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83화 (182/335)

0183 / 0335 ----------------------------------------------

올스타전

19일 홈런레이스의 주인공은 강호였다.

강호는 예선전에서만 14개의 홈런을 때려낸 후, 홈런레이스 결승에 올라 홈런 17개를 때려내는 위엄을 선보인다.

그동안 강호가 좋은 타자이고, 장타력과 컨택 능력, 출루율을 고루 갖춘 선수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모습을 실제로 접하게 된 수많은 야구팬들이 강호에 대한 인식을 수정하게 되는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팬들은 19일에 계획된 모든 행사가 끝난 후, 잠실구장을 나서며 강호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백강호 선수가 원래 홈런 타자가 아니라며? 베어스에서도 대 주자 용이나 대 수비 용으로 키웠다던데?"

"허 참, 진짜 사람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는 거네. 베어스에서 대수비로 쓰던 2군 선수가 저렇게 인생 포텐 터뜨릴 줄 누가 알았겠어? 베어스 구형태 감독도 한탄스럽겠네."

"구형태 감독만 한탄스럽겠어? 베어스 팬들이 요즘 자이언츠 기사마다 쳐들어가서 꼬장 부리는 게 다 백강호 때문이잖아. 만약 우리 팀에서 그랬으면 바로 감독 교체 탄원서 나왔지."

"하여튼 대단하긴 하다. 오늘 홈런 치는 거 보니까 50-50도 충분히 찍겠는데? 국내 경기에서 50-50이 나온 적이 있었나?"

"한 번도 없었어. 만약에 백강호가 50-50찍으면 국내 최초 기록이야."

팬들은 올 시즌 강호로 인해 새롭게 갱신될 수 있는 기록을 기대하며 귀갓길에도 야구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인다.

팬들의 관심 속에 하루의 시간이 흘러간다.

올스타 팬 싸인 회와 번트 왕 행사, 태권도 격파 시범, 공식 행사 등의 자잘한 일정이 지나고 오후 6시가 되어 올스타전 본 경기의 막이 오른다.

1회 초는 타이거즈, 이글스, 히어로즈, 트윈스, 위즈로 구성된 나눔 팀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드림 팀의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선수는 베어스의 에이스 투수인 니퍼드였고, 올스타전이라 니퍼드 투수가 전력으로 던지고 있지 않음에도 나눔 팀 타선은 연이어 범타로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이어서 드림 팀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된다.

드림 팀의 3번 타자로 경기에 나선 강호는 1사 주자 1루의 상황에 타석에 선다.

그런 강호의 귀에는 자신의 화끈한 장타를 기대하는 많은 팬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백강호 홈런!"

"한 방 날려라! 어제처럼!"

수많은 관중들이 어제 강호의 홈런레이스 장면을 떠올리며 응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팬들의 뇌리 속에 강하게 각인된 강호의 장외 홈런은 이제 강호를 바라보는 다른 팀 팬들의 시선조차 바꾸어 놓고 있었다.

팀을 떠나 백강호라는 선수를 순수하게 응원하는 팬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 것이다.

강호는 그런 팬들의 기대 속에 타석에 자리한다.

'기간제 아이템 효과는 어제 날짜로 끝이 났어. 이제 기간제 아이템 효과는 없어.'

강호는 어제 날짜로 효과가 종료된 기간제 아이템을 상대 투수의 초구가 뿌려지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두 기간제 아이템 중 여섯 번째 방문으로 '내가 심판이다'를 구입한 상황이었지만, 올스타전 경기에서 기간제 아이템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올스타전 경기가 시즌 정식 기록으로 포함되는 것도 아니었고, 오늘 올스타전 이후에는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간의 휴식 일이 주어지게 된다.

이틀의 휴식 일을 고려한다면 지금 기간제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은 옳은 결정이 아닌 것이다.

'달라진 스탯으로 타격 능력이 어디까지 개선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아무래도 기간제 아이템 효과가 적용되는 중에는 그런 점을 확인하기가 힘드니까.'

강호는 오랜만에 두 기간제 아이템 효과 없이 타석에 선다.

그리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눔 팀 선발 투수가 던진 공에 밀어치는 타격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우중간을 향해 타구가 뻗어져 나간다.

강호는 상대 투수의 포심에 별 생각 없이 배트를 내민 것이라서 타구가 인필드로 들어가자 외야 뜬공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타구가 잠실구장의 담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와아아!"

"오늘도 시작된 거야? 시작부터 홈런이네!"

강호가 무의식적으로 때려낸 홈런에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큰 환호로 보답해준다.

1루 베이스를 밟은 강호는 자신의 타구가 담장을 넘기자 황당한 심정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툭하고 친 것이 담장을 넘겼기 때문이다.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홈런이었다.

'이런 게 넘어간다고? 다른 곳도 아니고, 잠실인데.'

잠시 놀란 강호는 곧 환한 미소를 지으며 홈을 밟는다.

컨택 능력과 파워가 그만큼이나 좋아졌다는 뜻이다. 놀라거나 당황한 마음은 잠시잠깐이었고, 온 신경을 자극하는 환희가 몰려든다.

과거 레전드 선수였던 이승엽 선수가 툭하고 밀어 친 타구가 종종 홈런이 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 자신이 때린 타구가 과거 이승엽 선수가 보여준 기이한 홈런과 비슷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진심으로 기쁜 마음이 들었다.

통산 600홈런의 고지를 찍었던 이승엽 선수는 특유의 부드러운 스윙으로 뜬공이 될 것만 같았던 타구도 홈런으로 만들어내는 마술 같은 능력을 가진 타자였다.

과거 강호로서는 꿈에서나 가능한 이승엽 선수의 타격 기술이 자신의 손으로 재현된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낀다.

'이런 타격이라면 올 시즌 홈런왕도 단지 바람만은 아닐 거야.'

강호는 덕 아웃으로 들어서며 진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런 강호의 미소는 중계 카메라를 통해 TV를 시청하는 모든 팬들에게 전달되고 있었고, 특히나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강호의 여성 팬들이 그 미소에 탄성을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장에 있는 강호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따악!

덕 아웃에 자리한 강호는 잠시 후 타석에서 들려온 타격음에 눈을 크게 뜬다.

자신에 이어 팀의 4번 타자인 테인즈 역시 홈런을 때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강호에 이어진 테인즈의 백투백 홈런에 또 다시 잠실구장은 환호성으로 물든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5번 타자로 타석에 선 베어스의 김재성 마저 홈런을 때려내자 팬들은 환호를 넘어 찬탄을 금치 못한다.

"우와, 이거 올스타전 맞아? 홈런레이스 아냐? 올스타전에 백투백투백 홈런이 다 나오네!"

"이 정도면 양민 학살이지. 드림 팀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진짜 잘 지었네. 완전 드림팀이네. 그리고 나눔 팀이라는 이름도 잘 지었네. 점수를 그냥 나눠주네. 1회부터 4점주고 시작하고 말이야."

팬들은 경기 내용을 통해 서로 의견교환을 나누며 올스타전이라는 축제를 즐긴다.

팬들이 보기에 돋보이는 선수가 몇 명 있었다.

가장 먼저 선제 홈런을 때려낸 자이언츠의 강호, 그리고 강호에 이어 백투백 홈런을 때린 다이노스의 테인즈, 거기에 이어 백투백투백 홈런을 때려낸 베어스의 김재성까지.

세 선수들은 1회를 시작으로 자신의 타석 때마다 2루타 이상의 장타를 때려내며 자신의 장타력을 가감 없이 뽐내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수비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따악.

타석에 선 상대 팀 타자가 때려낸 타구가 유격수 자리에 선 강호에게로 향한다.

그런데 타구의 스피드가 워낙 빨랐던 까닭에 유격수와 3루수 사이의 안타로 기록될 것 같았다.

하지만 강호의 빠른 발은 타구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터업.

빠르게 타구를 향해 달려간 강호는 글러브에 공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직후, 역동작으로 1루를 향해 송구하고 있었다.

그 화려한 수비 동작에 관중들이 환호할 사이도 없이 공은 1루수인 테인즈에게로 날아간다.

약간은 높아 보이는 강호의 송구, 그러나 테인즈는 팔을 높이 뻗어 그리 어렵지 않게 송구를 잡아내는 모습이었다.

"아웃!"

1루심의 판정이 아웃으로 결정되자 그제서야 드림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그들뿐만 아니라 드림팀의 좌익수로 선발 출장한 베어스의 김재성 역시 연달아 자신의 위치로 날아드는 타구를 안정적으로 잡아내며 올스타로서의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모습은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 묘한 분위기에 자이언츠와 베어스, 다이노스 팬들은 각 팀의 선수들이 타석에 오를 때마다 경쟁적으로 응원의 목소리를 높인다.

팬들의 성원 속에 강호는 홈런 하나에 2루타 2개, 4타점을 기록할 수 있었다.

테인즈는 홈런 하나에 2루타 1개, 3루타 1개를 때려냈지만, 앞선 타자인 강호가 타점을 싹쓸이 해버린 까닭에 3타점에 그친다.

재성 역시 1홈런에 2루타 하나를 때려냈고, 2타점을 기록할 수 있었다.

세 명의 중심타자가 도합 9타점을 생산하며 올스타전 경기는 드림팀의 12대 5 승리로 끝을 맺게 된다.

올스타 급 중심 타선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경기였다.

드림팀의 승리에 힘입어 이번 올스타전에서 MVP로 선정된 선수는 바로 강호였다.

강호는 모든 야구팬들의 열광과 환희를 함께하며 올스타전 MVP의 영예를 누린다.

'이런 감정과 환호성. 내년에도 느끼고 싶다.'

강호는 지금 이 순간을 머릿속으로 각인시키며, 내년 올스타전에도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간직한다.

한 편, 시간과 장소는 이동한다.

장소는 여전히 잠실구장이었지만, 시간은 올스타전 경기가 처음 시작된 순간으로 이동한다.

지정만 사장은 이상현 단장과 허동준 기획실장 등을 이끌고, 각 팀 사장단 등과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올스타전은 모두가 함께하는 행사의 성격이어서 각 팀 프런트들 역시 VIP룸에서 올스타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 사장님. 요즘 들어서 자이언츠 구단이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들었습니다. 비즈니스 하시기도 바쁘실 텐데. 열정이 대단하시네요."

"아닙니다. 지역 사회하고 교류하는 것도 비즈니스 아니겠습니까? 그저 소소하게 몇 가지 일을 추진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정만 사장은 근처에 앉은 타이거즈 구단 사장의 말에 점잖은 미소로 화답한다.

깔끔한 슈트를 차려입고, 매너 있는 태도로 모든 이들에게 응수하고 있는 지정만 사장.

그런 지 사장의 모습은 그가 대외적인 활동을 할 때에나 볼 수 있는 사회적인 행동이었다.

등 뒤에서 타이거즈 사장에게 대답하는 지정만 사장의 말을 듣고 있는 허동준 실장으로서는 혀를 차게 하는 모습이었다.

'소소하다니. 그 소소한 일에 구단 직원들은 야근에 철야에, 주말 잔업까지 하고 있단 말입니다! 소소해서 참 다행이네요.'

허 실장은 지 사장에게 대놓고 건낼 수 없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마치 지 사장의 미소처럼 웃음 짓는다.

어느새 그의 미소는 지정만 사장을 닮아가고 있었다.

"가끔 이렇게 서울에 와서 바람도 쐬고 해야겠습니다. 저는 광주에만 있다 보니까 이렇게 서울 나들이 올 때마다 서울사람이 된 것 같더라고요."

타이거즈 구단 사장은 진한 광주 말투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지 사장이 역시나 겸양의 말로 대답하려는 찰나.

경기장을 관통하는 호쾌한 타격음이 VIP룸까지 들려온다.

VIP룸은 경기장이 모두 보이는 쇼윈도로 제작된 것은 물론, 실내 곳곳에 대형 LED화면으로 각 중계 카메라로 찍는 영상들이 실시간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지정만 사장은 왠지 낯익게 들려오는 타격음에 LED화면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런 지 사장의 눈에는 선제 투런 포를 때려내고 있는 강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아아, 우리 백강호 선수가 홈런을 때리고 있네요. 하하하."

지 사장은 강호의 홈런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겉으로는 젠틀한 사업가의 풍모를 보이며 곁에 놓아두었던 와인 잔을 들어 올린다.

각 팀의 사장단이 자리한 VIP룸에는 무제한 와인이 공급되고 있었고, 지 사장은 강호의 홈런으로 기쁜 마음에 와인 잔에 든 진한 레드와인을 기분 좋게 들이킨다.

그런데 지 사장이 와인을 들이킬 일들이 점점 늘어난다.

강호가 자신의 유격수 자리에서 연달아 호수비를 보일 때 마다 한 잔, 그리고 펜스를 강타하는 2루타를 때릴 때마다 한 잔, 또 다시 호수비에 한 잔.

그렇게 위장으로 사라지는 와인의 양이 많아질수록 어느새 지 사장의 사회적 가면은 산산히 흩어져 간다.

"아하하하! 백강호 선수는 우리 자이언츠 선수에요! 다들 팀에 4할 타자 한 명 정도 보유하고 계시죠? 아, 이거 미안합니다. 우리만 가지고 있네요! 바로 백강호 선수 말이에요. 저 선수가 바로 우리 백강호 선수에요. 베어스 2군 선수 백강호가 아니라 자이언츠 4번 타자 백강호 말입니다!"

지 사장은 만취한 상태로 기분 좋게 웃어 보인다.

그의 발언에 베어스 사장이 넉살 좋게 웃고는 있었지만, 속내는 미소와는 달리 편하지 못했다.

'아니 저 양반이 왜 아픈 구석을 찌르고 그래. 술은 당신만 마실 줄 알아? 나도 마실 줄 안다! 오늘 한 번 달려봅시다!'

베어스 사장은 지 사장이 찌른 아픈 과거에 와인 잔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잠시 후, 올스타전 경기가 끝났을 때에는 만취한 사장들의 고성이 VIP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VIP룸의 난장판을 주도했던 지정만 사장은 하루가 지나 부산으로 돌아온 후에야 베어스 사장에게 하나의 사과 문자를 보낸다.

지정만: 미안하게 됐어요. 필름이 끊겨서 어제 일이 기억이 안 나는데 비서진 말로는 제가 실수를 했다면서요? 우리 사업하는 사람들답게 쿨 하게 넘어갑시다. 그럼 수고하세요. 다음에 기회 되면 밥 한 끼 합시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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