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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스타전
19일 아침이 되자 강호와 대우는 원정 버스에 올라 아침 일찍 부산을 떠나고 있었다.
두 사람을 포함해 자이언츠에서 올스타전 행사에 동원되는 몇몇 선수들과 퓨처스 올스타에 나서는 2군 선수들을 태운 차량은 부산을 떠나 올스타전이 열리는 잠실로 향하고 있었다.
올스타전의 본 경기는 20일인 내일이었고 오늘 일정은 퓨처스 올스타 일정이지만, 퍼펙트피처나 홈런레이스 등의 행사는 2군 선수들이 아닌 1군 선수들이 참가해야 해서 19일 아침부터 잠실로 이동 중에 있는 것이다.
올스타전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선수들은 말 그대로 올스타 브레이크 휴식을 즐기게 된다.
"떨리네요. 선배님. 올스타전은 어떻게 진행되는 겁니까? 예전에 TV로 봤던 기억이 있는데 제가 올스타 선수로 참가하려니까 기억이 하나도 안 납니다."
곁에 앉아 초조한 목소리로 묻는 대우의 질문에 강호는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올스타전은 처음인데."
"아, 그렇지요. 선배님이나 저나 올스타전은커녕 1군 무대도 올해 처음 밟은 거네요. 왠지 강호 선배님은 1군 경험이 많은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대우는 상대적으로 침착해 보이는 강호가 올스타전에 대해 잘 알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가 강호 역시 올스타전 무대가 처음이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럼에도 자신과는 다르게 떨리는 기색 없이 침착해 보이는 강호의 태도에 존경심마저 느껴진다.
"선배님은 안 떨리십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올스타전이잖아요."
"떨릴 이유가 뭐 있어? 올스타 일정이 팀 성적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고, 개인 성적에 포함되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드림 올스타 팀 감독님이 손 감독님이시잖아. 우리는 감독님이 경기에 올리면 하던 대로 플레이만 제대로 하면 돼."
대우의 질문에 강호는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이번 올스타전에서 드림 팀의 감독 자리에 오른 사람은 자이언츠의 감독인 손성조 감독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올스타 감독은 성적순으로 감독과 코치를 정하고는 했지만, 작년부터 올스타 규정이 바뀌어 각 팀 감독들이 매 년 돌아가면서 올스타 감독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올해 드림 팀 감독 자리는 자이언츠에게 돌아와 손성조 감독이 드림 팀 감독이 되었고, 나눔 올스타 팀 감독 자리는 히어로즈가 맡기로 했다.
나머지 팀의 감독들은 코치로 임명되어 따로 잠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성적순으로 올스타 감독을 뽑지 않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야. 만약 성적순으로 감독을 뽑았다면 우리가 포함된 드림 팀 감독으로 구형태 감독이 선정됐을 테니까.'
강호는 올스타 규정이 수정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예전과 같이 성적순으로 올스타 감독을 뽑았다면 자신이 속한 드림 팀 감독은 베어스의 구형태 감독으로 정해졌을 것이다.
이제는 강호도 1군에 확실한 자리를 가지게 되면서 과거 베어스 2군에서 자신을 방출했던 구 감독에 대한 분노나 서운함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지만, 여전히 구 감독에 대한 어색한 감정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손성조 감독이 드림 팀 감독으로 정해진 것에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그런데 곁에 앉은 대우는 그런 사실이 위안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는 손 감독님이 드림 팀 감독이라서 더 떨립니다. 저희 감독님이 드림 팀 감독으로 계신데 실수라도 하면 감독님도 얼마나 창피하시겠습니까? 차라리 올스타전에서 저를 마운드에 안 올리셨으면 좋겠네요."
대우는 자신이 올스타전에 나선다는 사실을 기뻐하면서도 반대로 그만큼이나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곁에 앉은 강호는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려다가 결국 그만두고는 의자에 편히 몸을 기댄다.
'말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마운드 위에서는 멘탈이 강한 녀석이니까. 경기가 시작되면 알아서 잘 풀어가겠지.'
강호는 대우에 대한 생각을 그쯤에서 멈추고, 편안한 자세로 카시트에 몸을 기댄다.
평소에는 장거리 이동 시 악력 운동이나 개인 훈련을 병행하고는 했지만, 지금만큼은 편한 마음으로 잠실에 갈 생각이었다.
'올스타잖아. 하루쯤은 편하게 보내는 날도 있어야지.'
강호는 대담하게도 올스타전을 앞두고 편히 쉴 작정으로 잠실을 향한다.
그의 그런 태도는 전혀 신인답지 않은 대범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호의 대범함은 퓨처스 올스타전이 끝난 후에 열린 홈런레이스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장소와 시간은 퓨처스 올스타 시상이 끝난 잠실 경기장으로 옮겨진다.
강호를 포함한 모두의 시선은 타석 위에 오른 한 명의 선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따악!!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주는 타격음과 함께 타자가 때려낸 공이 잠실의 담장을 넘는다.
그 인상적인 홈런에 관중석의 팬들이 '와아'하는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임팩트가 국내 타자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네. 테인즈가 올해 35살 아냐? 나이가 들어도 파워가 떨어질 생각을 안 하네!"
"괜히 홈런 1위겠어? 테인즈가 40홈런 이상 기록한 시즌이 몇 시즌인 줄 알아? 올해까지 포함하면 2015년부터 연속 5년이야. 5년 동안 때린 홈런 수가 220개가 넘는다고."
"왜 우리 팀에서는 저런 외국인 타자를 안 데려오는 거야? 못 데려오는 건가?"
"테인즈 같은 타자가 뭐가 아쉬워서 KBO에 오겠어? 어떻게든 메이저리그에서 생존하려 하겠지."
잠실구장을 찾은 팬들은 응원하는 팀을 떠나서 순수하게 테인즈라는 타자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다른 국내 타자들에 비해 압도적인 임팩트의 홈런을 때리는 모습에 테인즈라는 타자에게 매료되어 간다.
그리고 테인즈가 7개의 아웃카운트가 올라가는 동안 때려낸 홈런의 개수가 12개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더욱 더 전율하게 된다.
"올해는 테인즈가 홈런왕 먹겠네. 잠실에서 홈런 12개라니. 이게 말이 돼?"
"내가 볼 때도 김재성이나 백강호가 한 수 아래로 보이네. 올 시즌 홈런 타이틀도 테인즈가 가져갈 것 같아."
현장을 찾은 팬들 뿐만 아니라 일부 전문가들도 테인즈의 압도적인 홈런 생산 능력에 입을 벌리게 된다.
그들 역시 올 시즌 홈런 타이틀 경쟁에서 테인즈가 근소한 차이로 경쟁자들을 앞서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테인즈에 이어 다른 타자들이 타석에 올랐지만, 그 누구도 테인즈와 같은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따져보아도 상위권에 드는 구장 크기를 자랑하는 잠실구장에서 테인즈처럼 12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모든 팬들과 야구전문가들은 이번 올스타 홈런 레이스 역시 작년과 재작년에 이어 테인즈 선수가 홈런왕 타이틀을 가져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강호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와아, 뭐야? 나 백강호 선수 실제로 처음 보는데 몸이 엄청 크네? 키도 테인즈보다 큰 것 같고, 덩치도 오히려 더 커 보이는데?"
"저게 진짜 동양인 체구가 맞는 거야? 한국 사람도 저런 몸을 만들 수가 있는 거야?"
"백강호가 1군 들어오면서 웨이트를 엄청 했다고 하더니 프로야구 선수가 아니라 프로레슬링 선수 같네. 테인즈보다 더한데?"
자이언츠 팬들에게는 익숙한 강호의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강호를 처음 보는 다른 팀 팬들 입장으로서는 강호의 변화된 모습이 충격 그 자체였다.
엄청난 피지컬을 가진 테인즈에 비해 전혀 밀릴 것이 없어 보이는 강호의 피지컬에 놀란 것이다.
사실을 따져 봐도 183cm의 키에 95kg인 테인즈와 비교해도 187cm의 키에 100kg의 강호가 더욱 뛰어난 피지컬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이런 변화가 최근 몇 달 만에 이루어진 체중 변화라는 사실이었다.
"야야, 너희 그거 알아? 백강호 2군 때 말이야. 그때는 70kg도 안 나갔다고 하던데?"
"무슨 헛소리야? 너는 지금 저 모습을 보고서도 그런 헛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는 거야?"
"진짜라니까. 이것 봐. 여기 백강호 과거 모습 치니까 2군 시절 모습이 나오잖아."
강호의 과거 체형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일부 팬들은 스마트 폰 검색을 통해서야 강호의 옛날 모습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옛날에는 완전 멸치였네. 대체 노력을 얼마나 하면 몇 달 만에 이렇게 바뀌는 거야? 진짜 같은 사람 맞아?"
"이 정도면 스테로이드나 약물 같은 거 의심해 봐야 되는 거 아냐?"
"이거 완전 야알못이네. 백강호가 올해 도핑검사를 네 번이나 받았잖아."
"진짜야?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데?"
"멀쩡하게 올스타 나온 거 보면 모르겠어? 자꾸 멍청한 소리 할래?"
강호가 타석에 서는 모습을 실제로 본 팬들은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가며, 강호의 타격이 테인즈의 것과 어떻게 다를 것인지 기대어린 눈빛으로 지켜보게 된다.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타석에 오른 강호.
강호는 침착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조금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올스타. 꿈은 아니겠지? 내가 올스타 홈런레이스에 참가하다니.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생각 해본 적도 없는 일이야.'
강호는 많은 야구팬들의 기대어린 시선을 받으며 가슴이 설레고 있었다.
부담이 되거나 불안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팬들이 자신의 홈런을 기대한다는 사실 자체가 가슴 설레는 것이었다.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자신이 바랐던 이상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꿈의 무대 올스타전.
강호는 지금 이 순간, 1분 1초를 자신의 뇌리에 각인시키기 위해 잠실구장의 모든 것을 시야에 가득 담는다.
'나를 지켜보는 저 많은 눈빛들이 내가 홈런을 때려내기를 기대하고 있어. 몇 달 전만해도 나에게 홈런을 기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시선들이 내 홈런을 기대하고, 또 기다리고 있다. 내가 때려내는 홈런을!'
배트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는 배팅볼을 던져줄 자이언츠 2루수 황인태와 시선을 마주한다.
그는 고맙게도 올스타에 선정되지 않았음에도 강호의 배팅볼 투수를 자처하며 잠실까지 따라 와주었다.
올스타전 무대가 아직 어린 신인인 인태에게도 부담이었는지 경직된 얼굴로 강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인태.
이윽고 그가 던진 첫 번째 공이 홈플레이트를 향해 던져진다.
구종: 포심 패스트볼
구속: 97km
강호의 시야에 인태가 던진 초구 정보가 표시되고 있었다.
지난달에 사용한 두 개의 기간제 아이템 효과는 여전히 적용 중에 있었다.
'내가 심판이다'와 '타석의 지배자'를 사용한 것이 지난 달 20일이었기 때문에 정확히 오늘까지 두 기간제 아이템의 효과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딱 맞춘 것 같은 우연이 홈런레이스에 참가한 강호를 돕고 있었다.
강호는 우연이 건넨 도움을 마다하지 않고 시야에 표시되는 인태의 초구를 타격하고 나선다.
따악!!
강한 타격음에 잠실구장이 순간 정적에 휩싸인다.
테인즈를 능가하는 엄청난 임팩트와 함께 강호가 때린 타구가 잠실 구장의 좌중간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타구는 잠실구장의 담장을 넘은 것도 모자라 경기장을 완전히 넘겨버리는 장외홈런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가장 먼저 자이언츠 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고, 강호의 두 번째 홈런이 이어지자 응원하는 팀을 떠나 모든 야구팬들이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우와아아!!!
"와, 뭔데? 두 개 다 장외야? 대박이네! 잠실에서 장외홈런을 때린다고? 백강호가 그런 클래스의 타자였어?!"
"야, 좀 조용히 해봐. 백강호 홈런 치는 것 좀 보게!"
강호의 홈런으로 잠실구장을 찾은 야구팬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테인즈 이후에는 이렇다 할 임팩트를 보여준 타자가 없어서 잠시 식어 있던 분위기가 빠르게 달궈지고 있었다.
그것은 타석에 선 단 한 명의 타자로 인한 것이었다.
따악!!
강호는 또 한 번 홈런을 때려내고 있었다.
두 개의 아웃카운트가 올라갈 때 동안 강호가 때려낸 홈런의 개수는 다섯 개.
그 중 두 개가 잠실구장을 완전히 넘기는 장외 홈런이었다.
'이게 진짜 내가 때리는 홈런이라고?'
강호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이번 여섯 번째 프리마켓 방문 이후로 또 다시 업그레이드 된 스스로의 타격 능력에 놀라고 만다.
손 감독과 함께 변화시킨 타격 폼은 변화된 신체 능력을 고스란히 배트에 실어주고 있었고, 스탯 100이 넘어가는 파워가 고스란히 타구에 실려 잠실구장의 외야를 수놓고 있었다.
강호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완벽한 홈런 궤적에 전율한다.
그리고 자신이 때려낸 홈런의 숫자가 10개를 넘어가기 시작하자 스물 스물 차오르는 욕심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과거에는 한 번도 가져보지 않은 욕심이자 이제는 눈앞으로 다가온 뚜렷한 목표가 되어 있었다.
'빼앗기고 싶지 않아! 다른 어떤 누구에게도 양보할 생각 없어. 홈런왕이라는 타이틀, 단지 올스타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올 시즌 홈런왕 타이틀은 내가 가지겠어!'
강호의 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반칙 같이 찾아온 프리마켓이라는 기회, 마치 치트키와 같은 그 능력을 사용하면서도 악착같이 스스로를 절제해 왔었다.
욕심을 가지기에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가 마치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강호는 이제 그 마음을 버리고, 생전 처음으로 단 하나의 욕심을 가져본다.
'올 시즌, 홈런왕이 되는 것은 바로 나 백강호야!'
강호는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자신의 모든 것이 될 목표를 가슴속으로 새기면서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두른다.
따악!!
또 하나의 타구가 잠실구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