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66화 (165/335)
  • 0166 / 0335 ----------------------------------------------

    단 하루의 접전

    자이언츠와 베어스, 양 팀의 열성 팬들은 아침에 눈을 뜨는 동시에 일기예보부터 확인하게 된다.

    "오오~! 오늘은 비 안 오네. 야구 하겠다!"

    환호성을 내지르는 골수 야구팬들의 목소리와 함께 6월 27일, 잠실에서의 경기가 결정되고 있었다.

    강호는 원정 선수단 입장시간이 되어 잠실 경기장에 도착한 후, 원정 팀 사물함에 개인 물품을 집어넣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다 몇 시간 동안 확인하지 않았던 휴대폰에 수십 개의 메시지들이 도착해 있는 것을 확인한다.

    추정혁: 강호야, 며칠 전에 보내준 글러브나 배트, 잘 쓰고 있다. 1군에서 바쁠 텐데 상동까지 챙겨주고 고맙다. 후배들이나 다른 선배들도 고마워하고 있어. 네가 2군으로 내려올 일은 이제 없을 것 같으니까, 내가 1군에 올라가서 다시 만나게 되면 밥 한 끼 사도록 할게. 파이팅!

    이인호: 강호 선배, 보내주신 장비들은 후배들하고 잘 쓰고 있습니다. 1군에 1루수 자원이 너무 많아서 당분간 제가 1군에 올라갈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올 시즌에 혹시라도 1군에서 뵙게 되면, 인사드리겠습니다. 글러브 잘 쓸게요~^_^ 백강호 짱!

    2군에 있는 추정혁과 이인호를 비롯해 작정이라도 한 것인지 거의 모든 2군 선수들이 카톡을 보내놓은 상황.

    평소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두는 강호여서 이제야 그 메시지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강호는 잠시 망설이다 그들 모두를 단톡방으로 초대해 답변의 말을 쓰기 시작한다.

    그 때 텅빈 라커룸에 황인태가 들어오며 말을 건네 온다.

    1군에서 가장 막내 선수 중 한 명인 인태는 최고참 격인 채중석의 심부름으로 중석의 글러브를 챙기기 위해 잠시 라커룸에 온 것이었다.

    "강호 선배님, 안 나가십니까? 다른 선배님들은 다 경기장으로 나가셨습니다."

    2군 선수들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아직 라커에 있던 강호에게 인태가 재촉의 말을 한다.

    경기 중에는 휴대폰과 같은 통신 장비들을 휴대할 수 없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경기장에 휴대폰을 가져갈 수는 없었다.

    "지금 간다."

    강호는 인태의 물음에 짧게 대답한 후 쓰려고 했던 말을 다 쓰지 못한 채 짤막한 문장으로 답변을 대신해야 했다.

    원래 강호는 자신의 이름으로 2군에 보내어진 선수용 장비들이 스폰 업체에서 무상으로 후원해준 것이라 적으려 했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단톡방에 이렇게 적어 보내야만 했다.

    강호: 1군에서 다시 만납시다. 이제 곧 경기라서 들어가 봐야겠네요. 다들 파이팅!

    강호는 쓰고 싶은 말들을 모두 쓰지 못한 채 '파이팅'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단톡방에 남긴 후, 자신의 라커에 스마트 폰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곧장 경기장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이 행동으로 2군 선수들의 긍정적인 오해는 더욱 깊어졌지만, 지금 강호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강호가 원정 선수들에게 주어진 훈련 시간에 그라운드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자이언츠 원정 팬들이 크게 환호성을 내지른다.

    "와아아! 백강호 선수! 여기 한 번 봐주세요!"

    "백강호 파이팅! 오늘도 홈런 하나만 때려주세요!"

    강호의 이름을 부르짖는 떠들썩한 목소리에 훈련 중이던 선수들이 순간 행동을 멈출 정도였다.

    그 모습에 강호는 피식 웃음 지으며 속으로 계산에 들어간다.

    '이제 말을 걸어올 때가 됐는데. 셋, 둘, 하나.'

    속으로 숫자 세 개를 거꾸로 세고 있을 때, 때마침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강호 후배, 네 팬클럽 때문에 훈련에 집중이 안 되잖아? 이거 너무한 거 아냐? 그리고 궁금한 게 있는데 왜 강호 후배 팬들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 거야?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어?"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온 문표는 어느새 진지한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강호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한다.

    "비결이요? 글쎄요. 잘생겨서인 것 같네요."

    의도는 장난이지만, 표정 없는 강호의 목소리는 장난같이 들리지 않는다.

    문표는 왠지 모를 패배감에 입술을 씰룩이는 모습이다.

    "강호 후배는 농담을 진담 같이 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아. 좀 구별이 가게 말을 하라고."

    문표는 괜스레 강호를 타박해보며 그를 향해 바짝 붙어 온다.

    "그건 그렇고, 베어스 김재성이 연습 타격할 때 스윙하는 거 봤어? 장난 아니던데? 타격 폼도 조금 수정한 것 같고, 완전 칼을 갈고 나온 것 같단 말이야."

    문표의 말에 강호는 반대편에서 수비 훈련을 하고 있는 김재성의 모습을 살핀다.

    강호는 문표처럼 적극적으로 관찰한 것이 아니라서 재성이 타격 폼을 수정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묻게 된다.

    "김재성 선수가 타격 폼 수정한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강호의 물음에 문표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하고 있었다.

    "강호 후배의 홈런 경쟁자들은 내가 부지런히 체크해두고 있거든. 김재성이 홈런 3위잖아? 그래서 눈여겨 봐뒀지~"

    "평소에 데이터 분석이나 리포팅 자료 확인 안 하시잖아요? 리포팅 자료 열심히 본 저는 김재성 선수 타격 폼 변한 거 못 느꼈는데요."

    "강호 후배는 다 좋은데, 그 점은 좀 고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야구는 글로 배우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분위기를 느끼면서 배울 필요도 있다고. 나는 리포팅 자료보다 내 눈을 더 믿어. 경기장에서 상대 팀 선수들 몸 푸는 거나 연습하는 것만 봐도 어떤 부분에 변화를 줬는지 알 수 있다고. 우리 강호 후배는 연습 중에는 너무 본인 훈련만 전념한단 말야. 상대 팀 주축 선수들의 연습도 지켜보면서 대응을 강구하면 경기에 큰 도움이 돼."

    문표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조언해주고 있었다.

    그의 태도는 가벼웠지만, 말하고 있는 내용은 오랜 프로 생활의 연륜을 담고 있는 내용이었다.

    강호로서는 문표의 다른 말들처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는 내용이어서 문표에게 지금 들은 말은 가슴에 새기게 된다.

    문표를 바라보는 시선도 장난꾸러기 선배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조금은 바뀌고 있었다.

    "뭐야? 그 눈빛은? 이제 내 진가를 알아보는 거야? 흐흐. 그래. 나를 존경하도록 해. 강호 후배의 존경을 받으니까 기분이 좋네."

    금세 존경스러운 선배의 모습에서 장난꾸러기의 모습으로 돌아온 문표.

    그의 모습에 강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그런 강호와 문표의 모습을 그라운드 위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니까 긴장이 안 되는 모양이지? 그래, 지금 그렇게 웃고 떠들어둬라. 경기가 시작되면 진땀을 흘리게 될 테니까.'

    강호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선수는 다름아닌 베어스의 김재성 선수였다.

    그는 포구 훈련을 하는 와중에 강호의 미소 띤 얼굴을 살피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는 중이었다.

    '오늘 경기는 우리 팀이 이기는 건 물론이고, 홈런 경쟁에서 내가 한 발짝 더 앞서게 될 거야!'

    김재성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강호를 노려보며 차갑게 웃는다.

    그런 김재성의 생각은 경기가 시작된 후, 현실이 되고 있었다.

    1회 초 선제공격에 나선 자이언츠가 삼자 범퇴로 이닝을 마무리 한 후 시작된 베어스의 1회 말 공격.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로 나선 라일리를 1회부터 공략하기 시작한 베어스 타선의 맹타가 폭발하고 있었다.

    뜨거운 공격의 정점을 찍는 것은 베어스의 4번 타자, 김재성이 외야로 날려 보낸 타구 하나였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경기장 내 모든 이들의 시선이 우중간 펜스를 향해 이동한다.

    타구의 종착점을 확인한 베어스 홈팬들은 뜨거운 환호성을, 자이언츠 원정 팬들은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이게 된다.

    팬들의 극명한 반응으로 김재성의 타구가 홈런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홈런이었다.

    재성이 자이언츠 선발 투수 라일리의 투심패스트볼을 노려 친 타구가 쓰리 런 홈런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미 3번 타자 바인스에게 1타점 안타를 허용했던 라일리에게는 뼈아픈 실점이었고, 그것은 자이언츠 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 일이다.

    "오늘은 경기가 어렵겠습니다. 1회부터 4실점이라뇨. 라일리 공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데요."

    자이언츠 덕 아웃에서 김민철 수석이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그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손성조 감독이었다.

    "베어스 타자들이 잘 친 거지. 여 코치!"

    손 감독은 김 수석에게 대꾸하다말고, 마운드 위에 올라 라일리를 한 차례 다독이고 내려온 여민석 투수 코치를 부른다.

    여 코치가 '네, 감독님'이라고 대꾸하며 달려오자 손 감독은 곧장 지시를 내린다.

    "불펜에 전화해서 진성이하고, 대우를 준비해두라고 해."

    "불펜을 벌써 가동하신다고요? 라일리의 구위나 제구력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여민석 투수코치는 손 감독이 아직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아내지 못한 라일리를 교체할 의사를 내보이자 변명하듯 대답하고 있었다.

    그의 대꾸에 손 감독은 팔짱을 낀 자세로 설명을 더한다.

    "베어스 타자들이 라일리의 투심에 타이밍을 잡고 나왔잖아. 오늘 경기에서 좌완투수가 던지는 투심은 베어스 타자들에게 통하지 않을 거야. 이럴 때 투구 폼이 눈에 익지 않은 진성이나 대우를 올리는 게 옳아!"

    손 감독의 이어진 설명에 그의 의중을 알게 된 여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불펜에 전화하겠습니다."

    여 코치는 대답 후 곧장 인터폰을 들어 불펜에 연락했고, 자이언츠 불펜은 1회 말부터 두 명의 선수가 올라 몸을 풀기 시작한다.

    그 후, 마운드 위에서는 라일리가 이닝을 마무리 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추가로 1실점을 내어주기는 했지만, 어렵게나마 1회 말 이닝을 끝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1회에 5점을 내어주며 경기의 흐름은 초반부터 베어스에게 내어준 채로 시작되고 있었다.

    "백강호! 백강호!"

    타석에 올라선 강호에게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강호도 1군에서 활약한지가 두 달이 넘어 응원가가 따로 있었고, 그 응원가를 모두 마친 자이언츠 팬들은 강호의 장타를 기대하는 바람으로 강호의 이름을 목 놓아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팀이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 4번 타자인 강호가 분위기를 바꿔줄 수 있는 한 방을 때려내 주기를 바라는 팬들의 목소리였다.

    "이제 강호가 진짜 우리 팀의 4번 타자 같은데요?"

    덕 아웃에서 팬들의 환호성을 듣게 된 김민철 수석이 웃음 띤 얼굴로 말한다.

    그러자 손 감독은 표정변화 없는 얼굴로 김 수석의 말에 답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4번 타자 자질이 충분한 녀석이었어. 1군 경험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이런 자리에 익숙해지다 보면 해결이 될 거야."

    손 감독은 그렇게 대꾸하며 타석에 오른 강호의 모습을 눈에 담는다.

    그 역시도 팬들의 바람처럼 강호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한 방을 때려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게 4번 타자의 역할이니까.'

    손 감독의 바람 속에 강호가 타격 자세를 취한다.

    그런 강호의 눈에 상대 투수 니퍼드의 초구 정보가 표시되고 있었다.

    구종: 포심 패스트볼

    구속: 151km

    기간제 아이템 효과로 표시되는 니퍼드의 초구는 스트라이크 존을 꽉 차게 들어오는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베어스의 수호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외국인 투수 니퍼드는 올해로 38살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150km를 넘나드는 빠른 속구를 뿌리는 모습이었다.

    '니퍼드는 투구 폼이 변칙은 아니지만, 타이밍 맞추기 쉬운 투수는 아니야. 릴리스 포인트에 현혹돼 버리면 기간제 아이템 효과가 적용되고 있어도 삼진을 당할 수 있어. 차라리 정해진 코스를 노리고 내 스윙을 하는 게 나을 거야.'

    강호는 이미 타석에 들어서기 전부터, 자신이 세워두었던 타격 전략을 고수하기로 한다.

    신장이 2미터가 넘는 니퍼드 투수 특유의 릴리스 포인트에 초점을 맞추다가는 코스를 알고 있어도 삼진이나 범타로 물러날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었다.

    그만큼 좋은 공을 던지는 투수였기 때문에 강호 역시 긴장감을 끌어올린 채 니퍼드의 초구에 배트를 휘두른다.

    따악.

    배트가 공을 맞추는 소리와 함께 강호의 몸이 휘청거린다.

    바깥쪽 포심에 자기 스윙을 하려다보니 타격 후에 자세가 흔들린 것이다.

    타격 결과는 파울이었고, 강호는 얼른 몸을 바로한 후 다시 자세를 잡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니퍼드의 2구째 공이 시야에 들어온다.

    구종: 써클 체인지업

    구속: 121km

    니퍼드의 2구는 정평이 나있는 특유의 써클 체인지업이었다.

    높은 위치에서 뿌려지는 니퍼드의 써클 체인지업은 무브먼트가 극심해서 정타로 컨택하기가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 공을 직접 상대해본 강호 역시 그 평가에 동감하게 된다.

    티익.

    2구째 체인지업을 타격한 결과 역시 파울이었다.

    그 후로 포심,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니퍼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강호는 어느새 10구 째 공을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투수는 던질 수 있는 공을 다 던지고 몰리게 되면, 결국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구종을 선택하게 돼. 보통의 경우 타자는 그 공을 노리고 타격하게 되고. 하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포수는 다른 싸인을 낼 확률이 높아. 만약 내가 양희지 포수라면 어떤 싸인을 내려 할까?'

    강호는 상대 포수 양희지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고 있었다.

    기간제 아이템의 효과로 상대 투수의 구종과 코스를 알 수 있는 강호였지만, 기간제 아이템의 효과는 상대 투수의 공이 손을 떠났을 때 구종과 코스를 알려주고 있었다.

    미리부터 구종을 선택하고 타격하는 것과, 투수의 릴리스 후에 구종을 알게 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그렇기에 강호는 양희지 포수의 입장으로 10구째 공을 예측해 본다.

    그리고 니퍼드의 10구째 공이 자신의 예측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어깨 뒤로 당겨두었던 배트를 있는 힘껏 휘두른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자이언츠 원정 팬들의 힘찬 환호성이 잠실구장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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