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77화 (176/335)

0177 / 0335 ----------------------------------------------

손 감독의 믿음

마산 야구장에 원정 응원을 온 자이언츠 팬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른 팀과의 경기라면 부산에서 원정을 가는 팬들과 그 지역에 연고를 둔 자이언츠 팬들이 원정 석을 가득 채웠겠지만, 마산에서 열리는 다이노스와의 경기만큼은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시즌 전적 2승 9패.

다이노스가 창단한 2011년 이후로 올해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약세를 보이고 있는 자이언츠의 모습에 팬들은 두 팀 간의 경기만큼은 현장을 찾지 않는 모습이었다.

경기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일부 팬들이나, 자이언츠 저지를 뱃지로 도배한 골수팬들만이 원정 석을 3분의 1정도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 그렇게 몸에 맞아서라도 출루해 줘야지!"

"이제 다음 백강호지? 1회 초부터 쉽게 가는 건가?"

"아닐 수도 있어. 요즘 백강호 선수가 슬럼프잖아. 요즘 영웅 스윙하는데 맛이 들려서 쳤다하면 외야 뜬공이라고."

자이언츠 팬들은 상반된 의견 속에 타석에 오르는 다음 타자를 주의 깊게 지켜본다.

타석에 오르는 타자는 바로 강호.

1번 타자인 유성철이 땅볼로 물러나고, 2번 타자 박철이 기습 번트로 1루에 출루한 이후 3번 타자인 문표가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하며 1사 1, 2루의 기회에서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오늘 경기가 끝나고 자정이 되면 다시 프리마켓이 열리게 돼. 남아있는 일회용 타격 아이템들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그런 생각으로 이미 경기가 시작되기 전 아이템 하나를 사용한 상태였다.

아이템의 이름은 '타격왕의 본능'이었다.

업적 보상으로 수십 개나 받게 된 타격왕의 본능은 한 경기에 한하여 컨택 능력을 +3증가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현재 주자가 1, 2루에 나가며 득점권 상황인 상태.

두 개의 스킬이 발동 중인 까닭에 '타격왕의 본능'까지 더해져 강호의 스탯은 풀 버프가 이루어져 있었다.

백강호(24)

포지션:SS

컨  택:111.6(+15)

파  워:100(+10)

선구안:87(+7)

주  력:100.9(+7)

수  비:97(+7)

송  구:87(+7)

멘  탈:98.5(+7)

*볼넷 확률 5%증가, 안타 칠 확률 25%증가, 장타률 5%증가, 홈런 확률 5%증가

*아이템 효과: 타격왕의 본능

스킬 효과에 아이템 효과까지 더해져 컨택 스탯이 110을 넘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탯 적용은 10단위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어서 110의 컨택 효과는 과연 어떠할 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난다.

인벤토리에 업적 보상으로 받은 '타격왕의 본능' 아이템이 수십 개가 들어 있었지만, 여태껏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딱히 아끼려고 한 것이 아니라, 타석 상황에서 다른 것에 집중하다보니 쓸 틈이 없었던 것이다.

전반기의 마지막 경기에서 인벤토리에 남은 아이템을 아낌없이 활용해보려는 생각이었다.

한편 강호가 타석에 들어서자 포수 자리에 앉아 있던 다이노스 김태건 포수가 마스크 사이로 눈빛을 빛낸다.

'백강호가 요즘 타격 슬럼프라지? 홈런 경쟁 때문에 스윙 폼이 많이 커졌어. 테이크 백 동작도 이전보다 길어지고. 낮은 코스로 승부를 벌인다면 뜬공으로 잡아낼 수 있을 거야.'

김태건 포수는 최근 2주 동안 강호의 타격 폼이 변화하면서 슬럼프가 왔다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투수의 공을 리드해야 하는 안방마님의 입장에서 다른 팀 4번 타자의 최근 타격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기본적인 일이다.

평소 부지런한 성격의 태건이 그 점을 놓칠 리 없었다.

'에릭, 낮은 코스야. 백강호를 쉽게 잡으려면 낮은 코스 공으로 유인하면 돼.'

태건은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선 에릭에게 낮은 코스의 공을 주문하고 있었다.

2루에 있는 주자를 의식하며 싸인을 바꾸기는 했지만, 에릭은 태건이 손가락으로 표현한 복잡한 싸인을 이해하고 있었다.

'낮은 코스. 오케이! 오늘 제구력이 나쁘지 않은 편이니까. 낮은 코스도 문제없어.'

에릭은 태건의 싸인에 고개를 끄덕이며 세트 포지션을 취한다.

자이언츠의 3번 타자인 문표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지긴 했지만, 그 공은 제구가 안 된 공이 아니라 몸 쪽으로 던진 슬라이더를 문표가 일부러 맞은 것으로 보는 게 옳았다.

홈플레이트에 바짝 다가 선 문표를 타석에서 조금 떨어뜨리려고 위협구로 던진 공인데 그 공을 문표가 맞아버린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고의로 맞았다고 봐도 되지만, 코스 자체가 몸 쪽이어서 주심은 별다른 의견 없이 문표를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시켰었다.

투수인 에릭 입장으로서는 약간은 아쉬운 상황이기도 했다.

'자이언츠 타자들이 몸에 맞는 공으로라도 출루하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그런 허술한 공을 다시 던지는 일은 없을 거야. 태건의 의견대로 낮은 코스로만 승부하면 돼!'

에릭은 강호를 상대할 전략구상을 마친 뒤 곧장 초구를 뿌린다.

그런 에릭의 초구를 바라보는 강호의 눈빛은 의외로 잠잠했다.

왜냐하면 투수 에릭과 포수 태건의 의도가 기간제 아이템의 효과로 고스란히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종: 포심 패스트볼

구속: 142km

낮은 코스의 포심이 강호의 시야에 포착되고 있었다.

속구 평균 구속이 145km대인 에릭 투수가 구속을 줄여가면서 낮은 쪽 코스로 제구 하는 것을 단 번에 알게 된다.

강호는 속으로 웃음 지으며 에릭의 초구는 그냥 흘려보낸다.

"볼 원."

주심의 판정은 당연히 볼이었다.

구종은 포심이었지만, 포크볼처럼 홈플레이트를 찍고 포수 미트에 박히는 공을 타격할 수는 없었다.

강호는 에릭의 초구를 통해 상대 배터리의 의도를 단 번에 간파하고는 중심축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킨다.

우타자인 강호는 상대 투수의 빠른 공에 대처하기 위해 항상 오른쪽 다리에 무게중심을 두고는 했다.

그런데 상태 배터리가 낮은 코스의 유인구로 승부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중심축을 왼쪽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자칫 포수인 김태건이 그 점을 인식할 수도 있는 것이어서 태건의 눈을 속이기 위해 양 손에 쥐고 있는 배트를 평소보다 더욱 흔들어 보인다.

그 모습에 중계석의 캐스터와 해설 진들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지만, 타석에 선 강호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강호는 다시 세트 포지션에 들어간 에릭 투수의 공에 집중한다.

구종: 체인지업

구속: 120km

이번에는 체인지업이 표시되고 있었다.

코스는 변함없이 스트라이크 존 아래로 떨어지는 공이었다.

좌우 로케이션은 완전히 버린 채 낮은 코스로만 유인구를 던지겠다는 생각으로 보였다.

강호는 이번 공 역시 흘려보낸다.

"볼 투."

주심의 판정은 이번에도 볼이었다.

강호는 타석에서 반 발짝 물러서며 흘낏 포수인 태건의 표정을 살핀다.

마스크 너머에 보이는 태건의 미간이 좁혀져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이제 스트라이크를 던질 타이밍이야. 아마 속구는 아닐 거야. 내가 속구 대처가 좋다는 점을 알고 있을 테니까 슬라이더나 슬로우 커브로 카운트를 잡으려 하겠지. 물론 낮은 코스로.'

강호는 직감적으로 에릭의 3구째가 스트라이크 존을 걸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이번에도 역시 중심축을 왼발에 둔 채 평소보다 좁은 각도로 테이크 백 동작을 취한다.

그리고 이어진 에릭의 3구째에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된다.

구종: 슬로우 커브

구속: 103km

속구에 비해 40km나 느린 커브가 시야에 표시되고 있다.

게다가 제구가 살짝 흔들린 것인지 코스가 낮긴 했어도 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강호는 즉시 오른 쪽 어깨로 당겼던 배트를 휘두른다.

그동안 프랑코 코치와 수정했던 타격 폼대로 허리의 자연스러운 회전을 가미한 타격은 늘어난 힘을 90%이상 담을 수 있는 호쾌하고 깔끔한 스윙이었다.

공을 타격한 후의 배트가 테이크 백 동작에 이어 180도에 가까운 회전을 그릴 정도로 아름다운 스윙은 마산 구장을 꿰뚫는 타격 음을 만들어 낸다.

따악!!

타격음과 함께 타구 방향을 쫓던 강호는 곧 배트를 뒤로 던지며 1루를 향해 걸음을 뗀다.

타구 탄착 지점을 끝까지 쫓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결과였다.

맞는 순간, 타구가 담장을 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제대로 맞은 공이었다.

강호의 타격에 마산구장의 외야 쪽으로 시선을 돌렸던 자이언츠 팬들은 곧바로 환호성을 내지른다.

다이노스의 좌익수 김준환이 타구를 쫓을 생각도 없이 자리에 멈춰선 것을 보고는 홈런을 직감한 것이다.

"와아아아!!"

자이언츠 팬들의 환호성 속에 강호의 타구는 경기장을 완전히 벗어나 버린다.

장외 홈런이었다.

홈런 타이틀 경쟁자들이 멀티 홈런으로 경쟁에서 멀어지는 동안 침묵하고 있던 강호의 홈런포가 5일 만에 다시 쏘아 올려진 것이다.

그 모습에 마산구장을 찾은 자이언츠 팬들은 양손을 하늘 높이 쳐드는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자이언츠의 덕 아웃 역시 강호의 홈런으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렇지! 오늘은 한 번 이겨보자! 언제까지 다이노스한테 지기만 할 수는 없잖아!"

"오늘 경기에서 연패도 같이 끊어내자고요. 6연패는 그럴 수 있어도 7연패는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 경기는 이깁시다!"

자이언츠 선수들은 강호가 쏘아올린 쓰리 런 포로 사기가 크게 고무되고 있었다.

6연패가 이어지며 점차 침체되고 있었던 팀 분위기가 강호의 장외 홈런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타자로 오른 5번 타자 스팅이 홈런 포를 가동하면서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따악!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스팅의 타구가 우측 담장을 넘기자 자이언츠 덕 아웃은 또 한 번 환호성이 감돈다.

다른 투수도 아니고 올 시즌 방어율 부분에서 4위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에이스 투수 에릭을 상대로 백투백 홈런을 뽑게 되자 오늘 경기는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생겨난다.

벌써 1회 초에만 4점을 뽑아낸 자이언츠는 뒤이은 타자들이 범타로 물러나기는 했지만, 에릭 투수와 풀카운트 승부를 벌이는 끈질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에 현장을 찾은 자이언츠 팬들은 왠지 오늘 경기만큼은 이길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는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오늘 경기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몬테사가 1회 말에 보여준 위력적인 투구를 통해 증폭된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삼진 선언에 다이노스의 2번 타자 김성우가 혀를 내두르며 타석에서 물러선다.

무려 157km의 빠른 속구에 배트가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1번 박진우에 이어 2번 김성우 마저 삼진으로 물러나자 마산 야구장에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뭐야? 이러다 1회에 죄다 삼진 먹는 거 아냐?"

"설마. 그래도 나성건인데. 삼진은 아니겠지. 나성건 타율이 3할 5푼 6리라고. 요즘 나성건 삼진 비율도 엄청 줄었어."

다이노스 팬들은 팀의 테이블세터들이 연달아 삼진을 당한 상황에서도 침착한 모습으로 경기를 지켜본다.

타석에 오르고 있는 타자를 믿기 때문이다.

딱, 딱, 딱.

끈질긴 승부가 이어지고 있었다.

다이노스의 나성건은 몬테사의 속구에 타이밍을 잡비 못하고 있었지만, 티이밍을 완전히 놓치는 것은 아니었다.

연달아 3개의 파울 타구를 만들어내며 5구째 끈질긴 승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어진 6구와 7구까지 파울로 만들어내며 팬들에게 묘한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따악.

몬테사의 8구를 타격한 나성건의 타구가 이번에는 인필드로 향한다.

비거리가 상당한 타구에 다이노스 팬들이 환호성을 지를 무렵, 자이언츠의 우익수 박철이 펜스를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박철은 펜스를 등진 채 타구 도착지점을 잡았다고 생각한 것인지 허공을 향해 크게 도약해 오른다.

터업.

족히 2루타 이상의 장타는 예상되었던 나성건의 타구는 박철의 글러브에 안착하고 있었다.

나성건의 파워가 몬테사의 빠른 속구 구위를 이겨내기는 했지만, 우익수 박철의 호수비가 나성건의 안타를 앗아가 버린 것이다.

"아아..!"

"그래도 잘 치네. 상대 투수 공이 빨라도 나성건 정도 되는 타자는 충분히 칠 수 있는 모양이네. 그럼 2회 말에 테인즈는 제대로 때려주겠지."

다이노스 팬들은 아쉬운 탄성을 내뱉으면서도 펜스까지 날아간 나성건의 타구에 또 다른 기대감을 품게 된다.

지금은 팀 타자들이 삼자범퇴로 물러나버렸지만, 2회 말 선두 타자로 나서게 될 선수는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는 팀의 4번 타자 테인즈였다.

테인즈의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생각해본다면 몬테사의 강속구도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다이노스 팬들의 기대 속에 1회 말 공격은 2회 초로 넘겨지고, 하위 타선부터 시작된 자이언츠의 2회 초 공격은 1회와는 다르게 싱겁게 끝나고 만다.

이제 상황은 다이노스 팬들의 기대 속에 2회 말로 넘겨진다.

따악!

몬테사의 초구를 공략하고 나선 테인즈의 호쾌한 타격이 경기장을 가득 채운다.

홈런이었다.

전광판에 158km까지 찍힌 몬테사의 포심을 공략한 테인즈의 타구가 담장을 넘긴 것이다.

"우와아아!!"

"역시 테인즈네! 이제 홈런 단독 1위야!"

다이노스 팬들은 2회 말 시작부터 터져 나온 테인즈의 홈런에 크게 환호성을 내지른다.

비록 솔로 홈런이라서 4대 1로 여전히 뒤진 상황이었지만, 테인즈의 홈런이 나왔다는 것에 환호하게 된다.

단지 팀의 승패를 떠나서 홈런 타이틀을 놓고 경쟁 중인 상대 팀 4번 타자 강호가 1회에 홈런을 때린 것을 그대로 되갚아주는 홈런이 나왔다는 것에 흥분한다.

이로써 테인즈의 홈런은 41개로 늘어나게 되고, 공동 1위였던 홈런 타이틀은 테인즈가 단독 1위로 가져가는 모습이다.

그리고 경기는 계속되어 3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 상황.

이제 모두의 시선은 타석에 오르는 강호를 향하게 된다.

"테인즈도 쳤는데 우리 백강호 선수도 한 방 쳐줘야지!"

"1회에 한 방 날렸으면 됐지. 백강호 선수는 쓰리 런이잖아. 테인즈는 솔로 포고."

"1회에 날렸다고 또 치지 말라는 법 있어? 백강호는 또 한 방 날려줄 거야! 이참에 백강호 선수가 홈런 쳐서 40-40찍으면 내가 자이언츠 6연패한 거 깨끗하게 용서한다!"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강호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TV로 중계를 지켜보는 자이언츠의 모든 팬들도 마찬가지였고, 모두의 기대 속에 다이노스 선발 투수 에릭의 공이 포수 미트를 향한다.

그리고 중계 카메라는 변화된 타격 폼으로 테이크 백 동작에 이어 에릭의 공을 향해 배트를 휘두르는 강호의 모습을 담았다.

따악!

또 한 번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타격음이 마산 구장을 뒤흔들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