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59화 (158/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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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다발

스포츠 업체들과의 스폰서 계약과 AMC광고 모델 계약을 체결한 당일, 강호는 업체 사람들과 허동준 기획실장이 물러나자 곧장 개인 훈련에 돌입했다.

계약을 체결하기는 했지만, 오늘 당장 2억이라는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니어서 아직은 자신의 위치가 급상했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힘들었다.

돈이 통장에 입금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이 믿기 힘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전까지는 그저 자신이 짜놓은 일정대로 운동과 개인 훈련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강호가 프런트와의 미팅 자리를 갖는 것을 보고, 코칭스태프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성태 주루코치는 다시 나타난 강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웃는 낯으로 입을 연다.

"강호, 요즘 많이 바쁜 것 같은데? 구단에서 귀찮게 하나보네."

기 코치는 다소 궁금한 기색을 내보이며 말을 건네 오고 있었다.

최근 프런트에서 보낸 사람들과의 미팅이 잦은 강호여서 오전이나 오후 일부 시간을 프런트와의 접견 시간으로 할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호와 함께 훈련을 진행 중인 기 코치 입장으로서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기 코치의 물음에 강호는 마주 웃어 보이며 단호하게 대꾸했다.

"내일부터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프런트에도 경기 외적인 일은 휴식 일에만 진행하자고 말해 뒀어요. 훈련을 방해받는 일은 더 이상 없을 테니까 바로 훈련시작하시죠."

강호는 기 코치의 말에 대꾸하며 곧바로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오전에 개인 운동을 마친 상태여서 따로 몸을 풀 필요는 없었지만, 부상 위험을 경계하는 훈련 방법이 몸에 베어버린 강호는 훈련에 앞서 또 다시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기 코치는 안도하게 된다.

'요즘 들어 강호를 주목하는 시선들이 많아져서 강호가 훈련을 등한시 하거나 거만해지는 것을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어. 애초에 유명세를 탔다고 해서 마음가짐을 바꿀 선수가 아니었던 거야. 하긴 손 감독님이 눈여겨보신 선수가 그런 외부적인 일에 흔들릴 정도로 멘탈이 약해서는 안 되는 거지.'

기 코치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장비들을 양손에 챙겨든 뒤 경기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강호 역시 훈련 장비와 자신의 장비들을 챙겨든 뒤, 기 코치의 뒤를 따랐다.

와이번스와 벌어졌던 홈 3연전 경기 이후에 잡힌 일정은 역시나 사직구장에서 벌어지는 홈 경기였다.

시즌 9위까지 떨어진 라이온즈를 홈으로 불러들여 치루는 세 번째 시리즈 경기.

3연승을 달리고 있는 자이언츠 입장에서는 기세를 이어 이번 홈경기 역시 위닝 시리즈로 이끌어낼 구상을 세우게 된다.

"철이를 2번으로 두시는 겁니까? 그럼 문표는 기존대로 3번 타순에서 1루수로 둬야겠네요?"

라인업 구상에 들어간 손 감독의 곁에서 김민철 수석이 묻고 있었다.

한 때는 자이언츠 1군의 감독 대행을 도맡기도 했던 김민철 수석이어서 아홉 명의 타순을 결정하는 일이 얼마나 머리 아픈 일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야구계의 원로인 손 감독이 지금의 자이언츠 엔트리로 어떤 라인업을 구성할지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그런 김 수석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어떤 타순보다도 먼저 기입되어 있는 4번 자리의 '백강호'라는 이름이었다.

손 감독은 강호의 이름을 4번 자리에 가장 먼저 적어놓은 후, 나머지 타선들을 구상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호에 대한 손 감독의 신뢰와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손 감독님은 4번 타순부터 결정하시는구나. 라인업을 짤 때 감독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 중에 하나지. 중심 타선 자리를 먼저 결정하고, 그 다음 테이블 세터, 나머지 6번부터 9번까지는 남은 수비 포지션에 맞게 배치하는 방법. 가장 고전적인 라인업 구성 방법이기도 하고, 그만큼 확실한 방법이니까.'

김 수석은 손 감독의 라인업 구성 방법에 고개를 끄덕인다.

4번에 유격수인 강호를 넣은 후, 5번에 좌익수 스팅, 3번 자리에 문표의 이름을 넣은 채 나머지 타순을 고민하는 손 감독의 구상은 원칙을 따르는 그의 성격을 떠올렸을 때 가장 어울리는 라인업 구상이기도 했다.

"아니, 문표는 지명타자로 세울 거야. 기존 1루수였던 상훈이에게도 기회를 줘야지."

한동안 고심하던 손 감독의 대답에 김 수석이 피식 웃음 짓는다.

'하긴, 상훈이에게도 기회를 줘야지. 3할 대의 안정적인 타율과 매년 두 자릿수 홈런은 기대할 수 있는 장타력이 있는 선수를 썩혀둘 수는 없어. 우리 팀에는 1루 수비가 가능한 좋은 타자들이 너무 많아. 1루 수비만 가능한 문표나 상훈이, 그리고 2군에서 올라온 인호 모두 3할 대 타율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들이야. 거기에 지금은 좌익수로 쓰고 있는 외국인 타자 스팅 역시도 좌익수 수비보다는 1루 수비가 더 안정적이야. 또, 최근에는 지명타자로만 활용하는 채중석 역시 1루수, 3할이 가능한 1루수 자원이 1군에만 5명이나 있다는 것도 감독으로서는 머리 아픈 일이지.'

김 수석은 팀의 1루수 자리를 놓고 고심 중인 손 감독의 고민을 알 것 같았다.

새로운 외국인 선수인 스팅이 좌익수 수비가 가능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3할 대 타율이 가능한 좋은 타자들을 가지고도 제대로 활용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다섯 명의 선수가 타자로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다섯 명 모두를 1루수로 세울 수는 없지 않은가.

곁에서 김 수석이 지켜본 손 감독의 의중은 스팅을 김문호가 2군으로 빠진 좌익수 자리에 일단 기용하고, 채중석을 지명타자 겸 대타 자원으로, 그리고 문표와 상훈, 인호를 주전 1루수로서 경쟁시키겠다는 의미로 보였다.

이것은 좋은 방법으로 보인다.

'스팅은 정확도가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언제든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파워가 있는 타자고, 대타 자원인 채중석은 선구안이 뛰어나고 한 해 20개 정도의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파워가 있어. 여기에 김상훈과 이인호는 서로 비슷한 유형의 타자야. 괜찮은 타격과 선구안, 1루수로는 그리 느리지 않은 주력에 중간 정도의 수비력을 갖추고 있지.'

김 수석은 스팅과 채중석이 타순에 들어갔을 때의 무게감과 상훈과 인호의 수비 등을 떠올려보며 나머지 한 명의 경쟁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문표는 1루 수비가 다소 부족한 면이 있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뛰어난 컨택 능력과 준수한 선구안, 그리고 꽤나 괜찮은 장타력과 주력을 갖춘 4툴 타자의 면모를 갖추고 있어. 다섯 명의 경쟁자들이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있으니 상대 팀의 상황이나 선수단의 분위기, 흐름 등으로 때에 맞는 기용을 하면 되는 거야.'

김 수석은 자신이 감독 입장으로 자이언츠의 1루수 자원들을 대입해보다 손 감독이 6번 자리에 1루수 김상훈의 이름을 넣는 것을 보고는 조금은 놀라는 모습이었다.

"민수를 7번에 넣으시려고요? 요즘 민수의 펀치력이 좋지 않습니까? 홈런도 벌써 14개나 때려냈고요. 페이스도 괜찮은 편입니다."

김 수석은 팀의 캡틴인 포수 강민수를 6번에 넣지 않는 손 감독의 결정에 의아해 한다.

그러자 손 감독은 쥐고 있던 펜을 놓지 않은 채 고개를 내젓는다.

"민수는 하루 쉬게 해 줘야지. 포수를 다른 야수들과 같이 보면 되나? 민수 본인이 괜찮다고 해도 우리 코칭스태프는 포수의 체력 안배를 항상 신경써줘야만 해. 주전 포수가 무너지면, 투수 조에 혼란이 오고, 결국 팀은 무너지고 마는 거야. 어떤 포지션보다 중요한 것이 포수라는 자리고, 주전 포수에게 못해도 한 달 2번 정도의 휴식은 필요한 거야."

손 감독은 그렇게 자신의 철학을 밝히며, 포수 자리에 캡틴 강민수를 대신하여 22살의 어린 백업 포수인 안민경의 이름을 써놓는다.

그러면서 타순에는 9번 자리에 민경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손 감독은 6번에 상훈, 9번에 민경의 이름을 적으며 그 다음부터는 빠르게 라인업을 구성해 나간다.

"중견수 성철이와 우익수 박철은 2군에 있을 때부터 타격 능력과 주루 센스가 돋보이던 녀석들이야. 성철이를 1번, 박철은 2번에 놓고, 문표와 강호, 스팅으로 이어지는 중심 타선이면 짜임새가 좋아. 6번에 상훈이를 넣었으니까 7번에는 진택이를 넣고, 8번 자리에 인태를 넣어서 인태 녀석을 체크해보는 것도 좋겠지."

손 감독은 김 수석에게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오늘의 라인업을 모두 완성하고 있었다.

김 수석은 손 감독이 구상한 라인업을 확인하며 과연 손 감독의 말대로 타순의 짜임새와 밸런스가 좋아 보인다고 여기면서,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하다. 분명 타순의 짜임새도 좋고, 무게감도 충분해. 문표와 강호, 스팅을 중심 타선에 놓으니까 다른 어떤 팀과 비교해도 우월한 클린업 트리오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기존의 라인업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야. 그게 뭘까?'

김 수석이 고민에 빠진 사이 손 감독은 자신이 직접 작성한 라인업을 들고는 '잠시 다녀오겠네'라고 말하며 사무실을 벗어난다.

구성을 완성한 라인업을 프런트 직원에게 통보하여 오늘 경기에 정식 등록할 생각인 것이다.

"아!"

손 감독이 사무실을 벗어난 후,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김민철 수석이 탄성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이제야 손 감독이 구성한 오늘 라인업의 특이점을 깨닫고는 탄식을 토해내는 모습이다.

'세대교체다! 오늘 라인업에서 1루수 김상훈과 3루수 오진택, 그리고 외국인 선수인 스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작년까지만 해도 2군으로 분류되던 선수들이었어. 문표가 나이가 있긴 해도 성철이나 박철, 강호와 황인태, 안민경 모두 20대 초중반의 선수들이야! 손 감독님은 오늘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준다는 명목으로 2군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을 제대로 시험해 보시려는 거야. 이건 분명 올 시즌에 선수단의 세대교체를 감행한다는 뜻일 거야!'

김 수석은 얼마 전, 팀의 4번 타자인 3루수 황제인과 오랜 시간 주전 2루수 자리를 도맡았던 최훈에 대한 수술 결정을 내리고도 확고한 표정을 짓던 손 감독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손 감독 본인이 2군 감독으로 10년 넘게 자리하고 있었으니 자신이 키워낸 선수들이 1군에서 통할지 아닐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손 감독님은 제인이와 최훈이 빠진 자리를 2군 선수들로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거야. 그 생각대로 기존 유격수인 오진택을 3루로 보내면서 모든 내야 자리를 2군의 젊은 선수들로 대체할 수 있게 됐어. 이번에 올라온 2루수 황인태는 겨우 20살, 불펜의 핵심으로 큰 권대우와 동갑인 신출내기야. 포수인 안민경은 22살, 2번 타순에서 주전 우익수로 자리잡아가는 박철 역시 22살. 여기에 4번 타자가 된 강호는 25살이고, 1번 타자로 자리 잡은 성철이는 26살. 1루수 김상훈과 3루수 오진택 역시 이제 갓 삼십 대가 된 한창 때의 선수들이라는 것을 가정한다면 이거야말로 완벽한 세대교체야!'

김 수석은 손 감독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에 전율하고 있었다.

단지 올 시즌의 팀 성적뿐만 아니라 다소 노화되어가는 자이언츠 선수단을 효율적으로 세대교체하기 위한 신구 조화를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나이가 어려 연륜이 적을 수도 있는 2군 선수들의 구심점이 되는 선수는 다름 아닌 문표와 강호.

30대 중반의 나이로 유쾌한 분위기에 특유의 친화력이 있는 문표가 2군 선수들을 주도하고, 어느새 팀의 대표 타자로 자리한 4번 타자 강호가 2군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30대의 문표가 혼자서 도맡았다면 아직은 어린 2군 선수들과의 괴리감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25살에 불과한 강호는 올 시즌을 2군에서 출발한 젊고 패기 넘치는 유망주들을 대표하는 선수였다.

그런 강호가 알게 모르게 2군 선수들의 기대를 받으며 1군 핵심 선수로 자리하게 되자, 강호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2군 출신 선수들의 구심점 역할을 도맡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손 감독님은 이런 부분까지 생각해 두신 건가? 실력으로 승부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이런 부분까지 생각하며 선수단을 만들어나가는 지도자는 거의 없어. 아니 아예 없다고 봐야해. 모든 감독들이 바라는 최선의 세대교체를 위해 손 감독님께서 이 모든 일을 계획하셨단 말일까? 정말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김민철 수석은 조금씩 자신의 눈에도 보이기 시작하는 손 감독의 그림에 몸을 떨어 보인다.

신구조화를 이루는 세대교체야 말로 모든 감독들이 바라는 최고의 업적일 테지만,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감독들이 선수단 세대교체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감독 직에서 물러나고는 했다.

그런데 손 감독은 1군 사령탑의 자리에 앉자마자 빠르고,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이루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오랜 지도자 생활로 이제 환갑이 다되어가는 김민철 수석으로서도 손 감독의 혜안을 모두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하면서도 치밀한 설계였다.

'손 감독님, 당신이 올 시즌에 그리고 있는 그림은 대체 어떤 겁니까?'

김 수석은 코칭스태프 사무실에 홀로 남아 언젠가 손 감독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되뇌어 본다.

한 편, 김 수석에게 충격을 선사하고 밖으로 나선 손 감독은 한 사람과 대면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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