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200화 (19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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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를 예고하다

    고척에서의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 경기 승부에 따라 자이언츠가 히어로즈를 내리고, 4위로 올라설 수 있느냐 없느냐가 걸린 경기이다 보니 양 팀 팬들의 이목이 경기에 집중되고 있었다.

    히어로즈의 시즌 성적은 48승 44패였고, 자이언츠는 어제 경기를 승리하며 47승 44패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경기의 결과에 따라 양 팀의 순위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경기에 쏠린 시선이 외야를 향해 이동한다.

    자이언츠의 3번 타자로 타석에 오른 황제인이 때린 타구가 외야를 향해 뻗어져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1회 초, 1사 주자 2루의 상황에서 나온 황제인의 큼지막한 타구에 자이언츠 원정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넘어가나? 넘어갔어?"

    "아직 안 넘어갔어. 좀 기다려봐. 지금 넘어가, 아...잡혔네."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펜스 앞에서 잡혀버린 황제인의 타구에 아쉬움을 토해낸다.

    그런데 히어로즈 중견수 한정음이 타구를 잡는 사이에 태그에 들어간 2루 주자 박철이 3루로 향하자 아쉬움을 달래는 함성으로 박철의 주루 판단을 칭찬하게 된다.

    팬들이 박철의 주루에 흥분하는 이유는 다음 타석에 오르는 타자가 다름 아닌 팀의 4번 타자이기 때문이었다.

    "넘겨라, 백강호!"

    "홈런 한 방 해줘!"

    자이언츠 팬들은 타석에 선 강호가 오랜만에 홈런포를 가동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강호가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난 후반기에는 단 하나의 홈런도 가동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팬들의 바람은 더욱 큰 상태였다.

    그런데 팬들의 생각처럼 강호의 홈런 페이스가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후반기 시작과 함께 계속되는 폭우로 고작 두 경기 밖에 진행되지 않은 경기 수가 문제였던 것이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인 18일 경기에서 2개의 홈런을 때려낸 강호는 후반기 들어 홈런을 때리지는 못했지만, 후반기 경기라고 해봐야 아직 2경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팬들에게는 강호가 며칠만 홈런을 때리지 못하더라도 페이스가 떨어진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강호에 대한 믿음이 생겨난 것이다.

    어느새 강호는 모든 자이언츠 팬들에게 자이언츠의 4번 타자로 각인되어 있었다.

    '득점권 상황이니 두 개의 스킬 모두가 발동이 된 상태야. 구종 하나를 노리고 때린다면 홈런이 될 가능성도 충분해!'

    타석에 선 강호는 팬들의 바람대로 장타를 노려볼 생각이었다.

    홈런은 18일 이후 40개에서 멈춰져 있었고, 경기가 계속 우천 취소되다 보니 홈런을 때릴 때의 감이 조금은 멀어진 느낌도 있었다.

    예전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상대 투수의 구종 하나만을 노리고 타격할 생각을 가진다.

    그런 강호와 시선을 마주한 히어로즈의 투수는 순간 고민을 하게 된다.

    '거를까?'

    오늘 히어로즈의 선발투수는 김성수 투수였다.

    88년생의 김성수 투수는 올해로 32살이 되는 중견 투수로서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히어로즈로 트레이드 된 선수 중에 한 명이었다.

    한 때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작년부터 선발 투수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거, 눈빛 한 번 살벌하네. 저놈의 눈빛은 볼 때마다 적응도 안 돼.'

    성수는 강호와 눈빛을 마주하며, 과거 그를 상대했을 때마다 적시타를 허용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올 시즌 강호가 올린 162타점 중에 김성수 투수에게서 뺏어낸 타점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김성수 투수에게는 강호와의 맞대결이 악몽처럼 느껴질 정도다.

    '어차피 2사 주자 3루 상황이잖아. 차라리 백강호에게 볼넷을 주고, 스팅하고 상대하는 게 좋을 수도 있어.'

    김성수 투수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스팅과의 상대 전적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닌 김성수 투수라서 강호를 1루로 보내고, 스팅과 승부하는 것이 그리 좋은 작전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강호를 거른다는 스스로의 계획조차도 믿음이 생기질 않는다.

    '그래도 좋은 공은 주지 말아야지. 유인구 위주로 승부를 보다가 볼넷을 주면 어쩔 수 없는 거야. 다른 타자도 아니고 백강호잖아.'

    성수는 강호의 올 시즌 기록을 떠올리며 그런 식으로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김성수 투수가 미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유인구 승부를 펼치려는 성수의 의도를 강호는 공 하나를 지켜보는 것으로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호에게 상대 투수의 코스를 읽을 수 있는 기간제 아이템 효과가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김성수 투수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볼."

    주심의 초구 판정에 강호는 타격 자세를 풀고, 타석에서 반 발짝 물러선다.

    '여차하면 거르겠다는 생각으로 좋은 공은 주지 않겠다는 말이구나. 이렇게 되면 좋은 코스의 공이 올 거라는 기대는 버려야겠어. 볼넷을 얻어서 걸어 나갈게 아니라면 결국 볼을 타격해야 돼.'

    강호는 김성수 투수의 생각을 간파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다시 타석에 서서 오픈스탠스로 타격폼을 수정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바로 근처에서 확인한 박동현 포수.

    '시야를 넓혀서 컨택 위주의 타격을 하겠다는 건가? 주자가 3루에 있으니 단타를 때려도 타점을 올릴 수 있으니까. 나쁜 생각은 아니지만, 우리가 좋은 공을 줄 리 없잖아?'

    박동현 포수 역시 투수와 마찬가지로 유인구 위주의 승부를 벌일 생각이었다.

    강호가 1회 타율이 다른 이닝의 타율보다 높은 편이어서 되도록이면 1회 득점권 상황에서 강호와의 승부를 피할 작정이다.

    그래서 다음 2구 째 결정 역시 바깥쪽으로 빠지는 유인구 싸인을 보낸다.

    김성수 투수는 포수의 싸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템포로 공을 던졌다.

    "볼 투."

    주심의 판정은 이번에도 볼이었다.

    강호는 이미 예측하고 있던 바깥쪽 코스로 공이 향하자 자신이 노려야할 공을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3구째 공이 몸쪽 아래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인 것을 확인하고는 곧장 무게 중심을 바꾸며 타격에 나선다.

    따악!

    강한 타격음과 함께 강호가 때려낸 타구가 높이 떠오르고 있었다.

    허공에 높이 떠오른 타구에 3루 주자인 박철이 태그 업에 들어갔고, 타구의 방향이 파울라인 밖이 아닌 인필드로 들어온 것을 확인한 강호는 곧장 1루를 향해 내달린다.

    약간은 타이밍이 어긋난 타구가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로 떨어질 듯이 높이 솟구치자 2루수와 우익수, 중견수가 타구 방향을 쫓아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이 때 변수가 발생하고 있었다.

    탁!

    "어?!"

    타구를 쫓던 2루수 서건찬, 우익수 데이비드, 중견수 한정음이 동시에 얼어붙고 만다.

    허공으로 높이 떠오른 강호의 타구가 구장의 천장을 맞은 후 그라운드로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포물선을 그리고 떨어질 것이라 여겼던 타구가 천장에 맞고 굴절되자 순간 타구를 쫓던 세 명의 야수들은 타구 위치를 놓치고 만다.

    "뛰어, 홈으로!"

    그 사이 베이스 코치의 지시를 받은 3루 주자 박철이 홈으로 향했고, 타구가 천장을 맞는 것을 확인한 강호는 달리는 속도를 더욱 높여 2루를 향해 내달린다.

    그 사이 그라운드 위에 떨어진 타구를 주워든 우익수 데이비드가 2루로 공을 던져보지만, 강호의 발이 베이스에 먼저 닿아 있었다.

    "세이프."

    2루심의 판정이 세이프가 되는 것을 확인한 자이언츠 원정 팬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와아아!!"

    "뭐야, 뭐야? 인정 2루타야?"

    "몰라, 인마. 심판이 세이프라잖아. 그럼 1타점 2루타지, 뭐. 백강호 선수가 2루 밟고 있잖아?"

    "천장 맞으면 인정 2루타야? 아니면 인필드야?"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강호가 만들어낸 묘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전광판에 표시되는 1득점에 기쁨의 함성을 지른다.

    정확한 룰을 따지자면 천장에 공이 맞고 그라운드로 떨어졌을 때 파울 라인 밖이면 파울이 선언되고, 인필드 타구였다면 인 플레이 판정이 된다.

    강호가 1루를 밟고 있으면 1루타가, 2루를 밟고 있으면 2루타가 되는 것이다.

    천장에 공이 맞고 떨어졌다고 해서 인정 2루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인 플레이가 인정된다.

    만약 천장의 구조물에 공이 끼어버린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그 때는 인정 2루타로 기록되는 것이지만, 아직 고척구장이 개장된 이례로 그런 일이 발생한 적은 없었다.

    '타구가 빗맞았어. 홈런을 염두 해두고 스윙을 해서 다행히 타구가 천장에 맞아버렸구나.'

    강호는 행운으로 만들어진 2루타에 실소를 머금게 된다.

    꼼짝없이 외야 뜬공 처리될 줄 알았는데 천장에 공이 맞으면서 1타점 2루타로 결론이 나버렸다.

    타구 위치를 가늠했을 때 뜬공으로 아웃 처리 됐다면 3루 주자인 박철이 홈으로 들어오지 못했을 것을 예상하면 가장 좋은 결과가 만들어진 것이다.

    '운이 따라주는구나.'

    강호는 1회 초에 때려낸 이 행운의 안타로 오늘 경기의 분위기가 자이언츠에게 넘어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리드 폭을 크게 벌린다.

    과연 그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인지 다음 타자인 스팅이 좌중간을 가르는 안타를 때려내며 손쉽게 1득점을 올릴 수 있었다.

    홈을 밟은 후 덕 아웃에 들어서는 강호에게 동료 선수들의 환영 인사가 뒤따른다.

    선배 선수들은 강호가 홈런을 쳤을 때보다도 기뻐하며 손뼉을 마주쳐 온다.

    "그런 묘기는 어디서 배운 거야? 타구가 천장 뚫는 줄 알았네."

    "이야~ 고척돔 천장이 60미터가 넘는다던데. 그걸 맞추네. 대단하다. 괜히 올스타 홈런왕이 아니네."

    선배들은 강호가 때려낸 2루타에 각자의 코멘터리를 더하며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그런 분위기는 1회 말 수비 상황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따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히어로즈 1번 타자 서건찬의 발걸음이 1루로 향한다.

    그런데 몇 걸음 떼지도 못한 상태에서 서건찬의 발이 멈춰서고 있었다.

    터업.

    2루수 황인태의 키를 넘기는 안타가 될 것이라 여긴 타구가 인태의 글러브에 막혀버린 것이다.

    서건찬의 라인드라이브 성 타구를 막아낸 인태가 씨익 웃어 보인다.

    그의 미소에 자신감을 얻은 것인지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로 오른 박진웅 투수는 1회 말을 삼자범퇴로 막으며 산뜻한 출발을 알린다.

    박진웅의 호투는 야수들의 호수비를 등에 안은 채 6회 말까지 이어졌고, 7회 말 마운드를 다음 투수에게 넘길 때까지 무실점 호투하며 자신의 역할을 100%완료하고 내려간다.

    그 사이 자이언츠 타선은 4득점을 추가하며 이제 양 팀 스코어는 6대 0. 6점차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 상황은 8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으로 넘어간다.

    8회까지 압도적인 모습으로 히어로즈를 제압하는 듯하자 자이언츠 덕 아웃에서는 선수 교체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모습이다.

    "감독님, 주전 선수들을 이제 좀 쉬게 할까요? 좌익수 자리에 택근이를 넣고, 스팅을 빼는 게 어떨까요? 2루 자리에는 훈이를 한 번 시험해보고요."

    김민철 수석이 손 감독에게 물어오고 있었다.

    그의 제안은 참으로 시기적절한 것이었다.

    마침 손 감독은 김 수석을 불러 선수 교체를 지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대타로 택근이와 훈이를 넣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4번 타순에 대타로 넣을까요?"

    손 감독은 이어진 김 수석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게 된다.

    현재 8회 초 무사 상황에서 3번 타자인 황제인이 타석에 선 상태였다.

    대타를 내려면 4번 타자인 강호를 빼고, 대타를 넣어야 했다.

    잠시 대기 타석에서 투수의 투구 타이밍을 재고 있는 강호를 살피던 손 감독은 피식 웃음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 강호 녀석이 저렇게 의욕적인데 대타를 내서야 되겠어? 5번 타순에 훈이를 대타로 넣고, 택근이는 8회 말에 대수비로 기용하도록 하지."

    손 감독의 말에 김 수석은 잠시 대기 타석으로 시선을 돌린다.

    과연 손 감독의 말대로 강호가 특유의 눈빛을 한 채 대기 타석에서 매섭게 배트를 휘두르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마치 곧 있을 타석 상황을 예견하는 것만 같은 강호의 배트 스윙에 김 수석 역시 웃음 짓게 된다.

    딱.

    그리고 황제인이 깔끔한 중전 안타를 때리고 1루 베이스를 밟자 기다렸다는 듯이 타석으로 걸음을 옮기는 강호의 모습에 김 수석은 손 감독의 지시대로 교체 선수를 결정짓기로 한다.

    "그럼 5번 자리에 훈이를 넣겠습니다."

    김 수석은 그렇게 말을 꺼내며 대기 타석으로 나서려던 스팅을 불러들이고, 곁에 있던 2루수 최훈에게 대타 지시를 내린다.

    그 사이 타석에 선 강호.

    앞선 세 번의 타석에서 홈런을 노려봤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어쩌면 이번 경기 마지막 타석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기회를 붙잡으려 한다.

    '오히려 상황은 더 좋지 않아. 주자가 득점권 상황에 있는 것도 아니라서 '칠 때 친다' 스킬이 적용되지 않은 상태야. 하지만 무사 주자 1루 상황이니까 나를 볼넷으로 내줄 생각은 하지 않겠지.'

    강호는 타석에 선 채 냉철한 판단력을 가동하여 상대 투수의 초구를 예측한다.

    그리고 기간제 아이템의 효과로 가상의 스트라이크 존에 찍히는 상대 투수의 초구를 확인하는 순간, 힘껏 끌어당겼던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강호가 때린 타구가 고척구장을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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