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05화 (20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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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츠의 연승

1회 초가 시작되고, 그라운드에 자리를 잡은 이글스 야수들은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며 각자의 자리에 자세를 잡고 있었다.

지난 번 자이언츠와의 3차전 시리즈에서 무서운 투지를 보여주었던 이글스 선수단.

선수 모자에 가려진 그들의 머리카락은 다시 자랄 틈도 없이 다시 짧아져 있었다.

이글스 선수들은 문득 경기 전에 후배 선수들을 모아놓고 소리치던 주장 김태준의 목소리를 떠올려 본다.

"1승 10패야, 1승 10패! 오늘 경기까지 지면 이번 시즌에만 벌써 세 번째 시리즈 스윕이라고! 이게 말이나 되는 성적이야? 오늘 경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이겨야 해! 다들 알겠지? 오늘 경기를 밀리면 너희들 머리도 다 밀어버릴 거야. 전원 삭발이라고!"

주장 김태준은 마치 상처입은 맹수와도 같은 모습으로 선수단을 향해 소리쳤었다.

그 기억이 떠오른 이글스 야수들은 타석에 선 자이언츠 타자를 죽일듯이 노려보며 한 가지 생각을 가진다.

'절대 안 돼! 이게 대체 몇 번째 삭발이야? 이러다가는 팀 성적도 성적이지만, 겨우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질 게 뻔해! 삭발한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어디있겠어?!'

이글스 선수들은 각자의 의욕을 다지며 오늘 경기만큼은 밀릴 수 없다는 투지를 불태운다.

그런 상태에서 타석에 선 자이언츠의 타자는 오늘 경기에서 1번 타자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우익수 유성철이었다.

성철은 올 시즌 백업 우익수로 1군에 이름을 올린 뒤, 감독이 교체되는 혼란스러운 시기동안 주전 우익수와 중견수, 좌익수를 고루 도맡으며 팀의 외야 라인의 붕괴를 막아주는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 전공이 있기 때문에 코칭스태프 역시 성철을 주전 외야수로 인식하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시즌 타율 3할 2푼 7리에 5개의 홈런, 21개의 도루, 102득점, 52타점 등의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1군에 확고한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게 된 성철.

이글스와의 시리즈 마지막 경기의 선두 타자로 나선 그는 타석에 서자마자 자신을 옭아매는 불쾌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오랜 2군 생활을 통한 야구 센스와 감각, 즉 눈치가 빠른 그가 이글스 선수단이 뿜어내는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분위기가 왜 이래? 무서워서 야구하겠나? 투수부터 시작해서 야수들까지 사람을 죽일듯이 노려보는데 어떻게 스윙을 하라는 거야? 여기가 야구장이 맞는 거야? 눈빛만 보면 건달들인 줄 알겠네.'

성철은 자신을 응시하는 이글스 선수들의 기세에 조금은 위축됨을 느끼며 타격자세를 잡았다.

오늘 이글스의 선발 투수로 오른 선수는 베테랑 투수 송인중이었다.

그는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버린 배현수 투수를 대신하여 선발 한축을 담당하게 되었지만, 엄연히 따진다면 정상적인 선발 투수는 아니었다.

올 시즌을 불펜으로 시작한 까닭에 한계 투구수가 70개로 잡혀 있는 까닭이었다.

'분명 위장 선발이겠지? 경기 전 사전 미팅 때도 그런 얘기가 나왔으니까. 나는 1번 타자 역할에 집중하도록 하자. 송인중 투수의 투구 수를 최대한 늘리는데 초점을 맞추는 거야!'

성철은 이글스 선수들의 매서운 눈빛에 위축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 타석에 오르기 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타석 전략을 실행하기로 한다.

그런데 성철의 그런 생각은 어긋나고 말았다.

티익.

송인중 투수의 4구째를 커트해낸 타구가 하늘 높이 떠올라 버리면서 포수 뜬공으로 어이없이 아웃 돼버린 것이다.

투수의 투구 수를 늘리라는 특명을 받고 타석에 선 성철로서는 부여받은 임무를 실패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결과였다.

성철은 타석에서 물러서며 나름의 핑계 거리를 찾아본다.

'그래도 중심 타선에 강호와 제인 선배가 있으니까, 두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 주겠지. 6번 타순에는 스팅도 있고, 7번에 민수 선배도 있으니까.'

성철은 4번 타자인 강호부터 시작되는 엄청난 무게감을 지닌 중심 타선을 믿고, 마음 편히 타석에서 물러선다.

그리고 타석에 선 타자는 오늘 2번 타순으로 라인업에 이름 올린 문표였다.

"아, 오늘 성철이의 스윙이 영 매가리가 없네요. 송인중 선배의 공이 오늘 긁히는 날인가 봐 봅니다. 대기 타석에서 보니까 제구력이 장난 아니던데요?"

문표는 타석에 들어서며 이글스 포수인 차연목에게 자연스레 말을 건넨다.

투수와 호흡을 맞추는 차연목 포수의 집중력을 떨어뜨려 보려는게 문표의 의도였지만, 연목은 후배의 수작에 쉽게 낚이지 않았다.

"문표 너도 별 수 없을 거야."

연목은 문표의 말에 간단한 말로만 대꾸하며 여전히 승부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차연목 포수는 2003년에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2015년부터 이글스에 이적한 선수로 81년생, 올해로 서른 아홉 살의 베테랑 포수였다.

투수인 송인중은 84년생으로 올해 36살.

오늘 이글스의 배터리는 연륜을 밑바탕으로 한 전략으로 자이언츠 타선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투구 수를 늘리자. 송인중 선배의 로케이션 투구를 쫓다보면 결국 범타로 물러날 가능성이 커. 최대한 투구 수를 늘리는 타격으로 상대하는 게 좋아. 오늘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니까.'

문표는 그렇게 생각하며 배트를 짧게 쥔다.

오늘 문표 본인의 역할은 다른 타순도 아닌 2번 타순.

팀의 작전과 전술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하는 자리이자 중심 타선에 기회를 넘겨줘야 하는 중요한 위치였다.

경기 전 미팅에서 김 수석에게 전달받은 대로 자신의 역할에 집중하기로 한다.]

"볼 원."

주심의 판정으로 문표를 향한 송인중 투수의 초구는 볼이 되고, 이어서 두 선수의 불꽃 튀는 승부가 벌어진다.

틱, 딱, 티익.

연달아 세 개의 공을 커트해낸 문표의 자세가 순간 기울고 있었다.

문표는 바깥 쪽 코스의 공을 커트하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몸을 바로하고는 혀를 내두르는 모습이다.

1개의 볼을 지켜본 후 3개의 파울을 때려내며 이제 볼카운트는 1볼 2스트라이크, 타자에게 불리한 볼카운트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번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는 건 어렵겠어. 출루를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중심 타선에 더 좋은 기회를 넘겨주는 것에 집중하도록 하자. 4번 타순에는 강호가 있으니까.'

문표는 후반기에도 여전히 4할 대의 맹타를 때려내고 있는 팀의 4번 타자, 강호를 믿고 조금 더 좋은 기회를 그에게 넘겨줄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에 집중한다.

문득 벤치의 싸인을 확인하기 위해 자이언츠 덕 아웃을 살피던 문표의 시선이 타석을 바라보고 있던 강호의 마주치게 된다.

씨익.

문표는 눈빛이 마주친 강호에게 크게 미소지어 보인다.

그 모습에 강호가 눈썹을 찡그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짜식, 쑥스러워 하기는. 이 형님이 강호 후배한테 좋은 기회를 넘겨줄테니까 지켜보고 있으라고.'

문표는 강호가 알아들을 리 없는 마음의 소리로 의사를 전달한 후 다시 타석에 자세를 잡고 선다.

그리고 또 다시 송인중 투수와 문표의 끈질긴 승부가 이어진다.

티익, 딱. 툭.

이어지는 커트 행진 끝에 송인중 투수의 7구째를 커트하던 문표가 묘한 목소리를 낸다.

"잉?"

문표는 기묘한 목소리를 내는 것과 동시에 배트를 던져놓고 1루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송인중의 체인지업을 커트한다는 것이 인필드로 들어가는 땅볼 타구를 때려내고 만 것이었다.

의도치 않은 인필드 타구에 정작 타구를 때려낸 문표 본인이 놀라 뛰기 시작한 사이, 포수와 투수, 그리고 3루수의 발걸음이 타구를 향해 이동한다.

그런데 타구의 속도와 바운드, 코스가 애매했다.

포수가 잡기에는 조금 빨랐고, 투수가 잡기에는 3루 베이스 쪽으로 깊어보였다.

문제는 뒤늦게 달려온 3루수가 잡기에는 짧은 코스였다는 점이었다.

문표가 힘없이 때려낸 타구는 강한 바운드와 함께 이글스의 3루수 손강민의 앞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 사이 문표의 발걸음은 1루를 향해 빠르게 이동한다.

손강민은 바운드 되는 타구를 맨손으로 캐치하여 곧장 1루로 던졌고, 문표의 발 역시 1루 베이스를 밟고 있었다.

이 묘한 타구의 결과는 결국 1루심에게로 맡겨졌다.

"세이프!"

1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와아아아!"

문표가 때려낸 행운의 내야 안타로 자이언츠 원정 팬들이 환호하는 사이, 이글스 덕 아웃에서는 지금 상황에 대한 비디오 판독을 요청한다.

하지만 판독 후에도 원심은 달라지지 않았고, 문표의 내야 안타는 정식기록으로 인정되는 모습이다.

'푸훗, 보았느냐? 이게 이 최문표 님의 운 빨이라는 거다!'

문표는 자신의 안타에 기뻐하는 자이언츠 관중들과 동료 선배들을 향해 손을 뻗어보이며 팀에 기회를 연결시켜준 내야 안타를 자축하고 있었다.

그 사이 3번 타자인 전준오가 타석에 서고 있었고, 다음 타자인 강호는 자신의 배트를 챙겨들고는 대기 타석으로 이동한다.

대기 타석에 선 강호는 1루에 나간 문표가 자신을 향해 묘한 눈빛을 보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선배 또 왜 저래? 하여튼 진지함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라니까.'

강호는 문표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살짝 미소지으며 들고 나온 배트를 양손에 쥔다.

그가 덕 아웃에서 지켜 본 송인중 투수의 오늘 공은 나쁘지 않았다.

평소 구위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송인중 투수이지만, 가끔 긁히는 날에는 메이저리그  투수인 매디슨 범가너를 연상케한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팬들도 더욱 많았지만, 제구가 되는 날에는 그만큼이나 인상적인 투구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구위는 약한 편이지만, 제구가 좋은 투수. 과거의 나였다면 그런 투수의 완급조절 능력에 농락당한 채 범타로 물러났겠지만, 지금의 나는 어떨까?'

강호는 문득 2군 시절 자신의 약점으로 거론되었던 세 가지 특이점에 대해 떠올려 본다.

첫 번째가 바로 좌완투수였다.

강호는 좌완투수에 대한 약점을 가지고 있어서 2군 생활 동안 좌완 투수와의 통산 성적이 2할이 안될 정도였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송인중 투수와 같이 완급조절이 가능한 투수 유형이었다.

과거 체중이 적게 나갈 때는 배트 스피드가 느려 상대 투수의 공을 예측하고 미리 휘두르는 스윙을 하곤 했다.

그런 강호가 가장 약한 유형의 투수가 바로 같은 구종이라도 공의 스피드를 3,4km정도 늦출 수 있는 완급 조절이 가능한 투수였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송인중 투수가 바로 그런 투수 유형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강속구 투수였다.

체중이 가벼워 2군 시절, 강력한 구위를 가진 강속구 투수의 공을 단 한 번도 정타로 때려내본 적 없는 강호였다.

그렇기 때문에 베어스 2군 시절에 반쪽 짜리 선수라는 오명을 안고 구단에서 방출된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어떨까? 그 세 가지 약점들을 뛰어 넘었을까?'

강호는 과거 자신의 약점들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그 사이 타석에 선 3번 타자 전준오가 송인중 투수와 끈질긴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티익.

5구째 공을 커트한 전준오의 타구가 강호의 근처로 떨어진다.

투욱.

강호는 전준오의 파울 타구를 잡기 위해 자신의 근처로 다가온 이글스 3루수를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나간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상태창을 열어 자신의 스탯들을 확인해 본다.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스스로의 달라진 능력치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백강호(24)

포지션:SS

컨  택:99.9[max]

파  워:93

선구안:84.8

주  력:96.1

수  비:92.4

송  구:90

멘  탈:92.9

시야에 여섯 번째 프리마켓 방문으로 달라진 스탯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강호는 시야에 떠오르는 스탯들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숫자들을 바라보며, 이미 스스로가 던진 질문에 답을 구한 상태였다.

'나는 이미 과거의 나를 뛰어 넘었어. 이번 타석에서, 또 이번 경기에서, 앞으로 내가 올라설 모든 타석에서 그것을 증명해 보일 테니까. 나는 예전의 나와 많이 달라져 있다고.'

강호는 그렇게 결론을 내며, 걸음을 옮긴다.

3번 타자인 전준오가 송인중 투수와의 끈질긴 승부 끝에 9개의 공을 지켜보며 볼넷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송인중 투수의 제구력이 돋보였지만, 전준오 타자의 선구안 역시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이제 상황은 1사 주자 1, 2루.

팀의 4번 타자인 강호가 천천히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는 상대 투수인 송인중과 시선을 마주하며 배트를 힘껏 쥔다.

송인중을 응시하는 강호의 눈빛은 특유의 강렬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어떤 투수에게라도 약점을 드러내면 안 되는 거야. 더 이상 반쪽짜리 선수가 될 순 없잖아.'

강호는 세트 포지션에 들어간 송인중 투수의 호흡과 자신의 호흡을 일치시키며 타격 포지션에 들어간다.

이미 대기 타석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완벽한 결론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송인중 투수를 무너뜨리기 위한 과감한 초구 공략 작전도 실행되고 있었다.

'나는 이제 자이언츠의 4번 타자야. 더 이상의 약점은 있을 수 없어!'

따악!

송인중의 초구를 타격한 강호의 배트가 만들어낸 타겸음이 이글스 파크를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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