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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연승을 이끌다
강호의 홈런에 문표의 1타점을 더해 2회까지 7점을 얻게 된 자이언츠.
강호로 인해 시작된 활화산 타선은 황제인, 스팅의 연속 안타가 기록되며 기회를 이어가나 했지만, 후속 타자들의 범타로 추가 득점에는 실패하고 만다.
이글스에서는 2회에만 3명의 투수를 올리며 급히 진화에 나섰고, 그 선택이 성공하여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지 지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점수는 7대 0. 자이언츠의 일방적인 리드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글스 선수단은 팀이 크게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만만하게 시리즈 스윕을 내어줄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질 수는 없지. 여기는 홈구장이잖아. 홈에서 이런 식으로 대패하면 안 되는 거야!"
주장 김태준 이하 모든 선수들이 투지를 불태우며 2회 말을 맞이한다.
2회 말 이글스의 공격 기회에 선두 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다름 아닌 팀의 캡틴인 김태준 선수.
태준은 마운드에 오른 선발 투수를 응시하며 특유의 타격 자세를 잡고 있었다.
'오늘 이글스 타자들 눈빛이 다 왜들 이런 거야? 야구를 하자는 거야, 싸우자는 거야?'
오늘 자이언츠의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 투수 윤명호는 태준의 날카로운 눈빛에 조금은 위축되며 와인드업 자세를 취한다.
윤명호 투수는 82년생, 올해로 38살의 베테랑 투수로서 2002년에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여태까지 자이언츠 유니폼만을 입고 있는 고참 선수였다.
자이언츠 팬들은 그의 이름을 잘 알지만, 다른 팀 팬들이 윤명호 투수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주로 한, 두 선수만을 상대하기 위해 마운드에 오르는 원 포인트 릴리프 투수이기 때문이다.
원 포인트 릴리프(one point relief)투수란 특정 타자만을 상대하기 위해 등판한 구원투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구종이 단조롭고, 구위가 가벼운 좌완투수나 언더핸드 투수 등을 간혹 원 포인트 릴리프로 사용하는 구단들이 있었다.
자이언츠는 좌완 투수인 윤명호 투수를 오랜 시간 동안 원 포인트 릴리프로 활용해 오다가 2015년부터 간혹 팀의 5선발로 시험 기용하기도 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즌 초반 팀의 1선발을 맡아줘야 하는 외국인 투수, 지터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선발 투수 라인업이 한 칸씩 당겨지자 윤명호 선수를 대체 5선발로 선발 전향을 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선발 투수로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한 감독 체제에서 조금은 외면되고 있었던 윤명호 투수.
한 감독이 자진 사퇴한 후, 김민철 감독 대행 시기에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손성조 감독이 사령탑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다시 선발 투수로서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기존 4선발로 활약하던 성수제 투수를 불펜으로 돌리면서 결정한 피치 못할 선발 구성이었다.
그런 윤명호 투수를 자이언츠 덕 아웃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다름 아닌 투수코치 여민석이었다.
코치와 현역 투수의 관계로 마운드에 선발 투수로 오른 윤명호를 바라보고 있는 여민석 코치.
그의 생각은 지금 이러했다.
'4이닝 3실점. 요즘 팀 타선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만 막아줘도 명호로서는 100% 제 역할을 다한 셈이야. 5이닝까지 던져서 승리투수가 되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명호의 구위가 너무 약해. 전성기 때보다도 더 떨어진 구위로 5이닝을 던진다는 건 솔직히 무리겠지. 결국 중요한 역할은 명호에게 마운드를 넘겨받을 수제가 하게 될 거야!'
여 코치는 오늘 경기에서 윤명호 투수의 역할을 가장 처음 마운드에 오른 투수 이상으로는 보지 않았다.
이글스 선발 투수로 오른 송인중처럼 윤명호 또한 일종의 위장 선발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키는 오늘 경기에서 이미 계투로 낙점 받은 성수제 투수가 해주어야 했다.
'강호가 6타점을 만들어 줬으니 4이닝까지 4실점 정도면 충분해. 4실점까지만 지켜보도록 하자.'
그것이 경기가 있기 전, 손 감독과 사전 교감했었던 여 코치의 생각이었다.
여 코치의 시선 속에 윤명호 투수가 초구에 이어 2구째 공을 뿌리고 있었다.
그런데 카운트를 잡기 위해서 던진 공이 지나치게 존 안으로 몰리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저런!"
여 코치의 경악성과 함께 타자 김태준의 배트가 명호의 2구를 강타한다.
따악!!
배트가 공을 때리는 순간 장타를 직감한 여 코치의 시선이 외야로 이동한다.
마운드에서 공을 던진 윤명호 투수 또한 외야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이내 명호의 고개가 바닥으로 떨궈진다.
중계석에서는 김태준의 타구를 이렇게 설명하는 중이었다.
"김태준의 솔로포가 터집니다! 자이언츠의 4번 타자 백강호와 이글스의 4번 타자, 김태준이 오늘 홈런포 경쟁에 돌입합니다! 1점을 만회하는 김태준의 그림 같은 홈런, 이 홈런은 김태준의 시즌 20호 홈런으로 기록됩니다!"
캐스터는 일부러 격앙된 목소리를 연기하며 태준의 홈런이 시즌 20호 홈런이라는 것을 알린다.
캐스터가 다소 과장된 목소리로 중계하는 이유는 점수 차이 때문이었다.
자이언츠가 초반부터 크게 앞서가는 상황에 자칫 경기 분위기가 다운될 것을 염려한 것이다.
때로는 승부처가 아닌 상황에서 캐스터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그가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목소리를 높일 이유가 곧 다가온다.
"아! 또 터집니다! 사리오의 백투백 홈런! 이 홈런으로 이글스가 한 점 더 쫓아갑니다!"
캐스터의 중계대로 김태준에 이어 5번 타자로 오른 사리오마저 홈런을 때려내고 있었다.
그 후 6번 타자 양신우의 안타가 나오긴 했지만, 7번 타자인 하주성부터 모두 범타로 물러나며 2회 말 반격은 2점을 만회하는 것으로 그쳐야 했다.
그러나 2점을 모두 홈런으로 만회하게 되면서 자이언츠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던 분위기가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상황은 4회 말로 이동한다.
4회 초, 또 다시 강호가 득점권 상황에서 타석에 오른 상황을 고의사구 작전을 통해 해소해낸 이글스 선수단.
강호를 볼넷으로 출루시키고, 황제인의 병살타로 겨우 4회 초 실점을 모면한 상황이 끝나고 4회 말 이글스의 기회가 찾아온다.
"베이스 온 볼."
주심의 볼넷 선언으로 4회 말 선두 타자인 손강민이 1루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이제 타석에 서는 타자는 이글스의 4번 타자인 김태준.
그가 2회에 이어 또 다시 때려낸 타구로 인해 경기의 흐름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따악!
김태준이 특유의 스윙으로 때려낸 타구가 이글스 파크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곧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환호성이 이글스 파크를 점령한다.
"와아아아!!"
"김태준! 잘했다!"
이글스 홈 팬들의 환호성이 묵묵히 베이스를 돌고 있는 팀의 4번 타자 김태준에게로 향한다.
중계석 역시 이글스 팬들의 환호에 발맞춰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다.
"또 터집니다! 김태준의 홈런이 또 터지네요! 이 홈런으로 이글스는 두 점을 만회하며, 7대 0으로 뒤지고 있던 경기를 7대 4까지 쫓아갑니다. 자이언츠 백강호 선수가 멀티 홈런을 치면, 김태준도 칩니다!"
캐스터가 양 팀 4번 타자의 멀티 홈런을 지적하며, 오늘 경기 두 선수 간의 라이벌 구도에 불을 지핀다.
큰 점수 차로 인해 자칫 지루해질 수 있었던 경기는 김태준의 홈런으로 인해 또 다시 불이 붙는다.
따악!
5회 말, 또 한 번의 타격음이 이글스 파크를 가득 채운다.
이번에는 팀의 8번 타자인 우익수 김경헌이 때려낸 타구가 우측 펜스를 넘기고 있었다.
7대 5.
김경헌의 홈런으로 이제 경기는 한 점차까지 좁혀진다.
중계석의 해설자는 이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대단하네요. 오늘 경기의 득점 대부분을 홈런으로 뽑아냅니다. 자이언츠가 투수 교체 없이 5회까지 끌고 나왔거든요. 이제 투수 교체 타이밍을 고려해야겠습니다. 이대로는 이글스에 분위기가 넘어갈 수 있어요."
해설자는 오늘의 경기에서 나온 득점 대부분이 홈런포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지적하며, 자이언츠 덕 아웃의 투수 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라 얘기한다.
그의 말대로 자이언츠 덕 아웃에서는 투수 교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었다.
"바꿔!"
손 감독의 지시에 여민석 투수 코치가 행동을 개시한다.
오늘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윤명호 투수가 예상보다는 잘 던졌다는 생각이 든다.
윤명호 투수가 정타를 허용한 것은 다섯 번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섯 번 중에 홈런이 4개라는 사실이 큰 흠으로 작용된다.
여 코치는 손 감독의 말에 곧장 불펜과 통화할 수 있는 인터폰을 든다.
이미 경기 전에 이야기가 끝난 대로 여 코치가 입에 올린 이름은 정해져 있었다.
"조 코치, 성수제 투수 마운드에 올려. 교체야."
불펜 코치인 조민욱에게 투수 교체를 알린 후 곧장 그라운드에 오른 여 코치는 주심에게서 공을 받아들고는 마운드를 오른다.
"수고했다."
여 코치가 건넨 한 마디에 윤명호 투수가 고개를 숙이며 마운드를 내려간다.
그리고 이어서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선발에서 불펜으로 전환한 성수제 투수.
그 후 윤명호 투수의 가벼운 공과는 다른 성수제의 묵직한 직구가 불붙은 이글스 타선을 잠재운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삼진 판정으로 5회 말, 이글스의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 후 맞이한 6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 기회는 스팅이 안타를 치고 출루하기는 했지만, 하위 타선 모두가 범타를 때려내며 4명의 타자로 이닝이 마무리 된다.
다시 시작된 6회 말 이글스의 공격 기회.
5회 말을 효율적으로 막아낸 성수제 투수가 흔들리고 있었다.
수제의 공은 나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점수를 내려는 이글스 타자들의 투지가 수제의 호투를 이겨낸다.
따악!
"또 넘어 갑니다! 이번에는 사리오가 넘깁니다! 김태준에 이어 이글스의 해결사, 사리오 마저 멀티 홈런을 때려냅니다! 그리고 이 홈런은 5대 7로 뒤지고 있던 팀을 역전하게 만드는 역전 쓰리런 포로 기록됩니다. 8대 7! 이글스가 경기 내내 끌려가던 점수를 이 한방으로 뒤집습니다!"
캐스터의 목소리가 사리오의 홈런을 확정지어 주고 있었다.
오늘의 경기에서 나온 득점 중 문표가 기록한 1타점을 제외한 모든 점수가 홈런으로 만들어지는 기묘한 광경을 연출하며, 사리오가 이글스 팬들과 선수들의 환호 속에 홈을 밟는다.
"와아아아!!"
"그래! 이게 이글스 경기지! 오늘 경기는 이기자!"
이글스 홈팬들은 극적인 역전 상황에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이글스 선수들이 만들어낸 8득점은 김태준의 멀티 홈런과 사리오의 멀티 홈런, 그리고 우익수 김경헌의 홈런포로 만들어진 점수였다.
특히나 최근 들어 타격감이 좋지 않던 우익수 김경헌의 홈런포가 터져 나왔다는 것이 큰 의미로 다가온다.
반대로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6회 말, 이글스의 공격이 끝나고 자이언츠 덕 아웃으로 돌아온 문표가 팬들의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그때 마침 곁에 앉은 2루수 황인태가 말을 걸어온다.
"분위기가 이상해 졌는데요. 이러다 오늘 지는 거 아닐까요?"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마. 지긴 왜 져? 7대 0으로 이기고 있다가 역전패 당하면 팬들이 참 좋아라 하시겠네. 우리를 죽이려고 들 걸?"
"그래도 7연승 했지 않습니까? 7연승이나 했는데 한 경기 밀렸다고 팬들이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뭘 잘 모르네.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야. 우리가 7연승을 하면서 팬들의 기대감이 높아졌는데 이런 경기를 대역전패로 내어주면 그 비난이 오죽하겠어? 너 오늘 3타수 무안타 아냐? 이대로 경기 밀리면 한동안 네 sns계정도 닫아놔야 할 걸?"
"네? 안 됩니다. sns시작한지 이제 3달 밖에 안 됐는데요."
두 사람의 사소한 잡담 속에 7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이 시작되고 선두 타자 유성철이 타석에 오르자 문표는 자신의 배트를 챙겨들고 대기 타석으로 향한다.
그런 문표의 얼굴은 평소의 장난스러운 표정과는 조금 달랐다.
'오늘 강호가 홈런을 때려주는 바람에 2득점을 챙기기는 했지만, 아직 조금 부족해. 오늘 경기를 이기려면 이번 타석에서 강호에게 기회를 연결해 줘야만 돼!'
문표는 자신의 이번 타석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출루할 생각이었다.
그런 가운데 선두 타자 유성철이 외야 뜬공으로 아웃되고, 곧 문표가 타석에 선다.
그런데 문표가 취한 타격 자세에 자이언츠 코칭스태프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응?"
"번트? 누가 번트 지시 냈어?"
코치들의 의문 속에 문표를 향한 이글스 투수의 초구가 뿌려지고, 문표는 순간 타격 자세를 전환해 투수의 공을 컨택하는 모습이다.
페이크 번트 앤 슬래쉬.
경기 초반 기습 번트로 안타를 때려낸 전적이 있던 문표가 번트 동작을 취하자 전진 수비하고 있던 내야수들을 뚫어내는 문표의 우전 안타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자이언츠 선수들이 '와'하는 탄성을 내지른다.
"와아~~ 문표 선배가 2번 타순에서 날아다니는데요?"
"아까 경기 전에 보니까 무릎에 파스 감고 난리도 아니던데. 효과가 좀 있는 모양이야. 나도 무릎에 파스 붙이면 주력이 좀 빨라지려나?"
문표가 직접 구상한 타격 전략이 성공으로 결실을 맺자 후배 선수들은 엄지를 들어 올리며 문표를 칭찬하는 모습이다.
그런 상황에서 3번 타자 전준오가 타석에 서고, 강호는 대기 타석으로 이동한다.
타석에 선 전준오 선수의 승부 내용을 지켜보는 강호는 조금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마운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번 타석에서 준오 선배가 출루하더라도 내 타석에서의 기회는 없을 거야. 준오 선배가 아웃되더라도 마찬가지고. 이글스 배터리에서는 나를 거르고 제인 선배와 상대하려 들 거야.'
강호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부터 자신의 타석을 예측하고 있었다.
고의사구와 다를 바 없는 볼넷.
4회에 있었던 득점권 상황에서는 고의사구를 내어주었으니 이번에는 빠지는 코스의 볼을 던져 볼넷을 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그런 강호의 예상은 절반만 맞은 것이었다.
준오가 끈질긴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 출루하자 이글스 배터리는 강호를 상대하기 위한 결정을 내린다.
"우우우~"
강호가 타석에 설 때만 해도 함성을 내지르던 자이언츠 팬들이 이글스 투수의 초구에 야유를 보내는 모습이다.
이글스 배터리의 선택은 이번에도 고의사구였던 것이다.
몸을 완전히 일으킨 차연목 포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투수의 공을 받는다.
"볼 넷."
강호는 주심의 볼넷 판정과 함께 허무하게 1루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오늘 경기에서 강호는 두 개의 쓰리런을 때린 후, 두 개의 고의사구로 출루하고 있었다.
'좋지 않아. 오늘 제인 선배의 타격감이 좋은 편은 아니었어. 만루 상황을 의식한다면 또 다시 득점 기회가 무산되고 말 거야.'
강호는 고의사구를 얻어 1루로 걸어 나가면서 가슴 가득 불안감이 차오름을 느낀다.
그런 불안감은 현실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