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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의 접전
덕 아웃에서 김재성의 연 타석 홈런을 지켜보던 여민석 투수 코치는 한숨을 내쉬며 손 감독의 곁으로 다가선다.
"바꿀까요? 대우는 준비 끝났습니다. 다음 투수로는 좌완투수로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여 코치는 손 감독이 투수교체를 지시할 것이라 생각하고, 다음 행동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손 감독의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내버려 둬. 진성이가 다음 타자를 어떻게 상대하는지 확인하고 교체를 결정할 테니까."
손 감독은 여 코치의 투수 교체 제안에 그렇게 답하고 있었다.
여 코치가 보기에는 의욕적으로 투구를 이어나가던 가진성 투수가 재성에게 홈런을 허용하면서 멘탈에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손 감독은 그런 가진성 투수를 계속해서 끌고나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홈런 한 방에 무너질 정도라면 제대로 된 투수라고 할 수 없어. 이런 시련조차 이겨내지 못하는 투수는 투수로서 자격이 없는 거야.'
가진성을 바라보는 손 감독의 생각이었다.
손 감독의 의지대로 투수 교체는 없었다.
진성은 덕 아웃을 흘낏 살피며 투수교체가 없을 거라는 점을 깨닫고는 인상을 찡그린다.
'내 포심이 먹히지 않고 있어요!'
진성은 자신의 공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채 스파이크 끝으로 마운드를 헤집는다.
차라리 이렇게 마음이 약해질 때는 교체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마저 생겨나고 있었다.
그러다 진성은 유격수 자리에 있던 강호와 눈이 마주친다.
진성은 우완 투수여서 투구 자세를 취할 때면 3루수와 3루 쪽 덕 아웃, 그리고 유격수와 시선이 마주칠 때가 간혹 있었다.
지금은 유격수인 강호와 우연히 시선이 마주친 것이다.
씨익.
강호는 시선이 마주친 진성에게 씨익 하고 웃어 보인다.
이번에는 특유의 제스쳐를 취하지 않는다.
지금 진성은 다른 어떤 것보다 정신적인 데미지가 큰 상태여서 오히려 이렇게 아무 의미 없이 웃어보며 지금의 상황을 잊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시선을 마주친 강호가 미소 짓자 진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따라 웃고 있었다.
홈런을 맞은 투수가 허탈하게 웃을 수는 있어도, 지금처럼 크게 미소 지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진성은 문득 강호의 등 뒤로 보이는 중견수 유성철과, 우익수 박철, 그리고 2루수 황인태에게로 시선이 옮겨간다.
'2군 때와 많이 다르지 않구나. 성철 선배나 박철, 강호, 인태까지. 대만 스프링캠프를 함께 했던 동료들이 지금도 나를 돕기 위해 그라운드에서 대기 중이야. 2군 무대에서도 홈런을 맞을 때가 있었어. 그 때는 이런 데미지를 입지 않았었잖아. 나도 어느새 1군 무대에서 활동하며 자만심을 품게 된 모양이구나.'
진성은 강호와 미소를 주고받으며 어느새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를 찾아내고는 빠르게 정신을 수습한다.
다른 타자도 아니고, 리그 최고 수준의 강타자인 김재성에게 홈런을 맞았다고 해서 자신이 의기소침할 클래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신인이야. 홈런 한 방 맞았다고, 의기소침하면 코치님들이나 감독님께서 뭐라고 생각하시겠어? 2군에서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게 내 공을 던지기만 하면 돼!'
정신을 차린 진성은 베어스의 5번 타자인 오재섭과 다음 타자인 양희지에게 자신의 주특기인 묵직한 속구를 뿌리며 연달아 두 개의 삼진을 잡아낸다.
그 후 다음 타자인 7번 타자 허경빈 마저 내야 뜬공으로 돌려세우며,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뽐낸다.
강호는 이닝이 종료되어 덕 아웃으로 들어서며 그런 진성의 등을 두드려준다.
"잘했다. 진성아!"
강호의 격려에 진성은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씨익 하고 크게 미소 지으며 강호의 글러브와 자신의 글러브를 맞부딪힌다.
타악.
두 신인 선수가 서로의 글러브를 마주치는 모습에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준다.
김재성이 솔로 포 하나를 추가하며 팀은 6대 1의 큰 점수 차로 여전히 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신인급 선수를 대표하는 두 선수의 보기 좋은 모습에 저도 모르는 사이 흐뭇해지는 팬들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올 시즌에는 2군에서 올라온 어린 선수들이 진짜 많네. 우리 자이언츠에도 세대교체가 시작된 거야?"
"세대교체는 무슨, 주전 선수 몇 명 바뀐 거지."
"아니야. 세대교체가 맞아. 주전 선수 몇 명 정도가 아니라 백강호부터 가진성, 권대우, 유성철, 박철, 황인태, 안민경, 사준식 같은 선수들은 죄다 신인들이란 말이야. 거의 대부분 선수들이 올 시즌이 데뷔시즌 아냐?"
팬들은 한 감독 체제 때부터 줄기차게 거론되고 있었던 세대교체가 드디어 방향을 잡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남다른 감회에 잠긴다.
그동안 자이언츠는 부족한 포지션의 선수를 외부 FA로 긴급 수혈하며 신인 선수 발굴에는 취약한 모습을 보여 왔었다.
그런데 재작년 때부터 조금씩 신인 급 선수들이 얼굴을 비추다가 작년에 이어 올해에는 20대 초, 중반의 선수들이 대거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팀의 평균 연령을 대폭 낮추고 있었던 것이다.
팀 성적과 세대교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는 팬들로서는 현재 5위라는 크게 나쁘지 않은 성적과 세대교체가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4회 초, 다시 자이언츠의 공격 기회가 됐을 때 팬들의 기대는 더욱 벅차오르고 있었다.
따악.
니퍼드의 체인지업을 정확히 강타한 3번 타자 문표의 안타에 자이언츠 팬들의 얼굴이 밝아진다.
다음 번 타자가 누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팬들로서는 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배트 타이밍은 빠른 템포에 맞추고 속구와 슬라이더만 노리자. 체인지업은 버리는 거야.’
강호는 타석에 오르기 전, 오늘 상대 선발인 니퍼드 투수의 투구 패턴을 고려하며 미리 타격 전략을 짜둔 채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런 그에게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뜨거운 응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팬들은 내 홈런을 기대하고 있겠지. 하지만 니퍼드 같은 투수에게 연타석 홈런을 때려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야. 홈런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컨택 위주의 스윙으로 간다!’
강호는 그렇게 결론 내리며 타격 자세를 취한다.
홈런타이틀 경쟁자인 재성이 홈런을 쳤으니 상대 배터리에서는 강호가 홈런에 욕심을 낼 것이라 예상할 수도 있었다.
강호는 그 예상을 파고들어 팀에 더 큰 기회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안타를 때려낼 생각을 가진다.
구종: 슬로우 커브
구속: 114km
기간제 아이템으로 확인한 니퍼드의 초구는 의외로 슬로우 커브였다.
초구부터 유인구를 던지고 있는 니퍼드의 선택에 강호는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유인구로 보기엔 니퍼드의 코스 선택이 절묘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놔두면 스트라이크가 된다. 그런데 지금 타이밍에 컨택을 하면 뜬공이 나올 확률이 높아. 차라리 흘려보내자.’
강호는 니퍼드의 초구 커브는 흘려보내기로 결정을 내린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존을 애매하게 걸치고 들어온 니퍼드의 슬로우 커브는 강호의 예측대로 스트라이크로 선언되고 있었다.
기간제 아이템에 찍히고 있는 지점은 스트라이크보다 볼에 가까웠지만, 지금과 같은 코스의 공은 주심이 판정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어진 니퍼드의 2구도 비슷한 코스에 찍히는 공이었다.
구종: 슬라이더
구속: 136km
2구는 우타자인 강호에게 먼 쪽 코스의 슬라이더였다.
먼 쪽에서 시작해서 스트라이크 존으로 말려들어오는 백 도어 슬라이더.
정타로 때려내기에는 무리로 보이는 코스라서 잠시 타격을 망설이던 강호는 마음을 먹은 듯 배트를 길게 뻗는다.
티익.
빗맞은 타구는 포수 뒤편으로 넘어가는 파울 타구로 만들어진다.
포수 양희지가 쫓아가 보았지만, 파울 타구를 잡을 수는 없었다.
잠시의 시간동안 파울 타구를 쫓았던 포수 양희지는 강호를 잡아낼 전략을 구상해 낸다.
‘슬로우 커브는 흘려보내고, 슬라이더에 배트를 냈어. 지금 공은 분명 커트를 한 거야. 그렇다는 말은 속구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 하이패스트 볼로 승부를 보자!’
양희지 포수는 강호를 삼구 삼진으로 잡아낼 수 있는 전략을 세운 후 니퍼드에게 패스트 볼 싸인을 낸다.
그러나 그런 계산은 강호에게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기간제 아이템 효과로 투수가 던지는 공의 코스를 알 수 있는 강호에게는 이미 양희지 포수의 의도가 눈에 보이고 있었다.
구종 : 포심 패스트볼
구속 : 151km
니퍼드의 3구가 높은 쪽으로 형성되는 하이 패스트볼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 동물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바로 이 공이야!’
강호는 다소 높아 보이긴 해도 충분히 때려낼 수 있는 코스의 하이 패스트볼에 배트를 휘두른다.
따악!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강호가 때린 타구가 외야를 향해 빠른 속도로 뻗어 나간다.
양희지 포수의 전략을 역으로 깨부시는 강호의 타격은 좌익수 김재성과 중견수 민정현을 지나쳐 잠실구장의 좌측 담장을 강타하는 라인드라이브 성 안타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터엉!
펜스를 직격한 공이 그라운드로 튕겨져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든 좌익수 김재성과 중견수 민정현, 그 중 공을 집어든 것은 발걸음이 조금 더 빨랐던 중견수 민정현이었다.
“2루!”
곁에 있던 김재성의 외침에 공을 집어든 민정현이 곧장 2루를 향해 공을 집어 던진다.
그 사이 1루 주자였던 문표는 발 빠르게 3루를 밟고 있었고, 홈으로 뛰어들기 위해 속도를 높인다.
그러나 코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춰야했다.
“멈춰, 멈춰!”
3루 베이스 코치가 3루에 멈춰 설 것을 지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문표는 3루 베이스에 멈춰 서게 되었고, 2루 베이스를 지나친 공은 투수 니퍼드의 글러브에 들어간다.
타점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무사 주자 2, 3루로 만드는 강호의 2루타가 터져 나온 것이다.
“와아아아~!”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벼락같이 나온 강호의 2루타에 환호성을 내지른다.
기대하던 홈런은 아니었지만, 무사 2, 3루라는 기회가 연결되고 있었고 다음 타자는 자이언츠에서 강호 다음으로 높은 장타율을 자랑하는 외국인 타자 스팅이었다.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스팅의 응원가로 정해진 ‘Shape of my heart’을 부르며 스팅이 문표와 강호로부터 연결된 기회를 타점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랐다.
따악.
팬들의 바람은 현실이 되어 니퍼드의 초구를 노리고 타격한 스팅의 타구가 우중간 높은 곳을 향해 솟구친다.
그와 동시에 베어스의 우익수 박건오가 타구를 쫓아 펜스 쪽으로 달리는 모습이다.
베어스 팬들은 타구가 박건오 우익수의 글러브에 잡히기를 기도했고,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타구가 펜스를 넘어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타구가 지면 근처에 떨어졌을 무렵, 환호성을 내지르는 것은 베어스 홈 팬들이었다.
터업.
펜스를 등진 채로 타구를 기다리던 우익수 박건오의 글러브에 타구가 이끌리듯이 빨려들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아쉬운 탄성을 내지르면서도 2루 주자인 강호와 3루 주자 문표가 한 루 씩 더 진루하기를 기대했다.
“뛰어! 뛰어! 뛰어!”
자이언츠 팬들의 외침 속에 이미 리터치를 하고 있던 강호와 문표가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내달린다.
스팅의 타구가 깊어서 홈으로 향한 문표는 물론 2루에서 3루로 내달린 강호 역시 세이프 될 수 있었다.
이제 상황은 6대 2.
추격이 가능한 가시권까지 따라잡게 된 것이다.
다음 타자로 타석에 선 타자는 캡틴인 강민수였다.
민수는 의외로 허탈한 결과로 1루에 출루하게 된다.
니퍼드 투수가 평소에 잘 허용하지 않는 몸에 맞는 공이 나온 것이다.
이로써 7번 타자인 채중석 앞에 두 명의 주자가 출루해 있었고, 그는 팬들과 선수단의 바람 속에 니퍼드의 체인지업을 걷어내는 적시타를 때려낸다.
하지만 후속 타자인 황인태와 오진택이 모두 삼진으로 물러서며, 6대 3까지 추격한 것으로 4회 상황을 마무리해야했다.
하지만 이어진 5회 초 공격에서 볼넷에 이어 도루로 2루까지 출루한 1번 타자 유성철을 2번 타자 박철이 3루로 진루시키는 희생 번트를 때려냈고, 이어서 3번 타자로 오른 문표가 희생 플라이로 한 점을 더 추가하게 된다.
그 후, 별다른 공방 없이 경기가 진행되다 9회 초 베어스의 이헌승 투수가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면서부터 예기치 못한 흐름으로 경기가 진행되어 간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기를 바라는 베어스 팬들의 환호 속에 9회 초 선두타자로 타석에 선 자이언츠의 1번 타자 유성철을 삼진으로 잡아내지만, 포수 양희지가 공을 뒤로 빠트리는 바람에 낫아웃 상황에서 삼진 처리 된 타자주자 유성철이 1루로 진루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에 이헌승은 잠시 제구력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 2번 타자인 박철에게 볼넷을 내어준다.
그 후 이어진 3번 타자 문표의 투수 앞 번트를 직접 잡으려다 실수를 범해 무사 만루 상황을 자처하고 만다.
그리고 무사 만루의 상황에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는 자이언츠의 4번 타자인 강호.
모든 자이언츠 원정 팬들이 강호의 이름을 외치며 그의 한 방이 지금 이 순간에 터져주기를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자이언츠 팬들의 기대 속에 강호는 이헌승이 던진 초구에 반응하고 있었다.
구종: 포심 패스트볼
구속: 147km
타석에 들어서기 전부터 예상하고 있던 포심에 강호는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두른다.
따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