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69화 (168/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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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장의 아쉬움

국내에서 홈런을 때려내기 힘든 구장을 손에 꼽으라고 한다면 모든 야구인들은 잠실구장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다른 구장에 비해 좌우 펜스가 5미터 이상 깊었고, 정중앙 전광판 쪽 펜스는 10미터 가까이 격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큰 야구장인 잠실야구장.

어떤 타구라도 펜스를 넘기 전에는 홈런으로 보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대한 잠실야구장에서 강호가 9회 초, 만루 상황에서 때린 타구는 강호의 배트가 공을 강타하는 순간 홈런임을 깨닫게 하는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주는 타구였다.

따악!!

타석뿐 아니라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타격음에 모든 관중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자이언츠 팬들은 함성과 함께 타구 방향을 시선으로 쫓았고, 베어스 팬들은 타구가 좌익수 김재성에게 잡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타구의 방향을 쫓는다.

그러나 베어스 팬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투수인 이헌승이 던진 속도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좌중간을 향해 뻗어나가는 타구는 외야수들이 절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갈 거라는 것을.

마치 레이저처럼 뻗어져나가는 강호의 타구는 지면에서 30도의 각도로 뻗어져 나가 좌중간 관중석 상단을 때리는 완벽한 홈런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와아아아!!"

3루 쪽 관중석에 자리 잡은 자이언츠 팬들과 원정 석에 자리가 없어 군데군데 앉아있던 자이언츠 팬들 모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내지른다.

5회 초에 문표가 기록한 희생 플라이 타점 이후 잠잠해진 양 팀 타선에서 9회에 나온 그랜드 슬램은 너무나도 인상적인 홈런이었고, 또 뒤지고 있는 상황을 단 번에 역전시키는 의미를 가진 홈런이 되었다.

8대 6.

강호가 쏘아올린 그랜드 슬램은 시종일관 끌려가던 경기를 단 번에 뒤집는 역전 홈런으로 기록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중계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세 사람은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 속에서도 피부에 닭살이 돋는 전율을 느낀다.

"아아~! 넘어갔어요! 백강호의 그랜드 슬램! 백강호의 만루 홈런이 터집니다! 이 홈런으로 자이언츠가 끌려가던 경기를 8대 6으로 역전시킵니다! 그리고 이 홈런은 백강호 선수의 시즌 33호 홈런으로 기록됩니다!"

조호준 캐스터의 중계에 이어 양 쪽에 자리하고 있던 해설 위원들이 약간은 격앙된 목소리로 해설을 더해 간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타자 출신 박재헌 위원이었다.

"지금은 이헌승 투수의 포심을 노리고 들어간 백강호 선수의 타격이었어요. 테이크 백 동작부터 타격 자세, 타격 순간, 배트 스윙까지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타격이에요. 저는 맞는 순간 장외 홈런이 나오는 줄 알았어요. 그만큼 비거리도 엄청나고, 멋있는 홈런입니다."

박 위원은 해설자의 입장보다는 한 사람의 야구팬의 입장으로 강호의 홈런에 찬사를 보낸다.

이어서 김신우 위원이 투수 출신 해설자로서의 의견을 더한다.

"지금은 이헌승 투수도 잘 던진 공이에요. 백강호 선수의 몸 쪽 하단을 파고드는 제구가 좋았거든요. 그런데 이 공을 백강호 선수가 잘 노리고 들어갔어요. 투수도 잘 던지고, 타자도 잘 쳤는데 결과가 홈런이라서 결국 타자가 승리한 승부가 되었습니다."

김 위원은 투수인 이헌승의 입장에서 아쉬운 탄식을 내뱉는다.

두 사람의 해설 속에 강호는 홈을 밟고 있었고, 곧 덕 아웃으로 걸음을 옮겨 보기 드물게 진한 미소를 짓는 손성조 감독과 손뼉을 마주하고 있었다.

"잘했다."

손 감독의 칭찬은 단순했다.

그저 '잘했다'라는 말. 그 한 마디에 내포된 많은 의미들이 느껴져서인지 강호는 그 어떤 찬사보다도 '잘했다'라는 말 한 마디가 더할 수 없는 찬사로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서 기합 든 목소리로 힘 있게 대답한다.

"네!"

강호가 손 감독에게 건넨 대답 이후에 모든 선수들이 몰려와 강호의 그랜드 슬램을 축하했고, 강호 이후에 나선 타자들이 연거푸 범타 처리되었음에도 역전 홈런의 여운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강호의 홈런은 인상적어서 이대로 경기가 끝이 난다면 아마도 자이언츠 선수단은 오늘의 경기를 오랜 시간동안 뇌리에 기억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경기는 이대로 끝날 생각이 없었다.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베어스 타선은 과연 만만한 타선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황은 9회 말, 자이언츠의 마무리 투수인 베테랑 투수 손명학이 마운드에 오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베이스 온 볼."

주심은 풀 카운트 승부를 벌이며 마지막 공을 참아낸 베어스 1번 타자 민정현에게 볼넷을 선언하고 있었다.

손명학은 스트라이크로 봐도 무방한 코스를 주심이 볼로 판정하자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는 모습이다.

9회 말 선두타자였던 9번 타자 김재오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낼 때만 해도 오늘의 경기는 이대로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1사 상황에서 베어스 1번 타자 민정현을 볼넷으로 출루시키고, 2번 타자 오재현이 기습 번트로 번트 안타를 때려내며 상황은 1사 1, 2루의 위기상황이 만들어진다.

이어서 베어스 3번 타자인 바인스는 1루수 쪽 내야 땅볼로 막아낼 수 있었지만, 그 사이 두 명의 주자는 한 베이스를 더 진루하며 2사 2, 3루로 위기가 이어진다.

홈런 한 방이면 재역전도 가능한 상황.

베어스의 모든 홈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사람의 이름을 외친다.

"김재성 홈런! 김재성 홈런!"

팀의 4번 타자의 이름을 외치는 홈팬들은 재성이 이 절묘한 상황에서 한 방으로 경기를 뒤집어 주기를 기대했다.

잠실 홈팬들이 경기장을 떠나가라 외치는 목소리를 자이언츠 덕 아웃에서 지켜보고 있던 손성조 감독.

그는 곁에 있던 김민철 수석 코치와 투수 코치 여민석에게 결정적인 지시를 내린다.

"김재성은 걸러. 투수는 바꾸고. 표성태 준비 끝났지?"

손 감독의 지시에 김민철 수석은 얼른 포수 강민수에게 김재성에 대한 고의사구 싸인을 냈고, 여민석 투수 코치는 배터리에 인터폰을 걸어 투수 교체를 지시했다.

마무리 투수인 손명학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손성조 감독이 빼든 카드는 표성태 투수.

손 감독은 2군에서 마무리 투수로 뛰던 표성태를 손명학을 대체할 카드로 결정지은 것이다.

'명학이는 속구 구위가 좋고, 로케이션이 뛰어나. 그래서 오랜 시간동안 마무리로 활동할 수 있었지. 그런데 그 덕분에 다른 팀들에게 너무 많이 노출돼 버렸어. 명학이처럼 좋은 마무리 투수도 몇 년동안 지켜보다 보면 공략할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는 거야. 올 시즌에는 명학이를 마무리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어. 성태를 대체자로 세운다!'

손 감독은 손명학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자로 아직 어린 투수인 표성태를 염두하고 있었다.

94년생, 올해로 26살의 표성태이지만 속구 구속이 최고 152km까지 나오는데다가 속구 투구 폼과 같은 써클 체인지업이 위력적이었고, 조종훈 코치에게 전수받은 포크볼 역시 수준급이었다.

단지 흠이 있다면 1군 경험이 적어서 위기 상황에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인데 손 감독은 이런 승부처에서 성태를 마운드에 올려 그런 취약점을 단 시간에 극복시키려는 계획을 실행한다.

'승부처에서 약해지는 것은 모든 투수들의 공통점이야. 그것을 이겨내야 만이 팀의 클로저로 활약할 자격이 주어지는 거야. 성태, 내가 2군에서 지켜본 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어!'

손 감독이 표성태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 김 수석의 지시를 받은 손명학 투수가 김재성을 고의사구로 거르며 마운드를 내려가고 있었다.

"우우우우~"

베어스 홈 팬들은 재성과 상대하지 않으려는 손 감독의 결정에 항의의 뜻을 담은 야유를 쏟아냈지만, 이미 재성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비어있던 1루 베이스를 채운 상황.

이제 2사 만루 상황에서 승부를 결정지을 타자가 타석에 오른다.

"오재섭! 오재섭!"

홈팬들의 응원 속에 타석에 오른 타자는 베어스의 5번 타자인 오재섭이었다.

2016년에 20개 이상의 홈런과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연 오재섭은 그 후 매 시즌마다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내며 거포 본능을 가감 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김재성에 이어 팀에서 두 번째로 많은 홈런을 때려내고 있는 오재섭의 등장에 고의사구로 인한 불만이 서서히 잠재워지는 잠실구장이었다.

그리고 그를 상대하는 투수는 이제 새롭게 마운드에 오른 표성태 투수.

"후우~"

성태는 긴 날숨과 함께 루상을 가득 채운 베어스의 주자들을 한 차례 훑어본다.

심장을 옭아매는 베어스 홈팬들의 야유와 응원 소리, 그들의 수많은 눈동자가 성태의 온몸을 위축되게 만들고 있었다.

'이겨내야 해! 여기서 위축되면 1군 무대에 내 자리는 없는 거야. 반드시 이겨내고 내 공을 던져야만 해!'

2군에서 마무리로 활약했던 성태는 자신의 공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잠실구장을 가득 채운 엄청난 인파의 함성으로 몸이 경직되면서 자신의 공을 던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스파이크로 마운드를 다져 봐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성태가 긴장했구나. 이럴 때는 투수가 자신 있어 하는 공을 초구로 결정하는 게 좋아.'

베테랑 포수인 강민수는 표성태 투수의 상태를 읽어내고는 초구 싸인으로 포심 패스트볼 싸인을 낸다.

그런데 그런 강민수가 내는 포심 싸인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잔뜩 얼어붙은 표성태 투수.

무심코 민수의 싸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있었지만, 심장을 옭아매는 긴장감으로 인해 민수가 낸 싸인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을 정도였다.

'이럴 때는 내가 자신 있는 공을 던지자!'

성태는 순간 잊어버린 민수의 싸인을 대신해 자신이 가장 잘 던질 수 있는 공을 포수 미트에 뿌린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구보다 먼저 이 경기의 결과를 알게 된 한 사람이 자신의 수비 위치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타구가 유격수 방면으로 향합니다. 아이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강호는 자신의 손으로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시스템의 메시지를 확인하며 미소 지었다.

시스템의 메시지와 함께 잠실구장의 모든 것이 느려지고 있었고, 강호는 이 순간만큼은 자만하지 않고 아이템의 힘을 빌리기로 결정을 내린다.

'좌타자인 오재섭 선수가 유격수인 내 쪽으로 공을 때린다는 것은 밀어치는 타격을 한다는 뜻이야. 타구 속도가 강할 수도 있으니까 지금만큼은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이 옳아.'

판단을 내린 강호는 곧장 시스템을 향해 수긍의 의사를 밝히며, 3루 베이스를 향해 몸을 날린다.

그동안 기성태 코치와 함께 부상 위험이 적은 부드러운 움직임을 연마했던 강호이지만, 지금만큼은 그 가르침을 잠시 잊기로 한다.

따악!

초구를 노리고 밀어 친 오재섭의 타구가 총알처럼 쏘아져 나간다.

이 타구가 동점타나 역점 안타가 될 것을 확신한 오재섭이 타구를 때려냄과 동시에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포착되고 있었다.

중계석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아! 쳤습니다! 유격수와 3루수 사이를 가르는....아! 잡았어요! 유격수 백강호가 이 타구를 잡아냅니다! 불완전한 자세에서 3루로 토스! 아웃! 경기 끝! 백강호의 호수비가 자이언츠에게 승리를 선사합니다!"

조호준 캐스터의 말로 모든 상황이 설명되고 있었다.

도저히 내야수가 잡을 수 없을 것이라 여겨지던 타구를 잡아낸 강호의 호수비에 이어 불안한 자세로 3루수 오진택에게 토스하며 경기를 끝내버린 강호의 센스 있는 플레이가 만루의 위기 상황을 이겨내고 경기를 8대 6. 승리로 가져오는 결정적인 수비가 된 것이다.

빠지는 공을 잡기 위해 몸을 완전히 날렸던 강호였기에 1루를 향해 송구하는 것은 무리였고, 대신 3루수를 향해 공을 던졌던 공이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와아아!!"

원정 팬들의 함성 속에 자이언츠의 승리가 결정되고 있었다.

이틀간 내린 비로 인해서 시리즈 유일했던 단판 승부는 결국 강호의 그랜드 슬램에 이은 호수비로 자이언츠의 승리로 끝맺음 된 것이다.

"강호야, 고맙다! 덕분에 막았어!

3루심의 마지막 아웃 판정과 함께 마운드에 있던 투수 표성태가 강호에게 달려오며 안겨온다.

오재섭이 공을 때릴 때만 해도 블론 세이브를 예상하고 있던 표성태 투수는 강호의 호수비 덕분에 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마무리 투수로서의 가능성을 내보일 수 있었다.

터프 세이브 상황에서 나온 강호의 극적인 호수비가 팀 승리를 지켜낸 것은 물론, 표성태라는 투수에게 또 다른 기회를 선사한 셈이었다.

한 때는 2군 무대에서 함께 동고동락했었던 성태와 강호.

이제는 국내 최고의 경기장 중 하나인 잠실구장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두 신인 선수들의 뜨거운 포옹은 자이언츠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감동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은 부지런히 셔텨를 누르는 기자들의 손에서 극적인 상황을 알리는 기사로 양산되어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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