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67화 (166/335)

0167 / 0335 ----------------------------------------------

단 하루의 접전

베어스 중견수 민정현이 좌중간으로 뻗어나가는 강호의 타구를 쫓아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민정현 중견수가 아무리 좋은 수비력을 갖추고 있다 해도 담장을 넘겨버린 홈런을 낚아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와아아아!"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함성 속에 강호의 타구는 홈런으로 결정된다.

5일 전 경기였던 22일 사직에서 열린 라이온즈 전에서의 홈런 이후로 다시금 강호의 홈런 포가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이언츠 팬들은 팀이 크게 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강호의 홈런포가 재가동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그래도 백강호 덕분에 표 값은 안 아깝네. 그래, 시즌 중에 한 경기 질 수 있어도 현장 응원온 우리 같은 팬들한테 이런 홈런 한 방 정도는 보여줘야 하는 거 아냐?"

"지다니, 무슨 소리야? 아직 경기 끝난 거 아냐. 이제 2회 초인데. 그나저나 이번 홈런이 백강호 선수 32호 홈런이지? 1회 말에 김재성이 때린 게 29호 홈런이고?"

"맞아. 김재성이나 우리 강호 선수나 이틀 쉬었다고 시작부터 홈런포를 때려버리네. 둘 다 보통 선수는 아니야."

"그러니까 4번 타자지. 괜히 4번 자리에 있겠어?"

1회 말에 5점을 헌납하며 침울해 있던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강호의 솔로 포에 분위기를 회복하며, 대화 꽃을 피운다.

팬들의 말대로 지는 경기가 있더라도 선수들은 현장을 찾은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비록 강호 뒤에 타석에 오른 스팅과 강민수, 채중석이 연달아 범타 처리되며 기회를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자이언츠 덕 아웃에서는 발 빠르게 투수를 단행하며 이번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대다수의 팬들이 원하는 자이언츠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렇지. 바꿔야지! 라일리 공이 털리고 있는데 선발이라고 계속 올리는 건 아니지. 라일리는 좌완이었으니까 우완투수 가진성을 올려서 흐름을 끊어줄 필요가 있어."

팬들은 2회부터 나온 손 감독의 투수 교체 카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마운드에 오른 가진성이 끌어 오르기 시작한 베어스 타선을 침묵시키기를 기대했다.

진성은 그런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채 길게 날숨을 내쉰다.

"후우~"

긴 날숨과 함께 포수 강민수의 싸인을 확인한 진성.

그는 곧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투구 폼으로 포수 미트를 향해 전력투구를 시작한다.

퍼엉!!

포수 미트를 때리는 묵직한 소리가 타석을 가득 채운다.

가진성 투수의 최대 무기라 할 수 있는 강력한 구위의 포심 패스트볼이 포수 강민수의 미트에 꽂혀든 것이다.

그 모습을 자신의 유격수 포지션에서 지켜본 강호는 진성의 무자비한 포심 구위에 혀를 내두르며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을 확인하게 된다.

'155km! 진성이의 포심이 더 빨라졌어. 단지 구속만 빠른 게 아니라 한 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구위야. 오늘 베어스 타선의 타격감이 좋다고 해도 진성이의 포심을 쉽게 공략할 수는 없을 거야.'

강호는 라일리로 시작된 팀의 위기가 가진성의 등판으로 잠시 해소될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런 강호의 생각대로 1회 말 타자 1순 해서 다시 1번 타자인 민정현부터 시작된 베어스의 2회 말 공격은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종료되고 만다.

터업.

2아웃 상황에서 베어스의 3번 타자 바인스의 내야 뜬공을 잡아낸 강호는 투수인 진성에게 잡아낸 공을 돌려주며 덕 아웃으로 들어서는 진성의 곁으로 바짝 다가선다.

"진성이 오늘 공 좋네. 2회에 공 10개 밖에 안 던졌으니까 3회에도 마운드에 오르겠어."

동갑내기 친구인 강호의 말에 진성은 피식 웃으며 강호와 함께 덕 아웃으로 걸음을 옮긴다.

"롱릴리프는 아니더라도 4회 정도까지는 던져야지. 혹시 알아? 운 좋아서 승리투수라도 될지."

진성은 확률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가정의 말로 대답하며 강호와 함께 덕 아웃으로 들어선다.

그러다 생각을 고쳐먹고는 불펜 포수와 함께 연습 피칭 자리로 이동한다.

평소 1이닝만 책임지던 진성은 습관적으로 덕 아웃에 들어서다가 자신의 오늘 역할을 깨닫고는 연습 피칭으로 몸을 가열하고 있을 생각인 것이다.

그 모습을 확인한 새로운 불펜 코치 조민욱이 피식 웃어 보인다.

'진성이가 이제 불펜 투수로서 확실히 자리 잡고 있구나. 3군에 있을 때는 그렇게도 어리숙한 모습이더니.'

조민욱 불펜 코치는 가진성 투수의 성장에 미소짓고 있었다.

1년 전 3군 시절, 당시 2군 사령탑인 손성조 감독의 지시로 포수였던 진성에게 투수 교육을 시킬 때는 암담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1년이라는 시간 만에 급성장한 진성을 보게되니 그를 직접 지도한 투수 코치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뿌듯한 일은 없을 정도였다.

조 코치가 진성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고 있을 무렵, 중계석에서도 가진성 투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진성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현역 시절 투수로 활동했었던 김신우 위원이었다.

"자이언츠 가진성 투수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투구 폼이에요. 디딤 발을 내디딘 후, 점프하듯이 릴리스를 가져가죠. 메이저리그에 보면 간혹 저런 특이한 투구 폼을 가진 투수들이 있는데, 타자들 입장에서는 타격 타이밍을 맞추기가 정말 힘들 거예요. 가진성 투수가 올 시즌이 데뷔 시즌인데 방어율이 지금까지 2점대에요. 신인 불펜 투수치고는 낮은 방어율이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어요."

김 위원의 해설에 맞은편에 앉은 박재헌 위원이 긍정의 말로 의견을 더한다.

"김 위원께서 말씀하신대로 정말 특이한 투구 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투구 폼만 특이한 게 아니라 구속도 빠르고, 구위도 묵직하다는 점일 거예요. 가진성 투수 오늘 포심 평균 구속이 154km거든요. 볼 회전수도 2천 9백입니다. 이 정도 구위면 정타로 때려내도 거의 다 외야 뜬공이 될 수 있어요. 슬러거 유형의 타자라고 해도 저 정도 구위를 이겨내기는 힘들 것 같아요."

타자 입장에서 본 박재헌 위원의 해설을 들은 캐스터 조호종은 이번에는 김신우 위원에게 말을 넘긴다.

"그럼 가진성 투수의 변화구는 어떻게 보십니까? 포심만큼이나 메리트가 있다고 보세요?"

조 캐스터의 말에 김 위원은 '허허'하고 헛웃음을 지으며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요. 가진성 투수의 슬라이더나 체인지업이 크게 나쁜 건 아니지만, 포심과의 격차가 제법 심해요. 가진성 투수가 포심, 슬라이더, 체인지업. 이렇게 쓰리 피치 투수인데 구종마다 투구 폼도 다 달라요. 타자 입장에서는 투구 폼으로 구별할 수 있는 변화구 하나만을 노리고 들어가면, 의외로 공략이 쉽게 풀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 위원의 대답에 조 캐스터는 준비해 두었던 자료를 읽으며 대답한다.

"그래서 가진성 투수의 포심 구사 비율이 80%가 넘습니다. 86.4%. 10개의 공을 던지면 아홉 개는 포심이에요. 3회 말 베어스의 공격에서 베어스 타자들이 가진성 투수의 포심을 얼마만큼 잘 공략하는지가 중요하겠어요."

가진성 투수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조 캐스터의 말에 두 위원은 수긍하며 이어지는 경기 내용에 집중한다.

그들의 대화 속에 3회 초, 자이언츠의 공격은 2번 타자 박철이 삼진을 당하며 빠르게 종료되고 있었다.

강호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베어스 투수 니퍼드는 본인의 클래스를 증명하는 호투를 이어가며, 팀의 4점 차 리드를 지켜간다.

그리고 이닝은 3회 말, 홈 팀 베어스의 공격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3회 말, 베어스의 선두 타자로 타석에 선 타자는 다름아닌 베어스의 4번 타자 김재성이었다.

따악!

진성의 초구를 노리고 들어간 김재성의 타구가 강한 소리와 함께 외야를 향해 뻗어나간다.

비거리가 엄청나 보이는 타구에 중계석은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고, 베어스 홈팬들은 환호성을 내지를 준비를 한다.

그러나 베어스 팬들의 기대는 곧 탄식이 되고 있었다.

"아!!"

담장을 넘어가기는 했지만, 파울 라인을 아주 살짝 벗어나는 타구에 베어스 팬들이 탄식하는 모습이다.

파울 타구는 우측 장외로 넘어갔을 정도로 엄청난 타구였다.

'파울이 되긴 했어도 잠실구장을 장외로 넘기는 타구라니. 김재성 선수의 파워가 저 정도였었나?'

유격수 자리에서 재성의 타구를 확인한 강호는 홀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과 재성의 현재 파워를 비교한다면 누가 우위에 있을 것인지를.

'냉정하게 봐서 김재성 선수의 파워가 조금은 앞선다. 스킬 효과가 모두 발동된다면 비슷할까. 저 정도 파울 타구를 때려내는 것으로 봐서는 김재성 선수의 파워를 수치 환산하면 최소 98이상은 될 거야.'

강호는 자만하지 않고, 경쟁자의 타격을 높이 사며 재성의 타격을 유심히 살핀다.

따악!

강호가 지켜보는 가운데 또 한 번의 호쾌한 타격음이 타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번 역시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파울타구였다.

연이어 파울 홈런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상황은 투수에게 유리한 노 볼 2 스트라이크 상황.

마운드에 선 투수 가진성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승부를 보자! 볼 두 개 정도는 빼고, 5구째에 승부구를 던지는 거야!'

진성은 유리한 볼 카운트에 의욕을 내보이면서도 김재성이라는 강타자를 얕볼 생각은 없었다.

유리한 볼 카운트에서 재성의 배트를 끌어내기 위한 유인구 두 개를 던진 것이다.

비록 진성이 변화구를 던질 때 투구 폼이 달라진다고 해도, 스트라이크 존 근사치까지 근접하는 유인구에 타자인 김재성이 연거푸 움찔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헛스윙 하지는 않았다.

"볼 투."

진성의 유인구 두 개는 모두 볼로 선언된다.

그리고 맞이한 5구째 승부, 진성은 눈을 빛내며 포수 미트를 향해 전력투구에 들어간다.

그런 진성의 속구는 스피드 건에 무려 156km라는 엄청난 구속을 찍으며 포수 강민수의 미트를 향해 날아든다.

그와 동시에 재성의 배트 역시 진성의 공을 향해 휘둘러진다.

따악!

다시 호쾌한 타격 음이 타석을 가득 채운다.

진성이 던진 구속이 빨랐던 까닭에 재성의 배트에 맞은 반발력 또한 엄청났다.

재성은 손목을 중심으로 느껴지는 짜릿한 통증을 참아내며 외야를 향해 뻗어나가는 타구를 시선으로 쫓는다.

그리고는 1루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배트를 덕 아웃 근처로 살짝 집어 던진다.

"와아아아!!"

베어스 홈 팬들의 환호성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재성이 가진성 투수의 5구째 포심을 받아친 타구가 잠실 우측 담장을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전광판에는 재성의 이번 솔로 포가 시즌 30호 홈런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아~"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던졌음에도 홈런을 허용한 가진성 투수는 긴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인다.

포수 강민수가 그런 진성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냈지만, 진성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이었어. 구속, 코스, 구위, 제구. 어떤 것 하나 나쁘지 않은 완벽한 공이였다고. 그런 공을 홈런으로 때려내다니. 나는 김재성이라는 타자를 넘어설 수 없는 건가?'

양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한탄하는 가진성 투수.

그런 진성을 등 뒤에서 바라보고 있던 강호 역시 탄성을 내뱉고 있었다.

'완벽했다. 진성이가 던진 포심은 완벽한 공이었어. 그런데 김재성 타자는 그런 공을 홈런으로 때려냈어. 만약 나였더라면 타격 아이템 없이 진성이의 지금 공을 홈런으로 때려낼 수 있었을까?'

강호는 자신의 앞을 지나친 후, 3루 베이스를 밟고 홈으로 걸음을 옮기는 김재성 타자의 뒷모습을 시선으로 쫓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타격과 김재성의 타격을 비교하게 된다. 짧은 고민 끝에 강호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지지 않는다! 타격이나 파워는 이제 그 어떤 타자에게도 크게 뒤지지 않아. 김재성 선수가 쳐냈으면 나 역시도 해낼 수 있어.'

강호는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

선천적인 파워에서는 자신이 뒤쳐질 수 있어도 공을 컨택하는 능력은 김재성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

그것은 타격 아이템을 배제해도 마찬가지.

이제 90을 넘게 된 컨택과 파워 능력으로 다른 팀 4번 타자에게 뒤지지 않는 타격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강호는 김재성 타자와 자신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고 느낀다.

'차이가 있다 해도 결국 종이 한 장 차이야. 내가 오늘 경기에서 누구의 타격이 더 우위에 있는지 증명해 보이겠어!'

강호는 홈을 밟고 베어스 덕 아웃으로 들어서는 김재성 타자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으며 각오를 다진다.

'오늘 경기만큼은 아이템 사용 없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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