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92화 (191/335)

0192 / 0335 ----------------------------------------------

마지막 노하우

강호는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 된 수요일은 충분할 만큼의 휴식을 취한다.

다른 선수들은 올스타 브레이크에도 쉬었지만, 올스타전에 참가한 강호는 올스타전 일정에 구단 프로모션 일정까지 참가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체력 보충 차원에서라도 하루 정도는 휴식할 필요가 있어보였던 까닭에 수요일 하루는 푹 쉬었다.

그런데 목요일까지 비가 내리며 또 다시 경기가 우천 취소되자 마냥 집에서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하루는 편히 쉴 수 있어도 이틀을 연달아 쉬는 것은 강호의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나 목요일에는 형도 현장 일정이 바빴기 때문에 사직동 집에 덩그라니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형이 일하는 현장에 찾아가봐야 방해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가 오니까 러닝을 할 수도 없고."

현관에 놓인 러닝화를 내려다보며 한숨 쉰다.

강호는 오래 쉴수록 몸이 굳는 편이어서 일부러라도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그런데 비가 오는 상황에서 야외 러닝을 할 수도 없고, 실내 운동으로만 대체해야하는 것이다.

별 수 없이 요가 매트를 펼쳐놓고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스트레칭과 운동을 시작한다.

순서대로 스트레칭을 해나가던 강호는 매번 똑같은 스트레칭 동작 외에 또 다른 동작은 없는지 궁금해진다.

평소에 늘 반복하던 스트레칭 동작마저 오늘 따라 지겹게 느껴졌던 것이다.

강호는 방에 놓아두었던 스마트 폰을 꺼내들고 인터넷 검색에 나선다.

그러다가 스마트폰 바탕 화면에 떠있는 어플의 특이점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좁혀 보인다.

"언제 또 카톡이 500개나 와있는 거야? 하여튼 단톡방 때문에 잠시만 확인을 안 해도 이렇게 쌓인 다니까."

강호는 몇 시간 만에 쌓여버린 카톡을 확인해 본다.

직업 특성상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스마트폰을 휴대하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이 야구선수들이었다.

그러다보니 휴대폰을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야구 선수들은 휴대폰을 다소 방치하는 경향이 있었다.

강호는 특히 심한 경우였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월등한 훈련 시간을 보내다보니 휴대폰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딱히 휴대폰에 대한 애착이 없기도 했다.

sns나 페이스 북에 집착하는 것을 인생의 낭비라고 여기는 강호로서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 야구 훈련하는 것이 훨씬 재밌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도 카톡 500개가 쌓일 때까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라도 형의 카톡이나 중요한 사람의 메시지가 올 수도 있는 거라서 카톡을 열어 읽지 않은 메시지들을 확인해 본다.

2군 선수들과 함께 만든 단톡방이나 1군 선수단 전체가 사용하는 단톡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상의 카톡 세상에서도 특유의 너스레로 활개를 치고 있는 문표의 메시지들이 보이기도 했다.

문표는 1군 선수단 단톡방에 계속해서 메시지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것을 보다 못한 지명타자 채중석 선수가 문표가 활개 치는 단톡방에 메시지 하나를 남긴다.

채중석: 야이, 최문펴, 이 미친놈아! 카톡 좀 작작해라. 가족들하고 좀 쉬려니까 카톡, 카톡, 카톡! 시끄러워 죽겠네! 집 사람이 자꾸 바람났냐고 묻잖아!

단톡방에서까지 중석에게 혼이 나는 문표였다.

강호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 지으며 읽지 않은 다른 메시지들을 확인해 간다.

그러다가 카톡방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의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눈에 이채를 띈다.

"기 코치님이 카톡을?"

처음으로 받아보는 기 코치의 카톡 메시지를 열어본다.

몇 년 동안 미국과 자메이카 등에 자비 유학을 떠나 있던 기 코치는 카톡 같은 한국 인터넷 문화에는 다소 약한 편이었다.

강호와 훈련 일정을 잡을 때도 전화 통화나 대면했을 때 일정을 잡던 그가 카톡 메시지를 보내놓은 것이다.

궁금증이 들어 기 코치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게 된다.

메시지들은 발송한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성태 코치님: 초 단거리에서 우사인 볼트도 이길 수 있는 스퍼트 전법! [동영상 첨부]

기 코치가 보낸 메시지에 강호는 잠시 할 말을 잃는다.

안부 인사나 근황을 묻는 말도 없이 곧장 동영상을 첨부한 기 코치의 메시지는 몇 개의 첨부 파일과 사이트 링크들, 몇 개의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영상들 모두 사사로운 내용은 전혀 없었고,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영상들과 첨부된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신종 피싱 같은 건 아니겠지?"

그런 의문이 들어 잠시 사이트 확인을 망설인다.

강호는 카톡을 통해 링크 사이트나 동영상을 접속했을 때 개인 정보가 빠져나가는 신종 피싱 기사에 대해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먼저 동영상과 자료들을 확인해 본 강호는 피싱은 아니라고 여기며 기 코치가 보낸 자료와 동영상, 링크된 사이트에 접속해 관련 자료들을 살핀다.

그리고는 곧장 기 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여보세요. 강호구나.

기 코치의 목소리에 강호는 먼저 인사를 건넨 후 용건을 밝힌다.

"코치님, 카톡으로 보내주신 자료는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료는 저한테만 보내주신 겁니까?"

-아니, 선수들한테 다 보냈는데, 너만 전화 온 거야. 지금도 다른 선수들한테 부지런히 카톡 보내고 있어.

"네? 단톡방 만들어서 일괄적으로 보내시면 되잖습니까?"

-단톡방? 그게 뭔데? 그런 게 있어?

기 코치의 되물음에 강호는 그가 카톡 사용법은 배웠어도 몇몇 편리하거나 혹은 귀찮을 수도 있는 기능은 배우지 못했다는 점을 깨닫는다.

'문표 선배 같은 사람을 단톡방에 초대하느니 차라리 모르시는 게 낫지.'

그렇게 생각한 강호는 기 코치의 일을 덜어주기로 한다.

"제가 코치님이 보내주신 자료 내려 받아서 1, 2군 선수들한테 일괄적으로 보내겠습니다."

-어, 진짜? 그래 줄래? 그럼 나는 고맙지. 2군 선수들한테는 어떻게 다 보내나 고민했었는데, 강호 네가 내 일을 덜어주는구나.

기 코치는 자신의 일을 덜어준다는 강호의 제안에 기쁘게 웃음 짓는다.

강호로서는 기 코치에게 받은 도움과 훈련지도 등에 대한 보답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이 든다.

'그러고 보니까 기 코치님이 주루 코치에 임명되신 이후에 도움 받은 것들이 상당하구나. 이 정도 도와드리는 것으로 끝날 게 아니라 식사라도 대접해야하는 게 아닐까?'

강호는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 코치에게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는 훈련법과 주루 노하우들, 각종 자료와 기 코치 본인이 직접 번역한 해외 분석 자료들을 빌려 공부하면서 야구에 대한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지기도 했다.

강호 본인뿐 아니라 노하우 전수를 원하는 선수들에게는 아낌없이 유학으로 배워온 야구 지식들을 전파해주는 기 코치였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가르침을 받은 강호.

다른 선수들은 주루코치인 기 코치에게 별다르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따로 가르침을 청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강호 혼자서만 기 코치의 노하우를 온전히 전수받는 중이었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친 강호는 수화기 너머 기 코치를 향해 묻는다.

"코치님, 오늘 많이 바쁘십니까?"

-아직 총각인 내가 바쁠 일이 뭐 있겠어? 선수들한테 이 자료들만 보내면 쉬려고 그랬지. 왜, 강호 네가 여자라도 소개시켜 주려고?

기 코치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함께 훈련하며 친해진 강호에게 농담 섞인 말로 대답한다.

기존 코칭스태프나 선수들과 섞이는 성격이 아닌 기 코치로서는 선수단에서 가장 친분이 깊은 사람이 다름 아닌 강호였다.

강호는 그런 기 코치의 물음에 피식 웃음 지으며 이렇게 제안한다.

"이거 직접 알려주시죠. 카톡으로 보내주신 거요."

-응? 오늘 훈련을 하자고? 나야 코치니까 상관없지만, 선수인 너는 좀 쉬어야하지 않겠어? 올스타전 참가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

기 코치는 갑작스레 훈련을 요청하는 강호의 말에 놀란 목소리로 되묻는다.

사실 강호는 훈련을 하려는 목적보다 기 코치에게 식사 한 끼 대접하기 위해 그를 만나려는 생각이었다.

감정 표현이 상당히 서투른 강호여서 대놓고 '코치님 지도 감사합니다. 제가 밥 한 끼 사겠습니다' 등의 표현이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일단 구장에서 함께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며, 자연스럽게 식사 자리로 이동할 생각인 것이다.

"저는 원래 오래 쉬는 성격이 아닙니다. 코치님만 괜찮으시면 사직구장에서 뵙도록 할까요?"

-나 지금 구장이야. 이 자료 만든다고 구장 사무실에 나와 있거든. 집에 컴퓨터가 없어.

기 코치와의 통화를 끝낸 후 강호는 곧바로 우산을 챙겨들고는 현관문을 나선다.

그러기 전에 기 코치가 보내 준 각종 자료와 사이트 링크를 1군과 2군 선수단 단톡방에 공유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평소에 단톡방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강호가 갑자기 동영상과 함께 인터넷 사이트 링크를 단톡방에 올리자, 단톡방의 왕으로 군림하던 문표가 바빠진다.

문펴 선배: 어?! 강호 후배가 단톡방에 행차하시다니! 이게 뭐야? 이 동영상들 핫한 거야? 사이트 링크까지 같이 보냈네? 오오~ 좋아, 강호 후배! 다들 이렇게 타락해 가는 거야. 동영상 잘 볼게~흐흐흐

문표의 답장 메시지는 강호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단톡방에 자료를 공유해놓은 뒤 강호는 카톡 설정을 무음으로 해놓고, 사징구장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표는 강호가 보내 준 동영상을 제대로 오해하며 떨리는 손길로 동영상과 사이트 링크에 접속해본 뒤, 잠시 후 단톡방으로 돌아와 열불을 토해낸다.

문펴 선배: 강호 후배! 이게 뭐하는 짓이야? 왜 쉬는 날에 훈련 동영상을 보내고 앉았어? 잔뜩 기대했다가 엄청 실망했잖아! 이렇게 선배의 멘탈을 흔들어도 되는 거야? 야구 선수는 멘탈 관리가 중요한 직업이라고. 강호 후배, 카톡 보고 있는 거야?

문표는 강호가 한동안 찾지 않는 단톡방에서 홀로 절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문표의 절규에 대답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채중석: 아, 좀 닥치라고! 문펴 너, 경기장에서 만나면 카톡 못 보내게 손가락을 다 꺾어놔 버릴 거야! 야구선수한테 멘탈보다 중요한 게 손가락이라는 걸 내가 제대로 알려줄게!

문펴 선배: 가족들하고 있을 때는 카톡 무음으로 해두시면 되잖습니까? 굳이 후배 손가락을 꺾을 필요가 있는 거예요?

채중석: 카톡이 무음이 돼? 어떻게 하는 건데?

문펴 선배: .....잠이나 자야겠다.

채중석: 카톡 무음 하는 거 알려주고 자, 이 자식아. 내가 지금 전화 걸 테니까 전화로 알려줘.

문표는 그렇게 중석의 전화를 받게 되었고, 본의 아니게 대화가 길어지며 어느새 중석과 식사 약속까지 잡고 만다.

강호가 기 코치와의 약속을 잡고 밖으로 나설 때, 문표는 유부남인 중석과 저녁을 먹게 된 것이다.

"아놔, 이렇게 쉬는 날에는 여자를 만나야 하는 건데. 중석 선배랑 밥이나 먹게 생겼네. 이러다가 나 결혼 못하는 거 아냐?"

문표는 중석과의 식사 약속을 위해 옷을 챙겨 입으면서 그렇게 푸념하고 있었다.

한편 문표의 푸념 속에 강호의 발걸음은 어느새 사직구장에 도착해 있었다.

곧장 코칭스태프 사무실로 찾아간 강호를 사무실에 홀로 나와 있던 기성태 코치가 반겨준다.

"강호야, 왔구나. 우리 그럼 바로 훈련부터 시작할까?"

기 코치는 강호가 정말로 훈련을 하고 싶어서 전화한 것이라 여기고는 그렇게 제안한다.

강호는 그런 기 코치의 생각을 정정해주려 했지만, 이어진 기 코치의 말에 입을 다문다.

"이제 강호 너한테 마지막 노하우를 전수해줄 때가 된 것 같네. 이거 내가 자비 연수로 배워온 노하우를 탈탈 털리게 생겼어."

기 코치는 기분 좋게 웃음 지으며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강호는 기 코치가 말한 '마지막 노하우'라는 말에 식사 일정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 트레이닝복으로 옷을 갈아입고는 기 코치와 함께 실내 훈련장으로 향한다.

유일한 취미가 야구인 강호로서는 기 코치가 말한 마지막 노하우가 무척이나 궁금했고, 마찬가지로 직업이 곧 취미인 기 코치는 강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아직 훈련장에 도착하지 않았음에도 신이 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하는 열정을 보여준다.

강호가 계획한 보답의 식사 자리는 그렇게 몇 시간 뒤로 미루어지게 된다.

어느새 강호는 또 다시 기 코치와의 특별한 훈련을 시작하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