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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기록을 다시 쓰다
자이언츠 홈팬들은 기대어린 눈빛으로 강호의 타석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은 1회 말 상황이었지만, 강호가 주자 1, 3루 상황에서 타석에 선다는 기대감과 그가 1군 데뷔 이후 처음으로 4번 자리에 오른다는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었다.
"야, 지금 백강호가 홈런 치면 쓰리 런이잖아. 1회 말부터 3점내고 가면 오늘 경기는 쉽게 가겠네!"
관중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 남자 팬이 곁에 앉아 있던 친구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자 친구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대답했다.
"지금 쓰리 런이 중요해? 백강호 홈런이 몇 갠 줄 모르는 거야? 29개째잖아. 이번에 홈런 치면 30개라고.”
친구의 말에 남자 관중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뭐? 벌써 그렇게 됐어? 그러면 오늘 홈런 치면 30-30달성하는 거네?”
“당연하지! 정의준이 아무리 날고 기어봐라. 지가 홈런은 33개를 쳤어도 도루는 2개밖에 없잖아. 우리 백강호 선수는 벌써 도루 51개째라고. 홈런 하나만 더하면 바로 30-30달성인 거야!”
두 친구는 1루 쪽 관중석에 앉아 금방이라도 실현 가능해 보이는 강호의 30-30달성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었다.
그런 두 친구의 대화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백강호’라는 이름으로 도배된 플랜카드를 들고 있던 젊은 여자들이 말을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30-30이 뭐에요?”
자신들에게 말을 걸어오는 여자의 고운 목소리에 두 친구의 시선이 등 뒤를 향해 이동한다.
‘와~예쁘다!’
두 친구는 말을 걸어온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자들을 향해 몸을 돌린다.
“30-30이 뭐냐면요...”
“30-30은 홈런하고 도루가 30개씩을 달성했다는 겁니다!”
두 친구는 경쟁이라도 하듯이 목소리를 높이며 미모의 여자들에게 야구 상식을 알려준다.
서로 말을 하려다 보니, 말이 겹치고 만 두 친구는 오랜 친구였던 서로를 잠시 노려보다 다시 활짝 웃는 얼굴로 여자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아...!”
여자는 백치미 넘치는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재차 질문을 던져온다.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두 친구는 ‘헤헤’하고 실없는 웃음을 흘리고 만다.
“30-30이 어려운 기록이에요?”
여자의 질문에 두 친구는 이번에도 경쟁적으로 입을 연다.
“당연하죠! 특히나 백강호 선수처럼 데뷔 시즌 30-30은 박재헌 선수 이후에는 없었던 기록이에요. 20년은 더된 기록이라고요!”
두 남자의 대답에 질문을 던졌던 미모의 여자와 그 곁에 앉은 다섯 명의 다른 여자들이 환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와아~강호 오빠가 대단한 기록 세울 거래!”
“정말? 대박이다! 잘생긴 사람들이 일도 잘하나봐!”
미모의 여자들은 두 친구의 설명에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강호가 달성할 기록을 기다린다.
그런 여자들을 바라보며 두 친구는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요즘 사직구장에 예쁜 여자들이 많이 오는 구나. 이것도 ’백강호 효과‘같은 건가?’
여자들이 자신들에게서 관심을 끄자 자연스럽게 그라운드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리게 된 두 친구. 그들의 눈에 와이번스 선발 투수의 4구째를 상대하고 있는 강호의 모습이 그려진다.
“볼 투.”
강호는 주심이 4구 판정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타석에 오르기 전, 그는 한 가지에 대한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다.
‘4번 타자로 오르는 첫 타석부터 기회가 주어졌어. 4번 타자로서의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이 타석에서 한 방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거야! 타격 아이템을 사용해야 할까?’
대기 타석에 있던 강호는 일회용 타격 아이템을 사용해 손쉽게 타점을 기록할 유혹에 빠지고 있었다.
여기서 ‘홈런’아이템을 사용해 선제 쓰리 런을 기록하거나 2루타 이상의 장타를 때려내 2타점을 올린다면 4번 타자로 처음 서는 타석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욕심이 가득 차오른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타순도 아닌 4번 타자이지 않은가.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는 거야. 4번 타자로 서는 첫 타석이잖아. 지금은 타격 아이템을 사용하는 게 맞아.’
강호는 그렇게 마음을 먹으며 타석에 올랐었다.
그러나 타석에 올라 다시 보게 된 상태창의 스탯들을 확인해보며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백강호(24)
포지션:SS
컨 택:108.6(+12)
파 워:100(+10)
선구안:87(+7)
주 력:100.9(+7)
수 비:97(+7)
송 구:87(+7)
멘 탈:98.5(+7)
*볼넷 확률 5%증가, 안타 칠 확률 25%증가, 장타률 5%증가, 홈런 확률 5%증가
두 가지 스킬 모두 적용된 결과로 컨택이 108.6, 파워가 정확히 100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훈련에 매진했던 결과물이 수치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강호는 그 수치들을 확인한 후에 속으로 피식 웃게 된다.
‘쓰지 말자. 나를 믿고, 내가 흘렸던 땀방울을 믿고. 4번 타자로서의 첫 타석만큼은 내 힘으로 해보는 거야!’
득점권 상황에서 아이템 사용을 묻고 있는 시스템의 물음에 강호는 거절의 의사를 밝힌 뒤, 곧 타격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는 상대 투수 임진혁을 응시하며, 초구를 기다린다.
구종: 슬라이더
구속: 129km
상대 배터리가 자신을 상대하기 위한 초구를 결정지은 것인지 기간제 아이템 효과로 인한 정보들이 표시되고, 강호는 임진혁 투수가 던진 초구에 속으로 쓴웃음을 삼키게 된다.
“볼.”
임진혁 투수의 초구에 대한 주심의 판정은 볼이었다.
우완 투수인 임진혁 투수가 던진 슬라이더 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왼쪽으로 빠져버린 공에 강호는 상대 배터리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어렵게 가겠다는 뜻이구나. 여차하면 거르겠다는 생각으로.’
강호는 임진혁 투수가 자신과 정면 대결을 할 생각이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4번 타자로 나선 첫 타석을 볼넷으로 걸어 나갈 생각이 없었던 강호는 고민에 빠진다.
그 후, 임진혁의 2구째가 뿌려지고 있었다.
구종: 포심 패스트볼
구속: 145km
초구에 이어 2구 역시 빠지는 공이라 예상하고 있던 강호는 벼락같이 배트를 휘둘렀다.
임진혁의 2구는 빠지는 공이 아니라 바깥 쪽 코스를 교묘하게 걸치고 들어오는 속구였기 때문이다.
‘승부를 보겠다는 뜻이구나!’
강호는 상대 배터리가 초구를 통해 자신의 계산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점을 곧바로 파악하고 있었다.
상대 투수가 던지는 공의 코스를 알 수 있는 강호에게는 이런 심리전은 무의미한 것이다.
따악.
시원한 타격음이 타석을 가득 채웠지만, 강호는 1루를 향해 뛰지 않았다.
배트 스피드가 지나치게 빨랐던 까닭에 타구가 3루 쪽 방면으로 향하는 파울 타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관중석을 완전히 넘겨버리는 장외 파울 타구에 관중들이 ‘와아’하는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4구째는 유인구를 던지겠지. 승부처는 5구나 6구째가 될 거야.’
강호는 파울 타구를 날려 보낸 뒤, 타석에서 반 발짝 물러나 상대 배터리의 의도를 예측해 본다.
포심 구속이 그리 빠르지 않은 임진혁 투수로서는 정면 승부 보다는 유인구 위주의 승부를 가져갈 것으로 보였다.
그런 까닭에 투수에게 유리한 볼 카운트인 1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던질 다음 공은 유인구라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이어진 임진혁의 투구가 강호의 예측을 정확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구종: 슬로우 커브
구속: 102km
커트해낼 필요도 없이 스트라이크 존에서 크게 벗어나는 4구 코스 선택에 강호는 공을 지켜만 본다.
“볼 투.”
주심의 판정은 당연히 볼이 되었고, 강호는 이제 승부처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배트를 강하게 쥔다.
그 때 1루 쪽 관중석에서 자이언츠 홈 팬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백강호 파이팅!”
“백강호 선수! 홈런 한 방 쳐주세요!”
각자의 바람을 담은 홈 팬들의 응원이 들려온다.
홈 팬들의 응원에 부담을 느끼기에는 강호도 사직 구장의 응원 문화에 많이 적응된 상태. 간절한 목소리로 자신을 응원하는 자이언츠 홈 팬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욕을 더욱더 불태우게 된다.
그런 강호의 시야에 임진혁 투수의 5구째 공이 표시되고 있었다.
구종: 슬라이더
구속: 127km
강호는 시야에 표시되는 임진혁 투수의 슬라이더에 크게 고민한다.
‘임진혁 투수의 슬라이더는 횡으로 이동하는 무브먼트가 적어. 이 정도 구속이면 노리고 쳤을 때 강한 타구로 만들어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코스가 애매해.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걸치고 가라앉는 슬라이더는 분명 볼이야. 그런데 주심이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고 해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코스. 정상적인 레벨 스윙으로는 정타를 때리는 게 불가능해. 이번만큼은 커트한다는 생각으로 스윙 궤적을 바꾸자!’
강호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스윙궤적과는 다른 어퍼 스윙으로 타격자세를 변경하고 나섰다.
파울이 나와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타격 자세를 순간적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 강호의 스윙은 본인이 의식하는 것보다 월등한 배트 스피드로 홈 플레이트를 지나고 있었고, 임진혁이 던진 애매한 코스의 슬라이더를 정확하게 가격한다.
따악!
호쾌한 타격음이 울린 후 경기장에 자리한 모두의 시선이 외야를 향해 옮겨진다.
한 편 비슷한 시간에 김해시의 작업 현장에 나가있던 강호의 친 형, 강수는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에 전념하는 중이었다.
“강수 씨, 여기 보수초배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럼 작업이 오늘 중으로 안 끝날 것 같은데.”
작업 현장의 책임자인 강수에게 현장 기공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지금은 저녁 여섯 시가 훌쩍 넘은 시간, 새벽부터 작업 현장에 나서는 기공들에게는 퇴근을 준비해야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강수는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꾸하고 있었다.
“이 집은 우리가 작업을 늦게 시작해서 제대로 끝내줘야 해요. 보수초배를 안 해 놓으면 벽에 곰팡이 올라오는 거 아시잖아요? 내일 다시 와서 작업하더라도 보수초배는 꼭 해야 합니다.”
“우리 강수 씨, 너무 꼼꼼하시다. 보수초배까지 안 해도 이 집은 남향이라서 곰팡이 안 올라올 것 같은데?”
“견적에 다 포함되어 있는 거니까. 견적대로 작업은 들어가야죠.”
강수는 현장에서 수십 년을 일한 베테랑 기공들을 좋은 말로 설득하며 잠시 현장인 방안을 벗어난다.
그런 그에게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집주인의 옆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보통은 집의 벽지를 갈아엎는 시공을 할 때는 집주인이 집을 비우는 것이 통상적인 경우였지만, 이 집의 주인은 도배를 다시 하는 현장에서도 tv를 보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뭔 놈의 tv를 보고 있길래 시공 현장에서 나가지도 않고 tv를 보고 있는 거야?’
강수는 조금은 무 개념 하다 말할 수 있는 집 주인의 행동에 속으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일감을 주는 고객이라는 생각으로 웃는 낯으로 다가간다.
“김 사장님. 지금 작업에 들어갈 텐데 풀 냄새가 심하게 날 수 있어요. 창문도 닫아야 되고요. 집에 계시면 불편하실 수도...”
집 주인에게 말을 건네려던 강수는 집주인이 집중하고 있는 tv채널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말을 멈추고 만다.
대형 LED TV에서는 자이언츠와 와이번스의 경기 화면이 중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수의 귀에 중계 캐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백강호 선수, 잘 골라냅니다. 지금 백강호 선수가 30홈런에 홈런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거든요. 만약에 이번 타석에서 홈런을 때려내면, 지금은 해설 위원이죠? 박재헌 위원의 현역 시절 이후에 데뷔 시즌에서 30-30을 기록하는 두 번째 타자로 기록되게 됩니다.”
캐스터의 말에 곧 안지원 위원의 해설이 들려오고 있었다.
“페이스는 백강호 선수가 박재헌 위원 때의 기록보다 월등합니다. 아직 6월이거든요. 백강호 선수의 지금 타석이 이번 시즌 299타석 째입니다. 아직 300타석도 안 됐는데 30-30을 노린다는 사실이 대단해 보이네요.”
안지원 위원의 말이 끝나자 집 주인인 김 사장은 손을 비비면서 곁에 다가온 강수에게 말을 건넨다.
“아, 강수 씨. 미안해요. 내가 집을 비워줘야 되는데. 이것만 보고 나갈게요. 지금 중요한 장면이거든? 강수 씨는 야구 안 좋아해서 잘 모르겠지만, 백강호가 유명한 선수거든요. 지금 기록 달성할 수도 있어서 이것만 보고 나갈게.”
집 주인인 김 사장은 강수가 강호의 친형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양해의 말을 건네 온다.
강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도 모르게 김 사장의 곁에 앉고 있었다.
김 사장은 그런 강수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건네려고 하다가 TV스피커에서 나온 타격음에 다시 TV화면에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따악!
맞는 순간, 장타임을 알게 하는 호쾌한 타격음에 김 사장과 강수가 동시에 소파를 박차고 일어선다.
“어?! 저거 넘어갈 것 같은데? 홈런이가? 홈런?”
김 사장은 강수의 존재를 잊은 채 TV속의 강호가 날린 타구가 사직구장의 담장을 넘기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런 김 사장의 곁에서 목장갑을 낀 채로 tv속 동생의 모습을 지켜보던 강수가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그런 두 사람의 시선에 사직구장의 좌측 담장을 넘겨버리는 강호의 홈런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 순간, 캐스터의 우렁찬 목소리가 거실 가득 울려 퍼진다.
“홈런입니다! 백강호 선수가 역대 어떤 타자보다 빠른 페이스로 30홈런, 30도루 달성에 성공합니다! 아! 지금 사직 구장에는 백강호 선수의 기록 달성을 축하하는 축포가 터지고 있습니다!”
권 캐스터의 힘찬 중계 후, 안지원 위원이 긴 감탄사를 토해내며 해설을 이어가고 있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이 선수를 누가 올 시즌에 처음 데뷔한 선수라고 믿겠습니까? 타율을 4할 대를 유지하면서 30-30을 기록한 것은 여태껏 없던 기록이에요.”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안 위원의 해설은 계속되었지만, 거실에 자리하고 있던 두 사람의 귀에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집 주인인 김 사장이 강수에게 말을 건네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수 씨도 야구 좋아하는 모양이네? 자이언츠 팬이야?”
김 사장의 물음에 강수는 동생의 홈런으로 인한 가슴의 울림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써야 했다.
그리고는 ‘아닙니다. 지금부터 시공 들어가니까 풀 냄새가 심하게 날 수도 있어요’ 라고 대꾸하며 잠시 작업 현장을 벗어나 밖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강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멀리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대견한 동생을 향해 전하고 싶은 말을 마음으로 대신한다.
‘잘 했다. 내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