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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휴식
상황은 베어스와의 시리즈 3차전을 위해 잠실로 이동한 자이언츠 선수단으로 다시 옮겨진다.
오후가 될수록 심해지는 빗줄기로 인해 잠실야구장으로 이동해야하나 망설이던 선수들에게 희소식 하나가 전달되었다.
"오늘 경기는 우천 취소다. 선수들은 다시 짐 풀고, 숙소 방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해!"
프런트에게 경기 취소 소식을 전해들은 김민철 수석 코치는 선수들을 향해 통보해준 뒤, 곧장 손 감독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가 손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들에게 소식을 전파하는 사이, 이동을 위해 짐을 챙겨들었던 문표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달려가 짐을 놓고는 강호의 숙소 방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뒤늦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강호와 대우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어여들 와~ 내가 뭐라 그랬어? 오늘 경기는 우천 취소될 거라 했지? 이제 파전 먹으러 안 나간 게 조금 후회가 되나?"
양손을 펼쳐 보이며 진한 미소를 짓고 있는 문표의 물음에 강호는 불 꺼진 숙소 방의 조명 스위치를 누른 후, 대꾸하고 있었다.
"불도 안 켜놓고 저희 방에서 뭐하고 계십니까?"
"불은 강호 후배가 지금 켰으니 됐고, 뭐하기는 방주인들 기다렸지."
문표는 자신이 써낸 설문지가 본사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여유로운 표정으로 강호에게 장난을 건다.
강호와 대우는 자신들의 짐을 내려놓으며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그 때 마침 숙소 방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똑똑똑.
"들어와!"
노크 소리에 이번에도 문표는 본인이 방주인인 것처럼 방문을 허락하고 있었다.
그 후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바로 몇 시간 전에 설문지를 들고 찾아왔었던 백업 포수 안민경이었다.
"우리 상동 안방마님, 또 어쩐 일이야? 이번에도 설문지 배달이야?"
민경을 향한 문표의 물음에 민경은 양 손 가득 들고 있던 것들을 낑낑 거리며 옮긴다.
"이번엔 설문지 배달이 아니라 다른 배달입니다."
그렇게 대꾸하며 물건들을 나르는 민경.
그 모습에 근처에 있던 대우가 몸을 일으켜 민경을 도왔다.
"이게 뭡니까? 선배님. 혹시 이것도 감독님께서 주시는 겁니까?"
자신과 함께 물건을 옮기는 대우의 물음에 민경은 고개를 내젓는다.
"아니, 이건 팬들이 보낸 거야. 자이언츠 팬들이 보내 준 선물이나 팬레터. 왜, 요즘은 그런 말 쓰잖아. 팬들이 조공한다고. 열혈 팬들이 선수단에게 조공을 보낸 거지, 뭐."
민경의 말에 문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는 선물과 팬레터란 말에 기대어린 표정으로 민경이 나르는 물건들에 관심을 내보인다.
"오오~ 족발하고, 치킨이네! 우리 팬들 센스 만점이야. 비오는 날엔 족발이지."
문표는 우선 민경이 들고 온 족발을 바닥에 깔아놓으며, 손을 비빈다.
그러면서 민경을 향해 미소 띤 얼굴로 양손을 펼쳐 보인다.
"자, 이제 내놔."
"뭘요?"
"팬들한테 온 선물하고 팬레터가 있다며? 내 이름으로 온 팬레터를 내놓으라고."
"푸헷! 누가 선배님한테 팬레터를 보냅니까? 전부 다 강호 선배 이름으로 온 거예요."
자신에게 온 선물이나 팬레터는 없다는 민경의 말에 문표는 순간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장난치지 말고 어서 내놔. 지금 내놓으면 모든 걸 용서해줄게."
"저는 배달 온 죄밖에 없는데 뭘 용서받습니까? 선배님, 치킨 드세요."
문표는 자신에게 팬레터 대신 치킨을 내미는 민경의 행동에 꼭지가 돌고 만다.
하필이면 민경이 건넨 부위가 계륵 같은 닭 모가지였기 때문이다.
"너, 민경이 너. 다른 선배들한테 음식은 가져다드리고 이리로 갖고 온 거야? 선배님들부터 드셔야지! 그게 우리 운동선수들 위계질서 아냐?"
갑작스럽게 선, 후배 위계를 지적하는 문표의 말에 민경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꾸한다.
"다른 방은 프런트 직원들이랑 철이가 벌써 갔습니다. 감독님 방이나 코치님들 방에도 배달 끝났고요."
민경의 철저한 방어에 문표는 말을 잃고 만다.
그리고는 민경이 내민 닭 모가지를 처량한 표정으로 씹기 시작했다.
그 때, 민경이 씨익 하고 웃으면서 품속에서 팬레터 두 개를 꺼내 들었다.
"사실은 문표 선배님 팬레터도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챙겨뒀지요. 드릴까요?"
"뭐?! 너 이 시키! 어서 이리로 냉큼 가져와."
문표는 민경에게서 받아 든 팬레터 두 개에 기뻐하며 편지 봉투에 쓰여 있는 글씨를 보고 흥분하는 모습이다.
"너희들 이거 보여? 글씨체가 여자 글씨체잖아~ 나 완전 감동했어. 이 여자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만나줘야 되나?"
문표는 혼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며, 떨리는 손길로 조심스레 편지 봉투를 뜯는 모습이다.
그 모습에 강호는 대우와 민경, 두 후배들을 향해 당부의 말을 전한다.
"너희는 저런 모습 보고 배울 생각 하지마."
약간의 장난을 담은 강호의 진지한 태도에 대우는 마시고 있던 사이다를 '푸흡'하고 뿜고 있었다.
네 사람이 숙소 방에서 먹고 떠드는 사이, 자이언츠 선수단이 머무는 호텔에는 팬들이 보낸 음식 선물과 팬레터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우와, 요즘 같은 sns시대에 팬레터를 보내주는 팬들이 아직도 있네. 감동이야, 감동!"
잠시 호텔 프런트에 나오게 된 채중석 선수는 프런트에 가득한 선물과 팬레터를 보며 '와아'하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런데 그 모든 선물들이 강호의 이름이 적힌 것을 보며 '헤엥'하고 토라지는 모습이다.
프런트 직원이 쌓여있는 선물들을 강호에게 배달하는 동안, 코칭스태프와 모든 선수들은 소나기로 인해 얻게 된 휴식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보내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어서도 비가 그칠 생각이 없자 이런 생각이 들고 있었다.
"오늘도 비오네? 이거 경기하러 왔더니 본의 아니게 호텔에서 놀고먹게 생겼네. 우리 선수단 휴가 온 거야?"
오전 늦게 일어나 강호의 방에 도착한 문표가 묻고 있었다.
그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강호가 아니라 성철이었다.
유성철은 올해로 26살의 외야수로 외국인 타자였던 휴고가 빠지면서 1군에 올라와 어느새 주전 중견수로써 활약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팀의 리드오프로 활약하고 있어서 손 감독 입장으로서는 2군에서 키운 효자 선수 중에 한 명으로 여길 정도였다.
"오늘도 우천 취소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선배님. 올스타 투표 보셨습니까? 지금 드림 올스타 쪽 투표가 난리도 아닙니다. 한 번 보실래요?"
성철이 답하면서 건넨 물음에 문표는 관심을 보이며 다가간다.
"올스타? 왜? 내 이름이라도 들어가 있어?"
문표는 장난스럽게 물으며 성철의 곁으로 다가섰다.
문표 본인도 6월 초부터 시작된 올스타 투표에 자신이 들어갈 리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올스타'라는 단어에 설레고 있었다.
그리고 성철이 보여준 올스타 투표 사이트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고는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와아~! 이거 뭐야? 난리 났네. 강호가 유격수 자리에서 독보적으로 1등이네? 2등하고 차이가 이렇게나 심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강호가 벌써 30-30도 달성했고, 타율도 4할 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안 뽑히면 이상한 거죠. 자이언츠 팬들이 좀 많이 열정적이지 않습니까? 항상 올스타 투표할 때는 자이언츠 팬들하고, 이글스 팬들, 트윈스 팬들이 사이트 장악한다는 말도 있고요."
문표와 성철은 드림 올스타 팀의 유격수 자리에 확고한 1위를 달리고 있는 강호에 대해 설왕설래를 나눈다.
평소에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는 강호지만, 올스타라는 단어에 조금은 가슴이 설렌다.
'올스타. 내가 정말로 올스타에 선정되는 걸까? 2군 올스타도 아닌 1군 올스타 선수로?'
강호는 속으로 자신의 올스타 선정 가능성을 헤아려보며 기대에 부푼다.
신인 선수로서는 최고의 영광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올스타 무대.
지금 여론은 강호의 드림 올스타 팀 유격수 선정은 당연한 것으로 보고 있었고, 올스타전 홈런더비 출전 역시 따논 당상으로 보고 있었다.
"우리 강호 후배가 올스타에 포함되는 건 당연한 거지. 강호 후배! 올스타전 홈런더비 나가면 정의준이나 김재성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려! 할 수 있겠지?"
문표는 강호의 올스타 출전을 기정사실화하며 홈런더비 참가 역시 확률을 매우 높게 보고 있었다.
그의 질문에 강호는 피식 웃음 짓게 된다.
"아직은 모르는 거 아닙니까? 결정된 것도 아니고요."
"모르긴 뭘 몰라? 지금 투표 차이 안 보여? 거의 다섯 배나 차이 난다고. 내가 프로 생활이 15년 차인데 이 정도 차이 나는 건 100%확실한 거야. 이 최문표가 보장할게!"
문표는 강호의 올스타 참가에 본인이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의 말대로 올스타 투표 중 드림 팀의 유격수 자리는 강호가 확실하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것은 자이언츠 팬이 아니더라도 다른 팀 팬들 역시 유격수 자리에는 강호의 이름을 클릭하며 조금 더 2위권과 격차를 벌여나가는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올스타 투표에 참여하는 팬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드림 팀 유격수는 당연히 백강호 아냐? 4할에 30-30인데. 백강호 아니면 누굴 올스타로 뽑아? 설마 위즈의 박기현이나 라이온즈 조수찬?"
"뭐? 박기현, 조수찬? 말 같은 소리를 하세요. 와이번스의 가메스라면 또 모를까?"
"가메스 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타율 차이가 1할이 넘는데 가당키나 한 소립니까? 가메스 타율이 3할 1푼이고, 백강호 타율이 4할 4푼이에요. 윗 님 정신 차리세요."
"하긴 백강호 아니면 다 무의미하네. 그냥 백강호가 짱 먹어라. 드림 팀 유격수 자리는 그냥 백강호 자리네."
자이언츠 팬들이 아니라 다른 팀 팬들의 의견이라 다소 거친 면이 있었지만, 거의 모든 팬들이 강호의 올스타 선정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자이언츠 팬들은 말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팬들의 댓글을 대략적으로 읽어 본 문표는 '쩝, 부럽네'라고 말하며 성철이 건넨 태블릿을 덮는다.
"아이고, 강호 후배가 올스타전 할 때 나는 집에서 tv나 봐야지, 뭐. 갑자기 기분이 우중충하네. 날씨 탓인가?"
문표는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강호의 숙소 방을 나선다.
자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올스타 투표는 잊고 혹시라도 있을 경기를 대비해 잠이라도 더 자둘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표가 잠에서 일어나 혹시 있을 경기를 준비해봤지만, 오늘 역시 우천 취소되며 경기는 다음날로 또 미루어진다.
"아~ 이제 경기 좀 하자! 이틀 내내 숙소 방에만 처박혀 있으려니까 경기하고 싶은 의욕이 다 생길 정도네. 나도 참 별 일이야. 근데 내일은 진짜 경기 좀 했으면 좋겠어."
잠에서 깬 문표는 또 다시 강호의 숙소 방으로 찾아와 투정처럼 말하고 있었고, 그의 말에 강호 역시 동감하고 있었다.
자이언츠와 베어스가 이틀 동안 우천으로 경기를 하지 못하는 때에도 다른 구장에서는 홈런 타이틀 경쟁을 벌이는 경쟁자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홈런을 때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따악!
강호는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 화면에서 다이노스의 4번 타자, 테인즈가 홈런을 때리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태블릿을 내려놓게 된다.
다른 구장에서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는 정의준 역시 홈런을 때려서인지 강호의 마음은 더욱 급해지고 있었다.
'문표 선배의 말대로 경기를 할 때가 됐어. 이대로는 경쟁자들보다 페이스가 뒤쳐지게 돼.'
강호는 내일만큼은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되지 않기를 바라며 내일의 경기를 기다린다.
한 편, 그런 강호와 다르지 않게 내일 경기를 기다리는 선수가 또 있었다.
따악, 따악!
잠실 실내 훈련장을 호쾌한 타격음으로 물들이고 있는 인물.
그는 바로 베어스의 4번 타자인 김재성이었다.
강호에 이어 홈런 3위를 기록하고 있는 베어스의 슬러거 김재성.
그는 뜨거운 땀방울을 흘리며 오늘도 타격 폼 수정에 전념하고 있었다.
따악!
그가 때린 타구가 실내 훈련장의 그물망을 뒤흔들고 있었다.
강호와 재성, 두 사람의 바람은 현실이 되어 다음 날 아침에는 구름을 뚫은 태양이 지면을 향해 환한 날씨를 선사해준다.
그로 인해 자이언츠와 베어스, 두 팀 팬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두 팀 간의 시리즈 세 번째 맞대결이 드디어 성사되고 있었다.
장소는 이제 잠실야구장으로 옮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