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01화 (20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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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연승을 달리다

강호가 때려낸 타구가 고척구장을 가로지른다.

타구가 떨어지는 지점을 확인한 자이언츠 원정팬들은 곧 환호를 보내며 강호의 홈런을 축한다.

"와아아아!!"

자이언츠 팬들의 함성과 함께 경기는 그렇게 결정지어지고 있었다.

8대 0.

히어로즈는 9회 말에 만루를 만들어내며 마지막 일발 역전을 노려 보았지만, 1아웃 만루 상황에 마운드에 오른 성수제의 공 하나가 히어로즈의 추격 의욕을 완전히 꺾어버리고 만다.

딱.

경쾌한 타격음이 들리기 이전, 이미 경기는 종료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타구가 유격수 방면으로 향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아이템 사용을 묻는 메시지에 승낙하면서 강호의 글러브에 빨려든 타구는 곧 병살타로 연결되고 있었다.

만루 위기를 공 하나로 막아내는 강호의 6, 4, 3병살타가 이번 경기를 마무리짓고 있었던 것이다.

"와아아아!"

팬들의 환호성과 함께 이날의 경기는 8대 0으로 종료되고 있었다.

팀의 마지막 투수로 올라 공 하나만을 던져 위기 상황을 막아내게 된 투수 성수제가 강호에게 다가와 악수를 건넨다.

"강호야, 고맙다. 덕분에 쉽게 막았네."

수제는 감사의 인사를 건네오며 강호의 손을 맞잡았다.

히어로즈의 마지막 반격을 강호의 호수비 하나로 손쉽게 막아낸 수제는 마음이 들떠 있었다.

1사 만루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야 한다는 불펜 코치의 말에 1, 2실점 정도는 내줄 각오로 마운드에 올랐는데 강호 덕분에 실점을 허용하지 않은 채 경기를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한 턱 쏘십시오."

강호는 평소 잘 하지 않던 농담으로 수제의 감사 인사에 대꾸하고 있었다.

수제는 그 말에 피식 웃어 보이며 '그럴게'라고 답한다.

그렇게 이날의 경기는 기분 좋게 끝맺음 지을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날 자이언츠의 승리를 완벽한 투타조화로 얻어낸 승리라고 평가했다.

단지 이날의 경기만이 아니라 자이언츠의 좋은 분위기는 다음날까지 이어져, 히어로즈 타선이 폭발한 가운데 자이언츠 타선 역시 대폭발하며 13대 10의 승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시리즈 스윕.

위닝 시리즈만 가져와도 성공이라 여겼던 고척 승부를 완승으로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로써 자이언츠는 시즌 성적 49승 44패를 챙기며 48승 46패로 승률이 하락하게 된 히어로즈를 1게임 반 차이로 내려 앉히면서 리그 4위에 올라선다.

더불어서 올 시즌 처음으로 5연승을 내달리며 6연패의 악몽을 완전히 씻어내는 모습이었다.

팬들의 반응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5연승 달성! 기분 좋은 사람 달려요!"

"요즘 자이언츠 경기 보면 이게 진짜 내가 알던 자이언츠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수들이 너무 잘해줘서 기쁘네요. 파이팅!"

"손 감독님 너무 감사합니다. 엉엉엉. 선수단 세대교체 해주신 것도 감사한데 4등이라뇨? 날 가져요."

자이언츠의 기사마다 달리는 댓글들만 보아도 팬들의 기쁨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 보수적인 의견들도 눈에 띈다.

"설레발 자제 부탁해요. 아직 좀 더 지켜봅시다. 올 시즌 첫 5연승이라잖아. 전반기 동안 팀이 얼마나 못했으면 첫 5연승이야? 10연승도 아니고. 그리고 겨우 4위 올라간 거잖아요? 언제 또 하위권으로 내려갈지 몰라."

"맞는 말이네요. 작년도 그랬고, 재작년도 그랬고, 아마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동안 평생 그랬을 겁니다. 자이언츠는 기대할만하면 귀신같이 연패해서 꼭 하위권으로 떨어지더라니까요."

몇몇 팬들은 팀이 연승 가도를 달리는 상황에서도 과거 자이언츠의 행태를 꼬집으며 조금 더 지켜보자는 입장을 내놓는다.

그런 일부 팬들을 향해 다수의 자이언츠 팬들이 반박의 댓글을 다는 모습이었다.

"너 혼자 지켜 봐. 잘할 때는 칭찬도 해주고 그래야 선수들도 힘을 내지. 꼭 선수들이 잘해도 흠 잡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시즌 성적 49승 44패에 5연승이면 충분히 잘 하는 거 아냐? 2군 선수들로 세대교체하면서 이런 성적 내는 게 보통 일이야? 구단 운용에 대해서 1도 모르면서 잘난 척 자제 좀 부탁드려요."

과거 성적을 들먹이며 최근 기세가 오른 팀의 분위기에 흠집을 내려는 일부 팬들에게 공격적인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그 중 '국민타자 백강호' 라는 아이디가 맹활약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지켜보긴 뭘 지켜봐요? 사직구장 시즌권은 끊어놓고 그런 소리 하는 겁니까? 매일 인터넷 중계로만 경기보지 말고, 현장에 직접 찾아서 백강호 선수 홈런 때리는 것도 보고, 권대우 투수 세이브 잡는 것도 보고 하란 말입니다. 똥 대가리님들아."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공격적인 댓글이 순식간에 댓글 란을 잠식해 나간다.

더 이상 자신의 댓글에 반박댓글이 달리지 않을 때까지 키보드에 올린 손을 쉬지 않던 지 사장은 새벽이 되어서야 만족한 채 퇴근을 했다고 한다.

지 사장을 곁에서 보좌하는 허 실장 역시 '우승은 자이언츠'라는 아이디를 만들어 새벽 늦게까지 지 사장의 댓글 전쟁을 도와야만 했다.

한편, 고척에서의 기분 좋은 시리즈 스윕을 달성한 자이언츠 선수단.

그들은 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사직으로 돌아가는 원정 버스에 오른 상태였다.

시간과 장소는 히어로즈와의 네 번째 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이끈 후 사직으로 돌아가는 원정버스로 옮겨진다.

보통 서울에서 부산까지 장거리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이 선수들의 일반적인 선택이었다.

그런데 지금 원정 버스 안에서 자는 선수는 드물었다.

시리즈 스윕과 시즌 최초 5연승 기록이 선수들을 잠 못 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수제, 소감이 어때? 선발에만 있다가 불펜으로 자리를 옮긴 소감 말이야. 어서 선발에 복귀해야겠다는 야심이 무럭무럭 샘솟지 않아?"

문표는 버스에 오르기 전, 사두었던 삶은 달걀을 까먹으며 근처에 앉은 성수제 투수에게 말을 건넨다.

수제는 박상현 투수가 재활 군으로 내려가면서 비게 된 버스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가 문표의 물음에 대답한다.

"딱히요. 여민석 투수 코치님이 불펜으로 보직 변경할 때 해주신 말이 있습니다. 저를 당분간 롱릴리프로 기용해야 된다고요. 롱릴리프 특성상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는 것보다 승리 쌓을 기회가 더 많지 않겠습니까? 전반기 내내 던지고도 6승 밖에 못 올렸는데 운 좋으면 나머지 4승을 롱릴리프로 채울 수도 있는 거죠."

문표의 물음에 대한 수제의 대답이었다.

롱릴리프(long relief)투수란 선발 투수가 마운드에서 일찍 내려가야 하는 상황일 때 긴 이닝을 책임지는 투수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과거에는 패전 처리의 개념이 컸지만, 현대 야구에서는 지고 있는 상황에서 반격의 기회를 마련하는 투수로서의 기여도를 인정받아가고 있다.

리그 최고 수준인 자이언츠 타선을 생각했을 때 롱릴리프로 마운드에 올라 승리를 챙길 기회도 다른 팀들에 비해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오오~ 롱릴리프로 4승을 채워? 시즌 10승을 해보겠다는 말이야?"

문표는 다른 것보다 수제가 말한 '4승을 채운다'라는 말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이다.

전반기 동안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6승 6패를 거두고 있는 수제가 4승만 더하게 되면 10승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시즌 10승 투수.

이 단어가 투수에게 주는 무게감이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엔트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신인 투수라 하더라도 시즌 10승을 달성하게 되면 구단의 대우가 달라진다.

10승 투수란 유망주 투수를 팀의 선발 투수로서 인식하게 만드는 기준인 것이다.

수제는 지금 그것에 욕심을 내보이고 있었다.

"안 될게 뭐 있겠습니까? 사실 선발 투수는 5일에 한 번 마운드에 올라서 승리를 따내지 못하면 10일에 한 번, 보름에 한 번, 심하게는 한, 두 달이 지나도 승리 투수가 못 될 수도 있습니다. 후반기부터는 접전 상황이 많을 테니까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는 것보다 롱릴리프로 오르는 게 승리를 따낼 확률이 높은 거죠."

수제는 나름의 계산을 통해 불펜으로 전향한 이점을 찾아낸 상태였다.

전반기에는 1군 무대에 주눅이 들기도 했고, 자신을 늘 걱정하는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부담감이 크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부담감과 책임감을 딛고 전반기를 거치다보니 어느새 수제에게 작게나마 1군 무대의 연륜 같은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허헐, 수제 후배도 대단하네. 1군에서 몇 달 마운드에 올랐다고 이제 완전히 1군 선수가 다 됐어. 강호 후배도 그렇고, 대우도 그렇고, 수제 후배도 그렇고. 요즘 루키들은 루키답지가 않다니까. 이러다 우리 같은 베테랑 선수들이 밀려나게 생겼어."

문표는 갑자기 들기 시작한 위기감에 '나도 가만있으면 안 되겠는데?' 라고 홀로 되뇌는 모습이다.

그 말에 곁에 앉은 강호가 문표에게 말을 건다.

"왜요? 기습 번트라도 계속 연마하시게요?"

강호는 히어로즈와의 첫 번째 경기를 회상하며 문표에게 묻고 있었다.

기습 번트로 팀이 한 점차 끌려가던 상황을 동점으로 만들고, 분위기를 반전시킨 문표의 기습 번트에 대해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강호가 건넨 말에 그때의 기분 좋은 기억이라도 떠오른 것인지 문표는 특유의 웃음을 흘리며 강호의 말에 대답한다.

"흐흐. 왜? 강호 후배는 내 번트 실력이 부러운 거야? 노하우라도 알려줄까?"

문표의 되물음에 강호는 순간 대답하지 못하고 피식 웃음 짓는다.

팀의 4번 타자인 자신에게 번트를 가르쳐 준다는 문표의 말에 대답 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강호를 대신해서 누군가가 문표의 말에 담긴 오류를 지적하고 나선다.

문표의 무릎 위에 놓인 삶은 달걀 냄새에 이끌려 뒷자리까지 찾아온 지명타자 채중석이었다.

그는 문표가 까놓은 삶은 달걀 하나를 집어 먹으며 입을 연다.

"문펴, 그게 무슨 허튼 소리야? 팀의 4번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하는 감독이 어딨어? 강호의 출루율이 얼만 줄 알아? 5할 2리라고. 강호가 번트로 출루하는 것보다 그냥 가만히 서있는 게 1루로 나갈 확률이 더 높은 거라고. 뭐 하러 번트를 지시하겠어? 타석에 가만히 서있어도 상대 투수들이 볼넷을 내주는 지경인데."

중석은 강호의 시즌 출루율을 거론하며 문표를 타박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팀의 4번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하는 감독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팀의 타점을 생산해야하는 4번 타자가 희생 번트를 대는 것은 오히려 팀에 손해가 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타율이 높고, 출루율 또한 높은 타자에게 희생 번트 지시는 그저 아웃카운트를 잡아먹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문표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희생 번트라면 중석 선배 말이 맞겠죠. 그런데 상대 투수들이 강호가 번트를 댈 거라고 예상이나 하겠습니까? 실제로 강호가 번트를 댄 적도 거의 없고요."

"그러니까 네 말은 희생 번트가 아니라 기습 번트를 대면 강호가 내야 안타로 출루하게 될 거라는 말이지?"

"그렇죠. 누가 예상이나 하겠습니까? 강호가 기습 번트를 댈 거라고요. 4할에 40홈런 치는 타자가 기습 번트 될 거라고 예상하는 배터리는 많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강호의 장타율까지 고려하면 정상적인 수비 위치보다 후방 배치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강호가 번트만 잘 연마해 놓으면 내야 안타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나름 논리적인 문표의 말에 중석이 '으음, 아예 헛소리는 아니네'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강호 역시 문표의 의견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번트를 '배워둬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그 때 앞자리에 앉아 있던 오진만이 대화에 끼어든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아까 강호 선배 출루율이 5할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강호 선배가 기습 번트를 성공시킬 확률이 5할은 넘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출루율이 5할인데 기습 번트 성공률이 그것보다 낮으면 결국 소용없는 거 아닐까요?"

진만의 예리한 질문에 중석이 '아, 맞네!'라고 동조하는 모습이었다.

문표 역시 그 점까지는 고려하지 않은 것인지 진만을 흘겨보며 '이 자식이, 쓸데없는 소리를' 이라고 말하며 무릎에 놓인 삶은 달걀에 다시 시선을 돌린다.

그런데 그의 무릎 위에는 더 이상 달걀이 남아 있지 않았다.

"누가 내 계란 다 먹었어? 여덟 개나 있었는데."

"문펴야. 나는 이만 가볼게."

"아이, 중석 선배! 내 계란!"

문표는 대화를 나누는 중에 자신의 간식을 모두 먹어치워 버린 중석의 만행에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문표의 행동에 원정 버스 안이 웃음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지나 누군가의 목소리에 선수들의 시선이 차창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 이제 비가 안 오네. 완전히 그친 모양인데요? 구름이 개었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강호 역시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창 밖에는 작은 구름들이 총총히 떠 있는 밤하늘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먹구름이 개어 티 없이 밝은 달을 바라보며 강호는 앞으로의 일정이 바빠질 것을 예감한다.

모든 팀들을 본의 아니게 쉬게 만들었던 비구름이 지나가고, 이제 화창한 날씨 속에 각 팀들의 치열한 후반기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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