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08화 (20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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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연승을 이끌다

자이언츠 덕 아웃은 고의사구를 얻어 1루로 걸어 나가는 강호의 모습을 보며 표정이 어두워진다.

먼저 불안감을 내보인 것은 타격코치인 정호종이었다.

"김 수석님. 대타를 써야 되는 게 아닐까요? 오늘 제인이가 안타를 치긴 했어도 정타는 아니었잖습니까? 수술 후유증도 완쾌된 게 아니고, 오늘 타격하는 것 보니까 어깨가 좀 빠지는 모습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대타를 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타자의 타격을 직접 확인하고 지도하는 타격코치가 그렇게 말하자 김 수석은 순간 고민이 된다.

정 코치가 자신에게 의견을 전달한 의미는 손성조 감독에게 대타를 권유하라는 의사표현이기도 했다.

잠시 망설이며 고민해보던 김 수석.

그가 이내 고개를 내젓는다.

"아니, 1아웃 상황이니까 병살타만 안 나오면 찬스가 한 번 더 있는 거잖아. 제인이도 실전 경기에서 감을 잡아야 하고, 제인이 정도 되는 타자의 클래스가 어디 가는 게 아니잖아? 일단 이번 타석은 제인이한테 맡겨보자고."

김 수석의 말에 정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나는 모습이다.

타격 코치인 자신이 이 정도 권유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타격 코치라는 자리는 타자들을 보호해야하는 입장이다 보니 더 이상 대타를 권하지 않았다.

그런 정 코치의 생각은 이글스 투수가 던진 공 하나로 뒤바뀌고 만다.

티익.

초구를 노린 제인의 빗맞은 타구가 1루수 정면으로 향한다.

"아웃!"

땅볼 타구를 잡은 1루수 김태준의 발이 1루 베이스를 밟은 후 공은 곧장 2루수에게로 향했다.

"아웃!"

1루 주자였던 강호가 최선을 다해 뛰어봤지만, 더블 플레이를 막을 수 없었다.

황제인의 타구가 1루수 정면이었던 까닭에 리그 최상위권의 주력을 가지고 있는 강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 코치의 우려는 현실이 돼버렸고, 대타 기용을 반대한 김 수석으로서는 입맛이 쓸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한 번 더 권유 드렸어야 하는 건데. 아쉽구나.'

정 코치는 혀를 길게 내밀며 아쉬워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반대로 표정이 밝아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와아!"

"김태준이 오늘 잘 하네!"

이글스 팬들은 위기 상황을 막아낸 태준의 수비에 환호한다.

이제 경기 분위기는 이글스 쪽으로 완전히 넘어간 상황.

이글스 팬들은 이대로 8대 7 승리를 낙관하며 웃는 얼굴로 경기를 지켜본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반전이 남아 있었다.

9회 초가 되자 승리를 기다리고 있던 이글스 팬들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어간다.

"볼 넷."

마무리 투수로 오른 이글스의 전우량이 9회 선두 타자로 나선 9번 타자 오진택에게 볼넷을 내주면서 분위기는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더욱 심화시킨 것은 다음 타자인 유성철이 번트를 때려내면서 부터였다.

딱.

딱 소리와 함께 그라운드에 깔린 번트 타구에 포수와 투수, 3루수가 동시에 타구를 향해 이동한다.

"비켜, 비켜!"

3루수 손강민이 급하게 목소리를 높이며 타구를 잡아내고는 1루를 향해 집어 던진다.

그런데 그가 공을 던지는 위치가 좋지 않았다.

"아...!"

이글스 팬들의 긴 탄식과 함께 손강민의 송구가 빗나가고 만다.

1루수 김태준이 급하게 빠져버린 공을 집어 들었지만, 1루 주자 오진택은 3루에, 타자 주자 유성철은 2루를 밟아버린 상황.

아쉬운 실책으로 이제 득점권에 역전 주자를 보낸 상황에서 2번 타자인 문표가 타석에 선다.

문표는 타석에 서며 포수 차연목을 향해 입을 연다.

"아~ 내가 경기를 뒤집어 줘야겠네. 이번에는 기습 번트 말고 정상적으로 타격해야겠네요. 여기서 안타 하나면 영웅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너스레를 떨며 말을 건네 오는 문표의 물음에 연목은 잠시 마음이 흔들린다.

'문표 녀석이 기습 번트라도 대버리면 그대로 1타점이야. 잘못하다가는 내야 안타로 연결될 수도 있는 거고. 그런 상황은 막아야 돼!'

문표의 말로 인해 마음이 복잡해진 연목은 결국 투수 리드에 집중하지 못해 문표를 볼넷으로 내보내고 만다.

이제 상황은 무사 만루가 되고, 타석에는 대타 채중석이 들어서고 있었다.

중석은 타석에 서기 전, 타격 코치에게 들은 조언대로 신중한 승부를 벌이며 이글스 배터리를 괴롭힌다.

그리고 8구째 승부 끝에 삼진을 잡기 위해 들어오는 공을 향해 배트를 휘두른다.

'들어왔어!'

중석은 확신과 함께 공을 때린다.

그러나 그런 중석의 확신은 타구가 바닥에 깔리면서 무산되어 버리고, 중석은 '젠장'이라는 말을 뱉어내며 1루를 향해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타악.

타구를 잡은 유격수 하주성이 급히 홈을 향해 공을 뿌린다.

1점을 내줘버리면 동점이 되는데다가 무사 만루의 상황이라 홈으로 향하는 3루 주자를 택한 것이었다.

그런 하주성의 선택은 3루 주자 오진택을 홈에서 아웃시키면서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아웃!"

주심의 아웃 콜을 들으며 포수 차연목이 1루를 향해 공을 송구한다.

그런데 3루 주자 오진택이 홈에서 아웃되는 것을 확인한 중석이 이를 악물고 1루 베이스를 향해 뛰어 든다.

120kg이 넘는 거구의 채중석이 돌진해 오는 위협적인 모습에 1루수인 김태준이 순간 움찔할 정도였다.

'윽! 부딪히면 박살나겠는데?'

1루수이자 이글스의 주장인 김태준은 쇄도해 들어오는 중석의 주루에 움찔하면서도 몸을 피하지는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오늘 경기는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경기인 까닭이었다.

보기 드물게 1루로 레그 퍼스트 슬라이딩해 들어간 중석의 재치로 1루 승부는 접전처럼 보였다.

"세이프!"

1루심의 세이프 선언에 공을 직접 받은 김태준이 반발하고 나선다.

"아웃입니다. 아웃이에요! 비디오, 비디오!"

태준은 조금 전 상황이 아웃이라고 주장하며 이글스 덕 아웃에 비디오 판독 시그널을 보낸다.

그 신호를 받은 이글스 감독은 곧장 주심에게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주심이 그라운드로 돌아온다.

오랜 시간 동안 비디오를 분석한 주심의 결정으로 양 팀의 표정이 바뀌는 모습이다.

"세이프!"

주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3루 주자 오진택이 아웃되긴 했지만, 채중석이 1루에서 세이프 되며 아웃 카운트 하나만 올라간 채 이제 다음 타자에게 타석이 넘겨진다.

그 사이 1루에서 세이프 된 채중석은 대주자인 한택근으로 교체되고 있었다.

발 빠른 주자 택근이 1루를 밟은 사이 타석에 선 다음 타자는 바로 강호였다.

"백강호! 날려라!"

"이글스 이놈들아! 이번에도 한 번 걸러봐라! 너희 자꾸 백강호 선수를 거르니까 이런 상황이 오는 거라고!"

"백강호 선수, 안타 하나만 쳐주세요! 안타 하나만!"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타석으로 걸음을 옮기는 강호에게 열화와 같은 응원을 보내준다.

반대로 이글스 홈팬들은 강호를 향해 야유를 쏟아내며 그의 집중력을 흩어놓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양 팀 팬들의 상반된 반응 속에 타석에 선 강호.

그는 지금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주자 만루 상황입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의 메시지를 확인하며 타석에 선 강호.

그의 눈에는 루상을 가득 채운 주자들이 보이고 있었다.

1루 주자는 대주자로 바뀐 한택근, 2루 주자는 문표, 3루 주자는 유성철이었다.

모두 팀에서 상위권의 주력을 가진 선수들이라 팬들의 바람대로 안타 하나만 때려내면 역전이 만들어지는 상황이었다.

'9회 초, 1사 만루 상황. 경기 스코어는 7대 8. 자신들이 한 점 앞선 9회 상황에서 주자가 가득 찬 가운데 나를 고의사구로 거를 수는 없겠지. 볼넷 하나면 동점이 돼버리니까. 이번 타석만큼은 볼넷 없이 승부가 들어오게 될 거야!'

강호는 이번 타석만큼은 고의사구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4회와 7회 상황에서는 루가 하나 비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고의사구로 거를 수 있었지만, 지금은 9회 1점차 상황에 1사 만루였다.

강호 본인에게 볼넷을 내어주면 동점이 될 뿐더러 1사 만루의 기회가 계속 연결되고 만다.

'어떻게든 승부를 보려 하겠지. 1회와 2회에 때려낸 홈런을 의식해서 직구 승부보다는 유인구 위주로 승부하려 할 거야. 유인구를 던지더라도 결국 승부를 위해서는 스트라이크를 던져야만 해. 만약 지금 상황에서 내가 상대편 배터리라면 어떤 구종의 공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할까?'

강호는 상대 배터리의 볼 배합을 예측해보며 타격 자세를 취한다.

그가 선택한 타격 자세는 오픈 스탠스 자세.

디딤 발인 왼발의 각도를 펼쳐 시야를 넓게 보려는 타격 자세로 전환하며 어떤 구종이라도 대처할 것이라는 모션을 취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차연목 포수는 순간 눈을 크게 뜬다.

'백강호가 왼 발 각도를 벌렸어! 장타보다는 컨택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미야. 정타 하나만 때려내도 역전이 가능하니까 컨택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거야!'

연목은 오픈 스탠스로 자세를 잡은 강호의 생각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의 예측은 예상이라기보다는 확신에 가까운 것이었다.

'상대 타자가 장타력을 포기하고, 컨택을 선택했을 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존재한다. 어쩌면 백강호의 타석에서 경기를 끝낼 수도 있겠구나!'

베테랑 포수인 차연목은 강호의 타격 자세 변화를 확인하며 생각을 정리한다.

치열했던 오늘 경기를 자이언츠의 4번 타자이자 시즌 4할과 40-40을 기록하고 있는 강호의 타석에서 끝낼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드라마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오늘 경기는 7대 0으로 지고 있던 걸 뒤집은 경기야. 백강호의 타석에서 더블 플레이만 유도할 수 있으면 최고의 역전승을 만들어낼 수 있어.'

연목은 결정을 내린다.

강호에게 땅볼을 유도해서 이번 경기를 끝내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담아 마무리 투수인 전우량에게 초구 싸인을 낸다.

연목의 초구 싸인에 우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루상의 주자들을 한 번 살펴본 후, 강호를 상대하기 위한 초구를 던지는 모습이다.

퍼엉!

우량의 초구가 미트에 틀어박힌 후, 주심은 곧 볼 판정을 내린다.

"볼 원."

주심은 우량의 초구 패스트볼이 다소 빗나갔다고 판정하고 있었다.

공을 직접 받은 포수 차연목도 주심의 볼 판정에 납득하고는 투수에게 공을 되돌려 준다.

어차피 그가 낸 싸인도 스트라이크 존이 아닌 우타자의 바깥 쪽 코스를 공략하는 포심이었다.

강호의 배트가 딸려 나와 준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다음 볼 배합을 위한 설계라고 여기면 되는 일이다.

"볼 투."

이어서 던진 전우량의 2구 또한 볼이 된다.

이번에는 바깥쪽에서 안으로 말려들어오는 백 도어 슬라이더였지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지는 않았다.

컨택 위주로 타격 전략을 세운 강호에게 좋은 코스의 공은 주지 않을 생각인 것이다.

타석에 선 강호도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바깥쪽으로 포심 하나, 슬라이더 하나. 이제 스트라이크가 들어올 차례야. 평범한 포심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지는 않을 테고. 슬로우 커브로 타이밍을 뺏는 작전이 들어올 수도 있어. 아니면 몸 쪽으로 붙는 슬라이더가 올 확률도 있고.'

강호는 이글스 배터리의 승부구를 기다리며 복잡한 생각에 빠진다.

그러다가 무언가가 떠오른 것인지 전우량의 3구째에 벼락같이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만루 상황에서도 타격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은 강호는 전우량의 3구째 공에 확신을 가지게 된다.

'이번 경기는 내 힘으로 끝낸다!'

따악!!

확신에 찬 강호의 스윙은 이글스 파크를 침묵하게 만드는 타격음이 되고, 곧 그의 타구가 이글스 파크의 좌중간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포수 차연목의 3구째 싸인은 바로 컷 패스트볼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컷 패스트볼을 연마하기 시작한 전우량.

타자의 타이밍을 뺏기는 힘든 공이지만, 범타를 유도하기에는 그보다 더 좋은 구종도 없었다.

강호의 땅볼 타구를 유도하기 위해서 연목이 택한 것은 바로 컷 패스트볼이었던 것이다.

패스트볼 계열이긴 하지만, 볼 끝이 말려 들어가는 변종 패스트볼에 강호의 배트가 빗맞을 것이라 생각했던 차연목의 계획은 실패하고 만다.

기간제 아이템의 효과로 투수가 던진 공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강호에게는 그저 구속이 느린 패스트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넘어갔어!!"

"와아, 그랜드 슬램이다!"

강호의 만루 홈런을 확인한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목소리가 이글스 파크를 가득채운다.

잠시 침묵으로 휩싸였던 이글스 파크가 살아나고, 생동감이 폭발하는 경기장의 주인이 된 것은 홈팬들이 아닌 원정 팬들이었다.

"역전이다, 역전!!"

"역시 백강호네! 이렇게 경기를 끝내 버리네!"

"9회 말 남았잖아? 경기 아직 안 끝났어."

"무슨 소리야, 인마. 이제 11대 8로 역전했는데 이글스가 한 이닝 만에 별 수 있을 것 같아?"

자이언츠 팬들은 강호의 홈런으로 11대 8, 재역전 상황이 만들어지며 이번 경기가 이대로 끝이 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 팬들의 확신은 곧 현실이 되어 경기는 자이언츠의 11대 8 승리로 끝이 난다.

이 승리로 대전에서 열린 이글스와의 시리즈 4차전 경기는 자이언츠의 시리즈 스윕으로 결정이 되고, 자이언츠의 연승은 8연승이 되어 버린다.

강호는 이날의 경기에서 팀이 기록한 11점의 득점 중 무려 10타점을 책임지는 위엄을 선보인다.

3개의 홈런으로 10타점을 때려내며 이글스와의 4번 타자 대결에서 완승을 거둔 강호.

자이언츠 팬들은 이날의 경기를 통해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의 4번 타자가 어떠한 선수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5타석 3타수 3안타 3홈런, 10타점과 3득점, 그리고 두 개의 고의사구.

이글스와의 시리즈 4차전 마지막 경기에서 강호가 올린 기록이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4번 타자의 위엄 있는 기록에 전국 자이언츠 팬들의 시선이 강호에게로 향한다.

또한 팀의 연승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커지게 된다.

"이제 8연승 찍었으니 10연승 가야지!!"

"우리 자이언츠가 3등이야! 오랜만에 차지한 3등자리 놓치지 않으려면 결국 연승만이 답이라고. 10연승 가자!"

팀의 10연승을 기대하는 팬들의 바람 속에 자이언츠의 일정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 작품 후기 ============================

207화에 오류가 있어서 수정했습니다. 실수로 교정 전 내용을 올려버렸네요. 1분만에 다시 올리긴 했지만, 그 사이 내용을 읽으신 분들께 착오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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