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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츠의 연승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이제 7월도 막바지에 도달해 곧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고척에서 열린 히어로즈와의 시즌 4차전 경기를 스윕하며 시리즈를 모두 가져온 자이언츠는 기분 좋은 5연승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여기에 대전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30일 경기마저 승리하며 연승의 숫자를 6으로 더하자 자이언츠 팬들은 그야말로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그런데 연승 행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31일에 열린 경기마저 5대 1, 승리를 따내며 팀이 7연승을 달리게 되자 과연 이 연승 행진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어난다.
"헐, 내가 자이언츠 7연승 하는 걸 다보네. 올해는 진짜 가을 야구 하겠는데?"
"지금 가을 야구가 문제야? 이글스도 스윕하고 8연승, 그 다음에 와이번스한데 2연승만 더하면 시즌 10연승인데. 이왕 여기까지 온 거 10연승까지 갑시다!"
"3위하고 승패 마진도 이제 반 경기 차이야! 10연승 안 해도 좋으니까 한 경기만 더 잡고 3위로 갑시다. 꽉 잡으세요. 올라갑니다!"
"나는 그런 거 없어도 되니까 제발 가을 야구만 보게 해줘. 그리고 대체 사직 경기는 언제 있는 거야? 자이언츠 야구하는 거 직관 가서 보고 싶다. 왜 원정경기만 있어? 사직 경기 기다리다가 망부석 되겠네.ㅠ.ㅠ 어서 직관 가고 싶어!"
자이언츠 기사에는 팀이 7연승을 달리며 기대로 부푼 팬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과 칭찬의 댓글들이 무더기로 양산되고 있었다.
그 중 일부 댓글들은 지나칠 정도로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도 했다.
"윗님. 걱정 마세요. 8월 6일, 화요일부터 사직에서 홈 6연전이 열립니다. 자세한 상황은 자이언츠의 공식 홈페이지, www.giantsclub.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추가로 자이언츠 구단에서 진행하는 행사 일정이나 선수단 정보도 확인할 수 있어요. ^_^"
팬이라고 보기에는 어딘지 어색한 댓글은 아이디 '우승은 자이언츠' 라는 아이디로 활동 중인 허동준 기획 실장이 쓴 댓글이었다.
그 어색한 댓글에 순식간에 대댓글이 달리는 모습이다.
"이거 뭐야? 자이언츠 댓글 알바인가?"
"ㅋㅋㅋ자이언츠 직원들, 여기서 이러면 안 됩니다. 7연승 달린다고 기분 좋아서 기사 댓글에 구단 홈페이지 홍보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요."
"뭘, 귀엽긴 하네. 구단에서 열심히 일하려는 모양인데, 모른 척 해줍시다. 쉿!"
"쉿, 쉿! 아~나는 모르겠다. 이글스 전 시리즈 스윕하면 모든 걸 다 용서해 드릴게요~"
허 실장의 댓글에는 팬들의 댓글이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빠르게 달리고 있는 대댓글과 추천 수에 댓글을 입력한 허 실장이 당황하기 시작할 무렵,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 본 지 사장이 혀를 차는 모습이다.
"쯧쯧쯧, 뭐하는 거야? 그렇게 티 나게 홍보할 거면 그냥 명함을 뿌려! 나 자이언츠 구단 기획팀 다닌다고 홍보하고 다니는 거야? 팬들이 다 알아차렸잖아. 무슨 일을 이렇게 해?"
"아...그게. 팬들이 사직 경기가 너무 없다고 속상해 하시기에 좀 알려드린다는 게 그만..."
"알려준다고 해도 적당히 티 나지 않게 알려줘야지! 팬들한테 다 들켰잖아! 이거 봐. 이 댓글 좀 봐. 대댓글에 전부 '쉿!'밖에 안 보이네. 너 무슨 신입 사원이야? 내가 일일이 일하는 방식을 알려줘야 해?"
"아니, 그게 말입니다...사장님께서 이 기회에 구단 홈페이지 홍보를 좀 하라고 하시는 바람에..."
"뭐야? 이제 내 탓하는 거야? 허 실장, 장난 아니네."
하나의 실수로 시작된 지 사장의 꾸지람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허 실장은 지 사장의 타박을 묵묵히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불평불만을 멈추지 않는다.
'내가 이런 일은 적성에 안 맞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댓글 알바라니? 내가 마흔 살 넘게 먹고, 기획실장이 되서 댓글 알바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속으로 한 숨을 내쉬는 허 실장의 불평 속에도 지 사장의 가르침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한편, 시간과 장소는 구단 본부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
시선은 자이언츠와 이글스의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대전으로 이동한다.
강호는 이글스와의 시리즈 4차전 마지막 경기이자, 8월 달의 첫 경기를 앞두고 한 통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
형: 강호야, 태호 일은 잘 처리했다. 태호 할머니 수술 일정은 잡아 뒀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오늘 경기에 집중하도록 해. 병원비는 네가 준 돈으로 잘 처리했어.
강호는 형에게서 날아온 메시지에 사심 없이 웃어 보인다.
형은 고맙게도 자신의 부탁대로 강 감독에게서 전해들은 태호 할머니의 일을 잘 처리해준 모양이었다.
처음 태호 할머니의 입원 소식을 들었을 때 강호는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고민했었다.
'지금 나서야 될까? 일단은 태호 할머니 수술 일정을 잡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강호는 태호의 앞에 나서야 하는 지를 고민해야만 했다.
태호 앞에 나서지 않은 채 이름 없는 후원자로 지냈던 것은 이런 응급상황이 없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아직 미성년자인 태호가 할머니의 보호자 역할로 수술 일정 등을 잡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태호한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생각은 틀린 게 아니야.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걸 고집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태호의 자존심이 조금 상하더라도 내가 나서서 도와줘야 해!'
강호는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강 감독이 말한 병원으로 방향을 잡았다.
택시에 올라 병원 이름을 밝히며, 태호의 일을 어떻게 처리할 지를 고민하던 강호.
문득 그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가 해주었던 말의 내용 역시 떠올랐다.
'좋은 생각이다, 강호야. 형이 도울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울게. 그런 좋은 생각이 있었으면 진즉에 이 형한테 말했어야지. 형도 최대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게.'
자신을 향해 뿌듯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형이 건네었던 말이 떠오른다.
형과 함께 했던 식사 자리에서 후원 의사를 밝혔던 강호 본인에게 형이 대견하다는 듯이 어깨를 두드리며 해준 말이었다.
'어쩌면 형은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강호는 휴대폰을 꺼내 형의 번호를 누른다.
자신의 일을 주도적으로 해결하며 살아온 강호였지만, 태호의 일처럼 본인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는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사소한 실수가 태호에게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될 우려가 컸다.
그래서 형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형이라면 태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거야. 형은 이미 그런 상황을 모두 이겨냈으니까.'
강호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을 해결하는 것은 두렵거나 걱정되지 않았다.
태호를 위해서 남몰래 진행하려던 일이지만, 불가피한 상황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됐다.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형편의 누군가를 돕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태호와 동생들이 겪게 될 아픔이나 시련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세요. 강호야, 네가 이 시간에는 어쩐 일이야?
형의 목소리에 태호의 일로 걱정이 산더미 같던 강호의 기분이 차분해진다.
항상 그랬었다.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 형은 강호가 야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자신이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는 했다.
어른이 된 이후로는 형의 도움을 받을 일이 없었지만, 아직 강호가 어렸을 때에는 형의 도움을 받아 어려운 일들을 해결하고는 했던 것이다.
'형은 나한테 그런 존재였으니까. 아버지 같은 존재.'
강호는 형의 도움으로 어려운 상황을 해결했었던 어린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수화기에 대고 입을 연다.
"형, 부탁이 있어."
-부탁? 무슨 일인데?
강호는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형에게 태호 할머니에 대한 일을 모두 얘기했다.
끝까지 강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형은 이렇게 대답한다.
-걱정하지 마. 강호야, 형이 곧장 병원으로 갈 테니까. 지금 네가 병원에 가면 태호한테 좋지 못한 결정일 수도 있어. 형이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형이 다 알아서 할게.
형은 그렇게 강호를 안심시키며, 전화를 끊는다.
형이 서둘러 전화를 끊은 이유는 자신의 부탁을 빨리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강호로서는 형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항상 형한테 마음의 빚을 갚아야할 일들만 만들면서 살아가는구나.'
강호는 2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여전히 형에게 의지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병원으로 달리던 택시의 방향을 돌린다.
“기사님, 택시 돌려주십시오.”
병원의 목전에 도달해 있던 택시의 방향을 돌렸던 기억이었다.
그 때의 깨달음과 기억들, 잊을 수 없는 여운으로 남아 아마도 평생을 기억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강호의 회상들은 이어진 형의 카톡 메시지로 인해 흩어진다.
시간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형: 그리고 지금 7연승 중이지?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네 실력대로만 해. 팀의 승패는 개인이 결정할 수가 없는 거잖아. 내 동생, 파이팅!^_^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형의 카톡 메시지에 강호는 '고마워, 형'이라고 답장을 보내며 환하게 웃어 보인다.
항상 멀게만 느껴지던 형이 조금 더, 아니 아주 많이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태호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베풀고자 했던 마음이 이렇게 형제의 우애를 되찾는 계기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내가 받고 있구나.'
강호는 왠지 콧잔등이 시큰함을 느끼며 형에게서 온 메시지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때, 누군가가 강호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선배님, 여기서 뭐하십니까? 원정 팀 훈련 시작됐습니다. 훈련하러 나가셔야죠."
고개를 돌려보니 백업 포수인 안민경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이미 마스크를 제외한 포수 장비를 모두 작용한 채, 라커룸으로 들어서는 모습이었다.
강호는 민경의 부름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라커룸에 챙겨 넣으며 대꾸한다.
"그러는 넌 장비 다 착용하고 라커룸에 웬일이야? 또 심부름 온 거야?"
"말도 마십시오. 문표 선배가 또 심부름을 시키네요. 정말 심부름시키는 거 좋아하는 선배라니까요."
민경은 고개를 내저으며 문표에게서 받은 라커룸 키로 문표의 라커룸 문을 연다.
그리고 그곳에서 붙이는 파스와 스포츠 테이프를 찾아서 챙겨드는 모습이다.
민경이 라커룸에서 꺼내든 물건들을 확인한 강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문표 선배가 테이핑을 한다고? 부상 있다는 말은 안 했는데."
강호는 의문을 표시하며 민경과 함께 그라운드로 나선다.
그러다가 덕 아웃 한편에서 민경이 건넨 파스와 테이프를 받아들고, 무릎과 종아리 쪽을 테이핑하고 있는 문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무릎 부상이라도 도지신 겁니까? 원래 테이핑 같은 거 안 하셨잖아요?"
강호는 문표에게 걱정스럽게 묻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와 가장 친한 선수 중에 한 명인 자신이 문표의 부상조차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해진다.
그런데 미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문표의 이어진 말에 그가 부상을 입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응? 무슨 부상? 아~~테이프랑 파스 붙이는 거? 부상이 아니라 예방조치라고 해야지. 내가 오늘부로 2번 타자잖아~ 그동안 기 코치님하고 갈고 닦은 주루 실력을 보여줄 때가 됐단 말이야. 흐흐흐. 두고 봐. 내가 강호 후배 앞에서 부지런히 기회를 만들어줄 테니까."
문표는 그렇게 대꾸하며 테이프로 종아리를 정성들여 붙이는 모습이다.
그의 말에 강호가 '선배님이 2번 타자라고요?'라고 되물었고, 문표는 테이프를 감던 손길을 멈추고 강호를 올려 본다.
"강호 후배 아직 라인업도 확인 안 했어? 한 번 확인해 봐. 오늘 라인업이 아주 재밌어. 스팅하고, 캡틴 빼고는 죄다 3할 타자라고. 아! 강호 후배는 4할이지."
문표는 그렇게 대답한 뒤 다시 테이핑에 몰두한다.
강호는 그런 문표의 곁을 지나쳐, 한 쪽 벽면에 붙은 라인업에 다가섰다.
과연 문표의 말대로 시즌 2할 9푼을 기록 중인 스팅과 시즌 2할 8푼을 기록 중인 캡틴 강민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3할 대 이상의 고타율을 기록하는 타자들이 라인업에 포진되어 있었다.
1번 유성철부터 9번 오진택까지.
상대 배터리가 한숨이 나올 정도로 빈틈없는 타순 라인업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가운에 강호는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다시 문표를 지나쳐 그라운드로 향한다.
타순 라인업에는 강호의 이름이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위치에 적혀 있는 상태였다.
[4] 백강호(유)
라인업에 뚜렷이 기입된 이름과 함께 강호는 오늘도 4번 타자로서 그라운드 위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곧 경기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