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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에서의 하루
올스타전이 끝난 후, 이틀간의 휴식 일이 시작되었다.
올스타에 선정되지 않은 선수들은 올스타브레이크 4일 동안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올스타에 선정된 선수들은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 간의 짧은 휴식 후 곧장 후반기 시즌을 맞이해야 했다.
강호 역시 이틀 간의 휴식 일이 주어졌지만, 집에서 가만히 쉬고 있는 것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프런트에서 제안한 행사일정에 참여하기 위해 부산 서구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차량은 구단에서 지원해 준 벤을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자갈치 쪽 방면으로는 와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또 오게 되는 구나.'
강호는 오랜만에 방문하게 된 장소로 향하며 예전의 추억을 회상한다.
'자갈치'는 부산의 지하철 역 중 하나로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BIFF거리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주변에 수산물시장인 '자갈치 시장'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역명이었다.
강호를 태운 차량은 자갈치역을 지나 토성역 부근의 한 중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자 입구부터 장사진을 펼치고 있던 많은 행렬들이 강호가 탄 벤 차량을 쫓아오는 모습이다.
"하하하, 우리 백강호 선수 인기가 많으시네요. 이렇게 더운 날씨에도 팬들이 기다리고 말입니다."
강호의 곁에 앉아 말을 건네 오는 사람은 허동준 기획 실장이었다.
그는 오늘이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출근해 자신이 진행 중인 프로모션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것이다.
기획실의 정희성 과장과 박소연 대리 등에게 현장 프로모션 진행을 모두 맡겨놓고는 자신은 강호의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는 허동준 실장.
그런 허 실장의 말대로 7월 말로 접어드는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이 학교 정문 근처에서 강호의 이름이 적힌 플랜카드를 흔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플랜카드를 들고 있는 팬들은 남성 팬들도 많았지만, 젊은 여자 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부럽습니다. 강호 선수. 제가 백강호 선수 정도의 인기라면 매일 놀고 다닐...하하, 아닙니다. 이 말은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오오, 저기 저 여자 보셨습니까? 엄청 예쁘네요."
허 실장은 강호의 곁에 앉은 채 자꾸만 본분을 망각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허 실장과 강호를 태운 차량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여, 두 사람을 교내 운동장 근처에 내려주고 있었다.
학교 내에도 많은 팬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차에서 내린 두 사람 주변은 강호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백강호 선수!"
"여기 한 번 봐주세요!"
강호를 향해 다가오는 많은 여자 팬들의 모습에 당사자를 대신하여 허 실장이 앞으로 나서면서 양팔을 들어 보인다.
"자자, 여러분. 오늘 일정에 팬 싸인 회도 포함돼 있으니까 기다리고 계시다가 백강호 선수 싸인 볼을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목소리를 높인 허 실장의 외침에 강호를 빙 둘러싸고 있는 여자 팬들은 '네!'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는 모습이었다.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팬들과는 다르게 스포츠 스타를 응원하는 팬들은 맹목적인 추종보다는 선수를 응원하는 성격이 강해서인지 나름의 소양을 갖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젊은 여자 팬들이 자신의 말에 큰 소리로 대답하는 모습을 본 허 실장은 이후에도 여성 팬들에게 몇 마디 더 말을 붙이며 사욕을 채우다가 보다 못한 강호가 '허 실장님, 가시죠'라고 귓속말을 건네자 그제서야 강호를 에스코트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는 실내훈련장으로 들어서자 훈련장 내에서도 강호를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느껴지고 있었다.
강호는 그 중에서 어제 통화를 통해 목소리로만 들었던 강태성 감독에게로 다가선다.
구단에서 전해준 사진을 통해 얼굴을 익혀두고 있었기 때문에 실수는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어제 통화로만 인사를 드리고 처음 뵙겠습니다. 백강호 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백강호 선수."
강호는 자신의 모교인 경남중 야구부 감독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다.
그러자 인사를 받은 강태성 감독 역시 덩달아 고개를 숙인다.
강태성 감독은 강호처럼 경남중을 졸업한 현역 출신 지도자로서 강호와 다르지 않은 험난한 프로 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자이언츠에 입단해 베어스에 트레이드 되었다가 이글스로 다시 이적됐고, FA신분이 되어서야 다시 자이언츠로 돌아올 수 있었던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현역 생활을 은퇴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남중 야구부 감독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런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강태성 감독은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을 강호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강 감독 역시 강호의 팬이었던 것이다.
불현듯 어제 저녁 무렵 강호에게서 걸려온 전화 통화 내용을 떠올려 본다.
강 감독은 어젯밤 TV를 통해 올스타전 경기를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본인은 현역 시절에 올스타전에 참여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은퇴한 이후에도 올스타전은 꿈의 무대처럼 여겨진다.
"아아, 결국 백강호 선수가 MVP가 됐네. 됐어! 그래, 저렇게 고생 많이 한 선수들은 프로무대에서 꼭 성공해야 돼."
강 감독은 TV화면 속에서 MVP를 수상하고 있는 강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현역 시절을 되돌아보게 된다.
강호처럼 소속 구단에서 방출된 적은 없지만, 그 역시 힘들고 고단했던 현역 생활을 거친 후 경남중 감독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그런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나 강호처럼 고된 시련을 겪은 선수들은 프로 무대에서 반드시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과거 자신이 하지 못했던 바람을 강호라는 선수가 대신 이루어주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뿌듯해짐을 느낀다.
현장에서 벗어나 순수한 팬의 입장으로 자이언츠 경기를 챙겨보다 보니 어느새 강태성 감독은 '백강호'라는 선수의 열렬한 팬이 되어 있었다.
띠리링.
그 때 품속에 넣어두었던 전화벨이 울린다.
강 감독은 혹시 내일로 예정된 자이언츠와의 프로모션 행사 때문에 구단에서 걸려온 전화일까 생각되어 얼른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강 감독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구단이 경남중 측에 강호의 행사 참가를 알려주지 않은 상태여서 강 감독의 목소리는 평온하기만 했다.
몇 주 전부터 정해진 프로모션이긴 했지만, 강호의 행사 참가가 결정된 것은 올스타전이 진행되는 바로 그 순간에서였다.
술에 취해 베어스 사장과 논쟁을 벌였던 지 사장의 취중진담이 강호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지정만 사장은 와인을 거하게 마신 VIP룸에서 베어스 사장에게 이렇게 선언했었다.
"베어스는 지역민들을 위한 프로모션이나 하는 줄 모르겠네요. 우리 백강호 선수는 본인이 '자발적으로' 지역 행사나 프로모션에 참가해 주겠다는군요. 지역 유소년 야구부에 기부 의사도 밝히고요. 아~ 정말 기특한 선수 아닙니까? 왜 이런 좋은 선수를 방출하셨데요? 생각난 김에 백강호 선수 40-40기념으로 특별 보너스나 지급해야겠네. 허 실장! 일정에 추가해 놔. 백강호 선수에게 특별 보너스 지급하고, 내일 있는 경남중 행사에 백강호 선수도 참여할 수 있게! 아, 베어스 사장님은 모르셨지요? 경남중학교는 백강호 선수 모교랍니다. 부산에 자리하고 있지요. 서울에 계시는 베어스 사장님은 모르셨을 거예요. 푸하하핫!"
지정만 사장은 함께 술이 취해 논쟁이 붙은 베어스 사장에게 그렇게 선포하며, 강호의 경남중 프로모션 참가 일정을 결정해 버렸다.
올스타전 일정이 끝나고 부산으로 돌아가고 있던 강호는 허동준 실장에게 전화를 받은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휴식 일에 할 일이 생겼다고 좋아하며 얼른 수락하게 된다.
그렇게 정해진 경남중 행사 일정.
강호는 허 실장에게 전해들은 경남중 야구부 감독인 강태성 감독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저 자이언츠 소속 백강호라고 합니다."
휴대폰을 통해 듣게 된 강호의 목소리에 강태성 감독의 표정이 급변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강호가 올스타전에서 MVP를 수상하는 모습을 TV로 보고 있었는데, 강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약간은 비현실적이게 느껴지기도 하는 지금의 상황에 강 감독은 당황하면서도 평소 응원하는 팬의 입장으로 전화를 받았다.
"아, 예. 백강호 선수.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조금 전까지 올스타전을 보고 있었거든요. MVP수상 축하드립니다!"
강 감독은 자꾸만 높아지는 목소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썼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강 감독의 곁에는 함께 올스타전을 시청하고 있던 몇몇 선수들이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 감독은 '내가 이런 사람이야. 너희들은 TV로만 보는 백강호 선수가 전화를 해주는 사람이라고'라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소란을 떨기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에게 조용히 해줄 것을 당부한다.
"우와 감독님! 백강호 선수하고 아는 사이세요?"
"저도 바꿔주시면 안 돼요? 네? 감독님~"
"쉿쉿! 잠시만 조용히 좀 해봐. 감독님 통화 좀 하게."
잠시 수화기에서 얼굴을 떼고 흥분한 선수들을 진정시킨 강 감독.
사실 그도 강호를 개인적으로 알거나 통화를 해본 경험이 전무 했다.
지금 전화가 걸려온 휴대폰 번호가 강호의 휴대폰 번호인 것도 처음 알았다.
'아! 이게 백강호 선수 휴대폰 번혼가 보네. 통화 끝나면 무조건 저장해둬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강 감독은 강호와의 통화를 이어나간다.
한편 곁에 있는 중등부 선수들은 강 감독의 주위로 바짝 다가서며 기대어린 눈빛으로 강 감독을 올려다본다.
토요일 밤 늦은 시간까지 친하게 지내는 야구부 선수들과 함께 강 감독과 올스타전을 시청하고 있던 경남중 야구부 선수들은 갑작스럽게 강 감독에게 걸려온 특별한 전화에 가슴 설레어 한다.
"혹시 내일 있는 야구부 행사에 백강호 선수도 오는 거 아냐?"
"뭐?! 그럼 나는 1빠로 싸인 받아야지!"
"나는 2빠!"
선수들은 들뜬 목소리로 내일 있을 학교 야구부 행사에 강호가 와주기를 기대한다.
선수들로서도 일요일에 열리는 야구부 행사가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만약 백강호 선수가 행사에 참여한다고 하면 싫게만 느껴지는 일요일 행사가 무척이나 즐거운 추억이 될 것만 같았다.
'나는 싸인도 받고, 셀카도 찍어달라고 해야지! 이제 내 카톡 프사는 백강호 선수하고 같이 찍은 셀카 사진으로 하는 거야!'
선수들은 각자의 기대에 찬 표정으로 강 감독의 통화에 시선을 집중한다.
강 감독은 모든 선수들의 기대 어린 눈빛 속에 강호와의 통화를 이어나간다.
강호는 강 감독의 축하 말에 겸손한 목소리로 대꾸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구단에서 내일 경남중에 있을 프로모션 행사에 저를 1일 감독으로 보낸다고 해서요. 미리 감독님께 전화로나마 인사를 드려야할 것 같아서요. 마침 저도 경남중 출신이라서 오랜만에 학교에 가려니까 설레네요.
강호의 말에 강 감독의 표정이 환하게 바뀐다.
일부 청력이 좋은 선수들은 강 감독의 휴대폰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강호의 목소리에 눈을 크게 뜬다.
"우와! 백강호 선수가 내일 1일 감독으로 온데!"
"뭐? 진짜? 대박이네! 야, 다른 애들한테도 카톡으로 소식 뿌리자!"
"콜콜! 내가 진섭이랑 제훈이한테 톡할게."
"그럴 필요 뭐 있어? 단톡으로 다 불러서 알려주자!"
"오~ 너, 머리 대박 좋네."
아이들은 강 감독의 통화를 통해 알게 된 희소식을 빠르게 야구부 친구들과 선, 후배들에게 전파해 나간다.
그리고 강 감독과 경남중 야구부 아이들의 기대 속에 정해진 시간이 되어 강호와 허 실장이 경남중 실내 훈련장에 도착한 것이다.
시간은 과거의 기억을 거슬러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제가 올해 1군 생활이 처음이라서 아이들을 잘 지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감독님께서 옆에서 많이 도와주십시오."
악수를 위해 손을 맞잡은 강호의 겸손한 말에 강 감독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평소 그가 강호의 팬이기도 했고, 전화 통화와 다를 바 없이 강호의 겸손한 태도에 흡족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런 강호가 자신의 경남중 후배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아아, 우리 백 선수가 부족할 게 뭐가 있다고 제가 도울 일이 있겠습니까? 백 선수가 아이들 지도해주실 때 제가 옆에는 있을 테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제 이름을 부르세요. 하하하!"
강 감독은 강호의 오른손을 양손으로 붙잡으며 쾌활하게 웃어 보인다.
그러면서 자신이 양손으로 맞잡은 강호의 오른손을 놓지 않는 모습이다.
'이게 올스타 MVP의 손이구나. 손에 굳은살이 가득하네. 역시 구단 최초 40-40을 달성한 선수가 아무런 고생 없이 그 자리에 오른 건 아니었던 거야!'
강 감독은 TV속에서 지켜보던 강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강호의 손바닥 굳은살에 왠지 모를 애잔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강 감독의 환대 속에 강호의 경남중 1일 감독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