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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기 막이 오르다
트윈스는 계속되는 실점 상황에 결국 선발 투수였던 파머를 교체하는 결정을 내린다.
아직 경기 초반이고 2회 밖에 되지 않았지만, 후반기 첫 경기를 쉽게 내어줄 수 없다는 트윈스 덕 아웃의 의지가 엿보이는 투수교체 장면이었다.
그런 의지는 반은 성공으로, 반은 실패로 결론지어진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선언으로 5번 타자 스팅이 삼진당할 때만 해도 트윈스의 투수 교체 결정은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다음 타자인 박철이 4구째 공을 통타하며 사직구장의 함성 소리가 커짐에 따라 트윈스 덕 아웃의 수심은 깊어진다.
따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3루 주자인 문표와 2루 주자 강호 모두 홈을 밟는다.
이로써 1회에 4득점, 2회에도 4득점을 올리며 두 이닝 만에 8점이라는 점수를 얻어낸 자이언츠였다.
후속 타자가 범타로 물러나긴 했어도 2회 말에 얻은 8득점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황.
자이언츠 홈 팬들은 경기 초반부터 활화산처럼 타오르기 시작한 타선의 활약에 편한 자세로 경기를 관전하게 된다.
관중들의 표정 변화를 포착한 중계석에서는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지금 사직구장에서는 2회 말밖에 되지 않았는데 '부산 갈매기'가 흘러나오고 있어요. 아~자이언츠 홈팬들이 파도타기 응원을 시작하네요. 조금은 이른 감이 있어도 점수 차를 확인해 보면 이해가 가능 장면입니다. 자이언츠 팬들의 모습이 아주 즐거워 보입니다."
염 캐스터는 중계 카메라를 통해 확인한 현장의 분위기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 위원 역시 현장의 분위기를 느낀 그대로 설명한다.
"자이언츠 팬들은 느긋한 기분으로 경기를 관전할 수 있을 정도로 점수 차가 벌어졌어요. 반면에 트윈스 팬들은 표정이 많이 어두워 지셨는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직 이닝이 많이 남아있어요. 팬들이 힘을 내셔서 응원을 해주시면 트윈스 선수들도 기운을 내서 벌어진 점수 차를 만회해줄 겁니다."
이효범 위원은 TV중계로 경기를 지켜보는 트윈스 팬들을 위해 그렇게 위로의 말을 더한다.
그러나 이 위원의 위로는 결국 위로에서 그치고 만다.
사직구장에서 유독 강한 트윈스 타자인 박용철이 솔로 포를 때려내긴 했어도 그 득점이 트윈스가 이번 경기에서 얻은 유일한 득점이었던 것이다.
트윈스가 박용철의 홈런으로 1점을 내는 사이, 자이언츠 타선은 5점을 더 추가하며 어느새 양 팀의 점수 차는 12점이나 벌어져 있었다.
양 팀 스코어 13대 1.
이미 트윈스가 경기를 따라 잡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점수 차가 벌어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양 팀 덕 아웃에서는 각 팀의 상황에 맞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김 수석."
5회 말, 자이언츠의 공격이 시작된 후 손성조 감독은 근처에 있던 김민철 수석을 부른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부터 미리 준비하고 있던 김 수석은 손 감독의 곁으로 다가서며 대답했다.
"네, 선수들을 교체할까요? 대타로 인호나 진만이를 시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 수석은 손 감독이 주전 선수의 교체를 위해 자신을 불렀다는 것을 확신했다.
경기 후반부에 팀이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이나, 반대로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주전 급 선수들을 휴식 차원에서 교체해주고 2군 선수들을 올려 가능성 있는 어린 선수들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
특히나 7월에 접어들면서 날씨가 무더워진 까닭에 체력 안배가 필요한 선수들에 대한 교체는 필수라고 할 수 있었다.
"5회에 점수 나는 거 봐서, 6회 초 부터는 대수비 요원들을 기용하도록 하지."
손 감독은 김 수석의 질문에 그렇게 답하고 있었다.
5회 말 공격은 주전 선수들로 그대로 운용을 하고, 6회 초 수비 상황부터 2군 요원들을 활용하자는 손 감독의 말에 김 수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모습이다.
"생각해두신 포지션은 따로 있으십니까?"
김 수석은 6회 초 수비 상황부터 교체투입 할 포지션을 묻고 있었다.
그러자 손 감독은 고려하고 있던 선수들이 있었던 것인지 물 흐르듯이 말을 이어간다.
"중견수에 준오는 꽤 오랫동안 경기를 쉬었으니까 체력이 나쁘지 않을 게야. 철이도 크게 지친 모습은 없었고. 성철이가 익숙하지 않은 좌익수 자리로 이동하면서 체력 소모가 심한 상태일 거야. 1번 타자이기도 하고. 좌익수 자리에 지명타자인 스팅을 이동시키고, 지명 타자 자리에는 인호를 넣도록 하지. 내야에는 1루수 자리에 상훈이를 넣고, 진만이와 임정도 테스트 해보는 게 좋겠어. 녀석들이 시즌 초에 1군 무대를 밟기는 했어도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어. 1군 무대 감을 되살리려면 지금 시점 정도에는 꾸준히 경기를 출전시켜 줘야 해."
손 감독은 평소보다 긴 설명으로 대 수비 교체를 지시하고 있었다.
듣고 있던 김 수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이어가다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겨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럼 외야에 성철이를 빼고, 내야에는 문표와 오진택을 빼시는 겁니까? 나머지 한 자리는 누구를 교체할 까요?"
김 수석은 세 명의 내야수를 교체한다는 손 감독의 지시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1루수인 김상훈의 투입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진만과 임정은 2루수, 3루수, 그리고 유격수의 멀티 수비가 가능한 내야 자원들이었다.
이 선수들로 누구를 교체할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 때 타석에서 호쾌한 타격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따악!
주자 1, 2루 상황에서 나온 강호의 타격이 또 하나의 안타로 기록되고 있었던 것이다.
펜스를 직격하는 타구에 주자들이 모두 홈으로 들어오고, 강호는 2루 베이스를 밟은 후 2루에 멈춰 선다.
강호의 빠른 발을 의식한 트윈스의 좌익수 이현종이 공을 주워들자마자 곧장 3루를 향해 공을 뿌렸던 것이다.
강호는 3루타가 될 수 있었던 타구가 이현종 좌익수의 정확한 판단으로 2루타에 그치게 되자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자이언츠 홈 팬들은 그런 강호를 향해 또 다시 함성으로 응원의 목소리를 더한다.
이로써 강호는 4회 말에 때려낸 희생플라이 타점과 이번 2타점을 더해 이번 경기에만 도합 7타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자이언츠의 점수는 이제 15점이 되어 점수 차는 14점이나 벌어지게 된 것이다.
손 감독은 오늘 경기의 포문을 연 강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김 수석에게 나머지 지시를 전한다.
"강호 저 녀석을 빼야지. 강호는 굳이 6회 초가 아니라 지금 교체하도록 해. 5회까지 7타점을 때려낸 거면 4번 타자 몫을 하고도 넘칠 정도니까. 임정을 대주자로 교체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김 수석의 대답으로 강호의 교체는 결정되었다.
강호는 착용하고 있던 장비를 풀다 말고 덕 아웃의 싸인을 받아 대주자인 임정으로 교체된다.
대주자인 임정이 2루 베이스로 향하자 강호는 곧 자이언츠 덕 아웃인 1루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런 강호를 향해 홈팬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잘했다!! 이제 좀 쉬세요. 백강호 선수! 트윈스도 먹고 살아야지!"
"그래. 백강호 선수 잘 했다! 날 더우니까 선풍기 바람 쐬면서 쉬고 계세요!"
홈 팬들은 대주자와 교체되어 들어가는 강호를 향해 박수를 쏟아내는 모습이었다.
강호는 그런 팬들을 향해 헬멧을 들어 올리며 답례한 후 덕 아웃으로 들어선다.
"수고했다."
손 감독은 자신의 몫을 완수하고 돌아온 팀의 4번 타자에게 짧은 칭찬의 말을 건네 온다.
손 감독의 말은 길지 않았지만, 그 속에 내재된 흐뭇한 감정을 읽어낸 강호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신의 자리로 들어가 앉는다.
강호가 때려낸 안타로 이미 덕 아웃에 돌아와 있던 문표가 그런 강호와 주먹을 마주치며 들고 있던 음료수를 건네준다.
"수고했어. 강호 후배. 이제 좀 쉬도록 하자. 6회 초 들어가면 나를 포함해서 다른 야수들도 교체될 거야. 포수인 민경이는 어차피 백업 포수라서 교체하지는 않을 테지만, 성철이나 진택이 정도는 빼줄 것 같아. 벌써 15점이나 냈잖아."
문표는 마치 손 감독의 생각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처럼 강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사실은 김 수석이 벽에 붙어 있던 선수 라인업을 수정하는 모습을 훔쳐보고 강호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강호는 문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건넨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킨다.
그 후 별다른 상황 없이 경기는 이어지고, 2군 선수들을 올렸음에도 3득점을 더하며 어느새 점수 차는 18대 1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이쯤 되니 트윈스 덕 아웃은 경기를 포기한 것을 넘어 더 이상 수모를 당하지 않도록 자이언츠 타선을 봉쇄할 만한 투수를 찾아야만 했다.
'아...이런 상황에서 누굴 올려? 벌써 올릴 수 있는 불펜 카드도 거의 다 소모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마무리 투수인 지운이를 올릴 수도 없는 일이고...'
트윈스의 투수 코치는 말도 안 되게 난타를 당하고 있는 투수진을 바라보며 한숨짓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의 말을 걸어온다.
"코치님. 제가 한 번 막아보겠습니다. 저를 올려주십시오."
선수의 목소리로 보기에는 꽤나 연륜이 있어 보이는 굵직한 목소리에 트윈스 투수 코치는 반색하게 된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 7회 말 1아웃, 주자 1, 3루의 상황에서 곧 트윈스의 투수 교체가 단행되고 있었다.
터무니없이 벌어진 점수 차에 낙담하고 있던 트윈스 원정 팬들은 새롭게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를 확인하고는 놀란 탄성을 내지른다.
"어?! 정현우 투수 아냐? 지금 부상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뭐? 정현우? 정현우를 올리는 거야? 와아, 이게 무슨 일이야?"
너무도 크게 벌어진 점수 차에 응원을 접고 자리를 뜨려하던 트윈스 팬들은 새롭게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일어서던 자세 그대로 기립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것은 자이언츠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트윈스 팬들 뿐만 아니라 자이언츠의 팬들 역시 마운드에 오르는 정현우 투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트윈스의 불펜 투수 정현우.
96년 라이온즈에서 입단하여 2012년에 FA로 트윈스에 이적하게 된 베테랑 투수였다.
78년 생, 올해로 42살이 되는 나이에 여전히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리그 최고령 투수다.
2015년 중반기에 갑작스런 위암 선고를 받고 1년 간 마운드를 떠나 있었지만, 항암 치료를 마치고 1년 후인 2016년에 복귀하여 모든 야구팬들의 갈채를 받은 바가 있었다.
그 후 2017년에 트윈스 불펜의 핵심으로 자리하며 4승 2패 방어율 2.74의 뛰어난 활약을 올리고 2018년에는 다시 부상으로 한동안 마운드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맞이한 2019년 시즌.
정현우 선수는 기나긴 부상 공백을 깨고 다시 마운드에 걸음을 옮기게 된다.
고령의 나이에 은퇴할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깬 행보에 트윈스뿐만 아니라 모든 야구팬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정현우 투수는 시즌 기록과는 무관하게 트윈스 불펜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후우."
마운드에 오른 정현우 투수는 길게 심호흡을 내뱉은 후 곧장 포수 미트를 향해 초구를 뿌린다.
전성기 시절에 비한다면 구속이 10km가까이 떨어진 모습이었지만, 나이가 들며 생겨난 특유의 완급 조절 능력과 로케이션 투구를 바탕으로 타석에 선 타자 김상훈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모습이다.
"와아아! 잘 한다! 다음 타자도 삼진으로 막자!"
"정현우 파이팅!"
풀이 죽어 있던 트윈스 원정 팬들은 고령의 나이와 이어지는 부상에도 투혼을 보여주는 정현우의 투구에 다시 응원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 가운데 강호를 대신하여 4번 자리에 기용된 임정이 타석에 선다.
임정은 구속이 빠르지 않은 정현우 투수의 공을 9구째까지 승부하며 끈질긴 승부를 보인다.
그러다 10구째 공에 정타를 때려내고 있었다.
따악.
경쾌한 타격음이 경기장의 이목을 이끈다.
타자인 임정은 타구 방향을 확인하고는 빠르게 1루 베이스를 향해 걸음을 옮기다가 이내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얼어붙고 만다.
오늘 경기에서 한 차례 실책을 기록했던 유격수 오지한이 점프 캐치로 라인드라이브 성 타구를 낚아채고 있었던 것이다.
터업.
오지한의 글러브에 타구가 붙잡히는 순간, 7회 말 자이언츠의 기회는 끝이 난다.
그리고 8회 말 상황에서도 마운드에 오른 정현우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호투를 선보이며 자이언츠 타선을 삼자범퇴로 돌려 세운다.
비록 팀이 18대 1로 대패하는 경기였지만, 정현우 투수의 호투는 트윈스 팬들에게 묘한 여운으로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게 된 강호는 암이라는 큰 질병과 반복되는 부상을 이겨내고 마운드에 오른 노장 투수의 투혼을 가슴에 새긴다.
컨택을 최대치까지 찍으며 오늘 경기에서 여유로운 타격을 선보인 강호는 정현우 투수가 보여준 선수 생활 말년의 투혼에 박수를 보낸다.
'야구라는 스포츠 경기는 스탯이 전부가 아니라 결국 선수의 의지가 강하게 적용되는 무대야. 정현우 선배가 보여 준 오늘의 투혼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