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93화 (19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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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노하우

강호는 원하던대로 목요일 하루를 알차게 보낸다.

기 코치와의 훈련을 끝낸 후, 그에게 식사 대접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꾸만 본인이 밥값을 내려는 기 코치로 인해 강호는 한동안 애를 먹어야 했다.

그런 강호가 밥값을 내기 위해 기 코치에게 꺼낸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저 원래 밥 잘 안삽니다."

"응?"

"그냥 그렇다고요."

강호는 그렇게 기 코치의 주의를 돌려놓은 뒤, 빠르게 몸을 움직여 계산대에 카드를 내밀고 있었다.

기 코치가 방심한 사이 먼저 카드를 긁어버린 강호.

주루 코치인 기 코치가 그동안 알려준 주루 노하우로 밥값 계산을 위해 몸을 움직인 것이다.

계산대 점원에게 카드를 건넨 동작은 기 코치가 몇 달 동안 강호에게 가르쳐준 훈련법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움직임이었다.

그 모습을 넋 놓고 지켜보고 있던 계산대 점원과 기 코치. 그 중 기 코치가 어이를 상실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 온다.

"이러라고 알려준 스퍼트 노하우가 아니잖아."

기 코치는 강호의 빠른 움직임에 놀라며 그렇게 따져 묻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어떻게든 식사를 대접하려는 강호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동안 계산대에 있던 점원이 강호의 카드로 계산을 끝내고, 점원에게 카드를 돌려받은 강호는 환하게 웃음 지으며 이렇게 대꾸하고 있었다.

"복습해 본 겁니다."

강호는 문표의 너스레를 흉내내보며 그렇게 대답했다.

뜻하던 대로 기 코치에게 식사 대접에 성공한 강호는 기분 좋은 목요일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맞이한 금요일 아침.

주말 원정길에 오르기 위해 사직구장으로 향한다.

우산을 받쳐 들고 원정 버스가 있는 사직구장의 주차장으로 향하던 강호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는 몸을 돌리게 된다.

"강호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큰 목소리로 강호에게 인사를 건네는 두 사람.

그들은 손 감독의 계획에 따라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오진만과 임정이었다.

진만과 임정은 한 때 강호와 2군에서 내야 포지션 경쟁을 벌이기도 했던 관계였다.

97년생인 진만은 올해로 23살이었고, 임정은 21살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도 우산조차 받쳐들지 않은 채 강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2군에서는 경쟁자의 위치였던 까닭에 강호를 극도로 경계하던 두 후배들은 지금은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강호를 대하고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구단의 역사를 새로 써가며 올스타 MVP에까지 오른 강호가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경쟁이 가능할 때나 경계했던 것이지 완전히 넘을 수 없는 곳에 도달한 강호와 경쟁할 생각이 사라진 두 후배들이었다.

강호는 그런 두 사람의 인사에 원정 버스로 향하던 걸음을 멈춘다.

"우산도 없이 그렇게 나온 거야? 아무리 가랑비라고 해도 계속 맞으면 옷이 젖잖아."

걱정을 담은 강호의 말에 먼저 인사를 건넨 진만이 곁에 있는 임정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정이가 차가 있어서 근처까지 정이 차를 타고 왔습니다."

임정의 차를 타고 근처까지 왔다는 진만의 말에 강호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21살밖에 되지 않은 임정이지만, 구단에 입단할 때 어느 정도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해서인지 차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다들 나처럼 계약금 없이 입단한 게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우습게 느껴진다.

만약 이곳이 한창 주전 경쟁 중인 2군 무대였다면 나이 어린 임정이 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도 질투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시기, 질투가 없는 강호는 그럴 리 없겠지만, 다른 선수들은 달랐다.

그래서인지 임정이 2군에서는 자신의 차를 잘 가지고 다니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몇 달 밖에 지나지 않은 일인데, 벌써 추억처럼 느껴지는구나. 이제 나도 1군 선수가 다 되가네.'

강호는 과거의 회상을 그 정도 선에서 정리하며 피식 웃음 짓는다.

2군에서 포지션 경쟁을 벌이던 후배들과 마주하게 되니 치열했던 2군 기억이 절로 떠오르고 있었다.

문표나 대우가 1군에 합류했을 때와는 조금은 다른 기분이었다.

'지명 타자인 문표 선배나 투수인 대우와 포지션 경쟁을 할 일은 없었으니까.'

강호는 그렇게 회상을 정리하며 두 후배들과 함께 원정 버스로 걸음을 옮긴다.

진만과 임정은 그런 강호의 등 뒤에 바짝 다가선 모습이었다.

두 후배들을 이끌고 원정 버스에 오른 강호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는다.

그러자 먼저 버스에 올라 자는 척을 하고 있던 문표가 몸을 획하고 돌리며 강호에게 말을 걸어온다.

"내가 강호 후배 덕분에 어제 누구랑 밥을 먹게 됐는지 모를 거야. 암, 모르고말고. 쉬는 날에 단톡방에 훈련 동영상을 올리는 사람이 어딨어? 강호 후배는 어제 카톡 보내고, 단톡방을 보지도 않았지?"

자신의 자리에 앉자마자 따져 묻는 문표의 목소리에 강호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무슨 소리세요? 저는 주루 코치님이 보내주신 훈련 동영상을 공유한 거라고요. 제가 단톡방에 안 올렸으면 기 코치님이 따로 카톡으로 자료를 보내셨을 겁니다."

문표와 강호의 대화에 근처에 있던 진만과 임정이 '아~'하는 탄성을 내지른다.

그리고는 묘한 눈빛으로 문표를 바라본다.

아직 1군 선수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두 선수들이지만, 2군 생활을 함께 했던 문표와 강호만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고 있었다.

"어제 중석 선배님하고 식사는 잘 하셨습니까?"

문표는 강호와의 대화에 끼어드는 진만의 목소리에 '엥'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린다.

중석과의 저녁식사를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거나 단톡방에 말했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진만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중석 선배가 얘기해준 거야?"

"뭐 그렇다고 봐야죠. 중석 선배님 카카오 스토리에 문표 선배님하고 밥 먹은 셀카 사진 잔뜩 올리셨던데요?"

"아이고! 그거 좀 알려드렸더니 곧바로 써먹었나보네. 남자가 그렇게 행동이 가벼워서야 어디다 쓸 수 있겠어?"

문표는 어제 중석과 만난 식사 자리를 떠올리며 푸념한다.

어제 중석과 밥을 먹으며 카톡을 무음으로 하는 방법이나 카카오 스토리에 게시물 올리는 방법 등을 알려준 기억이 떠오른다.

문표가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며 중석을 욕하고 있을 때, 이제 막 원정 버스에 오른 당사자가 나타난다.

"문표 너, 내 욕하고 있었지? 네가 내 욕하는 소리는 10리 밖에서도 들린다고."

중석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오자 문표는 '아니에요. 저 피곤해서 자고 있었습니다'라고 변명한 후 입을 다문다.

그래도 중석이 부릅뜬 눈길을 거두지 않자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강호에게 아무 말이나 건네었다.

"그런데 강호 후배, 어제 보낸 자료는 뭐야? 기 코치님이 보낸 자료들이야? 죄다 단거리 스퍼트나 주루에 관한 내용이던데. 몇 개는 영어 원문 자료도 있고."

주제를 바꿔보려는 문표의 시도는 진만과 임정이 대화에 끼어들면서 성공하는 모습이었다.

그들 역시 1군 선수들이 모두 초대 된 단톡방에 초대되어 있었고, 강호가 보낸 자료들을 확인해 본 것이다.

"저도 어제 봤는데 내용이 조금 난해하던데요. 단거리에서 우사인 볼트를 이길 수 있는 전법이라던데 그게 말이나 됩니까? 단거리에서 누가 볼트를 이깁니까?"

"그러게요. 사람이라면 볼트보다 빨리 달릴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치타나 타조 정도 돼야 볼트보다 빨리 달리죠."

진만과 임정이 문표의 물음에 의견을 더하자 어느새 주제는 자연스럽게 기성태 코치가 보낸 동영상과 자료들로 전환되고 있었다.

한동안 문표를 노려보던 중석의 시선도 호기심을 담아 강호에게로 향한다.

강호는 그런 선수들의 시선 속에 어제 기성태 코치에게 직접 전수받은 내용들을 설명하고 나선다.

"다들 동영상을 끝까지 안 보신 모양입니다. 100미터에서 볼트를 이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100미터 미만, 초 단거리에서는 볼트를 이길 수 있다는 얘깁니다."

서두를 뗀 강호의 말에 이번엔 중석이 물어온다.

그는 근처 카시트에 양팔을 올려둔 채 거구의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 말이 그 말 아냐? 100미터든 그 미만이든 우사인 볼트를 어떻게 이겨? 볼트를 이기려면 100미터를 9초대는 뛰어야 한다는 말이잖아. 100미터 한국 최고 신기록도 9초가 안 돼. 10초대라고."

사실을 토대로 물어오는 중석의 말에 강호는 스마트 폰을 꺼내어 기 코치에게 전송받은 동영상 하나를 재생시켜 모두에게 보여준다.

그가 재생시킨 동영상에서는 우사인 볼트의 100미터 결승전 경기가 재생되고 있었다.

"한 번 보십시오. 분명 40미터 전까지는 볼트가 다섯 번째 정도로 달리지 않습니까? 볼트가 1등으로 치고 나가는 지점은 40에서 50미터 구간부터입니다. 그 전까지는 볼트보다 빨리 달리는 선수가 네 명이나 있다고요. 결승전 경기뿐만 아니라 예선전에서도 볼트보다 스퍼트가 빠른 선수들이 매번 세, 네 명씩 있었습니다."

강호의 설명에 곁에 앉은 문표는 '그게 어쨌다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물어온다.

"그래도 결승선에 먼처 도착하는 건 결국 우사인 볼트잖아. 스퍼트가 아무리 빨라도 먼저 도착하는 놈이 이기는 게 육상 경기 아냐? 볼트보다 출발이 빨라도 결승 경기에 올라가지도 못한 선수가 태반이잖아."

사실에 입각해 따져 묻는 문표의 물음에 강호는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문표가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중요한 겁니다."

"뭐?"

"문표 선배는 루에서 루상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예를 들어서 1루에서 2루까지의 거리 말입니다."

설명을 하다말고 질문을 해오는 강호의 물음에 문표는 순간 말문이 막힌다.

옆에 있던 중석도 '그거 꼬꼬마 시절에 다 배웠던 거잖아'라고 문표를 타박하면서도 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 때 마침 원정 버스에 오른 베테랑 투수 박상현이 강호의 질문에 대신 답하고 있었다.

"그것도 몰라? 27.432m잖아. 타자들이 그런 것도 모르면 되겠어?"

박상현 투수는 문표를 대신하여 답하고는 자신의 자리인 강호의 곁에 앉는다.

그의 말에 문표가 '그래. 27.432! 내가 그 말을 하려고 했어'라고 웅얼거리는 중이었다.

문표의 행동에 피식 웃음 지은 강호는 이제 본론으로 넘어간다.

"그겁니다. 27.432m. 1루에서 2루까지의 거리가 27m밖에 안 된다고요."

루상의 거리를 지적하고 있는 강호의 말에 중석이 감을 잡은 표정으로 물어온다.

"그러니까 네 말은 도루 상황을 말하는 거지? 야구 선수는 단거리 육상 선수가 아니니까 100미터까지 뛸 필요가 없는 거잖아. 도루는 결국 27미터만 뛰면 되는 거니까 육상을 정석으로 배우는 것보다 초반 스퍼트만 연습하면 된다는 얘기야?"

"실제로는 25미터 미만이죠. 출루 상황에서 리드폭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결국 야구 선수들의 주력은 100미터 기록을 측정해볼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 25미터 스퍼트에서 모든 게 결정되니까요. 기 코치님이 보내주신 자료들도 30미터 이하 초 단거리 스퍼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미국과 자메이카에서 개량된 스타트 주법으로 이렇게 40미터 이하에서는 볼트보다 빨리 달리지 않습니까? 저희들이 육상 선수도 아닌데 40미터 다음을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강호의 설명은 기 코치가 외국 연수 기간 동안 배워온 주루 지식의 정수를 담고 있었다.

어제 하루 온 종일 기 코치가 가진 노하우의 정수를 배우기도 했고, 몇 달간 기본기를 쌓기도 했었다.

노하우라고는 하지만, 다른 선수들에게 알려주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다.

연수를 다녀온 기 코치 본인이 모든 선수들에게 자료를 뿌리기까지 했고, 노하우를 안다고 해서 아무 노력 없이 스퍼트가 빨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나 같은 유형의 선수도 이 스퍼트 방법대로 훈련을 하면 한 해에 20개 정도의 도루는 할 수 있다는 말이야?"

강호의 말이 결론에 도달하자 의자에 기대있던 중석이 물어온다.

그의 물음에 강호를 포함한 선수들의 시선이 중석의 거대한 체구를 향해 옮겨진다.

20kg이상을 뺐다고는 하지만, 워낙 체구가 컸던 까닭에 여전히 거인처럼 보이는 중석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엉덩이 둘레가 최소 45인치는 넘어 보이는 엄청난 체구에 모두가 가지는 생각은 한 가지였다.

'당연히 안 되죠.'

기 코치의 훈련 방법을 설파한 강호조차도 부정적으로 생각될 정도로 중석의 몸은 둔한 편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의견이 다른 것 같았다.

중석의 숙적이라 할 수 있는 문표가 의외로 중석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중석 선배도 프로생활 연륜이 있는데, 훈련 좀 하면 한 시즌에 도루 20개는 충분하지요. 올 시즌부터 한 번 도전해 보세요."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문표의 말에 중석은 오히려 인상을 써 보인다.

왠지 편을 들어주는 문표의 말이 조롱처럼 들리기도 했다.

"문표 인마, 내가 도루 실패하는 거 감독님이 보시면 뭐라고 생각하시겠어? 너 이참에 나를 경쟁구도에서 제외시키려고 수작부리는 거지? 문표 너나 나나 지명타자에 1루수니까 내가 도루실패하다 감독님 눈밖에 나버리면 내 자리 차지하려고 하는 거 아냐?"

"무슨 말씀을 또 그렇게 하십니까? 도루는 당연히 실패하겠지만, 감독님이 그런 걸로 중석 선배를 외면하겠습니까? 아마도 다른 걸로 벌써 눈 밖에 났을 겁니다."

문표의 대답에 중석은 결국 참지 못하고, 거대한 몸으로 문표의 허벅지를 깔고 앉는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문표는 '악! 사람 살려'라고 소리쳐 보지만,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선수들은 속속들이 원정 버스에 오르고 있었고, 잠시 후 모든 선수들을 태운 버스는 다음 원정지인 고척으로 향한다.

창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선수들을 태운 원정 버스는 멈추지 않는다.

지면을 촉촉하게 적시는 빗줄기 속에서도 자이언츠 선수단의 일정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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