. 문표 너 컨디션 안 좋으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대신 1루수 글러브 낄 테니까."

"사양할게요."

문표와 중석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선수들이 차례로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강호 역시 백 팩을 챙겨들고는 버스에서 내려 선배 선수들에게 인사하고는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다.

곧장 집으로 가려는 강호를 향해 일부 선배 선수들이 말을 건네며 강호의 발걸음을 붙잡아보려 한다.

"강호 벌써 집에 가는 거야? 오늘 10타점이나 해냈는데 축배라도 한 잔 들어야지? 술이 뭣하면 밥이라도 먹고 들어가자."

선배 선수들은 강호의 대활약으로 이긴 오늘의 경기를 축하하기 위해 술자리를 제안하고 있었다.

강호는 그런 선배들의 제안을 좋은 말로 거절한다.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이 있어서요. 그리고 내일 소집은 8시까지니까 일찍 들어가 봐야죠. 지금 들어가도 일찍 들어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강호는 좋은 말로 선배들의 제안을 거절하며,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시즌 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철칙이 있는 강호.

선배들이 식사를 제안했다지만, 식사 자리가 술자리로 이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단호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뭐 별 수 없지. 주인공이 빠진다는데 우리도 집에 들어가자. 강호 말대로 내일 일찍 출근해야 되잖아? 다들 집에 갑시다!"

선배들은 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들 역시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선배라는 권위를 내세워 회식을 강요하기에는 남은 일정이 바쁘기도 했고, 강호의 컨디션을 유지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강호가 팀 라인업에서 빠지면 상위권 경쟁이고 뭐고 없는 거야. 1군에 복귀한 제인이도 아직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 이런 상태에서 강호가 빠져버리면 우리 팀은 그대로 폭망인 거야!'

집으로 향하는 선배 선수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어느새 팀은 강호가 중심을 잡아주지 않는 라인업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된 상황.

혹시라도 자신들과의 회식 자리로 강호의 컨디션이 하락하여 슬럼프라도 생기게 된다면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후배인 강호의 권유대로 곧장 집으로 들어가는 선배들이었다.

그런데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밥이라도 한 끼 먹고 들어가자."

지명타자 채중석은 문표의 어깨에 손을 턱 하고 걸치며 식사를 제안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표는 그런 중석의 팔을 치워내며 대꾸한다.

"우리 4번 타자님 말 못 들었습니까? 강호 후배 말대로 일찍 집에 들어가야죠. 제가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다가 컨디션 떨어지면 중석 선배가 제 자리 차지하시려고 그러는 거죠? 안 통합니다."

문표의 단호한 말에 중석은 '쳇, 들켰네'라고 답하며 주차된 자신의 차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시즌 첫 8연승을 달성했음에도 선수들은 축배를 들 시간 없이 다음 시리즈를 대비하고 있었다.

은연중에 바람직한 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강호의 발걸음은 잠시 후 사직동 형의 집에 도착해 있었다.

형은 웬일인지 원정을 다녀온 강호를 배웅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강호가 원정을 다녀올 때는 항상 집 앞에 배웅을 나와 있던 형, 강수.

그런 형이 배웅을 나오지 않는 모습에 괜한 걱정이 든다.

'출장을 간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오늘은 일이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네.'

강호는 형의 작업 현장이 오늘따라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강호의 예상은 빗나가 있었다.

형은 먼저 잠이 들거나, 쉬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 강호 네가 이 시간에 집에 무슨 일이야? 시간이 아직...응? 벌써 한 시가 넘었어?"

형은 주방의 식탁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가 현관으로 들어서는 강호를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시간이 자정이 넘은 것조차 모른 채 집중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 없는 형이라서 강호로서는 의문이 들고 있었다.

"형, 뭐하고 있었어? 일이 많은 거야? 아니면 태호 할머니 일 때문에 할 일이 많아? 내가 좀 도와줄까?"

"아니, 태호 할머니 일은 걱정할 거 없어. 의식도 돌아왔고, 오늘 날이 밝으면 수술에 들어갈 테니까. 수술도 간단한 레이저 수술이라서 당장 다음 주부터 정상적인 생활은 가능할 거야. 물론 몇 주 정도는 입원해야겠지. 그 일은 내가 챙길 테니까. 강호 너는 신경 안 써도 돼."

형인 강수는 그렇게 대꾸하며 식탁에 올려져 있던 것들을 급히 정리하는 모습이다.

강수의 손이 모든 물건들을 정리하기 전, 그동안의 선구안 훈련으로 다져진 강호의 시선이 빠르게 식탁 위의 물건들을 살핀다.

'한영사전, 야구 매거진, 그리고 저건 뭐야? 영어, 절대 미국 갈 필요 없다? 초보자를 위한 영어 작문법?'

강호는 형이 식탁을 치우기 전, 이미 모든 내용들을 스캔한 상태였다.

강수는 그런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식탁 위의 물건들을 챙겨들고는 방에다 옮겨놓는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얼굴로 또 다시 시간을 거론하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완전 인터스텔라네. 잠깐 본다는 게 집중을 해버리니까 시간이 금방 가버리네?"

강호는 4년이나 지난 영화를 거론하며 시치미를 떼는 형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깨에 메고 있는 백 팩을 내려놓을 생각도 없이 곧장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형이 왜 영어를 공부하고 있어? 어디 대사관에서 도배라도 해 달래?"

"그런 게 아니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거지. 요즘 기술 시장도 경쟁이 치열하다고. 혹시 알아? 내가 내 후년쯤에는 미국 가서 도배하고 있을지. 그리고 강호 네가 몇 년 후에 메이저리그 진출했을 때 미국 야구장 찾아가려면 미리 공부해둬야지. 안 그래?"

"FA까지 8년 남았어. 무슨 메이저리그야?"

"포스팅은 FA전에도 가능하잖아. 강호 너 정도 기록에 유격수 포지션이면 6년차에 포스팅으로 미국 갈 수도 있는 일이지. 사람 인생은 모르는 거라고."

형은 그렇게 대화를 정리하며 '나는 이만 자야겠다' 라고 말을 얼버 부리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모습이었다.

어색해 보이는 형의 태도에 거실에 덩그라니 남은 강호는 눈썹을 씰룩이고 있었다.

'수상한데...'

강호는 먼저 방으로 들어가 버린 형의 방문을 한동안 노려보다가 백 팩을 챙겨들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형의 수상한 행동은 그날 밤의 일이 끝이 아니었다.

인천 원정길에 오르기 위해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난 강호는 오늘따라 늦은 출근을 하고 있는 형과 거실에서 마주하게 된다.

강호가 잠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섰을 때 형인 강수는 각종 장비들을 현관에 옮겨 놓으면서 지갑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선구안 훈련으로 다져진 강호의 매서운 눈이 무엇인가를 포착하고 있었다.

'달러? 왜 형 지갑에 달러가 들어있는 거야?'

강호는 얼핏 보게 된 형의 지갑 속에 들어있는 달러 지폐를 발견하고 있었다.

강수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일찍 일어난 동생에게 '식탁에 아침 차려놨다. 밥 먹고 나가~' 라고 말하며 급히 현관을 나서는 모습이다.

강호는 그런 형에게 서둘러 말을 붙여본다.

"저기 형. 그 있잖아."

"강호야, 내가 조금 늦었거든? 급한 일 아니면 카톡으로 하자! 형 일단 나갈게~"

강호의 부름에도 형은 출근이 늦었다며 급하게 현관을 나가버린 후였다.

또 다시 거실에 홀로 남은 강호는 이번에도 눈썹을 씰룩이며 고민에 들어간다.

'확실히 뭔가 있어. 몇 년 동안 형이 지각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지갑 속에 달러도 이상하고, 어제 식탁에서 영어 공부하는 것도 이상했고.'

강호는 형의 수상한 행동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한 가지 가설을 세우기에 이른다.

'혹시, 외국인 여자를 만나기라도 하는 건가? 형도 이제 서른 살이니까 연애할 때는 지났잖아?'

처음에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생각이었지만, 계속 생각하다 보니까 어느 정도 타당성이 느껴졌다.

형의 취향을 알고 있는 강호로서는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가설이었던 것이다.

'형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보지 않고, 항상 외국 드라마나 영화만 봤어. 그리고 이상형이라고 말한 여자연예인들은 죄다 안젤리나 졸리나, 리한나 같은 외국 여자들밖에 없었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형이 외국 여자랑 만나는 사실이...'

강호는 어느새 그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런 강호의 고민은 형이 차려준 아침밥을 챙겨먹고 출근 하는 길에도, 그리고 원정 버스가 주차된 사직구장에 당도할 때까지만 해도 계속되다가 원정 버스에 오르기 직전에야 생각을 멈추게 된다.

형에 대한 강호의 고민이 멈춘 이유는 바로 바뀌어버린 원정 버스에 있었다.

잠시 달라진 원정 버스의 외관에 발걸음을 멈춘 강호의 곁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와! 이거 뭐야? 우리 원정 버스가 왜 이래? 누가 화장시킨 거야? 오늘따라 완전 새끈해 보이는데?"

놀란 목소리로 탄성을 뱉어내고 있는 사람은 문표였다.

그는 새것으로 바뀐 원정 버스의 외관을 바라보며 연신 놀란 목소리를 낸다.

그때 원정 버스의 창문 하나가 열리며, 누군가가 두 사람을 향해 말을 걸어온다.

"문표, 강호! 어서 버스에 타 봐. 안에는 더 좋아. 구단에서 원정 버스를 교체했다나 봐. 카시트에 안마기가 달려있다니까."

"네? 안마기요? 구단에서 그런데 돈을 썼다고요? 베어스나 히어로즈가 아니라 우리 자이언츠 구단에서요?"

문표는 중석의 말에 놀라면서 얼른 버스 내부로 발걸음을 옮긴다.

과연 중석의 말대로 새것으로 교체된 원정 버스 내부는 기존의 버스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좌석마다 설치되어 있는 다리 안마기와 미니 LED모니터, 그리고 선수들의 갈증을 채워줄 음료들이 채워진 간이 냉장고까지.

기존에는 없었던 편의 시설들과 함께 한층 더 넓어진 시트 좌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오, 좌석이 엄청 넓어졌네! 이제 장거리 원정에 허리 아플 일은 없겠는데? 안 그래?"

문표는 달라진 원정 버스의 모습에 기뻐하며, 얼른 자신의 자리로 달려가 앉아 본다.

그리고는 양 손으로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만족해 하는 모습이다.

"시트 완전 편하네. 강호 후배도 앉아봐. 승차감 쩔어. 우리 안마기 한 번 해볼까?"

문표는 강호에게 앉을 것을 권하며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안마기를 작동시키고 있었다.

"좋구나. 이런 게 있었으면 진즉에 좀 설치해주지. 이거 1군 버스만 바꾼 거 맞지? 이제 상동에 있는 애들이 1군 버스 타보려고 혈안이 되겠네. 내 자리 안 뺏기려면 정신 차려야겠어."

문표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강호는 문표의 곁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는다.

그 후 속속들이 버스에 오르는 모든 선수들은 놀란 눈으로 달라진 버스를 둘러보는 모습이었고, 잠시 후 모든 선수단이 버스에 오르자 버스는 인천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으어어어~ 다리가 분해되는 느낌이야. 이 안마기 떼서 집에 들고 싶어. 너무 좋아! 강호 후배 뭐해? 한 번 해보라니까."

묘한 신음을 토해내며 제안하는 문표의 말에 강호는 대답이 없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강호가 조심스레 꺼낸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문표 선배. 외국인 형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외국인 형수요. 만약에 말인데요. 형수님이 한국인이 아니라면 저는 어떻게 해야 되죠?"

강호의 뜬금없는 질문에 문표는 순간 말문이 막힌다.

지금 강호에게 중요한 것은 원정 버스가 교체된 사실이 아니라 형의 수상한 행동으로 자신이 내린 결론에 있었다.

어느새 강호는 형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강호의 오해 속에 원정 버스는 인천을 향해 빠르게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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