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89화 (188/335)

0189 / 0335 ----------------------------------------------

후반기 막이 오르다

타석에 선 강호는 타격 자세를 잡으며 상대 투수인 파머의 눈을 응시한다.

좌완 투수 파머.

이미 전반기에 몇 차례 상대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의 포심 패스트볼과 역으로 감겨 들어오는 백 도어 슬라이더를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타석에서 주의해야할 것은 단지 투수 파머만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타석의 지배자 효과는 없는 거야.'

강호는 두 기간제 아이템 효과 중에 하나만을 착용한 상태였다.

투수가 던지는 구종과 구속을 알게 하는 '타석의 지배자' 없이 투수가 던진 공의 코스를 가상의 스트라이크 존을 통해 표시해주는 '내가 심판이다' 아이템만 적용 중에 있었다.

'프리마켓이 완전히 종료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75일. 조금씩 아이템 사용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하니까. 이번에는 타석의 지배자를 제외하고, 다음번엔 내가 심판이다 까지 제외시켜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타격하는 습관을 들여 놓아야 해. 꾸준히 증가시켜 둔 스탯이라면 아이템 도움 없이도 3할대 이상의 타율은 찍고도 남을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이번 프리마켓 방문 때에는 하나의 기간제 아이템만 구매해둔 상태였다.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기간제 아이템을 사용한 상태에서 타석에 선 강호의 시야에는 가상의 스트라이크 존이 표시되고 있었다.

강호는 그것을 확인하며 한 번 더 자신의 상태창을 열어 본다.

백강호(24)

포지션:SS

컨  택:111.9[max](+12)

파  워:103(+10)

선구안:91.8(+7)

주  력:104.1(+7)

수  비:99.4(+7)

송  구:97(+7)

멘  탈:99.9(+7)

시야에 떠오르는 스탯을 확인하며 확신이 생겨난다.

최고치에 도달한 컨택은 두 개의 스킬 효과가 중복되어 111에 도달해 있었고, 파워와 주력 모두 100을 넘은 상태.

여기에 선구안과 수비, 송구와 멘탈 모두가 90을 넘은 상태였다.

특히나 수비와 송구, 멘탈은 거의 100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번 프리마켓 방문 때에는 이 세 가지 스탯 마저 스킬 효과의 적용을 받아 스탯치 100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이 정도 스탯이면 굳이 기간제 아이템의 효과가 없더라도 3할 5푼 정도의 타율은 꾸준하게 기록할 수 있어. 그래도 한 달 정도는 '내가 심판이다' 스킬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게 좋겠지.'

강호는 시야에 뜬 상태창을 닫으며 생각을 마친다.

그러는 사이 상대 투수인 파머가 와인드업 자세에 돌입하고 있었다.

주자가 1루에 있었더라면 파머도 와인드업이 아닌 세트포지션을 취했겠지만, 지금 주자 상황은 2, 3루 상황.

투구 자세가 길어지면서 오는 부담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주자 2, 3루 상황에서 주자들이 도루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초구는 존을 걸치고 들어오는 스트라이크! 구종은 뭘까? 포심? 슬라이더?'

강호는 구종과 구속을 알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가상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고 들어오는 파머의 초구 선택에 습관적으로 배트를 내민다.

공은 스트라이크로 들어온 상황.

강호는 타석에 설 때부터 준비한 대로 포심 타이밍에 배트를 낸다.

그런데 파머의 손끝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가상 스트라이크 존에 찍히는 위치와 공의 궤적을 확인하고는 포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아니, 체인지업이었어! 지금이라도 배트 스피드를 늦춰서 파울로 만들어내자.'

강호는 순간적인 배트 컨트롤로 파머의 초구를 파울로 만들어내려 한다.

그런데 그런 강호의 의도는 배트에 파머의 공이 맞는 순간, 어긋나고 있었다.

따악.

파울이 될 것이라 예상한 타구가 의외로 경쾌한 소리를 만들어내며 우중간으로 뻗어져 나간다.

강호의 장타력을 고려해 뒤쪽으로 배치되어 있던 우익수 김용희로서는 잡을 수 없는 코스의 타구였다.

3루 주자인 유성철과 2루 주자 전준오가 모두 홈을 밟을 수 있는 코스의 안타가 만들어진 것이다.

짧은 우전 안타인 까닭에 타자 주자인 강호는 1루 베이스에서 멈춰야만 했지만, 주자를 홈으로 모두 불러들인 2타점 적시타에 홈 팬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렇지! 툭 치니까 2타점이네. 역시 백강호야!"

"너무 쉽게 타점 내는 거 아냐? 아무리 4할 타자라도 안타를 쉽게 치네."

"안타도 안타지만, 백강호 선수가 1루에 나갔잖아. 지금 백강호 도루가 65개라고. 트윈스 투수는 긴장 좀 해야 될 거야."

자이언츠 팬들은 강호의 안타 하나로 선취점을 내는 것은 물론, 또 다시 팀에 기회가 이어진다는 사실에 즐거워한다.

그들의 기대대로 강호는 파머의 2구째 공에 2루를 향해 뛰고 있었다.

"2루!"

강호가 2루를 향해 스타트를 끊자 트윈스 1루수인 정성혁이 포수를 향해 힘껏 소리친다.

그 소리에 순간적으로 반응한 유광남 포수가 포구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2루 베이스로 공을 뿌린다.

이제 모두의 시선은 2루로 향한다.

"세이프."

2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유광남 포수의 송구가 다소 높아서인지 2루수 손주연이 강호의 허벅지를 태그 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와아, 잘 했다. 백강호!"

"이제 스팅이 안타하나면 툭 치면 1점 더 나겠네. 스팅, 안타 하나 때려라!"

홈팬들은 강호의 타점에 이은 도루로 왠지 오늘 경기가 쉽게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고 있었다.

그리고 팬들의 바람대로 5번 타자 스팅이 좌중간을 관통하는 2루타를 때려내며 주자인 강호가 쉽게 홈을 밟는다.

뿐만 아니라 6번 타자인 박철마저 안타를 때려내며 자이언츠는 1회 말 공격에서만 4점을 뽑아내며 산뜻한 출발을 알린다.

반면에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로 오른 몬테사는 1회 초에 이어 2회에도 4명의 타자만을 상대하며 이닝을 빠르게 끝냈다.

2회 말 공격에서는 선두 타자로 나선 9번 타자 안민경이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한 후, 유성철이 내야 땅볼을 때리긴 했지만 유격수 오지한의 포구 실수로 타자 주자만 아웃되고, 1루 주자인 안민경은 2루에서 세이프 된다.

그 후 2번 타자인 전준오가 내야 안타를 때려 주자 1, 3루 상황에서 3번 타자인 최문표가 타석에 들어선다.

문표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 강호를 비롯한 후배 선수들에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홈런 한 방 보여줄 테니까 잘 보고 배우도록 해. 흐흐."

늘 있는 문표의 허세에 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병살타나 치지 마십시오. 저한테 기회라도 오게요."

"어허~ 무슨 소리야? 병살타라니. 나 요즘 병살타 안 쳐!"

"문표 선배. 주심이 자꾸 쳐다보는데요. 타석에 안 나가실 겁니까? 제가 먼저 나갈까요?"

"아니, 아니야. 금방 홈런치고 올게~"

문표는 끝까지 장난스러운 말로 대꾸하다 주심의 눈빛이 매섭게 바뀌자 얼른 타석을 향해 뛰어 들어간다.

그러나 문표는 호언장담한 것처럼 홈런을 때리지는 못했다.

대신 9구째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나가며, 강호 앞에 만루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모습이었다.

만루 상황, 그리고 타석으로 걸음을 옮기는 강호.

1회 말 4점 득점에 이어 또 다시 강호 앞에 절호의 찬스가 마련되자 자이언츠 홈팬들의 입 꼬리가 올라간다.

자이언츠 홈팬들은 상대 투수를 위로하는 듯한 뉘앙스로 다함께 소리치고 있었다.

"백강호인데~ 백강호인데! 홈런 맞겠네~ 홈런 맞겠네!"

자이언츠 팬들은 강호가 타점을 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렇게 소리친다.

홈팬들이 내지르는 목소리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트윈스 투수 파머였지만, 대략적인 분위기는 느끼고 있었다.

'아, 하필이면!'

파머는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스파이크로 마운드를 툭툭 찬다.

그 모습에 트윈스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 파머를 진정시킨다.

투수 코치가 통역을 대동하고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중계 카메라를 통해 보게 된 중계석에서는 승부처가 될 지도 모르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입을 열고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염용수 캐스터였다.

"트윈스의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파머 투수가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거든요. 저는 그럴만 하다고 느껴지는 게 백강호 타자의 올 시즌 만루 상황에서의 타율을 보면 파머 투수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9타수 9안타에 4홈런이에요. 백강호 선수가 올해 만루 상황에서 전 타석 안타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만루의 사나이가 아니라 만루를 위한 타자라고 해도 될 정도에요."

염 캐스터의 설명에 곁에 앉은 이효범 위원이 감탄사를 내뱉는다.

"9타수 9안타요? 어떻게 그런 기록이 가능한 거죠? 백강호 타자가 만루 상황에서 한 번도 삼진이나 범타를 당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인데요. 백강호 선수가 득점권 상황에서 유독 강하기는 하거든요. 주자 없는 상황에서의 타율이 3할 9푼 4리이고, 득점권 상황에서의 타율이 5할 대입니다. 주자 없는 상황에서의 타율도 수위권인데 득점권 상황의 타율은 타의 추종을 불허에요. 그런데 만루 상황에서의 타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네요."

이효범 위원은 만루에 강한 강호의 기록을 확인하며 진심으로 놀라는 모습이다.

역대 어떤 타자도 만루 상황에서 이런 기록을 보여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10할에 이르는 강호의 만루 기록은 타격 아이템을 사용해서 만들어진 기록이었지만, 이효범 위원이나 염 캐스터로서는 알 길이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TV중계로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모든 만루 상황에서 타점을 기록한 강호의 기록에 놀라지 않은 팬들이 없었다.

"이야! 백강호 만루에서 10할이라네. 10할! 무조건 친다는 얘기네."

"야, 그거 알면 좀 조용히 해봐. 지금 타석도 타점 낼 거라는 말이잖아. 짧은 안타만 쳐도 2타점이니까 백강호 타점 내는 거나 좀 보자."

TV중계로 경기를 지켜보는 자이언츠 팬들은 강호가 이번 타석 역시 타점을 올려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 팬들의 바람 속에 타석에 선 강호.

'이번 타석만큼은 타격 아이템 없이 안타를 때려 보자.'

강호는 만루 상황이긴 해도 이번 타석에서는 타격 아이템 없이 타격을 해볼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1회 말 상황에서의 타격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기 때문에 확인을 해보려는 것이었다.

팀이 초반부터 큰 점수를 냈으니 강호 본인이 병살타만 때리지 않는다면 된다는 생각으로 배트를 쥔다.

'아무래도 느낌이 좀 이상했어. 1회 말에 파울로 커트하려는 타구가 우중간 쪽의 안타가 됐어. 분명 파울이 됐어야 했는데. 이번 타석에서 다시 확인해보자.'

강호는 1회 말에 자신이 때린 안타에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포심을 예상하고 휘둘렀던 스윙에 체인지업이 들어오자 급작스럽게 배트 컨트롤로 커트하려던 것이었는데 안타가 되고 만 것이다.

예상되는 점은 단 한 가지였다.

'컨택 스탯이 최고치를 찍으면서 타격 할 때에 특이점이라도 발생하는 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더 세밀하고, 정교한 타격을 하도록 달라지기라도 한 걸까?'

강호는 그 의문을 확인하기 위해 이번 타석은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다.

주자가 만루 상황이다 보니 두 개의 스킬은 모두 적용된 상황.

강호는 최고치를 갱신한 스탯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파머의 초구를 기다린다.

"볼 원."

파머의 초구에 대한 주심의 판정은 볼이었다.

강호가 보기에도 스트라이크 존을 완벽하게 벗어난 코스의 볼이었기 때문에 배트를 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2구 째 공 역시 볼.

트윈스 배터리는 1회 말 강호의 2타점 적시타 상황을 의식한 것인지 일부로 복잡한 볼 배합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심판이다' 효과로 스트라이크 존이 시야에 보이는 강호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3구째나 4구를 스트라이크로 집어넣겠지. 지금은 만루 상황이라 나를 거를 수는 없어. 분명 승부가 들어올 거야. 파머가 처음으로 던지는 스트라이크를 타격해야 돼!'

강호는 그렇게 확신하며 파머의 눈을 응시한다.

강호의 매서운 눈빛을 받으며 파머가 3구 째 공을 던졌고, 강호는 그 공에 힘껏 끌어 당겼던 배트를 휘두른다.

배트를 내고는 있었지만, 강호는 이번 3구째 공을 정타로 때려낼 생각이 없었다.

스트라이크 존을 애매하게 걸치는 슬라이더를 커트해낼 생각으로 배트를 내민 것이다.

그런데 또 다시 의외의 상황이 만들어진다.

따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파머의 슬라이더를 때린 강호의 타구가 외야를 향해 뻗는다.

이번 역시 우측으로 향하는 타구였지만, 1회 말에 때린 안타와는 다르게 파울 라인을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타구로 만들어진다.

타구의 탄착 지점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켜보던 1루심이 타구가 인필드로 들어갔음을 선언하고, 곧 모든 주자들의 발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강호 역시 1루심의 안타 선언과 함께 배트를 내려놓고는 전력으로 달린다.

"돌아, 돌아, 돌아!"

베이스 코치의 힘찬 시그널 속에 3루 주자에 이어 2루 주자가 홈을 파고들었고, 1루 주자인 문표는 손쉽게 3루 베이스를 밟는다.

타자 주자인 강호 역시 2루 베이스를 밟고 서며, 자신의 타격에 특이점이 발생했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었다.

'분명해! 컨택 스탯이 최고치를 찍으면서 뭔가 달라진 거야. 올스타전 때는 홈런 레이스 후유증이라고 여겼었는데, 후유증 같은 게 아니었어. 컨택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거야!'

강호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진다.

그런 강호를 향해 사직구장을 가득 채운 자이언츠 홈팬들의 함성이 뒤따르고 있었다.

"와아아아!!"

홈팬들의 함성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직 2회 말 밖에 되지 않은 가운데 팀의 4번 타자인 강호가 4타점을 때려내며 팀은 어느새 6득점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경기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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