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87화 (186/335)

0187 / 0335 ----------------------------------------------

남은 55경기

월요일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화요일 아침 해가 밝아 있었다.

각자의 일정으로 바빴던 올스타 브레이크는 그렇게 지나가고, 이제 후반기 일정이 시작되고 있었다.

후반기 일정은 한 시즌 144경기 중, 잔여 경기를 모두 치러야만 끝이 나는 일정이었다.

자이언츠 같은 경우에는 전반기 동안 이미 89경기를 치룬 상태였다.

정규 시즌을 종료하기 위해서는 55경기가 남아있는 것이다.

6할의 경기는 이미 지나갔고, 이제 남은 경기는 시즌 4할 가량. 자이언츠는 남은 4할의 경기 동안 상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아~며칠 푹 쉬다가 아침 일찍 출근하려니까 삭신이 쑤시네. 강호 후배는 더 힘들겠어. 잠실 가서 홈런레이스에, 올스타전까지 하고 왔잖아."

문표는 유니폼을 갈아입으면서도 특유의 너스레를 멈추지 않는다.

아침 일찍 선수단을 소집한 손 감독의 부름에 대부분의 선수들이 경기장에 출근한 상황.

그 중 선수들의 관심사는 후반기 첫날부터 아침 일찍 선수단을 소집한 손 감독의 부름이 아니라 올스타전 MVP에 선정된 강호였다.

문표의 목소리를 듣게 된 선배 선수들이 강호의 근처로 모여든다.

"강호! 우리 올스타! 후반기에 이 선배가 잘할 수 있게 기 좀 불어넣어 줘. 내 등짝 한 번만 세게 때려줘."

"어허! 썩 비켜!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강호야. 이 형님 등판부터 강하게 때려봐. 올스타에서 홈런왕 할 때처럼."

경쟁적으로 나서서 강호에게 등판을 때려달라는 사람은 3루수 오진택과 지명타자인 채중석이었다.

그 중 중석은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 살을 더 뺀 것인지 예전에 비해 꽤나 야윈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살을 많이 빼긴 했어도 여전히 100kg가 넘는 거구여서 같은 선수단 선수 정도만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 중석 선배님! 얼굴이 왜 반쪽이 됐습니까? 그렇게 살을 빼놓고는 강호 후배에게 등짝을 때려달라뇨. 지금 그렇게 야윈 몸으로 강호 후배한테 등판 내줬다가는 병원에 실려 갈 겁니다."

문표의 말은 약간의 익살을 담기는 했지만, 진심 어린 걱정 또한 담겨 있었다.

중석은 문표의 말에 '내가 너무 뺐나?'라고 혼잣말을 하며 자신의 뺨을 이리저리 만져보는 모습이다.

그 때, 누군가가 중석의 등 뒤로 다가와 이렇게 귓속말을 건넨다.

"중석이 너는 더 빼도 돼. 너 설마 문표 말을 믿는 거냐?"

"아이고, 깜짝이야! 아, 수석 코치님 안녕하십니까?"

중석은 등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김민철 수석의 등장에 놀라면서도 예의바르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김 수석은 중석에 이어진 선수들의 인사를 받으며, 곧 선수들을 향해 한 가지 사실을 전한다.

"미리 통보 받았겠지만, 오늘 일찍 출근하라고 한 것은 감독님의 지시사항이야. 오늘 오전부터 선수단 체력 측정 및 분류 작업이 있을 거야. 이제 곧 여름이 시작되니까 제대로 된 체력 안배를 위해서라도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측정에 임해줬으면 한다!"

김 수석의 말에 선수들이 '네!'하는 힘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선수 데이터를 갱신하기 위해 체력이나 근력 등을 측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체력 측정도 그런 부분으로 본 것이다.

그 때 문표가 오른 손을 번쩍 들어 보인다.

"뭐야, 문표?"

"네, 수석 코치님! 질문 있습니다. 체력 측정은 야외에서 하는 겁니까? 오늘같은 날씨에 야외에서 체력 측정에, 경기 전 훈련에, 본 경기까지 하면 후반기가 본격적으로 오기 전에 탈진하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기합 든 목소리로 김 수석의 부름에 응하던 문표는 이내 무더워진 날씨를 걱정하는 말로 되묻고 있었다.

문표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게 더운 날씨에 야외에서 체력 측정을 하다가는 후반기고 뭐고, 오늘 당장 더위먹게 생겼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문표의 질문이 일리가 있다고 느낀 것인지 지명타자 채중석을 포함한 일부 베테랑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다.

김 수석 역시 피식 웃음 지으며 문표의 물음에 동의하고 있었다.

"문표의 말이 맞아. 오늘 같은 날씨에 그라운드에서 체력 측정을 하다가는 경기 전에 탈진하는 선수들이 나올 거야. 이제 오늘부터 시작되는 후반기에는 외부 훈련을 줄이고, 실내 훈련에만 초점을 맞출 거야. 오늘 체력 측정도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실내에서 이루어질 거니까 너무 염려하지 말도록 해."

"넵!"

이미 무더운 날씨를 고려한 훈련 계획을 짜놓은 것을 밝히는 김 수석의 말에 문표는 또 다시 기합 든 목소리로 힘껏 대답했다.

그의 태도에 몇몇 선수들이 웃음 짓는다.

문표의 행동이 간혹 기묘한 구석이 있어도 다른 선수들이나 후배들을 위해 지금처럼 총대를 메고 나설 때가 많았다.

또한 문표의 긍정적인 태도와 친근감 있는 말투는 운동선수라는 특별한 직업 관계에 놓인 경직된 선, 후배 관계를 개선시켜주는 묘한 효과가 있었다.

문표 덕분에 1군 선수들과 2군 선수들 간의 괴리감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코칭스태프의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는 김민철 수석이기 때문에 문표의 태도에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다.

'문표 같은 분위기 메이커는 팀에 꼭 있어야할 존재들이니까. 강호처럼 우직한 녀석들이 후배들의 본보기가 된다면, 문표는 선, 후배 사이의 가교 역할을 위해서라도 한 명 정도 꼭 필요한 녀석이지.'

김 수석은 문표에 대한 생각을 그렇게 정리하며, 선수들에게 자세한 일정을 설명한다.

그의 설명이 있은 후, 선수들은 각자에게 배정된 코치들과 함께 체력 측정에 나섰다.

강호와 문표, 중석 등의 야수 조들은 기성태 주루 코치의 인솔 하에 측정에 들어간다.

"헉, 헉, 헉. 얼마나 더 뛰어야 합니까? 에어컨이 있어서 시원하긴 한데 계속 뛰니까 힘드네요."

실내에 마련된 트레드 밀 기기에 오른 선수들 중 누군가가 기 코치에게 질문을 던진다.

기 코치는 고참 선수라 할 수 있는 그의 질문에 웃는 얼굴로 이렇게 대꾸하고 있었다.

"꼴랑 10분 뛰어놓고는 뭐가 힘들다고 그래? 그러니까 담배 좀 끊어. 담배 안 끊으면 선수 생활을 끊게 될 수도 있는 거야."

기 코치는 질문을 던진 선수 근처로 다가서다가 코끝으로 전해지는 니코틴 향기에 그렇게 말을 끝맺고 있었다.

웃음기 띤 얼굴로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었지만, 기 코치의 살벌한 농담에 질문을 던졌던 선수는 '그냥 담배를 끊을게요'라고 답하며, 체력 측정에 다시 집중하는 모습이다.

코칭스태프는 체력을 측정하면서 각종 신 장비를 이용해 선수들의 니코틴 수치와 체내 알콜 수치 등을 측정하기도 했다.

운동선수라는 직업 특성상 폐활량이나 간수치 등이 밀접한 영향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몇몇 주당들이나 애연가들에게 금연이나 금주를 권하기도 했다.

조만간 발표될 확장 엔트리에 포함될 선수들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경기 내용뿐 아니라 경기 외적인 부분까지 관리해줄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금주나 금연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코치들은 선수들에게 조언을 하는 존재이지, 선수들을 강압하는 자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선수들에게 본인들의 좋지 않은 간수치나, 폐활량 지수, 근 지구력 등의 수치를 보여주며 금연이나 금주를 유도하는 등으로 장기적인 관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손 감독이 프런트 측에 요청한 것이기도 했다.

손 감독은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 중에서 일부 선수들이 술이나 담배, 기타 유흥으로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경우를 적지 않게 목격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서 이 기회에 선수들의 체력을 중간 점검하여 본격적인 후반기에 돌입했을 때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해줄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감독님, 중석이나 문표는 생각보다 몸 관리를 잘 한 것 같습니다. 특히 중석이는 5월부터 몸무게를 20kg나 줄였더라고요. 측정된 체력 수치도 전반기 때보다 오히려 높게 나왔습니다."

김 수석은 코치들과 함께 체력 측정에 돌입한 선수들 중, 몇몇 선수들을 직접 지켜보며 알아온 자료를 바탕으로 손 감독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손 감독은 다른 자료들을 체크하고 있다가 김 수석의 말에 고개를 들어 올린다.

"중석이가 체중을 줄였다니 1루수 자리는 걱정이 없겠어. 문표 녀석이나 상훈이도 체력에는 문제가 없는 녀석들이니까. 거기에 중석이가 몇 경기 정도 1루수 자리를 대신해 준다면 1루수 쪽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어."

손 감독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 테이블에 놓아두었던 수비 포지션 챠트의 1루수 자리에 동그라미를 표시한다.

"2루수 자리에는 인태가 적응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해. 조만간 재활에 들어간 최훈이 1군에 올라올 때까지는 진만이를 1군에 올려둬야겠어."

손 감독은 그렇게 말을 이으며 2루수 자리에 세모를 표시하면서 황인태와 최훈, 오진만의 이름을 적어 놓는다.

그러다 볼펜을 쥔 손이 유격수 자리에 머물렀을 때, 그의 손길이 멈추게 된다.

김 수석은 곁에서 손 감독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감독님, 강호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강호는 4월 타이거즈 전 이후부터 전 경기 출장 중입니다. 강호도 좀 쉬게 해야지 않을까요? 올스타전에서 홈런레이스도 참가했는데 후반기 들어서 페이스가 떨어질 게 걱정입니다."

김 수석은 후반기 들어 팀의 4번 타자인 강호의 페이스가 하락할까봐 걱정이 되어 묻고 있었다.

홈런 레이스에 참가한 타자들 중 종종 후반기 들어 페이스가 급락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는 강호가 그런 징크스에 빠지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강호는."

손 감독은 김 수석의 질문에 대답하려다가 잠시 말을 멈춘다.

그리고는 먼저 들고 있던 유격수 자리에 동그라미를 표시하며 김 수석의 말에 답한다.

"내가 생각해둔 것이 있어. 강호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렇게 대꾸하며 손 감독은 보기 드문 미소를 지어 보인다.

'백강호'라는 이름은 항상 손 감독을 웃게 하는 힘이 있었다.

손 감독은 그 이름을 올 시즌 내내 1군 엔트리에서 보기 위해 이미 준비를 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강호, 물론 네 녀석의 체력 안배 또한 생각해두고 있었다. 너 없이는 올 시즌 내가 기대하는 성적도 불가능한 것이니까.'

손 감독은 속으로 강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홀로 되뇌며 나머지 포지션 카드를 작성해 나간다.

손 감독이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강호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이 한창 측정 중인 체력 측정을 이미 끝내고, 기 코치의 권유대로 PCC(Player Comparison Condition)그래프를 측정해 보고 있었다.

PCC그래프는 선수들의 신체 능력을 수치화하여 출력해주는 신 장비로서 이미 지난 달, 자이언츠의 모든 선수들이 측정했던 경험이 있었다.

강호는 기 코치의 안내대로 장비를 착용한 채 실내 훈련장의 타석에 선다.

처음 PCC그래프를 측정한 지 한 달여가 지난 오늘, 자신의 신체 능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해진다.

잠시 후 결과지에 표기된 수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백강호 age:24

컨택 정확도:94.9

컨택 방향성:95.7

운동 능력:98.1

순간 근력:93.5

근 지구력:95.9

근력 유지:95.0

선구안 정확도:98.7

선구안 방향성:98.8

강호는 출력된 결과지를 통해 지난달에 비해 상당히 개선된 PCC그래프를 받아들고 있었다.

프리마켓 방문을 통해 향상된 스탯 증가폭이 PCC그래프에도 반영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호의 결과지를 확인한 사람은 또 있었다.

"와아~ 강호 후배, 점수가 쩔어 주네. 나는 무슨 수능 1등급 성적푠 줄 알았어. 수능에서 이 정도 점수 나오면 서울대 가는 거 아냐?"

어느새 체력 측정을 끝내고, PCC그래프를 측정하기 위해 측정실로 온 문표가 강호의 등 뒤에서 놀란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강호는 그런 문표에게 자신의 결과지를 건네며 '기념으로 드릴까요?'라고 장난스럽게 물어본다.

"아니, 나는 내 거 가져갈게. 강호 후배 결과지는 감독님 갖다 드려. 감독님이 좋아하시겠네."

문표는 그렇게 대꾸하며 강호가 측정 후 내려놓은 장비들을 착용하는 모습이다.

그의 말대로 강호의 결과지는 기성태 코치를 통해 손 감독에게 전달되었고, 손 감독은 PCC자료와 체력 측정 자료를 토대로 강호를 포함한 모든 선수들의 체력 안배에 대해 고심하게 된다.

손 감독의 고심 속에 시간은 흘러가고, 잠시 후 사직에서 열리는 후반기 첫 경기의 막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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