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60화 (15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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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다발

프런트 직원에게 작성한 라인업을 건낸 뒤 훈련 중인 선수들을 둘러보던 손성조 감독, 그런 손 감독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손 감독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를 향해 마주 다가선다.

"감독님, 선수들을 보시려는 겁니까? 혹시 살피고 싶으신 선수가 있으신 겁니까?"

친근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 오는 사람은 강호와 함께 훈련에 전념하고 있던 주루코치 기성태였다.

그는 강호와 함께 훈련에 전념하고 있다가 경기장과 훈련장 등을 돌아보던 손 감독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그를 쫓아온 것이었다.

"강호 훈련은 어떻게 하고 온 거야?"

손 감독은 인사를 건네 오는 기 코치에게 다짜고짜 강호에 대해 물어본다.

"하하, 제가 곁에 붙어있지 않아도 이제 강호 혼자서 훈련할 정도는 됩니다. 이해력이나 응용력이 좋은 녀석이라 서요."

웃음 띤 얼굴로 대답하는 기 코치의 말에 손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확인 차 묻고 있었다.

"훈련이 완성된 게야? 요즘 들어 강호 녀석의 플레이가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기는 해. 기 코치, 자네가 볼 때는 어때?"

"거의 완성 단계입니다. 사실 이런 부류의 훈련이 시간이 많이 필요한 훈련이 아니라 선수 보인의 습관화 과정이 중요한 거라 서요. 이제 강호 본인에게 달려있다고 봐야할 겁니다."

기 코치의 대답에 손 감독은 '강호에게 달려있다면 알아서 잘 해줄 거야'라고 답하며 강호에 대한 신뢰를 내보인다.

기 코치는 그런 손 감독의 말에 웃음 지으며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가 손 감독에게 달려온 이유는 이 질문 하나를 던지기 위함이었다.

"이제 감독님께서 직접 지도하시겠습니까? 강호 녀석도 최소한의 준비는 끝난 것 같습니다."

기 코치는 조심스럽게 손 감독의 의중을 묻고 있었다.

과거 귀국 후, 구단과의 계약이 끝난 후 손 감독을 찾았던 자리에서 기 코치는 강호를 직접 지도하고 싶어 하는 손 감독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강호의 부상 방지를 위한 주루 훈련이 끝나가는 시기를 맞춰 의사를 묻고 있는 것이다.

"아니. 거의 완성 단계라고 했지? 그럼 자네가 100% 만족할 때까지 강호의 플레이를 완성시켜 주게. 강호 녀석의 거친 플레이를 완전히 제거하는 게 먼저야.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강호가 다치지 않는 거야. 훈련은 그 다음이고."

기 코치는 손 감독의 대답에서 그가 강호를 한, 두 해 활용하고 말 선수로 여기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백강호'라는 선수를 하나의 원석으로 보고, 천천히 그 원석을 완성해나가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욕심이 나시는 거구나. 백강호라는 선수를 제대로 연마시켜서 끝을 보고 싶으신 욕심. 과연 어디까지 성장시킬 수 있는지가 궁금하신 거야.'

기 코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손 감독이 강호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는 말은 아직 기 코치 본인이 강호에게 해줄 수 있는 지도나 조언이 많이 남아있다는 뜻도 된다.

'나도 개인적으로 욕심이 나긴 해. 내가 대학원에서 배운 것들과 미국, 자메이카를 자비 연수로 다녀오면서까지 배운 것들을 강호에게 어디까지 적용시킬 수 있는 지가. 감독님의 말씀대로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강호에게 전수해보자!'

기 코치는 100%를 전수하라는 손 감독의 말에 눈빛을 빛내 보이고는 손 감독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다시 강호의 곁으로 돌아간다.

"강호야, 오늘부터 훈련 코스를 몇 개 추가해보자. 괜찮겠지?"

강호는 갑자기 의욕적으로 보이는 기 코치의 물음에 의문을 드러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힘 있게 대답한다.

"당연하죠. 그럼 지금 당장 시작하실까요? 새로운 훈련 코스 말입니다."

자신이 내비친 의욕적인 모습에 그보다 더한 의욕을 내보이는 강호. 기 코치는 그런 강호와 마주 웃어 보인 후, 곧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벌어지는 라이온스와의 홈경기는 시작되었고, 첫 번째 경기는 자이언츠의 9대 4 승리로. 두 번째 경기는 아깝게도 7대 8로 패하며 시리즈 전적을 1승 1패로 나눠 갖는다.

자이언츠는 패한 두 번째 경기에서도 끝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모습을 보이면서 홈 팬들의 열띤 성원을 받을 수 있었다.

강호는 두 경기에서 10타석 8타수 동안 홈런 하나를 비롯해 4안타를 때려내며 4타점, 4득점으로 4번 타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거기에 도루 또한 2개를 추가하며 이제 시즌 도루는 53개까지 늘어나 있었다.

그럼에도 팀이 경기에서 패해 집으로 귀가하는 강호의 발걸음은 가볍지만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골목 어귀, 홈경기인 사직구장 경기를 할 때면 언제나 걷게 되는 그 길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을 마주하는 강호.

"강호야, 수고했다! 오늘 경기는 아까웠어."

강호를 향해 반갑게 말을 건네며 백 팩을 대신 들어주는 사람은 친 형인 강수였다.

강수는 오늘 경기의 승패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으며 다치지 않고 돌아온 강호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배고프지, 강호야? 형이 밥 차려놨으니까 같이 가서 먹자."

강수는 강호가 메고 있던 커다란 가방을 대신 들며 함께 걸음을 옮긴다.

두 형제가 우애 좋게 집으로 돌아온 후, 강호는 형과 단 둘이 마주하게 된 식사 자리에서 품속에서 꺼낸 물건 하나를 식탁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형을 향해 조용히 그 물건을 내밀었다.

"통장을 왜 나한테 줘? 무슨 통장인데? 네 월급 통장이야?"

강수는 밥을 먹다말고 동생이 건넨 통장에 관심을 보인다.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동생이 건넨 통장을 펼쳐 든다.

그리고는 마지막 기입란에 기록된 금액을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뜨는 모습이다.

"2억 정도 돼. 원천징수 세 3.3% 떼니까 2억이 좀 안 되더라고."

형이 통장을 펼쳐들자 강호는 형이 오해하지 않도록 부연설명을 더한다.

"구단에서 나를 최저 연봉으로 부려먹는 게 미안했나봐. 프로모션 거래하던 스포츠 용품 업체들하고 모델 계약을 맺게 해주더라고. 1년간 계약을 유지하는 대가로 받은 돈이야."

강호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 후, 통장에서 시선을 떼고 자신을 바라보는 형과 시선을 마주한다.

형인 강수는 잠시 동안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이 통장을 보여준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강호는 그런 형을 위해 입을 뗀다.

"형이 맡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당장 돈 필요한 데도 없고. 쓸데도 없잖아. 형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사용해도 좋고, 그냥 가지고 있어도 되고."

강호는 며칠 동안 고민하던 말을 어렵사리 꺼낸다.

오늘 통장에 계약금 전액이 입금된 것을 확인한 후, 진작부터 이 돈을 형인 강수에게 줄 생각을 가지고 있던 강호.

액수가 작은 돈은 아니지만, 형인 강수가 동생들을 위해 희생한 인생을 생각한다면 큰돈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지금은 형한테 줄 수 있는 게 이런 거 밖에 없으니까. 이 정도라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강호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걱정되는 것은 형이 혹시라도 이 돈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강호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네가 2군에서 힘들게 고생했던 대가를 이제야 조금씩 받는 건데, 그걸 왜 나를 줘?"

형은 표정을 굳힌 채 묻고 있었다.

강수는 동생인 강호가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에는 기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그 돈을 자신에게 주려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안색을 굳힌다.

"나 이렇게 많은 돈 필요 없다, 강호야. 작기는 하지만, 내 이름으로 집도 샀고, 먹고 사는데 지장 없을 정도로 돈을 벌고 있으니까. 네가 처음으로 받은 큰돈인데 너 쓰고 싶은데 써."

형은 강호가 건넨 통장을 돌려주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항상 선량하고 모범적인 형이지만,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고집불통이 된다는 사실을 강호 또한 알고 있었다.

'나도 그러니까.'

강호 본인이 고집이 센 이유도, 그리고 동생인 진주가 오빠들의 만류에도 자신의 인생을 찾아 외국으로 떠나버린 고집도, 모두 가족 내력이었던 것이다.

강호는 문득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직 대학생이었던 형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 강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핑계로 야구를 그만두려 했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어머니까지 돌아가시자 더는 야구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호야, 진주야. 내 말 잘 들어! 어머니는 돌아가셨어도 변하는 건 없어. 내가 아버지, 어머니의 빈자리를 모두 채워줄게. 너희들은 너희 인생을 살아. 절대로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 내가 모두 해결할 테니까!"

그 때 형, 강수의 나이는 고작 22살이었지만 형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장학금으로 다니던 대학마저 박차고 나와 생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강호는 그런 형이 안쓰러워 야구부를 몇 차례나 뛰쳐나와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판으로 향했지만, 다시 형의 손에 이끌려 야구부로 돌아가야만 했다.

"강호야, 형 말 잘 들어! 변하는 건 없어! 내가 너하고 진주는 반드시 책임질 거야! 알겠어? 형이랑 약속해. 다시는 막노동 같은 거 안 한다고. 끝까지 야구하는 거 포기하지 않겠다고. 빨리 약속해!!"

그 때의 형은 살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내비치며 동생에게 절규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형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려는 동생을 붙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여동생인 진주는 그런 오빠들의 비참한 모습과 자신의 처량한 인생을 원망하며, 20살이 되자마자 한국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그 때 형이 잡아주지 않았으면 지금의 나도 있을 수 없어. 반칙처럼 찾아온 프리마켓 기회도 놓치고 말았을 거야. 야구 자체를 포기했을 테니까.'

강호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기회가 다른 누구도 아닌 형이 자신에게 마련해준 기회라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형이 본인의 인생을 포기하면서까지 만들어준 기회를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고집인 센 편이지만, 형보다는 센 게 아니야. 형이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형을 바라보는 강호의 생각이었다.

강호 본인은 형이 지켜준 덕분에 인생을 포기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형인 강수는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본인의 인생을 포기하는 결정을 했었다.

그런 형의 고집을 자신이 꺾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 사실을 잘 아는 강호였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묻게 된다.

"형, 나는 형이 이 돈을 받아줬으면 좋겠어. 형이 당장 쓸데가 없으면 이 돈으로 호주에 있는 진주를 데려올 수도 있는 거잖아."

강호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 금기시 되던 동생, 진주의 이름을 꺼내었다.

강호가 형을 설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바로 진주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진주가 돈이 없어서 호주에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진주가 돈 때문에 고집을 꺾을 것 같아? 나는 절대 아니라고 본다."

강수는 단호하게 대꾸하며 결국 강호가 내민 통장을 완강하게 강호의 앞 쪽으로 밀어낸다.

강호는 별 수 없다는 듯이 통장을 자신의 품속으로 다시 집어넣는다.

하지만 형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아쉬움이 크게 자리 잡는다.

형은 그런 강호의 얼굴을 살피더니 피식 웃음 지으며 입을 연다.

"네가 나한테 뭔가 주고 싶으면, 내가 받고 싶은 게 있어."

2억이라는 큰돈을 거절한 형은 아쉬워하는 강호에게 말을 꺼내고 있었다.

받고 싶은 것이 있다는 형의 말에 강호는 반색하며 묻게 된다.

"뭔데, 형? 차 바꿔줄까? 전에 보니까 차도 오래 되서 많이 낡았던데, 내가 새 차로 바꿔줄게."

강호는 형에게 꼭 필요해 보이던 새 차를 구입해줄 생각에 마음이 부푼다.

드디어 형에게 해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생겼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형인 강수는 그런 강호의 기대와는 다른 대답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차는 1.5톤 화물트럭인데 새 차든 중고차든 뭐가 중요해? 짐만 잘 실어 나르면 되는 거지. 새 차는 필요 없어."

강수는 우선 강호의 제안을 거절한 후 진짜 자신이 바라는 한 가지를 말한다.

형의 바람을 듣게 된 강호는 순간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형,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거야?'

형인 강수의 말을 처음 들은 강호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형의 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오해를 풀 수는 있었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이날 형이 했던 부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2억의 큰돈이나 새 차를 마다한 강수가 했던 말은 그처럼 의외였던 것이다.

"나 2만원만 줘. 네가 직접 번 돈 2만원이면 돼.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것이 강수가 건넨 부탁이었다.

2억 원의 거액을 거절하고 강호에게 단돈 2만원을 받고 싶다 말한 형의 말에 강호는 한동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고, 형의 바람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 개를 꺼내 쭈뼛쭈뼛한 태도로 형에게 건넨 강호.

형은 그런 강호가 내민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조심스럽게 받아든 후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맙다. 잘 쓸게."

형의 대답에 강호는 몇 번이나 이유를 물었지만, 형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이날 형의 이상한 행동은 몇 달이 지나서야 영문을 알 수 있게 된 강호,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형이 요구한 2만원이라는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형이 왜 그런 요구를 했는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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