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63화 (162/335)

0163 / 0335 ----------------------------------------------

비오는 날의 오후

잠실 원정길에 오른 자이언츠 선수단은 먼저 숙소로 잡은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는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 경기가 진행될 수 있을 지를 점쳐보게 된다.

"강호 후배, 이게 그칠 비로 보여? 어때? 오늘 일기예보는 비가 그친다고 했었잖아. 내가 일기예보가 틀릴 거라는데 5만원 건다."

문표는 창밖을 내다보며 일요일부터 시작된 빗방울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었다.

일기예보에는 오후 6시가 되기 전에 중부 지방의 비가 그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지만, 문표는 그 예보가 틀릴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문표의 질문에 강호는 창밖을 향해 한 차례 시선을 준 뒤 대꾸한다.

"비가 그칠 것 같지는 않네요. 너무 뻔해서 돈은 안 걸겠습니다."

그렇게 대꾸한 강호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질문을 한다.

"그런데 문표 선배는 숙소 방이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아니면 룸메이트가 별로에요? 오늘 하루 종일 저희 방에만 계시네요."

"뭐야, 지금? 설마 나 쫓아내려는 거 아니지? 미리 말하는데 나 안 나가. 우리 방은 너무 어두워서 이렇게 우중충한 날에는 우울하단 말이야."

"불 켜면 밝아집니다."

강호는 그렇게 말하고 있으면서도 딱히 문표가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항상 원정 경기 때마다 친분이 있는 선수들이 자신의 방으로 몰려와 훈련이나 개인 운동을 함께 했었기 때문에 오히려 숙소 방에 사람이 없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다른 선수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 역시 쏟아지는 장대비로 오늘 경기가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각자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꿀꿀한 날에는 늘어져 자거나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이 딱 인데. 강호 후배, 우리 밖에 나가서 파전이나 사먹을까? 어때? 이 형님이 간식을 사주겠다는 말이야."

뜬금없이 파전 얘기를 꺼내며 숙소 이탈을 권유하는 문표의 말에 강호는 고개를 내젓는다.

"그러다 비 그치고 경기 진행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오오, 그럼 강호 후배는 비만 계속 오면 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야?"

"아뇨. 경기 취소 되도 파전 먹으러 안 나갈 겁니다."

"쳇, 내 그럴 줄 알았지. 강호 후배는 호텔에서 주는 숙소 밥 챙겨먹고, 또 그 VR안경 꺼내서 선구안 훈련 할 거지? 안 봐도 뻔하네."

문표의 말대로 강호는 백 팩 속에 고이 넣어둔 VR안경을 꺼내 어플 프로그램을 동작시키는 모습이다.

마침 그 때 숙소의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똑똑똑.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에 문표가 밖을 향해 소리친다.

"들어오쇼!"

마치 자신의 방인 것 마냥 소리친 문표의 목소리에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얼굴이 나타난다.

"오오~ 우리 상동 안방마님 아냐? 놀러온 거야? 민경아, 우리 파전 먹으러 안 나갈래?"

민경에게 다짜고짜 숙소 탈주를 제안하는 문표의 말에 민경은 고개를 내젓는다.

그러면서 들고 온 종이 뭉치를 강호와 대우, 문표에게 건네고 있었다.

다른 이들을 대표하여 문표가 민경에게 묻는다.

"이게 뭐야? 너 무슨 부업 뛰는 거야?"

"부업이라뇨? 아닙니다. 감독님이 나눠주라고 한 겁니다."

"손 감독님이? 이걸 너 혼자서 다 돌리고 있었던 거야?"

"그건 아니고 기 코치님이 설문지를 들고 숙소 방을 돌아다니시길래 근처에 있던 철이하고 제가 대신 돌리고 있는 겁니다."

민경은 기성태 주루코치에게 받았다고 말하며 설문지 3개를 세 사람에게 돌렸다.

그러면서 다른 곳에는 이미 설문지를 모두 돌렸는지 자신도 한쪽에 자리 잡은 채 설문지를 체크해 나간다.

"오오~ 이거 뭐야? 소원수리 같은 건가? 익명으로 써도 되는 거지?"

문표가 신난 표정으로 묻자 강호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제일 위에 성명 란 있잖습니까? 이름 적는 곳이 있는데 왜 익명으로 하십니까?"

"강호 후배가 뭘 잘 모르네. 이런 설문지는 익명으로 해야 제 맛이지. 내가 우리 선수단의 부조리를 다 까발려 주겠어. 익명으로 다가 말이야."

"그게 가능할까요? 다른 선수들 다 이름 적는데 선배님 이름만 빠진 채로 익명 설문지 하나 덩그라니 나오면 그게 누구 거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강호의 예리한 지적에 문표는 '내가 그 생각을 못 했네!'라고 무릎을 치는 모습이다.

문표의 익살스러운 모습에 웃음 짓던 세 후배들은 이내 자신의 무릎에 놓인 설문지에 다시 시선을 돌린다.

그 중 20살 막내인 대우가 미간을 좁히면서 설문지를 살펴보다 고개를 들고는 선배들을 향해 질문한다.

"그런데 이런 설문지에 정말 제 생각 써도 되는 겁니까? 나중에 문제 생기는 거 아닐까요? 3번 항목에 보면 '자이언츠 구단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쓰시오'라는 문항에 괜히 뭐라도 적었다가 구단 본부에 불려가는 거 아닙니까?"

아직은 어린 대우의 질문에 문표가 '케헤'하고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너는 여기가 무슨 학교인줄 알아? 우리가 프로 선수지, 학생은 아니잖아? 쓰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껏 쓰면 되는 거야. 왜 다 큰 어른이 눈치를 살피고 그래?"

문표는 대우를 향해 그렇게 타박하면서도 설문지에 이름을 써놓은 후, 아무것도 쓰지 않는 모습이다.

'으음'이라는 소리로 신음하며, 고민하다가 이내 볼펜을 내려놓는다.

"나는 뭐 불만 없어. 정말이야. 나중에 문제 생길까봐 안 적는게 아니라고."

문표는 자신을 향한 대우의 게슴츠레한 눈빛에 변명하듯 그렇게 답했다.

그런데 곁에 앉은 강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의 생각을 적어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강호 후배, 뭘 그렇게 많이 적는 거야? 응? 사직 구장 체력 단련실 기구가 낡았다고? 하긴 낡긴 했지. 녹슨 것도 교체 안한지가 몇 년이 지났으니까. 벤치 프레스 등받이 패드 부분에 가죽이 벗겨져서 스티로폼이 삐져나왔는데 청 테이프를 발라 놨더라니까."

강호의 설문지를 훔쳐보며 자신 역시 사직 구장과 구단에 대한 건의 사항이 떠올랐는지 다시 볼펜을 잡는 문표.

그런 선배들의 눈치를 살피던 대우 역시 자신의 설문지에 구단에 바라는 점들을 적어나간다.

한참을 대화 없이 설문지 작성에 몰두하던 선수들은 어느새 설문지 기입을 끝내고 있었다.

그런데 단 한 명만은 여전히 설문지를 붙든 채 장문의 글을 써나가는 모습이다.

"문표 선배님. 논술시험 보십니까? 뒷장까지 쓰셨네요."

강호는 여전히 설문지를 쓰고 있는 문표의 곁으로 다가서며 말을 붙였고, 그러자 문표는 '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이라고 말하며 스스로가 적은 설문지에 놀라고 있었다.

"다 쓰셨으면 제가 감독님께 제출하고 오겠습니다."

문표의 손에서 강호에게로, 다시 대우에게로 넘어간 문표의 설문지는 나머지 세 후배들의 설문지 속에 섞여 숙소방 밖으로 이동한다.

대우가 설문지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가버린 것이다.

"아니야! 잠시만. 나 너무 많이 써버린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할 시간을 좀 줘! 반 정도는 지워야겠어."

문표는 뒤늦게 숙소 방을 나서며 대우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대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린 상황이었다.

"안 돼!"

숙소 방 밖에서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절규하는 문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 편, 선배들의 방을 돌아다니며 설문지를 수거한 대우는 27장의 설문지를 들고, 손 감독의 방을 찾았다.

"대우 네가 무슨 일이냐? 설문은 기성태 코치에게 맡겨 뒀었는데. 기 코치가 애꿎은 너한테 심부름을 시킨 모양이구나."

손 감독의 말에서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대우.

'아차! 손 감독님께 직접 올 것이 아니라 기 코치님께 갔어야 하는 건데. 내가 실수를 했네.'

후회해 봐도 늦은 것이라서 대우는 손 감독에게 다가가 수거해온 설문지를 공손히 건넨다.

손 감독은 그런 대우에게 설문지 뭉치를 받아들며 지나치듯 묻고 있었다.

"선수들 분위기는 어떠냐? 비가 온다고 나태한 모습은 아니더냐?"

대우는 선수단 막내인 자신에게 물어오는 손 감독의 말에 대답할 말을 궁리하다가, 같은 방 룸메이트인 강호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금세 대답할 말을 생각해 낸다.

"강호 선배나 문표 선배는 숙소 방에서 개인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선배들은 잘 모르겠습니다."

대우는 그렇게 자신이 아는 부분까지만 대답했다.

사실은 강호만 개인 훈련을 하고 있고, 문표는 놀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지만 그런 사실을 손 감독에게 고자질 할 수는 없었다.

"문표가 숙소 방에서 개인 훈련을 한다고? 그럴 리가. 문표 녀석이 그럴 리 없어. 네가 잘못 본 거 아니냐?"

손 감독은 잔뜩 긴장한 대우의 대답에 피식 웃으며 되묻고 있었다.

2군에서 오랫동안 봐왔던 문표를 잘 알고 있는 손 감독이라서 대우의 말을 온전히 믿기는 힘들었다.

"아....저, 제가 볼 때는 훈련 같아 보였습니다."

핵심을 찌르는 손 감독의 말에 심하게 당황하고 있는 대우.

마운드 위에서는 당차게 자기 공을 던지며 모든 코칭스태프의 신뢰 속에 1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는 그였지만, 팀의 원로이자 총 사령탑인 손 감독 앞에서는 아직 어린 청년일 뿐이었다.

"그래. 고생했다. 준비하고 있거라. 오늘 경기가 있으면 대우 너도 마운드에 오를 수 있으니까."

"네! 그러겠습니다."

손 감독의 당부에 대우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얼른 손 감독의 방을 나선다.

"휴유~"

대우는 손 감독의 방을 나와 방문을 닫은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런 대우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어?! 대우, 여기 있었구나. 네가 설문지 가져갔다며? 혹시 감독님께 직접 드린 거야?"

대우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기성태 주루코치였다.

그는 선수들의 방에 설문지를 수거하러 갔다가 이미 대우가 모든 설문지를 수거해 갔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 호텔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아, 예. 제가 모르고 감독님께 가져다 드렸습니다. 제가 실수한 건가요?"

대우는 기 코치의 물음에 또 다시 당황하며 묻고 있었다.

그러자 기 코치는 동네 형과 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 네가 나대신 수고가 많았어. 이제 올라가서 쉬도록 해. 오늘 비오는 것 보니까 경기는 우천 취소될 것 같은데, 몸 관리 잘 하고."

"넵."

대우는 기 코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 후, 얼른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그런 대우를 일별한 기 코치는 손 감독의 방문을 두들긴다.

"감독님, 저 기성태 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기 코치는 손 감독의 허락이 떨어지자 방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선다.

손 감독은 그런 기 코치에게 마침 잘 왔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려다보던 설문지를 그에게 건넨다.

"기 코치. 호텔 프런트에 말해서 이 설문지들 구단 사무실에 팩스로 보내달라고 해."

손 감독의 지시에 기 코치는 양손으로 설문지를 받아들며 되묻게 된다.

"구단 사무실이면 어디로 보내면 되겠습니까? 운영 팀입니까?"

"아니, 기획실에 보내면 돼. 수신자는 기획실 허동준 실장이니까 팩스 보내고 난 뒤에 허 실장한테 전화 한 통 해주고."

손 감독으로부터 상세한 지시를 받은 기 코치는 다시 손 감독의 방을 나선 후, 호텔 프런트로 이동한다.

그리고 잠시 후, 구단 본부 기획실에는 서울에서 보낸 팩스들이 연달아 도착하고 있었다.

그것을 챙겨든 기획실의 박소연 대리는 팩스로 도착한 설문지 뭉치를 들고는 허동준 실장의 자리로 향했다.

"실장님. 선수단에서 팩스가 왔는데요. 발신자는 손성조 감독이고, 수신자는 실장님 성함으로 되어있습니다."

"응? 손 감독이 팩스를 보냈다고? 무슨 팩스를...?"

"여기 있습니다."

허 실장은 손 감독이 갑자기 보낸 서류에 의문을 표시하다가 박소연 대리가 건넨 서류 뭉치를 받아들고는 '아!'하는 탄성을 내뱉는다.

'그 때 회식 자리에서 손 감독이 말한 게 이거였구나.'

허 실장은 손 감독이 보낸 팩스를 확인하고 나서야 며칠 전, 자이언츠 선수단의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린다.

그 때 허 실장 본인은 지정만 사장의 개혁 의지를 손 감독에게 대신 전달하며 신나게 소고기를 먹고 있던 중이었다.

손 감독은 그런 허 실장을 응시하다가 이내 자신의 의견 하나를 꺼냈었다.

"그러면 선수단에 필요한 것을 구단에서 지원할 의사가 있다는 말입니까?"

손 감독의 표정이나 어조는 진지했지만, 그 때 허 실장은 기분이 좋은 상태여서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했었다.

시즌 중이라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선수들과는 다르게 허 실장 본인은 선수가 아니지 않은가.

회식 자리에서 유일하게 술을 마신 사람은 허 실장이었다.

"그럼요, 그럼요. 그게 프런트의 역할 아닙니까? 지정만 사장님 체제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할 겁니다. 저희 기획실에서도 선수단에 필요한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도록 할게요."

허 실장은 겨우 소주 두 잔에 기분이 업 되어서 손 감독을 향해 공수표를 남발했었다.

그런 허 실장의 말에 손 감독은 '으음'하는 소리와 함께 턱을 쓰다듬더니 재차 말을 깨냈었다.

"나는 딱히 필요한 게 없어요. 선수단의 중심이 되는 것은 코칭스태프가 아니라 바로 선수들이에요. 선수들에게 구단에 건의할 것이 있으면 요청해라 말해둬도 되겠습니까?"

그 때 손 감독은 허 실장에게 눈빛을 빛내며 그렇게 물었었다.

허 실장은 기분에 취해 손 감독의 물음에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럼요! 선수들이 편해야 성적도 오르는 거죠. 필요한 게 있으면 전화가 되었든 이메일이 되었든, 뭐 아니면 설문지 같은 걸 작성해서 기획실로 팩스를 보내셔도 되고요!"

허 실장은 기분이 업 되어 그렇게 큰 소리쳤었다.

그 직후, 문표가 조심스레 다가와 건넨 말에 손 감독과 나눈 대화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기획실장님. 백강호 선수가 기부 의사가 있다고 합니다.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문표가 웃음기 띤 얼굴로 건넨 말에 허 실장은 반색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요? 우리 백 선수가 그런 마음이 있으면 구단에서도 나서야죠. 지금 당장 가봅시다!"

허동준 실장은 회식 자리의 기억을 모두 떠올리고는 혀를 길게 빼어 문다.

'아아~ 내가 그 때 너무 업 됐구나. 손 감독이 진짜로 설문지를 보낼 줄이야. 너무 심한 요구 사항이 있으면 어떡하지?'

허 실장은 척 보기에도 빽빽이 적혀 있는 선수들의 설문지를 보고는 그 내용을 읽기가 부담스러워진다.

'손 감독에게 큰 소리는 쳐놨는데 기획실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으면 손 감독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가 있겠지. 그럼 나를 거치지 않고, 다이렉트로 사장님께 항의할 수도 있는 거야. 손 감독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허 실장은 구단 내에서 떠도는 손 감독에 대한 소문을 떠올리고는 입술을 질끈 깨문다.

그리고는 꼬박 몇 시간 동안 선수들의 설문지를 모두 읽은 후, 그 내용을 간추려 몇 장의 보고서와 함께 사장실로 향한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선에서 선수들의 설문 내용을 처리하고 싶었지만, 일부 선수들의 건의 내용 중에 기획실에서 이번 달에 감당할 수 있는 예산 내용을 초과한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지정만 사장에게 보여줄 보고서를 쓰게 된 것이다.

'뭐, 사장님도 선수단을 지원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하셨잖아. 내가 괜히 위축될 필요는 없지.'

허 실장은 지 사장이 수십 차례나 강조했던 말을 떠올리며 보무도 당당하게 사장실로 향한다.

그리고는 비서인 김유진과 인사를 나눈 후,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 후, 지정만 사장의 괄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당장 들어와!!!"

사장실 안에서 들려오는 분노 섞인 목소리에 자신이 또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허동준 실장.

그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진다.

'아 놔~ 오늘은 또 뭔데? 내일 올 걸 그랬나?'

허 실장은 당당히 사장실로 향했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 보지만, 이미 늦은 것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사장실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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