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02화 (20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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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만의 비밀

시간과 장소는 사직으로 향하는 원정 버스에서 잠시 부산의 자이언츠 구단 지정 병원으로 이동한다.

시점은 박상현 투수가 구단 상주 컨디셔닝 코치와 함께 자신의 MRI결과를 담당의에게 전해 듣게 된 때였다.

"이미 환자 본인이 아시는 것처럼 요추 추간판 탈출증 증상이 심화되고 있어요. 추간판이라는 게 척추 뼈를 유연성 있게 받쳐주는 부분인데 이 중심에 수핵이라는 게 있습니다. 지금 박상현 환자는 이 수핵의 막이 척추 퇴행과 함께 탄성이 줄어들면서 신경을 누르게 된 겁니다. 척추 뼈가 신경을 누르니까 당연히 허리 통증이 심할 수밖에 없겠죠? 아마도 직업이 야구선수이다 보니까 투구 자세에서 오는 충격이 누적된 결과로 보여요."

담당의는 먼저 MRI 사진을 바탕으로 상현의 상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비 의료인인 상현을 위해 나름대로 쉬운 단어만을 사용하고 있는 담당의.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수술을 염두해야 하는 상황이긴 한데, 운동 선수다보니까 추간판 탈출증에 대한 수술이 좋게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결손 되는 수핵을 유지시키는 보존요법을 사용하는 것도 방법 중에 하나에요. 약물을 투입해서 결손이 일어나는 수핵을 정상화시킬 수도 있고요. 다행히도 튀어나온 수핵이 척추 뼈를 너무 심하게 뒤튼 것은 아닙니다. 단지 신경이 좀 심하게 끼어있다는 게 통증이 주된 요인인데. 약물 치료로도 충분히 통증을 호전시킬 수가 있어요."

담당의는 그렇게 설명하며, 약물 치료에 사용될 약물들을 상현의 곁에 앉은 컨디셔닝 코치에게 건넨다.

컨디셔닝 코치는 담당의가 건넨 약물 목록과 한국도핑방지위원회에서 받아온 자료를 대조해보더니 고개를 저어 보인다.

"두 개가 겹쳐. 시즌 중에 투약하면 안 되는 약물이 두 개가 있어. 치료 목적인 투약은 가능한데 그래도 시즌 아웃은 피할 수가 없어. 올해는 이만 접고, 약물로 치료한 다음에 내년을 노리는 수밖에 없겠어."

컨디셔닝 코치의 말에 상현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약물 치료로 수술을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은 희소식이었지만, 치료 목적으로라도 약물을 투약하는 순간 시즌 아웃은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이대로 이번 시즌은 끝나는 걸까?'

상현은 미간을 잔뜩 좁히며 고민에 빠진다.

그가 고민하는 시간에도 의자에 앉아 있는 상현의 허리에서는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허리 통증에 고민이 더해지자 상현의 인상은 더 이상 찡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상현은 불편한 의자에서 일어나 담당의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보존요법이라는 거. 약물 치료와 병행하지 않는 방법은 없는 겁니까?"

상현은 극심한 통증을 참아내며 담당의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물어오는 상현의 질문에 담당의는 쓰고 있던 안경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게."

답변을 망설이는 담당의.

잠시 후 상현은 올 시즌과 자신의 선수 생활이 걸려 있는 중대한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시간과 장소는 다시 강호가 경험하고 있는 현재로 돌아온다.

고척에서 있었던 기분 좋은 시리즈 스윕을 거두고 돌아온 자이언츠 선수단은 월요일인 휴식 일을 맞아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강호 역시 휴식 일을 맞아 자신만의 일정을 진행 중에 있었다.

"백강호 선수,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진 찍는 게 능숙하시네요."

강호는 악수를 건네오며 칭찬의 말을 더하는 담당자의 말에 대꾸한다.

"몇 번 하다 보니 조금 익숙해진 모양이네요."

"하하, 그렇습니까? 요즘 부산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웬만한 광고판에는 전부 백강호 선수 얼굴이 걸려 있더라고요. 구단에서 백강호 선수 이름으로 프로모션도 많이 진행하는 것 같던데. 휴식 일에도 수고가 많으십니다."

담당자는 사실에 입각한 찬사의 말로 강호의 노고를 칭찬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스마트 폰을 꺼낸 후 조심스럽게 부탁의 말을 해오고 있었다.

"이런 부탁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저하고 셀카 한번만 찍어주시겠습니까? 저희 아들이 백강호 선수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담당자는 자신의 아들 역시 초등부 야구선수라고 말해오며 강호와의 셀카를 부탁하고 있었다.

강호는 그의 요구에 흔쾌히 수락하며 함께 셀카를 찍어준다.

"우리 백 선수가 너무 잘생겨서 제가 너무 못나 보이네요. 하하, 감사드립니다."

담당자는 강호와의 촬영 일정이 잘 마무리된 것보다 강호와 함께 셀카를 찍었다는 사실이 더 기쁜 것인지 사심 없는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리고는 덧붙이는 말로 말을 마친다.

그런데 그 마지막 말로 인해 강호는 표정을 달리하게 된다.

"오늘 있었던 야외 프로모션 행사나 모델 비는 저희 회사 총무 팀에서 입금을 시켰을 겁니다. 그럼 다음에 좋은 기회로 다시 뵀으면 합니다. 백강호 선수, 파이팅!"

담당자는 강호가 놓치고 있던 사실 하나를 알려주며 응원의 말로 대화를 끝낸다.

강호는 잠시 자리에 멈춰 선 채 담당자가 건넨 말을 곱씹어 보고 있었다.

'행사비와 모델비가 따로 있다고? 계약 내용에 모두 포함된 게 아니었어?'

강호는 오늘 일정을 마치고, 모델 계약을 맺은 회사의 담당자가 건넨 말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 쪽 편에 놓아두었던 자신의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사진 촬영 중에 도착해 있는 하나의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후에야 담당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web발신]

하나,07/29,14:30

689******63907

입금3,000,000원

A스포츠 행사비 지급

[web발신]

하나,07/29,14:31

689******63907

입금2,000,000원

A스포츠 모델비 지급

강호는 AMC 광고 계약을 체결한 업체로부터 입금된 돈을 확인하고서야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광고 계약과는 별도로 행사나 프로모션을 진행하면 따로 수고비를 챙겨주는 모양이구나. 처음 알았어.'

강호는 처음 알게 된 사실에 웃음 짓는다.

강호로서는 광고 모델 계약을 해본 것도 처음이고, 계약 업체와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경남중에서 진행된 프로모션은 구단에서 진행한 것으로 지정만 사장의 갑작스런 지시로 이루어진 것이라 강호가 정식 체결한 프로모션은 아니었다.

그래서 따로 행사비를 지급받지는 못했지만, 정식 계약을 체결한 업체들과의 행사는 소정의 행사비가 지급되고 있는 것이다.

5백만 원이라는 돈.

한나절을 투자한 모델비나 행사비로는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연봉이 2천 9백만 원에 불과한 강호에게는 두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구단이 프로모션을 허락해줘서 쉽게 돈을 버는구나. 프런트에게 감사해야되나?'

묘한 감정이 들고 있었다.

무려 4할 타율에 40홈런을 때려내고 있는 강호 본인을 KBO 최저 연봉으로 부려먹고 있는 자이언츠 구단.

그런 사실이 미안했던 것인지 자이언츠 프런트는 특별한 기록을 달성할 때마다 3백만 원에서 천만 원 정도의 시상금을 지급하기도 했고, 외부 업체와의 프로모션을 연결시켜 주어 광고모델비나 행사비를 챙겨주기도 했다.

벌써 연간 계약을 체결해버린 선수 연봉 계약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번외 수익을 챙겨주려는 구단의 의도가 고맙게 느껴진다.

덕분에 한나절을 일하고 5백만 원이라는 큰돈을 받지 않았는가.

강호는 하루를 일하고 이만큼 큰돈을 받을 수 있다면야 얼마든지 휴식 일을 양보할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너무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면 안 되겠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즌 성적이니까. 그래도 이제 돈 쓸 일이 많아질 테니까. 부지런히 벌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강호는 문득 자신이 후원해주기로 한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경남중 행사 때 인연이 된 태호를 비롯해 현재 일곱 명의 아이들을 후원하게 된 강호.

그런데 거기에 문제가 하나 발생하게 된다.

지역 사회의 유명인인 강호 본인이 아이들을 직접 후원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었던 까닭에 강호는 고심 끝에 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시간은 잠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형, 부탁이 있어."

강호는 형과의 식사 자리에서 한동안 말없이 식사에만 몰두하는 형에게 그렇게 말을 꺼내었다.

형인 강수는 동생의 입에서 오랜만에 듣게 된 '부탁'이라는 단어에 눈을 크게 뜨는 모습이다.

"부탁? 강호 네가 나한테 부탁할게 있다고? 혹시 음성적인 일은 아니겠지?"

강수는 부탁이라는 단어로 대화를 시작한 강호의 말에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되묻고 있었다.

그런데 강호는 형의 장난에도 웃지 않는다.

"음성적인 거 맞아. 남들이 알면 안 되는 일이니까."

강호의 이어진 대답에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여긴 강수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강호의 얼굴을 바라본다.

강호의 성품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강수라서 동생이 불법적인 일이나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프로 스포츠 판에 가끔 일어나는 좋지 않은 스캔들이 동생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든다.

'설마, 아니겠지. 강호가 그럴 리 없어.'

강수는 혹시 강호가 불법 도박이나 약물, 혹은 이성과의 스캔들에 연류 되지 않았을까하는 상상을 해보다가 이내 고개를 내젓는다.

자신이 아는 동생은 절대로 그런 일에 휘말릴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강호 네가 남들이 알면 안 되는 일을 할 리 없잖아."

강호는 자신의 말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형의 모습에 조금은 표정을 풀어 보인다.

살며시 미소 띈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강호의 말에 형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호의 말이 결론에 도달했을 때 형인 강수는 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모습이다.

'남몰래 후원을 하겠다고? 내 동생이지만,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을까? 허튼 일에 돈을 사용하는 것보다 그렇게 뜻 깊은 일에 돈을 쓴다면 강호도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선수 생활에 전념할 수 있을 거야. 책임질 사람이 있다는 건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일이니까.'

강수는 흐뭇한 시선으로 동생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반항아 기질이 다분해서 학교를 뛰쳐나와 막노동판을 휘젓고 다니던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의 강호는 인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행동하며, 책임감이 결여된 모습을 보였었다.

그 책임감이란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책임감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때의 강호는 책임감 없이 어긋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형인 강수 입장에서는 동생의 멱살을 붙들고 호통을 쳤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강호 녀석이 어느새 어른이 되었구나. 누군가를 책임지려 한다는 것, 그 무게감을 스스로 감당하려고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는 거야.'

강수는 동생의 성장에 진심으로 뿌듯해진다.

장학금을 받고 다니던 대학교를 뛰쳐나와 생업 전선에 뛰어 들었던 과거 자신을 회상해 보면, 그때 느꼈던 책임감의 무게감이란 건 예전에는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삶의 무게였다.

강수는 그런 시절을 이미 지났기 때문에 동생의 성장이 더욱 기쁜 것인지도 몰랐다.

강호의 성장은 야구선수로서의 성장을 넘어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성장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좋은 생각이다. 강호야. 형이 도울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울게. 그런 좋은 생각이 있었으면 진즉에 이 형한테 말했어야지. 형도 최대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게."

그 때의 형은 몇 차례나 강호의 어깨를 두들기며 대견하다는 말을 반복했었다.

강호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 짓고 있었다.

모교에서 있었던 사소한 인연이 어느새 두 형제를 더욱 결속시켜 주는 선순환의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자의 인생이 너무 바빠서 대화할 시간도 없다보니 형이랑 대화하는 것도 어색했었는데, 태호와 아이들을 돕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최근 몇 년 동안 형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 오히려 아이들에게 고마워해야할 일이야.'

강호는 아이들을 후원하며 본인은 더욱 소중한 것을 얻게 되었다는 점을 깨닫고는 사심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고 그런 형의 얼굴을 보기 위해 걸음을 서두르다가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 폰에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하게 된다.

부재 중 전화(2)

메시지는 부재 중 전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고, 강호는 모델 촬영 일정 때문에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놓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부재 중 전화 메시지의 발신자를 확인한 후 곧장 전화를 든다.

"여보세요."

강호는 여보세요 라는 흔한 말로 통화를 시작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지나 통화가 끝났을 때, 강호의 발걸음은 더욱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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