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79화 (178/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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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처

다이노스의 다음 타자는 테인즈였다.

시즌 타율 3할 6푼 2리에 41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는 괴물 타자.

2015년 40-40을 기록한 후 나이가 들고 있음에도 페이스가 떨어지는 모습 없이 계속해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테인즈였다.

'테인즈 선수는 강호 선배 못지않은 괴물 타자야. 이런 타자에게 조금 전 같은 허술한 공을 던졌다가는 백투백 홈런을 얻어맞게 될 거야.'

자이언츠 덕 아웃을 흘낏 살핀 대우는 투수 교체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테인즈를 상대할 방법을 떠올린다.

그런데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올 시즌 불펜 투수로서 믿기 힘든 활약을 하고 있는 대우였지만, 테인즈 타자와의 상대 전적은 좋지 못한 편이었다.

테인즈를 상대한 대우의 시즌 성적은 5타수 3안타, 정확히 6할 타율을 허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표본이 많지 않아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테인즈에게 약한 면모를 보이는 대우였다.

그런 그가 테인즈를 상대로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그리 많지 않아보였다.

'차라리 거를까? 어차피 주자도 없는 상황에 1사잖아? 테인즈를 거르고 다음 타자에게 땅볼을 유도하면 오히려 쉽게 이닝을 마무리할 수도 있을 거야!'

대우는 승부를 피하려는 스스로의 생각을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주자가 없는 1사 상황이니 강타자인 테인즈와 정면 승부를 벌일 바엔 유인구로 유인을 해보다가 테인즈의 배트가 딸려 나오지 않으면 볼넷을 내줄 작정이었다.

그런 대우의 계획은 결국 볼넷이라는 결론으로 나타난다.

"베이스 온 볼."

주심의 볼넷 선언에 테인즈는 1루 쪽으로 향하며 배트를 내려놓는다.

이제 주자 1사 1루 상황.

자이언츠 덕 아웃으로서도 충분히 납득 할 수 있는 볼넷이었기 때문에 손 감독은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다.

고의사구와 다를 바 없는 볼넷이었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대우가 내용이 있는 투구 전략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어진 5번 타자 방성민과의 대결에서 안타를 허용한 후, 이어진 6번 타자 이종윤에게까지 볼넷을 내어주게 되자 손 감독으로서도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게 되었다.

대우는 바빠지기 시작한 덕 아웃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투수 교체를 직감한다.

'조금 전 공은 스트라이크였어! 주심이 스트라이크 존을 갑자기 좁힌 거야. 삼진을 잡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대우는 풀카운트까지 펼쳐진 이종윤과의 승부가 주심의 볼 판정으로 허무하게 끝나버리자 이를 악물고 있었다.

투수인 대우의 입장에서는 주심의 볼 판정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타자인 이종윤의 몸 쪽으로 살짝 붙긴 했지만,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고 들어간 마지막 공은 스트라이크로 잡아줘도 무방한 공이었기 때문이다.

"후우~"

대우는 뜻대로 풀리지 않은 상황에 길게 한숨을 내쉰다.

이제는 손 감독도 더는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짧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자 흥건한 땀이 마치 물처럼 손바닥에 베어나오고 있었다.

더운 날씨와 피 말리는 상황 속에 흘러나온 진땀은 대우가 얼마나 치열하게 공을 던지고 있었는지를 알게 하는 부분이었다.

'응?'

덕 아웃의 눈치를 살피던 대우는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투수교체를 예감하며 머리에 흐른 땀을 닦아내던 대우가 행동을 멈추고, 다시 모자를 착용한다.

왜냐하면 투수 코치인 여민석이 아니라 손 감독이 직접 마운드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 감독은 투수 교체를 묻는 주심의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한 후 빈손으로 마운드를 향해 걸음을 뗀다.

마운드로 오르는 감독이 주심에게 공을 넘겨받지 않는다는 것은 투수 교체가 아니라는 의미.

그 의미를 알고 있는 모든 내야수들이 마운드에 선 대우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손 감독이 마운드에 오르자 포수를 포함한 모든 내야수들이 손 감독과 권대우 투수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선 모습이었다.

강호 역시 대우의 등 뒤로 다가서며 손 감독과 시선을 마주한다.

모든 내야수들이 모여들자 손 감독은 곧장 투수인 대우에게 입을 열었다.

"방금 전 공은 좋았다. 그런 공을 던지면 되는 거야. 이번 이닝에서 투수 교체는 없을 테니까. 대우 네가 이번 이닝을 마무리 짓도록 해."

손 감독이 꺼낸 말에 대우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투수 교체를 하지 않겠다는 말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기겠다는 의미가 된다.

7대 4로 이기고 있는 상황을 실투 하나로 인해 7대 8로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당장 투수 교체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인데 아웃카운트 하나 잡아내지 못한 채 다시 만루 위기를 자처하고 있는 상황.

손 감독은 그런 대우에게 이닝을 마무리 지을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이닝을 맡기신다고?'

대우는 손 감독의 말에 최근 몇 경기를 되돌아본다.

최근 들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두 번의 패전을 떠안게 되었다.

위기 상황에 등판하기도 했지만, 예전이라면 쉽게 막아낼 수 있는 상황에도 제구 불안이나 실투로 실점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대우의 올스타 선정은 평생의 영광으로 삼을 일이지만, 반대로 아직 어린 신인 선수에겐 부담이 되기도 했다.

대우는 올스타로 선정된 이후부터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손 감독은 그런 대우와 눈을 마주하며, 굵직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멘탈이 흔들릴 수도 있고, 실투를 던질 수도 있어. 투수에게 시련은 항상 밥 먹듯이 찾아오는 거니까. 한 가지만 기억 하거라. 네가 어떤 공을 던지는 투수인지를, 권대우라는 투수가 어떤 공을 가진 투수인지를! 그것 하나만 기억하면 되는 게야."

"네!"

잔잔한 목소리로 시작된 손 감독의 말은 강한 에너지를 품은 채 대우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대우는 어느새 기합 든 목소리로 원래의 표정을 되찾고 있었다.

한 때 강호를 흉내 내며 승승장구했던 대우는 신인답지 않은 강한 구위와 멘탈로 무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스타'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그를 원래의 신인 투수 권대우로 발가벗겨버린 것이다.

손 감독은 그러한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서 단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말로 대우의 마음을 다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대우에게 당부의 말을 끝낸 손 감독은 이번에는 강호를 포함한 야수들을 향해 입을 연다.

"이제부터 너희들이 할 일은 단 한 가지야. 본인에게 오는 타구는 반드시 막아라! 할 수 있겠지?"

손 감독은 내야수들을 둘러보며 묻고 있었다.

만루 홈런을 얻어맞고 크게 위축된 대우를 위해 야수들이 적극적으로 수비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요구에 모든 야수들이 힘 있게 대답한다.

"네!"

"좋아. 그거면 충분한 거야."

손 감독은 내야수들의 대답을 들은 후 곧장 마운드를 내려간다.

강호와 야수들은 대우의 어깨를 한 차례 두들겨준 후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마운드에 남게 된 선수는 투수인 대우가 유일했다.

대우는 손 감독의 방문으로 잠시 가득 찼었던 마운드가 주는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혹시 감독님께서는 그 점을 알려주시려고 한 게 아닐까? 타자를 삼진으로 잡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야수들을 믿고, 내 장점을 살린 공을 던지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을까?'

대우는 문득 생각하고 있었다.

올스타에 이름을 올리고 나서부터는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느낌이 다르게 다가왔다.

야수들의 수비 도움이 아닌 자신의 힘만으로 타자를 상대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난 것이다.

내야 땅볼 비중이 높은 투구 패턴을 바꾸고 삼진을 잡아내기 위한 승부를 벌이게 되었다.

'내가 언제부터 삼진 잡는 투수였다고.'

대우는 이제야 부진의 원인을 알게 된다.

사실은 진즉에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브먼트가 좋은 언더핸드 투수로서 상대 타자들의 타구를 내야 땅볼로 유도하는 능력이 뛰어난 대우였다.

그런 대우를 일컬어 자이언츠 팬들은 '땅볼 마스터'나 '병살타 제조기'등의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올스타라는 무게감이 대우에게 욕심을 가지게 하다 보니 팬들도 알고 있는 본인만의 장점을 상실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대우는 이제 정신을 차리기로 한다.

'감독님의 말씀을 기억하자. 내가 어떤 공을 던지던 투수였는지를 항상 생각하자. 욕심은 버리고, 내가 가진 공을 던지는 거야!'

대우는 욕심을 내려놓기로 한다.

이제 올스타라는 무게감을 내려놓고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공을 던지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런 대우의 변화는 결과로 드러나고 있었다.

-타구가 유격수 방면으로 향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강호는 다이노스의 7번 타자 손시형에게 대우가 던진 4구째 공에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오르는 것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메시지와 함께 주변이 느려지고 있었고, 대우가 던진 공의 궤적과 타자인 손시형의 배트 움직임을 확인하고는 곧장 결정을 내린다.

'좋아. 이번만큼은 아이템을 사용하겠어.'

-아이템 호수비(일회용)를 사용합니다.

강호는 위기 상황을 막아내기 위해 호수비 아이템 사용을 결정했다.

그 후 느려진 주변의 광경들이 원래의 속도로 되돌아오고, 강호의 몸이 쏜살같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따악.

손시형의 배트가 공을 때리는 것보다 이른 시간에 강호의 발걸음은 어느새 2루를 향하고 있었다.

투수인 대우의 곁을 스치고 지나간 타구는 2루 베이스를 스치는 중전 안타로 기록될 것 같았다.

하지만 유격수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강호가 빠르게 튕겨져 나가던 공을 글러브로 낚아챈다.

터억!

강호는 공을 잡아내는 것과 동시에 2루 베이스를 밟으며 곧장 1루로 공을 뿌린다.

그 모습에 2루심은 아웃을 선언하고 있었고, 1루수 채중석의 글러브에 강호가 던진 공이 틀어박히자 모두의 시선은 1루심에게로 향한다.

"아웃!!'

1루심 역시 아웃을 선언하고 있었다.

본인이 가진 빠른 주력을 수비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발휘한 강호의 호수비가 팀의 위기 상황을 여기서 종지부 지은 것이다.

"와아아!"

잔뜩 긴장하고 있던 자이언츠 원정 팬들이 1루심의 아웃 콜이 떨어짐과 동시에 환호성을 내지른다.

강호는 자이언츠 팬들의 함성 소리를 들으며 덕 아웃으로 걸음을 뗀다.

그런 강호의 곁으로 다가서는 그림자가 보였다.

강호는 자신을 향해 글러브를 내밀어오는 선수를 향해 고개를 돌려본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덕분에 막았습니다."

감사 인사와 함께 글러브를 내민 사람은 진땀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대우였다.

그는 어느새 슬럼프가 오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손 감독이 건넨 말 한 마디가 대우를 불펜의 핵으로 활약하던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강호는 그런 사실들을 느끼며 대우가 내민 글러브에 자신의 글러브를 가져다 댄다.

투욱.

두 사람은 글러브를 마주하며, 덕 아웃으로 들어선다.

비록 크게 이기고 있는 경기를 7대 8로 역전당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이닝이 남아 있었다.

'이제 6회 말이 지났을 뿐이야. 아직 재역전의 기회는 남아 있어.'

강호는 덕 아웃으로 들어서며 7회에 있을 자신의 타석을 구상하고 있었다.

팀이 한 점 차로 흐름을 내어준 상황, 4번 타자가 해야 할 역할은 분명했다.

단 하나 걸리는 것은 상대 배터리가 자신을 거르지 않을까하는 걱정이었다.

그런 강호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다이노스 배터리는 7회 초, 1사 주자 2루 상황에서 강호를 고의사구로 걸러내고 있었다.

"우우우~"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야유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지만, 다이노스 배터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강호에게 볼넷을 내어준다.

이제 팀의 5번 타자 스팅 앞에 주자 1, 2루의 상황이 만들어진다.

자이언츠 팬들은 고의사구로 걸어 나간 강호를 대신하여 스팅이 이 기회를 득점으로 연결시키기를 간절히 바랐다.

따악.

스팅이 상대 투수의 5구째를 받아칠 때만 해도 그런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이노스 좌익수 김준환이 펜스를 등진 채 공을 잡아내 버리자 자이언츠 팬들의 기대는 탄식으로 바뀐다.

스팅의 외야 뜬공에 2루 주자인 문표와 1루 주자 강호가 센스 있는 주루 플레이로 한 루씩을 더 진루했지만, 다음 타자인 강민수가 삼진을 당하면서 절호의 기회는 무산되고 만다.

이후 별다른 상황 없이 맞이한 9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 차례.

모두의 시선이 타석으로 쏠리게 된다.

선두 타자로 나섰던 1번 타자 유성철이 끈질긴 승부 끝에 볼넷으로 출루한 후, 2루 도루에 성공한 뒤 2번 타자 박철이 성철을 3루로 보내는 진루타를 때려내게 된다.

1사 주자 3루 상황에서 손 감독은 3번 타순에 문표를 대신하여 대타 김상훈을 타석에 세웠고, 상훈은 손 감독의 믿음대로 볼넷을 얻어내어 1루를 채운다.

이제 상황은 9회 1사에 주자 1, 3루 상황.

타석으로 걸음을 옮기는 타자는 팀의 4번 타자인 강호였다.

'거르지만 마라. 제발 고의사구만 아니기를.'

강호는 다이노스 배터리가 자신에게 고의사구를 주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타석에 선다.

이번 타석은 타석에 서자마자 아이템 사용을 결정짓고 있었다.

팀의 승패가 달린 승부처라고 여긴 강호는 아이템 사용을 망설이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후, 프리마켓 문이 열리면 아이템은 다시 살 수 있어. 하지만 패배한 경기는 다시 되돌릴 수 없어. 상대 배터리에서 나를 고의사구로 거르지만 않으면 돼!'

강호는 간절한 마음으로 타석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다이노스의 마무리 투수 임창규가 초구로 던진 코스를 확인하는 순간, 강호의 눈빛이 빛나며 벼락같이 배트를 휘두른다.

따악!!

강호의 스윙과 함께 경기장을 가득 채운 타격음에 모두의 시선이 외야를 향해 옮겨진다.

그리고 곧 3루 쪽 관중석과 덕 아웃에서 환호성이 가득 차오른다.

홈런이었다.

강호는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타석을 쓰리 런 홈런으로 장식하며, 자이언츠가 한 번도 달성해보지 못한 새로운 기록 하나를 추가한다.

40홈런과 40도루.

강호는 데뷔 시즌에 팀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기록을 달성하며 오늘의 경기를 승리로 이끈다.

이 날의 경기는 강호의 홈런이 결승타가 되어 10대 8, 자이언츠의 승리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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