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06화 (20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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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츠의 연승

부산의 토박이이자 자이언츠의 골수팬인 진명은 처음으로 원정 경기를 관전할 생각이었다.

대전에 볼일이 생긴 김에 오늘 열리는 이글스와의 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직접 관람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항상 자신의 가게에서 친구인 진수와 함께 경기를 지켜보다가 홈구장도 아닌 원정 구장에서 경기를 보려니 느낌이 남달랐다.

우선 매표소에서부터 받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경기가 시작되기 2시간 전에 매표소에 도착했는데도 자이언츠 원정 응원석 표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원정의 열기가 뜨거웠다.

경기 시작 직전에도 표를 구할 수 있는 사직구장과는 조금 다른 대전의 매표소 분위기에 놀라며 자신이 끊은 외야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 후 경기가 시작되고, 팀의 선두 타자인 유성철이 범타로 물러난 후 2번 타자 최문표가 내야 안타를 때리고 1루로 출루할 무렵. 누군가가 진명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죄송한데 여기 저희 자린데요. H34석이요."

"아, 그래요? 저도 H34석인데?"

"예? 아~ 이건 이쪽 자리가 아니라 왼쪽 외야 자리일 거예요."

진명은 커플로 보이는 남녀의 말에 '아, 미안합니다'라고 사과의 말을 전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리로 배정된 관중석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아 놔, 내 자리는 대체 어딨는 거야?"

진명은 사직구장과는 다른 이글스파크의 관중석 구조로 인해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에 애를 먹는다.

그러는 사이에도 경기는 계속되어 3번 타자인 전준오가 볼넷으로 출루하고, 이제 팀의 4번 타자인 강호가 타석에 오르고 있었다.

그 때까지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진명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걷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그라운드를 살펴보고 있었지만, 자리를 찾느라 경기를 보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러했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이 들리는 동시에 그라운드로 고개를 돌린 진명.

그의 시야에 강호의 배트를 맞고 떠오른 공이 빠른 속도로 외야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타구 속도가 어찌나 빠른 것인지 타격음이 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새 외야까지 타구가 도착해 있었다.

터엉!

진명은 눈앞에서 강호가 때린 홈런 볼이 비어있던 관중석을 때리고 튀어 오르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고 있었다.

그런데 관중석을 맞고 높이 솟구친 홈런 볼이 무의식적으로 뻗은 진명의 손에 자연스럽게 안착하는 것이 아닌가.

탁.

아무 생각 없이 내민 손바닥에 내려앉은 강호의 홈런 볼.

진명은 스스로도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눈을 크게 뜬다.

그런 진명에게 주변 관중들의 놀란 탄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와아~대단하다. 저 아저씨. 맨손으로 홈런 볼을 잡았어!"

"나도 봤어! 벤치 맞고 거의 5미터는 넘게 튀어 올랐는데 그걸 가만히 서서 잡았네."

"와아, 반사 신경 쩌네! 저 아저씨도 운동선수인가?"

주변 관중들은 마치 묘기같이 느껴지는 진명의 홈런 볼 포구에 박수를 치며 찬사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 중심에 놓인 진명은 주변 관중들의 박수 속에 얼굴이 붉어진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손에 들어온 타구가 강호가 때려낸 42호 홈런볼이라는 사실에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와아~ 이게 무슨 횡재야? 내가 백강호 선수 홈런볼을 잡았네!'

강호의 홈런볼을 손에 쥔 진명의 표정이 점점 밝아진다.

진명의 그런 모습은 중계 카메라를 통해 TV전파를 타고 있었고, 진명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들고는 카톡을 보내기 시작한다.

오진수: 얌마! 너 대전에는 언제 간 거야? 너 지금 카메라에 얼굴 나오고 있어! 백강호 선수 홈런볼 잡았네! 와, 대박이다!

정석현: 김진명! 너 지금 TV에 나와! 우리 집 가족들도 다 같이 보고 있었는데 완전 신기하네!

문광재: 백강호 홈런볼!! 나한테 팔아라. 내가 십만 원 줄게!

진명은 휴대폰에 불이 날 정도로 울려대는 카톡 메시지와 문자, 전화 속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게 되었다.

얼굴 가득 차오르는 기쁨의 미소를 숨기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아 강호가 때려낸 홈런볼을 내려다본다.

'이게 우리 백강호 선수 홈런볼이구나. 팔긴 누구한테 팔아? 내가 꼭 백강호 선수 싸인 받아서 가보로 삼을 거야! 절대 못 팔아!'

진명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기분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런 진명의 시선은 한동안 강호의 홈런볼에 머물러 있다가 2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나 그라운드로 옮겨진다.

자이언츠 골수팬인 진명을 찾아온 사소한 행운 속에 경기는 어느새 2회 초로 옮겨지고 있었다.

강호가 쓰리런 포를 작렬시킨 1회 초 공격 후 5번 타자인 황제인과 6번 타자 스팅이 연달아 안타를 때리며 출루하기는 했지만, 7번 타순의 강민수가 삼진으로 물러나고 8번 황인태마저 내야 땅볼로 범타에 그친다.

강호가 때려낸 3점 홈런으로 1회 초를 만족해야만 했던 자이언츠 선수단.

이제 2회 초 공격의 포문을 여는 타자가 타석에 선다.

'제인 선배가 1군으로 올라온 상황에서 내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순간, 1군에서 내 자리는 사라지게 돼. 강호가 있는 한 다시 유격수 자리로 돌아갈 수도 없는 거잖아.'

자신의 생존 경쟁을 고민하며 타석에 선 타자는 9번 타자 오진택이었다.

진택은 91년생, 올해로 29살의 중견 내야수로서 한 때는 자이언츠의 주전 유격수로 몇 년간을 활약하던 선수다.

그런데 올 시즌 전반기 때 잠시 주춤하던 사이 1군에 등장한 강호로 인해 유격수 포지션을 잃고 만다.

그 후 몇 주 동안을 2루수와 백업 유격수 사이를 오가며 흔들리던 진택의 포지션은 주전 3루수이자 팀의 4번 타자인 황제인의 수술 일정으로 인해 3루수 자리로 옮겨진다.

원래부터 내야 모든 포지션의 수비가 가능한 멀티 수비수였던 진택은 제인이 빠져버린 3루수 자리가 마치 자신의 것인냥 안착하며 시즌 타율을 3할대로 끌어올린 상태였다.

시즌 3할의 타율.

주전 경쟁을 펼치는 대다수의 선수들이 목표로 삼는 타율일 것이다.

그런데 자이언츠의 타선에서는 3할 타율을 가지고는 명함도 내밀기 힘들었다.

무려 4할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강호와 비교할 때 그 어떤 타율도 대단해보지 않는 것이 자이언츠의 타선 상황.

3할 1푼 대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진택으로서는 제인의 1군 복귀로 인해 다시 포지션 경쟁을 펼쳐야하는 이유가 생겨난 것이다.

'제인 선배가 지금은 경기 감각을 되찾는다는 전제 하에 지명 타자로만 출장하고 있지만, 그 시기가 길지는 않을 거야. 조만간 제인 선배가 3루수로 복귀하면 내 자리가 위태로워져. 지금 내 위치를 확실하게 만들어 놓지 않으면, 3할을 때리고도 백업 내야수나 봐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거야!'

턱밑까지 위협해 들어오는 생존 경쟁이라는 단어에 진택은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의 투지는 시리즈 스윕을 당할 수 없다는 이글스 선수단의 투지를 넘어 송인중 투수가 던진 공을 펜스를 직격하게 만드는 장타로 연결하고 있었다.

"와아아아!"

"오늘은 안타가 쉽게쉽게 나오네! 그래 쉽게 가자!"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환호 속에 진택의 발이 2루 베이스를 밟는다.

그러자 계속되는 위기 상황에서 이글스 덕 아웃의 결단이 내려진다.

주심에게 공을 건네받아 마운드에 오른 이글스의 투수 코치가 아직 2회 초 무사 상황에서 선발 투수를 교체하는 과감한 투수 교체를 실행하고 나선 것이다.

그 후, 1번 타자 유성철이 땅볼을 치고 아웃될 때만 해도 이글스 덕 아웃의 결정은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성철의 2루수 앞 땅볼 때 3루를 밟았던 진택이 문표의 기습 번트로 홈을 쇄도하게 되자 이글스의 과감한 투수 교체에도 팀의 실점은 1점을 더하고 만다.

문제는 타자 주자인 최문표 역시 1루에서 세이프 되었다는 점이었다.

"세이프!"

주심의 세이프 판정으로 문표의 기습 번트는 내야 안타로 기록되고 있었다.

지난 달 26일에 있었던 히어로즈 전에 이어 기습 번트로 또 다시 재미를 보는 문표.

"아자! 오늘은 1타점 먹고 들어가고! 1회에 강호의 홈런으로 1득점 챙겼는데 이제는 1타점이네. 코치님! 이 정도면 제 역할 다한 거 아닙니까?

1루 베이스를 밟고 선 문표는 장갑이나 보호대 등의 장비를 받기 위해 다가온 베이스 코치에게 신난 얼굴로 말을 붙인다.

그의 말에 1루 베이스 코치가 피식 웃음 지으며 대꾸한다.

"네가 제 역할을 다한 거면 1회에 쓰리런 때린 강호는 이만 퇴근해야 되겠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주루 플레이에 집중해. 2회에도 타격 컨디션이 좋은 강호에게 타석 기회를 줘야할 거 아냐? 괜히 도루한다고 까불다가 아웃되지 말고, 리드 폭은 적당히 벌리도록 해. 알겠지?"

"아아~코치님 너무 하시네요. 강호만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닙니까? 방금 전에 제 1타점 기습 번트 안타를 못 보신 겁니까? 강호는 그런 플레이 못해요. 저만 가능한 겁니다."

"그래. 기습 번트는 좋더라. 가끔씩 그렇게 흔들어줄 필요도 있어."

드디어 나온 주루 코치의 칭찬에 문표는 만족한 표정으로 웃음 짓는다.

그리고 주루 코치가 당부한 대로 평소에 비해 좁은 리드 폭으로 혹시나 있을 견제사를 방어하는 모습이다.

'괜히 루상에서 아웃됐다가 강호에게 갈 타석 기회가 3회로 넘어가 버리면 그 욕을 어떻게 감당하겠어? 강호의 최근 타격감이 좋은 것 같으니까 욕심내지 말고 강호에게 맡기는 좋겠어.'

문표는 오늘따라 타격감이 유난히 좋아 보이는 강호의 타격을 기대하며 3번 타자인 전준오의 타석을 바라본다.

준오 또한 베이스 코치나 문표의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것인지 최대한 출루에 초점을 맞춘 타격으로 바뀐 투수의 공을 공략하는 모습이었다.

딱.

바뀐 이글스 투수의 공을 때리는 전준오 타자의 경쾌한 타격음에 순간 타구 판단을 끝낸 문표의 발이 2루로 향한다.

준오가 때린 타구는 2루수 키를 넘기는 안타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런데 리드 폭이 다소 좁았던 문표로서는 준오의 짧은 안타로는 3루까지 갈 수 없었다.

"쳇."

문표는 혀를 차며 2루 베이스에 발걸음을 멈추는 모습이다.

이제 타석은 강호에게로 넘겨진다.

"와아아아, 백강호, 넘겨라!"

"백강호 선수, 홈런 한 방만 더 때려주세요!"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1회와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서는 강호의 모습에 기대로 한껏 부풀어 오른다.

그 속에는 1회 강호가 때려낸 42호 홈런 볼을 잡아낸 진명의 목소리 또한 포함돼 있었다.

"백강호 파이팅! 한 번 더 날리자!!"

강호의 멀티 홈런을 기대하는 진명의 뜨거운 목소리가 이글스 파크의 왼쪽 외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1회에 강호가 때려낸 쓰리런 포는 1사 주자 1, 2루의 상황에서 나온 홈런이었다.

2회인 지금 역시 문표의 기습 번트가 성공하며 1사 주자 1, 2루 상황.

점수 차는 4대 0으로 벌어진 가운데 팀의 4번 타자인 강호가 타석에 자리를 잡는다.

'오늘은 타격감이 좋아. 바뀐 투수인 강기현 투수와의 상대 전적도 나쁘지 않고. 경기 전에 리포팅 자료를 충분히 읽어 뒀으니까 부족한 건 없는 셈이야.'

강호는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뜨거운 환호성 속에 기분 좋은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무너져 버린 선발 투수 송인중을 대신해서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좌완 필승 카드 중 한 명인 강기현 투수.

기현은 89년생의 중견 투수로서 이글스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자이언츠와의 상대 전적이 좋지 못하다는 점이 마운드에 오른 기현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 중 가장 상대 전적이 좋지 않은 타자가 바로 타석에 선 강호였던 것이다.

'초구는 무조건 유인구야! 백강호에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건 미친 짓이니까 만루를 채울 작정으로 유인구 승부만 가자.'

기현은 그렇게 구상을 끝내고 세트 포지션에 들어간다.

아웃카운트가 1사 상황이다 보니 강타자인 강호를 거르고 다음 타자와 상대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그런데 다음 타자인 황제인 역시 기현과의 상대 전적에서 4할 대의 고 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6번 타자인 스팅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현은 4, 5, 6으로 이어지는 자이언츠의 중심 타선과 상대 전적이 좋지 못한 편이었다.

투수 교체를 고려해야할 정도의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글스 덕 아웃에서는 이번 타석까지는 지켜보기로 한다.

이글스 덕 아웃의 공통적인 생각은 이러했다.

'백강호와 상대 전적에서 앞서는 투수가 어디 있다고. 여차하면 거른다는 생각으로 기현이에게 마운드를 맡기고, 다음 타자인 황제인의 타석에서 투수를 교체하는 게 나을 거야.'

이글스 투수 코치를 포함한 코칭스태프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판단은 강기현 투수가 던진 초구 만에 무너지고 만다.

따악!!

1회에 이어 또 한 번 호쾌한 타격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 강호의 배트가 기묘한 호선을 그리며 휘둘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몸 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때려내기 위해 왼쪽 발바닥을 지면과 90도 가까이 세우면서 우측으로 중심이동을 한 강호의 배트가 강기현 투수가 던진 초구 체인지업을 정확하게 강타한 것이다.

터엉!

강호가 때려낸 타구는 한참을 날아 이번 역시 좌측 관중석을 때리는 홈런으로 기록된다.

1회에 이어 또 다시 강호의 쓰리런 포가 터진 것이다.

중계석에서는 강호의 멀티 홈런에 목소리를 높이며 자이언츠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버린 경기 분위기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함성은 계속된다.

"와아아아!"

"잘했다!"

현장을 찾은 자이언츠 팬들의 목소리가 이글스 파크를 뒤흔든다.

반대로 이글스 홈팬들의 분위기는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했다.

두 팀의 팬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자이언츠의 일방적인 우세로 경기가 진행될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닝은 많이 남아 있었고, 이글스 선수들의 투지는 아직 꺾이지 않은 상태.

이글스 야수들은 홈을 밟고 자이언츠 덕 아웃으로 돌아가는 강호의 뒷모습을 뜨거운 눈빛으로 응시한다.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 이글스 선수단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삭발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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