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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승, 그리고
자이언츠의 후반기 첫 경기는 18대 1의 대승으로 산뜻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올스타브레이크 이전에 이어진 6연패를 깨끗하게 씻어내는 대승이자 18일 경기에 이어 2연승을 달리게 된 것이다.
또한 이 경기에서 자이언츠는 2군 선수들을 시험 기용하면서 주전 선수들을 휴식하게 만들었다는 이점을 얻게 된다.
후반기 첫 경기부터 많은 것을 얻은 경기인 것이다.
그런데 주전 선수들의 휴식은 단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직후부터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에 퇴근을 준비하던 문표가 입을 연다.
"이거 봐. 내가 뭐라 그랬어? 비 올 거 같다고 했지? 아마 내일 경기는 우천 취소 될 거야. 내가 좀 전까지 무릎이 엄청 쑤셨거든. 그런데 아직도 쑤셔.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아? 내일되면 빗줄기가 더 굵어질 거라는 뜻이야."
문표는 또 다시 무릎예보를 선보이며 퇴근 중이던 다른 선수들을 웃음 짓게 한다.
몇몇 베테랑 선수들은 문표를 향해 헛소리하지 말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문표의 일기예보는 정확하게 들어맞아 다음 날, 사직구장에 출근한 선수들은 오후로 접어들자 경기가 우천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우천 취소가 확실시되기 전까지는 경기를 준비해야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몇몇 부지런한 선수들은 이미 경기장에 출근해 있는 상태였다.
물론 거기에는 강호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강호는 근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이것 참, 진짜로 문표 선배 말대로 비가 계속 내리네. 이 정도 비면 일기예보대로 내일까지 비가 내리겠는데. 이러다 시즌 막판에 더블헤더 경기 엄청 하겠어."
경기 취소로 퇴근을 준비하는 1루수 김상훈의 말이 강호의 귓가에 들려온다.
상훈이 말한 더블헤더(double header)란 두 팀이 같은 날 계속해서 두 경기를 치르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 경기처럼 폭우나 불가피한 상황으로 경기가 취소될 경우에 정규 시즌 막바지에 몰아서 진행되기도 했다.
프로야구 정규시즌은 10월의 첫째 주까지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여서 그 때까지 잔여경기가 많이 남아있는 팀은 더블헤더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시즌 마무리에 대한 구상은 감독님께서 해두셨겠지.'
강호는 손 감독의 철저한 성격을 떠올리고는 더블헤더에 대한 걱정은 접고, 오늘은 일찍 퇴근하기로 한다.
경기장에 나온 김에 개인 훈련을 할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때마침 도착한 카톡 메시지에 퇴근을 서두르게 된다.
형: 오늘은 일찍 퇴근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저녁은 밖에서 외식할까?
형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 강호는 짐을 챙겨들고는 곧장 경기장을 나선다.
한편, 강호와 상훈이 했었던 더블헤더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장소는 사직구장의 감독실로 옮겨진다.
"감독님, 일기예보에서 내일도 비가 온다고 합니다. 예보를 확인해 보니까 연달아서 태풍 두 개가 반도에 상륙한다고 하네요. 이렇게 되면 시즌 말미에 있을 더블헤더도 준비해야하는 거 아닙니까?"
손 감독에게 걱정스레 묻고 있는 사람은 김민철 수석 코치였다.
그는 인터넷에서 캡쳐한 후 출력해낸 이번 주 일기예보를 손 감독에게 전해주며, 묻고 있었다.
손 감독은 김 수석에게 건네받은 일기예보를 한 번 훑어본 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내려놓는다.
"지금 시점에서 더블헤더도 구상하지 않은 감독은 가을 야구를 할 생각이 없는 감독인 거야."
손 감독의 말에 김 수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 감독의 이어질 설명을 기다린다.
그런데 손 감독은 가타부타 말없이 서류 하나를 김 수석에게 건넨다.
"이게 뭡니까?"
김 수석은 그렇게 물으며 손 감독이 건넨 서류를 자세히 살핀다.
서류는 두 사람에 대한 의료 소견서였다.
황제인과 최훈.
오늘 날짜로 기록된 소견서에는 담당의가 기록한 소견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상기 이상 소견 없음.
소견서의 내용을 확인한 김 수석은 '아!'하는 탄성을 내뱉게 된다.
만약 지금 시점에서 몇 년 간 팀의 4번 타순을 책임지던 3루수 황제인과 주전 2루수인 최훈이 복귀하게 된다면 더블헤더는 큰 걱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수석은 손 감독이 내민 소견서를 통해 더블헤더를 대비한 후반기 엔트리 구상이 종결됨을 느낀다.
'제인이가 1군에 복귀하면 3루수 자리는 제인이의 몫이 될 거야. 그럼 임시로 3루수 자리를 맡고 있던 오진택을 유격수와 3루수 백업으로 돌려서 4월 이후에 전 경기에서 출장하고 있는 강호의 체력 안배를 해줄 수 있게 돼! 그리고 훈이가 2루수로 복귀하면, 인태를 백업으로 돌리면 된다. 그렇게 되면 오진택, 황인태, 임정, 오진만으로 이어지는 내야 백업 자원이 생기는 거야.'
김 수석은 두 선수가 1군으로 복귀하면서 생겨나는 이점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9월부터 시작될 확장 엔트리 구상에 나선다.
그가 내야 자원을 떠올리면서 1루수에 대한 구상을 하지 않은 이유는 리그 10개 팀 중에서 가장 풍부한 1루수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이언츠이기 때문이다.
스팅, 채중석, 김상훈, 최문표, 이인호, 그리고 2군에 있는 예비 자원인 유동근까지.
어떤 선수를 주전으로 쓰더라도 3할의 타율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수비수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야. 중심 타선에 무게가 더해지면서 이제 우리 팀에서 쉬어갈 타순은 사라지게 돼. 중심 타선에만 문표와 준오, 강호와 제인이, 그리고 스팅과 민수, 중석이와 상훈이까지. 어느 선수를 중심 타선에 놓아도 상관없을 정도로 황금 타선이 되는 거야. 물론 4번 타자는 강호가 되겠지만.'
김 수석은 확장 엔트리를 시작으로 새롭게 재편될 팀의 라인업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팀의 4번 자리에는 강호의 이름 외에는 다른 이름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손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존 4번 타자였던 황제인이 1군으로 복귀한다고 해도 팀의 4번 타자는 제인이 아닌 강호로 낙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알겠나? 불펜 구상만 끝내면 상위권 경쟁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1위 경쟁도 충분히 가능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취약점을 개선하는 거야!"
손 감독은 김 수석을 향해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이미 타자 쪽에 관해서는 모든 편성을 끝낸 손 감독은 이제 팀의 유일한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불펜 투수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런 손 감독의 의지와 함께 자이언츠는 또 다른 변화를 모색해 나간다.
두 지휘관들이 팀의 도약을 위해 구상에 돌입한 시간.
강호는 오늘따라 일찍 퇴근한 형과 함께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강수의 작업용 트럭에 몸을 실은 채 내리는 비를 뚫고 도로를 달린다.
"비도 오는데 집 근처에서 먹으면 되지 어딜 가자는 거야?"
강호는 모처럼 외식을 하자는 형의 제안에 응하기는 했지만, 막상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니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일찍 퇴근 하기는 했지만, 근래 들어 현장 작업이 많았던 형이 또 다시 운전대를 잡는 것이 걱정된 것이다.
그런데 형인 강수는 그런 강호를 향해 끄떡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어 보인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너랑 제대로 된 저녁을 먹겠어? 너는 월요일에 쉬고, 나는 월요일에 일하고. 나는 주말에 쉬고, 너는 주말에 일하고. 그러니까 이렇게 비는 날에 외식을 해둬야지."
"며칠 전에 같이 소고기 먹었잖아. 기억 안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지금 가는데 괜찮은 데야. 형이 자주 가는 데인데 블로그에도 소개되는 맛 집이라고. 형만 믿고 한 번 가보자."
강수는 그렇게 말하며 쾌활하게 웃어 보인다.
그는 강호와 있었던 며칠 전의 식사 자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또 다시 외식을 하는 이유는 강호에게 드는 미안한 감정 때문이었다.
'내가 동생이랑 외식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이 살았구나. 기회가 생길 때마다 외식도 하고, 이런저런 대화도 하고 해야지. 우리 삼남매를 괴롭히던 가난도 이제는 없어졌고, 강호 녀석도 1군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으니까.'
강수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워진다.
막내인 진주가 이럴 때 곁에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가슴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허전함을 잊기 위해 도로를 달리는 속도를 높이고 싶었지만, 목적지는 사직동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었다.
"다 왔어."
"뭐? 어디 먼 데 가는 거 아니었어? 여기는 거제동이잖아?"
"내가 얼마 안 걸린다고 했잖아."
형제는 차에서 내리며 우산을 받쳐 들고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걸음을 옮긴다.
강수의 단골 집이라는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강호를 알아 본 시민들이 '어?'하는 소리를 내며 강호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주변으로 몰려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우천취소로 휴식을 맞은 강호를 위해 쉽게 다가서지 않는 모습이지만, 어디에도 예외는 있었다.
"와~맞네! 백강호 선수 맞네! 야, 우리 가서 싸인 받자!"
용감하게 나선 학생들 몇몇이 강호에게 다가가 싸인을 요청한다.
마침 강수의 단골 식당으로 들어서고 있던 강호는 식당 카운터에서 종이와 펜을 빌려 학생들에게 흔쾌히 싸인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 때, 다른 곳에서는 푸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장소는 잠시 거제시장으로 옮겨진다.
동철은 비가 내리는 거제시장 거리를 바라보며 한탄의 목소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아아~ 하필이면 오늘 비가 오네. 이런 날에 비가 와서 우천취소가 되는 거야? 팀이 연승 중일 때는 계속 흐름을 이어가야 하는 거라고!"
동철은 우천으로 자이언츠의 경기가 취소되자 평소 즐기던 술맛조차 잃은 것인지 친구들이 건배를 제안해도 술잔을 내려놓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친구인 갑식이 '허허' 하고 웃어 보인다.
"동철이 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이언츠 경기 다신 안 본다며? 5연패할 때였나? 6연패할 때였나? 두 번 다시 자이언츠 경기 안 본다고 했으면서 또 무슨 경기 타령이야?"
동철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트집을 잡는 친구 갑식의 말에 코웃음을 쳐 보인다.
"사람이 술 취해서 말실수 좀 한 거 가지고 그렇게 꼬투리를 잡고 그래? 내가 자이언츠 경기 안보면 무슨 낙으로 살겠어? 오늘처럼 경기가 우천취소 되면 술 맛도 딱 떨어진다고!"
동철은 갑식의 말을 그렇게 받아치며 들고 있던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내려놓는다.
그런데 그 때 동철의 귓가에 아직은 앳된 목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지나가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얼마 마시지 않은 동철의 술을 확 깨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완전 대박이네. 백강호 선수 대박 착해. 같이 셀카도 찍어주고."
"우리 이거 sns에 올릴까?"
"올리자! 팔로어 좀 늘어나게."
거리를 지나가던 교복 입은 학생들의 목소리에 순간 동철은 술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어딘데, 어디? 백강호 선수가 어디 있는데?"
휴대폰에 찍은 사진을 보며 걸음을 옮기던 학생들은 난데없이 튀어나온 동철의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손가락을 뻗어 강호와 만났던 장소를 알려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저기, 저 가게 보이세요? 예가 석갈비라고 간판 걸려 있는 곳이요. 백강호 선수가 거기로 들어가는 걸 봤어요."
동철은 학생들이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쪽을 바라보다가 '예가 석갈비'라는 말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
그가 놀라는 이유는 간단했다.
"뭐? 예가 석갈비? 거기 내 가게야! 백강호 선수가 내 가게로 들어갔다고? 저리 비켜 봐. 나 백강호 선수 싸인 받으러 가야 돼!"
동철은 뜻밖의 행운에 기뻐하며 달리기 시작한다.
"어?! 어디 가? 우산 챙겨가야지!"
함께 술을 마시다 말고 갑자기 뛰어나가 버리는 동철의 모습에 남은 친구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저러다 다시 오겠지' 라고 수긍하며 다시 술잔을 기울인다.
친구들의 관심에서 잊혀지기 시작한 동철은 우산도 팽개친 채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부지런히 내달리고 있었다.
'백강호 선수가 내 가게에 왔다고? 이참에 싸인도 받아놓고 같이 사진도 찍고 해야겠다!'
동철은 가게 직원이 이미 강호의 싸인을 받았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우천으로 인해 경기는 취소 됐지만, 우연이 안겨준 일상은 동철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