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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기 막이 오르다
실내에서의 체력 측정 일정과 경기 전 훈련 대부분을 소화한 자이언츠 선수단은 곧 시작될 트윈스와의 경기를 위해 그라운드로 발걸음을 옮긴다.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사직구장은 이미 3분의 1정도의 관중들이 들어차 있었다.
아직 경기가 시작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남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많은 팬들이 찾아주고 있는 것이다.
"강호 후배, 관중들 찬 거 보여? 6연패할 때까지만 해도 다시는 사직 구장 안 올 것 같이 굴던 팬들이 후반기 시작하자마자 저렇게 찾아주시네. 오늘 잘하면 만원 관중이겠는데?"
함께 송구 훈련을 하던 문표의 말에 강호는 1루 쪽 관중석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과연 문표의 말대로 많은 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지금도 계속 팬들이 관중석으로 발걸음을 해주고 있었다.
특히나 눈에 띄는 것은 '백강호'라는 플랜카드를 들고 자신을 응원하는 여자 팬들이었다.
그들은 여러 종류의 자이언츠 유니폼에 강호의 등번호인 100번을 새긴 후, 난간이나 철제 가이드 등에 강호의 유니폼을 걸어둔 것을 볼 수 있었다.
"백강호 선수 파이팅!"
"백강호 선수가 지금 여기 보는 거 아냐? 백 선수 여기에요!"
여자 팬들은 강호가 자신들을 바라보는 것 같이 느껴지자 목소리를 높이며 강호를 응원하는 모습이다.
강호는 그런 팬들을 향해 글러브를 한 번 들어 보인 후 다시 송구 훈련에 집중한다.
글러브를 흔드는 사소한 행동에도 기뻐할 정도로 경기장을 찾은 강호의 팬들은 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곁에 있던 문표로서는 질투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참 나, 부럽네. 무슨 아이돌도 아니고. 나는 왜 여자 팬이 없는 거야?"
시샘을 담은 문표의 물음에 강호는 피식 웃음 지으며 주제를 다른 쪽으로 전환한다.
딱히 주제를 전환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문득 구름 낀 하늘에 시선을 올려본 강호.
할 말이 없을 때는 날씨를 주제로 삼으라는 옛 말에 따라 오늘 날씨에 대해 얘기하고 나섰다.
"오전까지만 해도 하늘이 화창했었는데 지금은 구름이 많이 끼었네요. 날씨도 조금 서늘해진 것 같고요."
주제를 전환하려는 강호의 말에 문표가 단 번에 낚여 든다.
"그러게나 말이야. 실내에서 훈련하다 보니까 날씨가 변하는 것도 몰랐네. 저거 그냥 구름이 아니고 먹구름이잖아. 혹시 경기 중에 비 내리는 거 아냐? 강호 후배, 혹시 일기예보 확인했어?"
"네, 강우 확률이 40%정도 됐습니다."
"40%? 그게 내린다는 확률이야? 안 내린다는 확률이야? 우리나라 기상청도 참 디테일하시네. 그냥 비 온다 안 온다로 말해주면 안 되나? 가만 있어보자 내가 기상청을 대신해서 비 올지 한 번 맞춰볼게."
문표는 강호의 말에 푸념하다가 잠시 글러브를 벗고 눈을 감는다.
그러더니 '아이고, 무릎이야'라고 말하며 다시 눈을 뜬다.
"오늘은 안 올 것 같고, 내일부터 비가 올 것 같아. 어쩐지 아침부터 삭신이 쑤신다더니 내일부터 비가 오려고 그런 거였구나. 잘 하면 오늘 밤부터 비가 올 수도 있고."
눈을 한 번 감았다 뜬 후 일기예보를 하고 있는 문표의 행동에 강호는 헛웃음을 짓는다.
강호의 표정에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문표는 입술을 비쭉 내밀며 재차 입을 연다.
"진짜야! 내 무릎은 기상청 슈퍼컴보다 정확하다고! 1년 동안 드는 슈퍼컴퓨터 관리비를 나 한테 10%만 달라 그래. 내가 기상청 슈퍼컴퓨터보다 정확하게 일기예보를 해줄 테니까."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큰소리를 치는 문표의 모습에 강호는 '네, 그러십시오'라고 대충 응수하며 경기 전 훈련을 이어나간다.
강호는 이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문표의 무릎예보가 기상청의 일기예보보다 정확할 것이라는 사실을.
경기가 모두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을 통해서야 알게 되는 사실이라서 아직 경기가 시작되지 않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문표와의 대화는 경기가 시작되며 자연스럽게 끝이 나고, 이제 사직에서 진행되는 자이언츠의 후반기 첫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후반기 첫 경기의 중계를 맡은 캐스터 염용수 입니다. 오늘 경기는 사직에서 열리는 자이언츠와 트윈스 간의 시리즈 4차전 경기입니다. 해설에는 이효범 위원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캐스터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후반기 첫 경기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시구, 시타 행사와 애국가 제창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자이언츠 후반기 첫 게임의 선발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 있었다.
후반기 첫 경기의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선다는 것은 투수가 팀의 실질적인 에이스를 의미한다는 뜻이 되었다.
과거 지터로 시작된 자이언츠의 에이스는 지터가 방출되며, 라일리가 맡고 있다가 이제는 몬테사에게로 그 바통이 넘어가 있었다.
중계석에서는 자이언츠의 수비 포지션을 읽어내리며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오늘 자이언츠의 수비 포지션입니다. 1루수 최문표, 2루수 황인태, 3루수 오진택, 유격수 백강호, 좌익수 유성철, 중견수 전준오, 우익수는 박철, 배터리에는 투수 몬테사와 안민경 포수가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명타자로는 5번 타자 스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염 캐스터가 자이언츠의 수비 포지션을 모두 읽은 후, 곧 이효범 위원이 후반기 들어 달라진 자이언츠의 포지션 변화에 대해 입을 연다.
"자이언츠는 후반기 들어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팀 에이스 투수가 바뀐 것이 바로 그 점인데요. 5승 6패 방어율 3.91을 기록하고 있던 1선발 라일리를 2선발 자리로 보내고, 4승 2패 방어율 2.92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몬테사를 1선발로 세웠습니다. 기록적인 면으로 보나 여러 면에서 생각했을 때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이 위원은 후반기 들어 달라진 자이언츠의 1선발 자리에 대해 먼저 설명한 후 곧장 야수들의 포지션 설명에 들어간다.
"전반기 6, 7월 동안 팀의 좌익수를 도맡았던 용병 선수 스팅이 지명타자로 전환되면서 좌익수에 유성철, 중견수 전준오, 우익수 박철로 외야 라인이 재편되었어요. 세 외야수 선수 다 수비가 견고하고 타격 능력도 좋습니다. 특히 좌익수 유성철 선수는 드림 팀 올스타 후보에 오를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네, 이제 자이언츠의 외야 라인이 이렇게 정리된다고 봐도 되겠네요. 내야수 쪽에는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자이언츠의 외야 라인 재편을 설명하는 이 위원의 말에 염 캐스터는 미리 준비한 말로 응수했다.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대화는 이미 대본에 짜여 있는 내용이었다.
스포츠 중계 특성상 모든 내용을 대본으로 짤 수는 없지만, 경기가 시작되기 전 양 팀의 라인업이나 포지션 변화 정도에 대해서는 정해진 대본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염 캐스터의 질문에 이 위원 역시 정해진 멘트로 대꾸한다.
"먼저 1루수 자리에 최문표 선수가 들어간 것을 말씀 드려야겠네요. 자이언츠는 1루수 경쟁자들 모두 전반기 동안 좋은 모습을 보였거든요. 제 생각으로는 기존 1루수인 김상훈 선수와 최문표 선수를 번갈아 가며 1루수로 기용하고, 스팅이나 채중석, 이인호 선수 등을 지명타자나 대타로 기용할 것 같습니다. 1루수 자원이 많은 자이언츠로서는 승부처 상황에서 기용할 수 있는 대타 카드가 많아졌다는 장점이 생기는 거죠."
이 위원은 자이언츠의 1루수 자리를 그렇게 정의내린 후 이제는 다른 내야 자리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간다.
"2루수에 황인태, 3루수 오진택, 유격수 백강호 선수 순이거든요. 유격수 자리의 백강호 선수는 나무랄 데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전반기 동안 413타석 327타수 137안타에 40홈런, 65개의 도루, 타율 4할 1푼 9리에 출루율은 4할 9푼 8리거든요. 저를 포함한 모든 전문가들이 의문이었던 4할 타율을 여전히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유격수 자리는 백강호 선수가 지키는 가운데 체력 안배를 위해서 2군의 오진만 선수를 엔트리에 올렸거든요. 오진만 선수를 1군으로 올림으로써 백강호 선수의 유격수 백업과 2루수 황인태 선수의 경쟁을 함께 구상하는 손성조 감독의 전략적인 선수기용으로 보입니다."
"네, 그렇군요. 3루수 자리에는 오진택 선수가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기존 3루수였던 황제인 선수의 재활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황제인 선수가 손목과 팔꿈치 쪽에 염증이 심했거든요. 인대 부상도 있었고요. 인대 수술을 겸해서 염증을 가라앉히는 시술을 병행해 왔는데, 얼마 전부터는 재활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재활 과정이 순조롭다고 하니 늦어도 8월 중에는 1군에 합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자이언츠에서는 중심타선에서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무척 많아지는 겁니다. 기존 4번 타자였던 황제인에 4할 타자 백강호 선수도 있고요. 최문표, 김상훈, 스팅, 캡틴 강민수, 이인호, 여기에 전준오 선수까지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막강한 자이언츠의 중심 타선이 더욱 강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 위원의 길었던 설명은 그렇게 끝이 난다.
중간 중간 경기 중계와 더불어서 진행된 이 위원의 포지션 설명으로 TV중계를 시청하는 자이언츠 팬들은 후반기가 되면서 달라진 팀의 엔트리 변화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1회 초 트윈스의 공격이 4명의 타자가 득점 없이 물러나며 빠르게 끝이 나고, 이제 1회 말 자이언츠의 후반기 첫 공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트윈스의 후반기 첫 선발로 오른 선수는 용병 좌완 투수인 파머였다.
파머는 전반기까지는 팀의 2선발로 활약했다가 1선발인 허프만이 7월 들어 부진해지자 트윈스의 에이스 자리를 꿰찬 상태였다.
트윈스 코칭스태프의 기대 속에 마운드에 오른 파머.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자이언츠의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는 모습이었다.
따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1번 타자 유성철이 1루 베이스를 밟고 있었다.
발 빠른 주자 유성철이 시작부터 출루하자 자이언츠 홈 팬들은 뜨거운 함성으로 팀의 후반기 첫 안타를 반긴다.
"잘 했어!"
"이제 자이언츠 외야는 확실하게 세대교체가 끝났네."
자이언츠 팬들은 팀의 1번 타자로 자리잡아가는 젊은 타자, 유성철의 활약에 기분 좋게 웃음 짓는다.
팀의 외야 라인은 베테랑 외야수인 전준오가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고, 좌익수에는 유성철, 우익수에는 박철이 자리하며 외야 라인에서는 확실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유성철은 94년생 26살, 박철은 98년생 22살로 조금씩 노화되고 있던 자이언츠의 외야라인에 젊은 활약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야아~ 그러고 보니까 오늘 자이언츠 라인업은 30대가 거의 없네. 2번 전준오, 3번 최문표, 8번 오진택 빼고는 죄다 20대잖아?"
"맞네! 오늘은 포수도 강민수가 아니라 22살짜리 안민경이잖아. 그리고 8번 오진택도 아직은 20대로 봐야지, 만으로 28살이라고!"
"허헐, 언제 우리 팀이 세대교체를 끝낸 거야?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어."
자이언츠 팬들은 오랜 세월 염원하던 팀의 세대교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에 환하게 웃음 짓는다.
보통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때는 팀 성적이 하위권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자이언츠는 더욱 그랬다.
외부 FA선수들을 영입해 빈자리만 급하게 땜질하는 형식의 선수단 교체만 하다 보니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는 히어로즈나 타이거즈, 베어스 등 다른 팀들의 이야기로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올 시즌 들어 팀이 중위권에서 버티면서도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이루어나가자 왠지 모를 감동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예전 자이언츠의 세대교체 과정은 그만큼이나 험난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팬들이 팀의 세대교체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2번 타자 전준오가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으로 진루하고, 무사 주자 1, 2루 상황에서 문표가 번트로 주자들을 한 베이스 씩 진루시킨다.
이제 상황은 1사 주자 2, 3루 상황.
팀의 4번 타자인 강호가 타석에 오를 차례였다.
1회 부터 시작된 팀의 득점권 찬스에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타격감을 보이는 타자이자 팀의 4번 타자인 강호가 타석에 오르는 모습에 자이언츠 홈팬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경기 시작 전, 3분의 1을 채웠던 관중석은 거의 만원에 가까울 정도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여전히 팬들이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이어서 곧 만원 관중이 가득 찰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현상은 지정만 사장 이하 프런트가 주말까지 반납하며 홍보에 열을 올린 공로도 있었고, 그 중심에는 올스타전 MVP에 빛나는 강호가 있었다.
강호는 모든 팬들의 기대 속에 타석에 자리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