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73화 (172/335)

0173 / 0335 ----------------------------------------------

여름의 길목에서

강호가 때린 타구가 빠른 속도로 뻗어져 나간다.

그런데 타구 각도가 높지 않았다.

이글스의 하주성 유격수의 글러브보다 50센티 정도 높을 정도로 저각도의 타구인 것이다.

그럼에도 타구 스피드가 워낙 빨랐던 까닭에 좌익수인 양신우가 도저히 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타구가 뻗어져 나간다.

"크윽!"

좌익수 양신우가 타구를 쫓다말고 휘청거리며 신음을 토한다.

자신의 정면으로 날아오는 것으로 보였던 강호의 타구가 급격하게 왼쪽으로 휘기 시작하더니 파울 라인 근처까지 휘어들어갔던 것이다.

'제발 나가라!'

타구 방향을 놓쳐버린 양신우 좌익수는 부지런히 타구를 쫓으면서도 타구가 파울 라인 밖으로 벗어나기를 바랐다.

타구 스피드나 방향을 봐서 인필드로 공이 들어온다면 3루타 코스가 만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우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터엉!

펜스 상단을 때린 강호의 타구는 파울 라인보다 조금 더 안쪽으로 탄착지점이 형성되고 있었다.

타구 스피드가 워낙 빨랐던 까닭에 펜스를 맞고 튀어나온 공이 뒤늦게 펜스로 다가온 양신우 좌익수를 교차해 지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자이언츠 홈팬들은 경기장이 떠나가라 함성을 내지른다.

"와아아아!"

"3루! 3루!!"

홈 팬들의 뜨거운 함성과 함께 '3루'라는 단어를 크게 외치고 있었다.

3루 주자인 전준오가 홈을 밟은 사이 이미 2루 베이스로 향하고 있는 강호가 3루까지 가기를 바라는 목소리였다.

강호는 팬들의 목소리를 들은 후 3루 베이스 코치의 콜 싸인을 확인한다.

"돌아! 돌아! 들어와!"

베이스 코치는 3루 베이스를 양손을 가리키며 아슬아슬한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강호는 더욱 속도를 높이며 2루 베이스를 밟고 지난다.

강호가 2루 베이스를 지나는 것과 동시에 공을 잡은 양신우 좌익수의 송구가 3루수 쪽으로 향한다.

몇 년 간 이글스의 주전 좌익수로 자리하며 송구 능력을 크게 향상시킨 양신우 좌익수.

그의 정확한 송구가 3루수 손강민의 글러브에 빨려든다.

촤아악! 타악!

강호의 레그 퍼스트 슬라이딩과 손강민의 태그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강호가 때린 안타가 3루타로 인정되어 자이언츠에 계속된 기회를 연결시켜주길 바라는 홈팬들의 시선이 3루심에게로 몰려든다.

"세이프!"

3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그는 양팔을 펼쳐 보이며 강호의 안타가 3루타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와아아!"

"오늘은 쉽게 가겠네! 1회에 3점 뽑고 가자!"

팬들은 강호의 1타점 3루타에 기뻐하며, 오늘 경기가 쉽게 풀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강호의 타점에 이어 5번 타자 스팅이 깔끔한 중전 안타로 타점을 올리자 팬들의 기대는 더욱 커진다.

3대 0.

1회부터 자이언츠가 기선을 제압하는 점수를 올린 것이다.

후속 타자인 포수 강민수가 땅볼로 물러나긴 했어도 1회에 3점을 올렸다는 사실이 기쁠 따름이다.

그런 사직구장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이글스 선수단.

그들은 말없이 투지를 불태우며 천천히 원정 팀 덕 아웃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덕 아웃 역시 말이 없었다.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대로 승기를 빼앗기면 이번 경기 역시 어렵다는 생각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바로 역습해야 돼! 2회 초 공격에서 아무런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면 이대로 흐름을 내어준 채 끌려가는 경기가 되고 말거야.'

이글스 캡틴 김태준은 이렇게 경기를 쉽게 내어줄 수 없다는 각오로 자신의 배트를 집어 든다.

1회 초, 삼자범퇴로 끝나버린 팀의 공격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2회 초 선두타자로 나서는 자신이 팀 분위기를 살리는 타격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태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아. 장타를 노리고 있는 분위기인데?'

마운드에 먼저 올라 이글스 쪽의 분위기를 살피던 자이언츠 선발 투수 라일리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즉시 전략을 수정한다.

1회 상황에서 자신의 주특기라 할 수 있는 투심만으로 이글스 타선을 잠재웠던 투구 패턴에 변화를 주기로 한 것이다.

'슬라이더로 가겠다고?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태준 선배가 잔뜩 벼르고 나온 것 같으니까 볼넷을 줘도 좋다는 생각으로 유인구 승부를 가는 거야.'

투수 라일리의 신호를 받은 자이언츠 포수 강민수는 라일리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타석에 선 김태준의 표정에서 다부진 각오를 확인한 후 쉽게 상대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라일리와 강민수의 생각은 반만 맞은 것이었다.

두 사람의 작전 변경이 오히려 새로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악!

라일리의 초구 슬라이더를 걷어 올린 김태준의 타구가 강한 타격음과 함께 외야를 향해 뻗어나간다.

터엉!

강호와 비슷한 코스로 뻗은 타구는 펜스를 직격하며 그라운드 위를 굴렀다.

오늘 경기에서 좌익수로 선발 출장한 유성철이 얼른 달려와 바닥을 구르는 공을 집어 들었다.

비슷한 상황에서 타구 위치를 놓쳤던 이글스 좌익수 양신우와 비교해 본다면 빠른 대처였다.

"2루!"

근처에 있던 중견수 전준오가 2루로 공을 던질 것으로 알렸고, 성철은 그 목소리를 확인하자마자 공장 2루를 향해 공을 뿌린다.

원 바운드로 바닥을 찍고 2루로 향한 공이 2루수 황인태의 글러브에 빨려 들었다.

"세이프."

2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좌익수인 성철의 대처가 빠르기는 했지만, 타구 위치가 워낙 깊었기 때문에 2루타가 되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탁, 탁.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 선 김태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2루 베이스 위에 선다.

그리고 타석에 선 타자는 이글스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외국인 타자 사리오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여기서 사리오까지 출루시킨다면 실점을 허용할 수도 있겠어.'

자신의 유격수 자리에서 상황을 살피던 강호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느끼고 있었다.

1회를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정리한 선발 투수 라일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이글스 타자들의 기세 또한 대단했다.

'팀 스포츠에서 양 팀의 전력이 비슷하다고 봤을 때 결국 분위기에 따라 승패가 결정 나는 경우가 많아. 이대로 흐름이 이어진다면 2회에 대량 실점할 수도 있어.'

강호는 분위기를 읽어낸 후 사리오의 타구가 자신에게로 향하기를 바란다.

만약 사리오의 타구가 유격수인 자신 쪽으로 온다면 2루 주자인 김태준을 2루에 그대로 묶은 채로 아웃카운트 하나를 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2루 주자를 잡아내는 것도 가능해. 그러려면 라일리 투수가 땅볼을 유도하는 공을 던져야 해.'

결론을 내린 강호는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라일리의 투구에 집중한다.

그런데 상황은 강호가 원하는 쪽으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볼 쓰리."

주심은 라일리의 4구째 공이 볼이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이글스의 5번 타자 사리오를 상대하는 라일리는 한 개의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뒤, 다소 흔들리는 모습으로 세 개의 볼을 연달아 던지고 있었다.

거기에 5구째 공 역시 타자인 사리오의 배트가 닿을 수 없는 공으로 향한다.

"볼 넷. 베이스 온 볼."

결국 주심은 볼넷을 선언했고, 타자인 사리오는 배트를 내려놓으며 1루로 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을 투수의 등 뒤에서 지켜본 강호는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일부러 내보낸 건 아니야. 갑자기 라일리의 제구가 흔들리고 있어. 덕 아웃에서 눈치를 챘을 텐데?'

강호는 라일리가 사리오에게 일부러 볼넷을 주지 않았다고 확신하며 자이언츠 덕 아웃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무사 주자 2루 상황이어서 1루를 채우는 작전이 나올 수도 있었지만, 투수의 바로 뒤편에서 투구를 지켜본 강호는 그것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과연 강호의 생각대로 자이언츠 덕 아웃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감독님, 제가 한 번 올라가 볼까요?"

라일리의 제구가 흔들리는 것을 목격한 투수코치 여민석이 손 감독에게 물어온다.

그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손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고, 곧장 여 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하고 있었다.

한 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통역과 강민수 포수까지 마운드에 오르자 여 코치는 마음을 가라 앚히고 투구에 집중하라는 간단한 말을 전한 후 마운드를 내려간다.

'외국인 투수들은 이런 게 좀 불편해. 내 말이 제대로 전달 된 건지도 모르겠고, 제대로 의사 전달을 하기가 어렵단 말이야.'

여 코치는 마운드를 내려서며 속으로 불평을 토로한다.

마운드 위에 오른 투수가 내국인 투수라면 조금 더 활발한 의사 전달을 하겠지만, 아무래도 통역을 거치다보니 의견 전달이 100% 이루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여 코치의 우려대로 그의 당부와 격려는 라일리의 흔들리는 제구를 잡아주지 못 하는 모습이었다.

"베이스 온 볼."

주심이 또 한 번의 볼넷을 선언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글스의 6번 타자인 양신우와 풀 카운트까지 가는 승부를 벌였지만, 결국 판정은 볼넷.

투수인 라일리의 입장에서는 타격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교체해야 돼. 아직 실점이 없다고 해도 더 이상 라일리를 끌고 가는 건 위험해.'

유격수 자리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 본 강호는 투수 교체를 단행해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감독이 2회 무실점 상황에서 투수 교체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투수가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라고 해도 실점이 없으니 감독이나 코치 입장으로는 조금 더 투수를 믿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불펜도 준비되지 않았을 거야. 어찌됐든 간에 라일리로 2회를 끌고 나가는 수밖에 없어.'

강호는 투수교체는 없을 거라고 결론지으며 더욱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투수 교체가 없다면 라일리의 투구는 계속될 것이고, 라일리의 불안한 제구와 이글스 타자들의 끈질긴 승부를 고려한다면 유격수인 자신에게 하나 정도의 타구는 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강호의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고 있었다.

-타구가 유격수 방면으로 향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7번 타자 하주성이 라일리의 3구째를 향해 배트를 휘둘렀을 때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강호는 주변경관이 느려지기 시작한 것을 확인하며 잠시 고민해본다.

그러다 결심을 내리고는 아이템 사용을 결정짓는다.

따악.

짧은 타격음과 함께 강호의 발걸음이 마운드 쪽으로 향했다.

투수 곁을 스친 후 다가오는 공을, 대각선 방향으로 전진 수비한 강호의 글러브가 그대로 낚아챈다.

터업.

타구가 글러브에 들어온 것을 확인한 강호.

빠른 속도로 달려와 포구하느라 한 쪽 무릎을 굽힌 불안정한 자세였다.

이대로 2루에 공을 토스해 6, 4, 3 병살타를 만들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강호는 다른 결정을 내린다.

'홈이다!'

강호가 선택한 것은 홈이었다.

3루 주자인 김태준의 발을 고려한다면 아웃을 만들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타이밍을 놓쳐버리면 더블 플레이는 물론이고, 야수 선택으로 기록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불안전한 자세에서 곧장 송구를 결정한다.

터억. 촤하학!

포수 강민수의 미트에 강호의 송구가 도착한 후, 3루 주자 김태준의 발이 홈플레이트를 스친다.

포수인 민수는 주심의 콜을 확인할 사이도 없이 곧장 1루를 향해 공을 던져야 했다.

"아웃!"

민수의 공이 1루로 향하는 동안 주심은 3루 주자 김태준의 아웃을 선언하고 있었고, 이제 모두의 시선은 1루심에게로 향한다.

"아웃!"

1루심의 판정 역시 아웃이었다.

타자주자였던 하주성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지만, 비디오 판독 후에도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강호의 정확한 상황 판단이 만들어낸 6, 2, 3 더플플레이가 완성된 것이다.

"와아아! 수비 죽이네!"

"무사 만루가 2사 2, 3루로 바뀌었네! 잘 했다, 백강호!"

홈팬들은 위기 상황에서 실점 없이 2개의 아웃 카운트를 합작한 자이언츠 야수들을 향해 환호성을 쏟아낸다.

그런 팬들 대부분이 과감하게 홈 송구를 선택한 강호를 칭찬하고 있었다.

팬들의 환호 속에 투수인 라일리 역시 강호에게 몇 번이나 감사의 의사를 전달한다.

"캉호, 땡큐. 댓츠 휻지(huge) 플레이! 땡큐 강호!"

라일리는 강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들어 보이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터가 방출된 후 자이언츠의 에이스 역할을 도맡고 있는 라일리.

올 시즌 평균 7이닝을 소화할 정도로 이닝 이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승리 운과는 거리가 먼 편이었다.

4승 4패. 3.64의 방어율.

팀의 에이스라고 하기에는 다소 민망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라일리 본인 역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경기에 나서는 각오도 남달랐다.

그런데 이글스 타자들의 기세에 밀려 잠시 제구가 흔들렸던 것이다.

'우리 팀 야수들의 수비력은 강호처럼 다들 믿을만한 편이니까 이럴 때는 차라리 야수들을 투구전략을 짜도록 하자!'

여전히 제구력이 흔들리고 있는 라일리지만, 강호와 야수들을 믿고 투구전략을 변경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런 라일리의 생각은 적중해 2회에 1실점을 내어주긴 했지만, 더 이상의 추가 실점 없이 1회를 끝맺을 수 있었다.

3대 1.

실점을 허용했어도 분위기는 넘겨주지 않은 채 자이언츠의 2회 말 공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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