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홈런왕 백강호-154화 (153/335)

0154 / 0335 ----------------------------------------------

자이언츠의 4번 타자

6월 20일 목요일 저녁.

자이언츠 팬들은 이상현 단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구단이 발표한 감독 임명 소식을 반기는 모습이었다.

"손성조 감독이면 그 사람 맞지? 우리 팀 2군에서 10년이나 있었다던 원로 감독 말이야."

"그렇다네. 최근에 손성조 감독 기사도 많이 실렸잖아. 보니까 백강호나 권대우 같은 OP급 신인들은 죄다 손성조 감독이 발굴했다던데. 다른 2군 선수들도 직접 키워내고. 그 정도는 되야 제대로 된 감독이지. 작년까지는 진짜 너무 했어. 매번 초짜 감독들만 내세우고 말이야."

"자이언츠가 이제 좀 야구할 생각이 생겼나보네. 그 정도 베테랑 감독 정도는 내세워야지 상위권 경쟁이라도 하지. 자이언츠가 언제부터 강팀이었다고. 매년 단골 8등 팀 아냐? 감독도 제대로 된 사람으로 바뀌었으니까 이번에는 제발 쉽게 좀 가자. 마음 편히 가을야구 볼 수 있게."

팬들은 이제야 구단 측에서 제대로 된 감독을 임명했다고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최근 몇 주 동안 지정만 사장이 손성조 감독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각종 보도 자료와 언론을 통해 작업을 해둔 것이 팬들의 믿음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이언츠에 대한 기대감은 이날 경기에서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관중석을 거의 가득 채우다시피 한 자이언츠 홈팬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와아~ 관중석 가득 찬 것 좀 봐. 웬일이야? 손 감독님이 그렇게 인기 스타였나? 감독님 바뀌었다니까 관중석이 거의 만원이네. 강호 후배, 어떻게 생각해?”

문표는 경기 전, 팀 훈련 상황에서 강호를 향해 묻고 있었다.

강호는 그런 문표의 물음에 짧은 대답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이겨야죠.”

“뭐? 그게 다야? 무조건 이겨야지. 세상에 지고 싶어서 경기하는 프로 선수도 있어?  좀 더 구체적인 각오를 말해 봐.”

문표의 요구에 잠시 집중하고 있던 훈련을 멈춘 강호는 가만히 선 채로 문표를 응시한다.

그런 강호의 태도에 문표 역시 행동을 멈추고, 강호를 마주본다.

“왜 그렇게 보는 거야? 내가 그렇게 잘 생겼어?”

문표의 물음에 강호는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대답했다.

“선배님, 오늘 지명타자잖아요. 대체 수비 훈련은 왜 하시는 겁니까? 수비 상황에 벤치에 앉아 계실 텐데요.”

핵심을 찌르는 강호의 물음에 문표는 ‘하하, 그러게 내가 왜 수비 훈련을 할까?’라고 대답하며 글러브 대신에 배트를 집어 든다.

그런 문표를 향해 강호가 말을 더했다.

“그리고 선배님, 얼굴 안 잘 생겼어요. 누가 잘 생겼다던가요?”

무표정한 얼굴로 장난을 치는 강호의 물음에 문표는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대꾸했다.

“우리 엄마가 그러던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생겼다고.”

엄마를 찾는 문표의 말에 강호는 여전히 장난스럽게 대꾸하려다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문표가 꺼낸 말에 순간 막아두었던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조금씩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하는 속내를 감추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엄마들은 아들이 다 예뻐 보이는 거죠. 저희 어머니도 생전에 그러셨으니까요.”

강호는 그렇게 스스로의 감정을 절제하며 문표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선배님은 좋겠습니다. 내 아들 예쁘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가 계셔서요.”

겨우 마음을 다잡은 강호의 말에 문표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대답한다.

“응? 무슨 소리야? 우리 엄마도 돌아가셨는데? 10년도 더 된 일이야.”

문표는 그렇게 대꾸하며 피식 웃어 보인다.

강호는 처음 알게 된 문표의 가정사에 놀라며 그의 미소가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진다는 생각을 가진다.

‘그러고 보니까 문표 선배의 개인사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구나. 야구에만 전념하다 보니 팀에서 가장 친한 문표 선배와 경기장 밖에서는 자리를 가져본 적이 많이 없어.’

강호는 그동안 밖에서 밥 한 끼 먹자는 문표의 청을 거절하기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문표의 뜻대로 밖에서도 교류를 가졌더라면 그의 모친이 돌아가신 사연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문표 선배하고 밥 한 끼 해야겠어. 내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강호는 문표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스스로 약속을 정한다.

그런 강호의 표정을 살피고 있던 문표는 강호에게로 다가와 프리마켓 방문 이후에 더욱 듬직하게 보이는 강호의 가슴팍을 툭하고 친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우리 4번 타자. 드디어 나하고 밥 한 끼 먹을 생각이 든 거야? 오늘은 나도 사양이야. 선약이 있어서. 대신 오늘 경기에서 멋진 홈런 하나 때려달라고. 오늘은 손 감독님이 1군 감독으로 경기에 서시는 첫 날이잖아. 4번 타자가 감독님의 부담감을 덜어줘야 하지 않겠어?”

문표는 웃는 낯으로 강호를 향해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런데 강호가 대답의 말을 하려는 찰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1루 관중석 쪽에서 ‘끼악’하는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다.

강호와 문표가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백강호’라는 이름으로 도배된 플랜카드를 들고 있는 젊은 여자들이 강호가 자신들을 향해 시선을 주자 더욱 높은 고음의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뭐야, 쟤들 왜 저러는 거야? 네 팬클럽이야?”

문표는 아무 생각 없이 강호의 가슴을 툭 쳤던 행동이 강호를 바라보던 팬들의 비명 소리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에 어이를 상실하게 된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문표의 개인사로 조금은 다운되어 있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강호의 팬들로 인해 들뜬 분위기로 바뀐다.

“그런가 봅니다. 저는 문표 선배하고는 다르게 얼굴이 잘 생겼잖습니까? 젊은 여자 팬이 생기는 게 당연한 거죠.”

문표의 말을 흉내 내며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강호의 말에 문표가 정색하고 나선다.

“누가 그래? 너 잘 생겼다고? 쟤들이 그래?”

“아뇨. 돌아가신 저희 엄마가 그랬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낫다고요.”

강호는 조금 전, 문표의 말로 무거워졌던 분위기를 지금의 말로써 말끔히 털어내며 씨익 웃어 보인다.

프리마켓을 통해 91.5까지 강화된 강호의 멘탈과 정신력은 단지 경기에서 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고 있었던 것이다.

문표는 빠르게 제 모습을 찾은 강호의 표정을 마주하며 ‘호오’하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런 자세 좋아. 자고로 팀의 4번 타자는 뻔뻔한 구석이 있어야 돼. 저 여자 관중들은 강호, 너의 뻔뻔한 모습을 좋아하는 모양인데?”

“아니요.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 여자 팬들은 제가 뻔뻔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잘 생겨서 좋아하는 거라고요. 더군다나 야구도 잘하잖아요. 선배님도 조금 더 분발 하십시오. 그러면 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저씨 팬 몇 명 정도는 생기지 않겠습니까?”

“....너는 그만 뻔뻔해도 되겠다. 저리가. 나 타격 연습해야 돼.”

결국 항복을 선언한 문표가 강호의 곁에서 한 발짝 물러선다.

그 모습에 사심 없이 웃어 보이는 강호를 바라보며 1루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여자 팬들의 비명 소리가 더욱 커진다.

강호는 그 덕분에 스스로의 인기를 실감하며, 곧 시작될 경기를 준비해 나간다.

그리고 시간은 항상 빠르게 흘렀다.

“안녕하십니까? 사직에서 열리는 자이언츠와 와이번스, 두 팀 간의 시리즈 3차 전 마지막 경기의 중계를 맡은 캐스터 권성호입니다. 해설에는 변함없이 안지원 위원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캐스터의 힘찬 중계와 함께 두 팀 간의 시리즈 마지막 경기의 막이 올랐다.

권 캐스터는 우선 1회 초, 공격 팀인 와이번스의 타순을 설명한 후 이어서 중계 화면에 표시되고 있는 자이언츠의 수비 포지션 설명에 나선다.

“자이언츠의 수비 위치입니다. 내야에는 1루수 김상훈, 2루수 황인태, 유격수 백강호, 3루수 오진택입니다. 외야에는 좌익수 스팅, 중견수 유성철, 우익수 자리에는 박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자이언츠의 배터리는 캡틴인 강민수 포수와 성수제 투수가 호흡을 맞추겠습니다.”

권 캐스터가 수비 포지션 설명을 끝낸 후, 곁에 있던 안 위원이 정해 두었던 짧은 해설의 말을 더한다.

“오늘 자이언츠는 특이 사항이 많습니다. 1회 말에 자세히 설명 드리겠지만, 4번 타자이자 3루수였던 황제인 선수가 손목 정밀 검사 결과 인대 손상 판정을 받고 엔트리에서 빠졌거든요. 그리고 원래부터 허리가 좋지 않았던 2루수 최훈 선수도 재활 일정으로 재활 군으로 내려갔습니다. 제가 경기 전에 자이언츠 벤치에 확인해보니까 두 선수 다 수술 일정을 잡는다고 합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는 해도 재활 과정까지 간단하지는 않거든요. 두 선수 모두 최소 1달 이상은 1군 엔트리에서 빠지지 않을까하네요.”

안 위원은 자이언츠 구단 운영 팀에서 미리 알려준 황제인과 최훈, 두 선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더했다.

그 후, 와이번스의 1회 초 공격이 이어진다.

“후우~”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로 나선 성수제가 긴 호흡과 함께 초구를 뿌리고 있었다.

경기에 나서기 전, 투수코치인 여민석으로부터 와이번스 1번 타자인 가메스를 범타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을 받은 수제는 1구부터 전력을 다해 공을 던진다.

퍼엉!

수제의 초구가 포수 강민수의 미트에 틀어박힌 후, 판정을 고민하던 주심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스트라이크!”

주심의 초구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초구 판정 후, 포수인 민수에게서 공을 돌려 받은 수제는 다음 싸인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곧장 2구를 던졌다.

여민석 투수 코치와 함께 준비했던 대로 간격 없는 투구로 가메스의 집중력을 분산시키려는 의도였다.

“스트라이크 투!”

주심의 두 번째 판정마저 스트라이크가 되는 것을 확인한 수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메스를 쉽게 잡아내기 위한 작전이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판단을 내린다.

‘빠르게 잡는 거야. 굳이 어렵게 갈 필요 없어. 민수 선배는 유인구 목적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요구하지만, 스트라이크 존으로 체인지업을 밀어 넣는 거야!’

수제는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인 가메스를 3구 삼진으로 쉽게 잡아내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3구째 체인지업을 스트라이크 존 외곽을 겨냥한 채로 던지고 있었다.

‘이 공이야!’

그런데 타자인 가메스가 수제의 체인지업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투수인 수제는 미처 알지 못했다.

따악!

배트가 공을 정확히 때려낸 호쾌한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왼쪽을 향해 뻗어져 나간다.

그 모습을 확인한 수제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타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타구 방향과 가메스의 스윙으로 예상했을 때, 최소 2루타는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수제의 예상은 틀린 것이었다.

터업!

어느새 3루수와 인접한 곳까지 몸을 날린 강호의 글러브가 가메스의 타구를 걷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투수인 수제가 보기에는 도저히 막을 수 없어보였던 타구 방향이었는데 미리 대비하고 있던 강호는 몸을 날리며 그 타구를 순식간에 아웃 카운트로 바꿔놓고 있었다.

“아웃!”

강호가 라인드라이브 성 타구를 잡아낸 것을 확인한 3루심이 아웃 선언을 했다.

순식간에 지나간 장면이라 잘 보지 못했던 관중석의 홈 팬들도 3루심의 아웃 판정에 곧장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뭐야? 잡은 거야? 누가?”

“누구긴 누구겠어요? 우리 백강호 오빠죠~”

강호의 멋들어진 호수비에 그의 팬을 자처하는 젊은 여자들이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라운드 위에 서있는 강호에게도 들릴 정도로 여성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강호는 부드러운 마무리 동작으로 바닥에 착지한 상태에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성수제 투수에게 공을 건넨다.

수제는 그런 강호에게 엄지를 척하고 내밀며 감사의 의사를 표시한다.

“그런 타구를 어떻게 막은 거야? 강호, 너도 대단하다!”

“글러브로 막았습니다. 다음에도 막을 테니까 마음 놓고 던지세요.”

수제는 공을 직접 건네며 대답하는 강호의 믿음직한 목소리에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자칫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1회 초부터 위기 상황에 처할 뻔했지만, 강호의 호수비 하나가 자신과 팀을 위기에서 건져내준 것이다.

수제는 강호가 건넨 말대로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다음 타자를 상대한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은 와이번스의 2번 타자를 상대로 던진 수제의 6번 째 공에 삼진을 선언한다.

다시 포수 강민수의 리드를 따르기 시작한 성수제 투수는 2번 타자 김재영과 3번 타자 김성연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삼자범퇴로 이닝을 손쉽게 마무리한다.

반면에 1회 말에 마운드에 오른 와이번스 선발 투수 임진혁은 자이언츠의 1번 타자인 유성철을 범타로 돌려세웠지만, 2번 타자인 박철과 3번 타자인 문표에게 연타를 얻어맞으며 1사 주자 1, 3루의 위기를 자처하고 만다.

그리고 타석은 4번 타자인 강호에게로 이어진다.

"와아아아~"

2만 8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직 구장 대부분을 채운 홈 팬들의 뜨거운 환호성 속에 1군 무대에서 처음으로 4번 타자로 나선 강호의 발걸음이 드디어 타석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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