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96화 (19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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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혼을 넘겨 받다

모든 야구 팬들의 시선은 자이언츠와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리는 고척으로 향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른 모든 팀의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됐기 때문에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두 팀의 경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자이언츠와 히어로즈 팬들 뿐만 아니라 다른 팀을 응원하는 일부 팬들의 시선 속에 두 팀의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고척에서 진행되고 있는 히어로즈와 자이언츠, 자이언츠와 히어로즈 간의 시리즈 4차전 중계를 맡은 캐스터 조호준입니다. 해설에는 이정범 위원과 김신우 위원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중계석의 조 캐스터가 인삿말과 함께 경기 시작을 알리고 있었고, 곧 해설 위원들의 짧은 코멘터리 후 조 캐스터의 말이 이어진다.

"오늘 경기는 며칠 간 계속되는 빗줄기 속에서도 유일하게 진행되는 경기라는 것과 4, 5위 팀이 맞붙는 경기라는 점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두 분 위원께서는 오늘의 경기, 어떻게 보십니까?"

정해진 멘트로 바통을 넘기는 조 캐스터의 말에 먼저 대답한 것은 이정범 위원이었다.

"오늘의 경기는 두 팀이 현재 순위를 유지하거나 한 계단 상승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경기로 볼 수 있습니다. 히어로즈가 시즌 48승 43패로 4위를 달리고 있거든요. 자이언츠가 46승 44패로 히어로즈를 한 걸음 뒤에서 쫓고 있는 형상입니다. 만약 이번 시리즈에서 자이언츠가 시리즈 스윕을 하게 되면 히어로즈를 대신해서 4위에 올라서게 되는 거고요. 반대로 히어로즈에서 스윕을 하게 되면 3위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경기 승부의 무게추가 어디로 기울 것인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이 위원이 미리 준비해둔 멘트로 조 캐스터의 말에 대답한 후, 곧 기다리고 있던 김신우 위원이 바통을 넘겨 받는다.

"양 팀 특이사항이라고 할만한 것은 히어로즈에서는 먼저 전반기 동안 활약했었던 명길관 투수가 다시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거예요. 명길관 투수 올 시즌 1군에 데뷔해서 3승 2패 7홀드 1세이브, 방어율 3.19로 좋은 활약을 해줬었거든요. 히어로즈의 차세대 영건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잠시 팔꿈치 통증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됐었는데, 올스타브레이크 이후 처음으로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김 위원은 먼저 홈 팀인 히어로즈의 특이사항부터 설명한다.

이어서 자이언츠의 특이사항에 대해서도 설명을 덧붙인다.

"반면에 자이언츠는 불펜의 핵심 선수인 박상현 투수가 엔트리에서 빠졌어요. 경기 전에 확인해 보니까 허리 통증 때문에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결과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허리 통증이 심각한 거면 수술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상현 투수와 백업 내야수인 이어산이 엔트리에서 빠지고, 재활 군에 있던 황제인과 최훈 선수가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어요. 두 선수 모두 2군 경기에서 이틀 동안 경기 감각을 조율했었거든요. 손성조 자이언츠 감독은 두 선수의 기량이 올라왔다고 보고, 1군으로 불러들인 것 같습니다."

김신우 위원의 해설마저 끝난 후 시구, 시타 행사와 애국가 제창이 이어지고, 곧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경기의 첫 타자로 타석에 선 사람은 자이언츠의 1번 타자인 유성철이었다.

성철은 마운드에 오른 상대 투수 맥도날드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하며, 초구를 기다린다.

그런 성철과 시선이 마주친 맥도날드는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서 성철을 내려다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어 보인다.

히어로즈의 맥도날드 투수.

예전 자이언츠와 맞붙었을 때는 강호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 후 대오각성 하여 시즌 성적 9승 5패에 방어율 3.64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는 중이었다.

빠른 구속을 가진 로케이션 투구와 좌 투수 특유의 백 도어 슬라이더가 장점이었지만, 구위가 특별히 강한 편은 아니어서 피 홈런 비율이 높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의 2선발을 담당하며 전반기 내내 좋은 모습을 보이며 9승을 챙긴 맥도날드 투수.

그가 이번 시리즈 맞대결에서의 첫 공을 던지기 위해 와인드업에 들어간다.

터엉!

포수 박동현의 미트를 때리는 묵직한 공이 초구로 뿌려진다.

맥도날드의 알려진 구위보다 한층 더 강해보이는 초구는 제구마저도 완벽한 공이었다.

그 공에 타자인 성철이 인상을 찡그리는 사이 주심의 파정이 이어진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초구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덕 아웃에서 맥도날드의 초구를 지켜본 자이언츠 선수들이 '허헐'하는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로 좋은 공이 던져진 것이다.

강호 역시 덕 아웃에서 맥도날드의 초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구위가 달라졌어! 전반기 때까지는 저런 공을 던지는 투수가 아니었는데.'

강호는 맥도날드의 초구를 지켜보며 전반기 때 그를 상대했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150km대에 이르는 강속구와 특유의 백 도어 슬라이더, 거기에 로케이션 투구로 삼진과 범타를 유도하는 능력이 뛰어났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구위를 보여준 적은 없었다.

'여름이 되면 더 강해지는 유형의 투수였었나? 미리 대비하고 타석에 서지 않으면 강한 구위에 배트가 밀릴 수도 있겠어.'

강호는 타석에 오른 유성철이 내야 뜬공으로 물러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타석 차례에 대한 전략을 세운다.

경기 전에 전력 분석 자료를 통해 준비해둔 대처방법은 폐기하기로 했다.

투수들에게는 일명 '긁히는 날'이라는 것이 있어서 분석 자료에 나와 있는 것보다 구위나 제구, 구속이 갑작스레 좋아지는 날이 존재했다.

오늘이 맥도날드 투수의 공이 긁히는 날인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다음 타자인 박철마저 외야 뜬공으로 돌려세운 후 3번 타자 전준오는 삼진으로 잡아낸다.

대기 타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덕 아웃으로 걸음을 옮긴다.

'맥도날드의 구위를 봐서는 오늘 경기에서 7회 전까지 득점을 얻어내는 게 쉽지는 않겠어.'

강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덕 아웃에서 글러브를 챙겨 든 후, 다시 그라운드를 향해 뛰어간다.

오늘 경기가 있기 전까지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양 팀의 경기가 뜨거운 타격전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23일 사직에서 있었던 자이언츠와 트윈스의 경기에서 자이언츠가 무려 18득점을 올리며, 18대 1로 승리를 얻기도 했고, 히어로즈도 직전 경기에서 10득점을 뽑아내며 타선에 불이 붙은 모습을 보여줬었다.

최근 들어 활화산처럼 타오르기 시작한 양 팀 타선을 생각했을 때 오늘의 경기는 타격전이 될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들의 그런 생각은 1회 말 공격이 이어지는 동안 완전히 수정되고 있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1회 말, 히어로즈의 2번 타자 고정욱이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자 경기를 관전하는 많은 팬들이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2016년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고정욱은 올 시즌 무려 3할 8푼 2리의 타율을 기록하며, 21개의 홈런과 24개의 도루를 올리며 20-20클럽에 이름을 올린 상태였다.

그런 강타자가 4구만에 삼진으로 물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

고정욱을 삼진으로 돌려세운 투수 박세준이 길게 날숨을 뱉어낸다.

1번 타자 서건찬에 이어 고정욱까지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시작부터 2개의 삼진을 솎아내고 있는 박세준.

그의 구위는 1회 초 상황에서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준 히어로즈의 선발 투수 맥도날드에 전혀 뒤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등 뒤에서 세준의 투구를 지켜 본 강호마저 놀랄 정도였다.

'오늘 경기는 공격의 물꼬가 쉽게 풀리지는 않겠어. 7회가 되기 전까지는 양 팀 득점을 합쳐도 5점을 낼 수나 있을까.'

강호는 양 팀 선발 투수들의 구위를 확인하며 불펜 투수로 교체되기 전까지는 득점이 쉽게 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 강호의 생각은 정확하게 들어맞아 6회까지 양 팀 선발 투수들은 각각 1실점과 2실점을 내어줬을 뿐 특별한 위기 상황 없이 양 팀 타선을 잘 막아내는 모습이었다.

이제 상황은 경기의 승부처가 될 7회로 넘어간다.

7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에서는 히어로즈 선발 투수 맥도날드가 아닌 다른 선수를 마운드에 올리고 있었다.

히어로즈가 2대 1로 한 점 앞선 상황에서 마운드에 새롭게 오른 투수는 올 시즌 히어로즈 불펜의 핵심으로 떠오른 명길관 투수였다.

길관은 강호의 2군 시절에 몇 차례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투수로서 강력한 무브먼트를 자랑하는 투심 패스트볼이 장기인 신인 투수다.

140km후반 대의 투심과 투구 폼 변화 없는 슬라이더, 무엇보다 그가 좌완투수라는 사실이 가장 강력한 무기 중에 하나였다.

'명길관 투수. 2군 시절부터 투심의 무브먼트가 지저분하기로 유명한 투수였어. 어느새 1군의 주전 투수로 자리 잡게 됐구나!'

강호는 1군에서 다시 보게 된 명길관 투수에게 왠지 반가운 기분마저 들고 있었다.

치열했던 2군 무대에서 마주했었던 길관을 다시 만나게 되자 오랜 추억을 꺼내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추억에 대한 회상은 길지 않았다.

새롭게 마운드에 오른 길관이 팀의 2번 타자인 박철에게 볼넷을 내주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역할이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팀의 4번 타자야. 상대 투수를 보고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라 점수를 뽑아내야하는 4번 타자. 기회가 내게 이어지면 반드시 타점을 때려내야만 해!'

강호는 생각을 정리하며 배트를 챙겨들고 대기 타석에 선다.

오늘 경기에서 자이언츠가 기록한 유일한 1득점은 강호의 적시타로 만들어진 점수였다.

빈타에 허덕이고 있는 경기에서 유일한 팀 득점을 올린 강호.

자이언츠 팬들의 기대가 강호에게로 쏠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3번 타자 전준오의 희생 번트로 주자인 박철이 2루로 진루하자 그 기대감은 더욱 커지게 된다.

"백강호! 때려라!"

"1타점만 내자! 백강호 선수, 한 번만 쳐주세요!"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함성과 함께 강호가 타석에 오르고 있었다.

강호는 모든 팬들의 기대와 선수단의 시선을 받으며 타석을 준비한다.

명길관 투수의 주무기인 투심 패스트볼을 염두하며 타석에 선 강호.

그가 지금의 상황에서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거르지만 마라. 제발 거르지만 마!'

강호가 바라는 것은 상대 배터리가 자신을 볼넷으로 거르지 않았으면 하는 점이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히어로즈 감독이라면 40홈런에 4할의 타율을 기록하는 강호 본인과 같은 타자는 무조건 거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히어로즈의 감독은 다른 이도 아닌 '제갈량'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전략, 전술의 귀재.

강호는 상태 고의사구로 걸러질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 강호의 우려는 현실이 된다.

"베이스 온 볼."

4개의 공이 던져진 후 주심은 볼넷을 선언하고 있었다.

포수 박동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달아 네 개의 볼을 받아냈고, 주심의 볼넷 선언으로 강호는 어쩔 수 없이 1루로 출루해야만 했다.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강호와의 승부를 피하는 히어로즈의 판단에 야유를 쏟아내고 있었지만, 결정이 번복될 리는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이언츠의 승부수가 띄워진다.

그것을 확인한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놀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 황제인 아냐? 황제인 맞지?"

"어디? 맞네! 황제인이네. 엔트리에 등록됐다더니 대타로 나오나 보다."

"황제인 홈런 한 방 때려라!"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환호 속에 과거의 4번 타자였던 황제인이 타석에 오르고 있었다.

손 감독은 지금의 상황이 승부처라 여기고, 5번 타자 스팅의 타석 때 황제인을 대타로 올린 것이다.

강호가 볼넷으로 출루해 1사 주자 1, 2루의 상황에서 타석에 선 대타 황제인.

그가 오랜만에 타석에 선 채 상대 투수인 명길관을 주시한다.

'그 잘난 투심 한 번 던져봐라. 내가 담장 밖으로 넘겨줄 테니까!'

명길관 투수를 노려보는 황제인의 생각이었다.

그는 오직 명길관의 투심 하나만을 연구한 채 타석에 오른 상태였다.

충분히 납득이 되는 선택이었다.

길관의 투심 투구 비율이 70%에 육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인 정도 되는 타자가 다른 공을 노리는 것보다 투심을 노리는 것이 장타의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역전 주자인 강호가 1루에 출루한 상황.

황제인으로서는 장타를 의식하고 오직 투심만을 노리는 타격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히어로즈의 승부수가 던져진다.

"볼."

주심의 초구 볼 판정에 자이언츠 팬들이 또 다시 야유를 쏟아내고 있었다.

왜냐하면 히어로즈 배터리가 강호에 이어 대타 황제인 마저 고의사구로 걸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이스 온 볼."

또 다시 주심의 볼넷 판정이 선언되고, 황제인이 맥 빠진 표정을 지으며 1루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을 덕 아웃에서 지켜보던 자이언츠의 김민철 수석이 손 감독에게 한 걸음 다가간다.

"또 대타를 올릴까요? 2군에서 올라온 훈이도 있고, 이인호나 중석이도 대기하고 있습니다."

대타 카드를 거론하는 김 수석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손 감독이 고개를 내젓는다.

"대타는 없어. 그대로 문표로 간다!"

손 감독의 결정은 대타 없이 6번 타자인 최문표에게 모든 것을 맡기자는 것이었다.

아직 아웃카운트가 1아웃 상황이어서 병살타만 기록하지 않으면 최근 타격감이 오르고 있는 7번 타자 강민수에게 기회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괜히 대타 카드가 실패하면 승부처인 만루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는 결정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손 감독의 결정 속에 다음 타자인 문표가 타석에 오른다.

그는 장난기 넘치는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진지한 모습으로 타석을 준비하고 있었다.

타석에 선 문표는 문득 박상현 투수가 숙소를 떠나기 전 자신에게 남긴 마지막 말을 떠올려 본다.

'이대로 끝나는 게 아니야. 나는 다시 마운드에 돌아올 거야. 이대로 야구 인생을 끝내는 일은 없을 거야.'

문표는 박상현 투수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며 배트를 힘껏 쥔다.

상현의 마지막 순간을 배웅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문표.

그 감정을 담아 명길관 투수의 초구를 향해 배트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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