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61화 (160/335)
  • 0161 / 0335 ----------------------------------------------

    꽃 한 다발

    다음날이 되어 강호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경기장에 일찍 출근해 기 코치와 함께 훈련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전부터 흐렸던 하늘에서 한, 두 방울씩 비가 오기 시작하자 두 사람은 훈련을 멈추고, 실내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오늘 예보에서도 비가 온다고 했으니까, 경기는 취소될 수도 있어. 오늘은 실내 훈련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자."

    기 코치는 미리 일기예보를 확인한 것인지 강호를 향해 오늘 경기가 우천 취소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어제 형과의 일에 대한 생각으로 생각이 복잡했던 강호는 미처 일기예보를 챙겨보지 못해 오늘 비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기 코치에게서 처음 듣게 되었다.

    그런데 일기예보를 보지 않은 선수가 강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 코치와 함께 실내 훈련에 전념하고 있던 강호는 오후 늦은 시간에 출근한 문표가 허리를 두들기며 한 말에 실소를 흘리게 된다.

    "아이고, 허리야. 날이 왜 이 모양이야? 왜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 다시 오다가 내리다가, 또 그치고 난리야? 나는 이렇게 애매한 날씨가 제일 싫어. 이런 날씨면 경기 전에 우천 취소되는 게 아니라 경기 시작하고 몇 이닝 뛰고 있을 때 꼭 취소된단 말이야. 그럼 그날 하루는 통째로 날리는 거야. 경기는 했는데 기록 인정은 안 되고, 몸은 비에 젖어서 더 피곤하고. 에라이!"

    문표는 허리가 쑤시다는 듯이 두들겨 보이며 노인네 같은 말투로 불만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 불만의 주체가 사람이 아닌 하늘이다 보니 딱히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잠시 대꾸할 말을 찾아보던 강호가 문표를 향해 다가서며 갑자기 든 생각을 꺼낸다.

    "그럼 쉬시지 그러셨어요? 오늘 라인업 보니까 선배 이름이 타순에서 빠졌던데요. 지명타자 자리에는 중석 선배가 들어갔습니다."

    "뭐? 어제 병살타 좀 쳤기로서니. 그 새 내 이름이 빠져버렸어? 지금 우리 팀에서 나 아니면 누가 3번 타순에서 강호 후배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겠어? 안 그래? 나를 대체할 3번 타자가 없잖아."

    문표는 자신이 3번 타순에서 제외됐다는 것에 억울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강호를 향해 토로한다.

    그런 문표의 등 뒤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없긴 왜 없어? 진택이도 있고, 인태도 있는데 문표 네가 그런 타격으로 3번 타순을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

    문표는 등 뒤에서 들려온 거친 목소리에 어깨를 움찔하는 모습이다.

    2군에서 익히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는 바로 손 감독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하, 감독님. 언제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저는 그럼 훈련하러 가겠습니다."

    "가긴 어딜 가? 문표 너 혼자서 되먹지도 않은 방식으로 타격 훈련을 하니까 밸런스가 깨지는 거야. 파워도 없는 놈이 자꾸 장타를 의식하니까 헛스윙이 나오는 거 아냐? 그 좋은 선구안 능력은 국 끓여먹은 거야?!"

    손 감독은 그렇게 문표를 타박하며 자신이 실내 훈련장을 찾은 이유를 밝힌다.

    "문표 너는 오늘부터 나하고 타격 훈련에 들어가게 될 거야. 각오해둬!"

    "윽! 그냥 저 혼자 하면 안 될까요? 요즘 어퍼 스윙에 감이 붙고 있는데 말입니다."

    "어퍼 스윙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감이 붙었다는 놈이 골프 스윙을 하고 앉아 있어? 얼른 준비해."

    "넵!"

    문표는 계속되는 손 감독의 질타에 결국 차렷 자세로 기합 든 대답을 하고 있었다.

    특유의 친화력과 융통성을 갖춘 문표지만, 손 감독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문표가 자신의 지시를 따라서 장비를 챙겨드는 모습을 확인한 손 감독은 이번에는 강호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문표를 바라볼 때와는 다른 따뜻한 눈동자를 느낄 수 있었다.

    "강호, 허리는 괜찮은 거냐? 어제 보니까 스윙할 때 외복사근 쪽에 무리가 가는 스윙을 하던데. 그렇게 너무 갑자기 스윙을 끌어당기면 허리 부상이 올 수도 있어."

    손 감독은 어제 강호가 때려낸 홈런 장면에서 그가 허리 부상을 입지나 않았을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강호는 자신에게로 다가와 허리나 옆구리 쪽 부상이 있나 살펴보는 손 감독의 행동에 순간 대꾸할 말을 잃고 만다.

    그래서 그의 곁에 있던 기 코치가 대답을 대신했다.

    "강호 허리는 문제없습니다. 오늘 훈련에서 이상 증세는 따로 없었습니다."

    강호를 대신한 기 코치의 대답에 손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기 코치에게 지시를 해두는 것을 잊지 않는다.

    "혹시 모르니까, 강호를 데리고 엑스레이 촬영을 해둬. 그리고 택근이나 인태, 대우 녀석도 함께 찍어봐. 녀석들도 미리부터 체크해둘 필요가 있어. 윤 코치에게는 내가 미리 말해둘 테니까."

    손 감독은 기 코치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다.

    그가 말하는 윤 코치는 컨디셔닝 총괄 코치인 윤영찬을 말하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사직구장에 들여온 장비 중에 선수들의 엑스레이 촬영을 위한 엑스레이 기계가 구비되어 있었다.

    컨디셔닝 코치에게 미리 요청만 해둔다면 구단 지정 병원에서 방사선 담당의를 파견 보내 엑스레이 촬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구단에서 장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의사의 지시 없이 의료행위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윤 코치에게 미리 요청할 필요는 있었다.

    이 또한 지정만 사장 체제에서 달라진 자이언츠의 비상 의료체계 중 하나였다.

    "알겠습니다. 담당의가 오는 대로 곧바로 촬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기 코치가 대답하자, 손 감독은 '그래, 꼭 그렇게 해둬'라고 대답한 후 울상을 짓는 문표를 이끌고 두 사람의 시선에서 사라진다.

    "강호야, 들었지? 감독님 지시대로 훈련은 이쯤하고, 엑스레이 촬영부터 해야겠다."

    기 코치의 말에 강호는 고개를 끄덕인다.

    구단의 총 사령탑의 지시가 있었는데 그것을 수행하지 않고, 개인 훈련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잠시 후, 구단 지정 병원에서 파견된 방사선 전문의와 촬영을 끝낸 강호는 아무런 이상 소견이 없다는 소견서를 손 감독에게 제출하고 나서 다시 정상적인 훈련에 돌입한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라이온즈와의 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진행 중에 있었다.

    따악.

    타격음과 함께 강호가 그라운드를 달리기 시작한다.

    지금은 3회 초, 자이언츠의 수비 상황.

    유격수 수비를 보고 있던 강호는 또 한 번의 타격음에 타구 방향으로 대쉬를 감행한다.

    터업.

    비에 젖은 타구가 글러브에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강호는 곧장 1루수 김상훈을 향해 공을 뿌린다.

    상대 타자가 라이온즈의 발 빠른 타자인 2번 타자 구자겸이어서 수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구자겸의 주력을 고려한다면 타구를 맨손으로 잡아 송구하고 싶었지만, 그라운드를 적시고 있는 빗줄기로 인해 위험한 수비는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라운드가 잔뜩 젖었어. 이럴 때 맨손 캐치를 하게 되면 오히려 잡을 수 있는 타구를 뒤로 빠뜨릴 확률이 커. 안전한 플레이 답이야!'

    강호는 서서히 굵어지는 빗줄기로 인해 빠르지만 불확실한 수비보다는, 조금은 느려도 확실한 수비를 선택하는 모습이다.

    쓰고 있는 선수모 모자 창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너머로 보이는 1루심의 판정을 기다린다.

    "세이프!"

    아쉽게도 1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이로써 1회와 2회 상황에 이어 3회 역시 선두타자에게 출루를 허용하고 말았다.

    타구 방향이 어렵지 않았던 까닭에 호수비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인데, 조금은 결정을 후회하게 된다.

    그런 강호에게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박진웅 투수의 격려가 들려온다.

    "강호야, 잘 했어."

    박진웅 투수는 비록 아웃카운트를 잡아내지는 못했지만, 몸을 날린 강호의 수비를 칭찬하고 있었다.

    94년생, 아직은 26살에 불과한 박진웅 투수지만 서서히 중견 투수로서의 모습을 갖춰가는 모습이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 제구력이 말을 듣지 않아 벌써 4실점을 한 상황이지만,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오히려 강호를 위로하고 나선다.

    '다음번엔 아이템을 써서라도 막아내야겠다. 진웅 선배가 저렇게 말하니까 더 미안하네.'

    강호 본인은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진웅의 위로에 미안한 마음이 생겨난다.

    그래서 라이온즈의 다음 타자인 바티스타가 유격수 방면의 타구를 때렸을 때는 그 타구가 정면 타구임에도 호수비 아이템을 사용해 박진웅 투수를 돕고 있었다.

    혹시라도 쏟아지는 빗줄기에 실책을 범할까봐 염려되었던 것이다.

    "아웃!"

    2루심과 1루심이 연속해서 아웃판정을 내린다.

    정면 타구를 맨손으로 캐치한 강호의 호수비에 1루 주자 구자겸과 타자주자 바티스타가 병살타 처리가 된 것이다.

    너무도 깔끔한 6, 4, 3 병살타에 선발 투수인 박진웅이 강호를 향해 박수를 보내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잘 했어. 강호야! 땡큐~"

    박진웅은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으로 감사 표시를 보낸다.

    그러나 아직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상대팀 4번 타자인 최형수 선수가 타석에 올라서고 있는 것이다.

    재작년 시즌부터 기량이 하락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던 최형수 선수는 올 시즌 들어 장타력이 전성기 때만큼 회복되며 벌써 19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있었다.

    홈런 타이틀 경쟁에서 다소 뒤쳐져 있던 그가 벌써 홈런 6위에 올라있었던 것이다.

    박진웅 투수로서는 제구력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에서 맞이한 위기 상황에 크게 날숨을 내쉬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덕 아웃에서 지켜보던 김민철 수석 코치가 안타까운 듯이 혀를 찬다.

    "이럴 때는 차라리 우천 취소되는 게 좋을 텐데요. 선수들도 고생이고, 특히 투수들의 체력 저하가 너무 심합니다. 우천 취소하기에는 비가 많이 내리는 것도 아니라서 심판들도 경기를 중단하기가 애매한 모양입니다. 빗방울이 조금만 더 굵어지면 좋겠는데요."

    김민철 수석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손 감독에게 말하고 있었다.

    마운드 위에 홀로서서 잡히지 않는 제구 포인트를 잡기 위해 애쓰는 박진웅 투수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투수 코치가 아님에도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런 김 수석의 말을 들은 손 감독은 오히려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경기가 좋지 못한 상황이기는 해도 그건 상대 팀도 마찬가지야. 우리 팀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으면, 라이온즈 선수들도 같은 상황이라는 뜻이야. 불평할 필요 없어. 진웅이가 조금씩 제구를 잡아가고 있으니까 지켜보도록 하자고."

    손 감독은 냉정한 목소리로 김 수석의 말에 대꾸하면서도 근처에 있던 여민석 투수코치에게 손짓해 지시내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네, 감독님. 불펜 가동 시킬까요?"

    여 코치는 손 감독의 손짓에 상황을 파악하고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손 감독은 여 코치의 물음에 짧은 말로 답했다.

    "진성이하고, 대우를 준비시키도록 해."

    "대우를요? 팀이 지고 있는 상황인데 차라리 영명이나 준식이를 준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준식이는 안 돼. 오늘 올리면 3연투잖아. 어제 경기에서 공을 많이 안 던졌다고 해도 무리를 시킬 필요는 없어."

    여 코치의 물음에 손 감독은 자신의 최초 의견을 관철시킨다.

    "진성이하고, 대우를 준비시키되 몸 상태를 천천히 끌어올리라고 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네, 그러겠습니다."

    손 감독의 지시에 여 코치는 그의 의도를 간파하고는 인터폰을 들어 불펜에 감독의 지시사항을 전달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경기는 계속되어 어느새 5회 말 상황.

    손 감독은 5회 말 상황에서 나온 1사 주자 1, 3루의 기회에 9번 타자인 황인태를 대신해서 대타로 문표를 선택하고 있었다.

    "문표, 오늘 연습한대로만 스윙해. 알겠지?"

    손 감독은 대타로 타석에 오르는 문표에게 한 가지 지시 사항만을 전달한 채 문표의 등을 두드린다.

    문표는 그런 손 감독에게 '맡겨주십시오'라고 힘 있게 대답하며 타석으로 나선다.

    궂은 날씨 속에 양 팀 투수 모두 고전하며 5회 말까지 양 팀 점수는 7대 5상황.

    라이온즈가 두 점 차로 앞선 상황에서 대타 최문표가 타석에 오른다.

    그는 바뀐 투수인 권오훈 투수와 6구째로 이어지는 끈질긴 승부를 벌이다 마음을 굳힌 듯이 7구째 공에 자신의 스윙을 가져간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 속에 타석에서 한 번 껑충 뛰어오른 문표가 힘찬 발걸음으로 1루 베이스를 향해 걸음을 뗀다.

    홈런이었다.

    문표의 타구는 내리는 빗방울을 뚫어내고 사직 구장의 좌측 담장을 넘기는 쓰리 런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문표의 한 방으로 8대 7의 역전을 만들어낸 것이다.

    손 감독의 대타 카드가 제대로 적중하고 있었다.

    "잘했다, 문표!"

    손 감독은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문표의 등을 두들기며 근처에 있던 여민석 투수 코치에게 곧바로 지시를 내린다.

    4회 초에 교체된 박진웅 투수 대신에 가진성과 권대우를 소모한 상황.

    손 감독은 팀이 끌려가던 상황에 나온 문표의 역전 쓰리 런을 확인한 즉시 다음으로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의 이름을 떠올린다.

    "박상현 준비시켜. 표성태도 몸을 풀라하고."

    손 감독의 말에 투수 코치인 여 코치가 바빠진다.

    따라서 불펜 역시 바빠졌다.

    손 감독은 오늘 경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총력전을 벌일 생각이었다.

    내일은 휴식 일인 월요일인 까닭에 투수를 아낄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연투 중인 투수를 3연투 시키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만은 어기지 않는 모습이다.

    '구름의 탁기가 진해진 걸 보니 빗방울 더 거세질 거야. 5회 말만 지나고, 1점 차 리드만 지켜낸다면 강우콜드게임으로 경기를 가져올 수 있어.'

    침착하게 경기 내용과 날씨를 살피던 손 감독은 곧 주심이 강우콜드게임을 선언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6회 초가 되었을 때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고 6회 말, 강호가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주심은 더 이상 경기를 속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양 팔을 펼쳐 보이며 경기를 중단시키는 모습이었다.

    강호는 타석에 선 채 잔뜩 젖은 유니폼을 정돈하며 경기가 다시 속행되기를 기다렸지만, 주심은 강호에게 덕 아웃에 들어가서 대기할 것을 지시한다.

    그 후 구단 직원들이 빠르게 나와 마운드와 루상에 방수포를 덮고 있었고,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주심은 자이언츠의 강우콜드게임을 선언하고 있었다.

    양 팀 점수는 문표의 쓰리 런으로 인해 8대 7. 자이언츠가 앞선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승리는 어제 경기를 7대 8로 패한 것을 고스란히 되갚아주는 점수 차가 되면서, 동시에 팀 전적을 35승 35패. 승패 마진을 정확히 5할대로 맞추는 승리로 기록되게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쏟아지는 빗줄기에 난타전으로 진행된 경기를 치르느라 지쳐버린 선수들은 승리의 의미를 곱씹기도 힘들 정도로 지친 상태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비가 와서 덥지는 않았는데 너무 치열한 경기였어. 오늘은 경기 후 개인 훈련 없이 일찍 집에 가서 쉬어야겠어.'

    강호 역시 지치기는 마찬가지라서 그래도 팀이 승리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강호와 선수들은 미처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지만, 이 승리로 자이언츠는 4월 27일 이후 근 두 달 만에 5할 대 팀 승률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TV중계로 경기를 지켜보던 자이언츠 팬들이 크게 기뻐하게 되었고, 지정만 사장의 주도 하에 언론은 연신 자이언츠의 5할 승률 회복을 기사화하고 있었다.

    한편 강호의 경기를 항상 챙겨보던 친 형, 강수.

    그는 오늘만큼은 동생의 경기를 볼 수 없었다.

    김해 현장에서 일하는 와중에 잠시 짬을 내어 도착하게 된 장소. 그 곳에서 강호에게 받은 2만원을 사용한 강수는 먹먹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강수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추모의 집.

    흔히들 납골당으로 부르기도 하는 영묘원에 들어선 강수는 강호가 준 돈으로 산 2만 원짜리 조화를 든 채로 엄마의 납골함이 있는 곳으로 다가선다.

    그리고는 기존에 꽂아 두었던 조화를 빼내고는 강호의 돈으로 산 조화를 대신해서 꽂아 놓는다.

    “오늘도 혼자 왔어요.”

    강수는 듣는 이 없는 납골함 앞에 서서 엄마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엄마의 영정 사진 옆에는 아직 어린 동생들과 고등학생인 강수 본인, 그리고 엄마가 환한 미소를 지은 채로 찍은 사진이 함께 걸려 있었다.

    강수는 문득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야구부를 뛰쳐나와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강호가 자신에게 절규했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 때 강수는 본인의 인생을 포기하려는 동생에게 이렇게 소리쳤었다.

    "강호야, 형 말 잘 들어! 변하는 건 없어! 내가 너하고 진주는 반드시 책임질 거야! 알겠어? 형이랑 약속해. 다시는 막노동 같은 거 안 한다고. 끝까지 야구하는 거 포기하지 않겠다고. 빨리 약속해!!"

    눈물을 흘리며 소리치는 자신의 행동에 놀란 표정을 짓던 고등학생의 강호.

    강호는 그 때 흔들리는 눈빛으로 이렇게 절규했었다.

    “좋아. 해볼게! 끝까지 한 번 해볼게! 대신 내가 프로야구 1군 무대에 올라서기 전까지는 엄마가 계신 납골당을 절대 찾지 않을 거야. 엄마 사진을 보는 일은 없을 거야.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되니까!!”

    그 때의 강호는 동생을 대신해 본인 인생을 희생하려는 형에게 치기어린 목소리로 소리쳤었다.

    3남매 중에 누구보다도 엄마를 믿고 따르던 동생 강호.

    영정 사진 옆에 놓인 가족사진만 보더라도 엄마의 품에 안겨 해맑게 미소 짓고 있는 강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 역시 힘든 삶 속에서도 자신을 웃게 만들어주는 둘째 아들에게 애정을 쏟고는 했었다.

    네 명의 가족 중에 강호와 엄마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다.

    강호는 1군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엄마의 사진조차 보지 않을 것이라 형에게 맹세했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긴 시간동안 지켜져 드디어 올해, 강호가 1군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되었지만, 강호는 1군 선수가 된 뒤에도 엄마를 모신 납골당에 발걸음하지 못하고 있었다.

    형은 그런 동생의 마음을 이해했다.

    ‘겁이 나는 거겠지. 엄마의 사진을 다시 보는 순간 독하게 마음먹었던 각오가 무너져 내릴까봐. 눈물이 날까봐.’

    형은 고집 센 동생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래서 돌아가신 엄마를 찾지 않는 동생들을 대신해서 한 달에 한 번은 꼭 엄마를 모신 추모의 집을 찾고는 했다.

    강수는 다시 볼 수 없게 된 엄마의 모습을 영정 사진으로나마 눈에 담으며 동생들을 대신해 엄마에게 말을 전한다.

    "엄마, 우리 강호. 잘 보살펴 주세요."

    강수는 먹먹한 가슴을 참아내며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그가 추모의 집에서 발걸음을 돌렸을 때, 엄마의 영정 사진 근처에는 강호가 건넨 2만원으로 산 조화 꽃 한 다발만이 동생들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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